😎내가 '어느새부터 힙합이 안 멋져' 보인 이유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마포구비둘기🕊️입니다. 제가 자주 다니는 길에 계절을 알려주는 요정 한 분이 계시답니다. 그 분은 여름에는 찐옥수수를 파시고 겨울에는 군고구마를 파시는 할머니인데요.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살가운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늘 같은 자리에 계신 요정에게 내적 친밀감이 들었는지 날씨가 쌀쌀해지니 그 분 생각이 나네요. 조만간 현금을 챙겨 군고구마를 사러 가야겠어요.

벌써 시월도 절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비가 오면서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니 드디어 시간과 온도의 톤앤매너가 맞춰진 것 같아요. 연말이 다가오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많이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평소 잡생각을 많이 하는 저는 하다하다 티빙 오리지널 예능인 '랩퍼블릭'을 보다가도 회고의 시간을 가졌네요. 오늘은 '랩퍼블릭'을 보며 생각나던 옛날 힙합 음악들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논란의 쇼미더머니 속 한 무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불협화음(feat. AKMU) - 머드 더 스튜던트

“어! 느새~ 부터,

힙.합.은 안 멋져”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쇼미더머니라는 힙합의 중심부(?)에서 외쳤던 가사 한 마디가 의도치 않은 광역 도발이 시작됐다. 2010년대를 휩쓸었던 힙합의 머니스웩이 남발되기 시작했고, 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래퍼들이 늘어 나면서 피로감을 느끼던 청중은 이찬혁의 일침에 통쾌해했다. 그 청중에는 10년 넘게 힙합을 들어온 나도 포함됐다.

🎤진흙 속에서 피는 꽃(feat. Kebee & MC Meta) - The Quiett

“우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내가 힙합에 빠져들게 만든 곡이 여럿 있지만 그 중 하나를 꼽자면 더콰이엇의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다. 불안한 미래 속에서도 언더그라운드에서 자리를 지키는 자긍심이 드러나 있는 곡이다.

15살의 중학생인 나는 그 모습이 멋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힙합을 들으며 위로받았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만 보장되지 않은 현실에 고민이 깊었다. 이 고민은 최근들어서야 종지부를 찍었을 정도로 꽤나 깊고 진지했다.

어른들은 중고등학생들의 고민을 어린 애가 하는 치기 정도로 취급하며 깔보곤 하지만 진지하고 무거운 고민들이 많다.(대게 그 고민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주는 경우도 많다) 돌아보면 지금의 어른들도 다 그 고민을 헤치며 어른이 됐고,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나 역시 그 과정을 거쳐왔기에 혹여나 어른의 시선이 드러나지 않도록 후배나 동생들의 고민에 대해서는 되도록이면 말을 아끼게 된다.

🎤돈 - 테이크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이젠 지나간 시간, 욕망의 들러리”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2011년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가 일리네어를 설립하며 트랩 비트 위에 머니 스웩의 등장을 알렸다. 거기에 2012년에는 쇼미더머니라는 치트키까지 발동된다. 열심히 파던 금광에 금맥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금빛이 드러났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금을 만져라도 보겠다며 달려들었다. 모두 내가 얼마나 더 벌었는지 으시대기 시작했다. 돈 얘기가 없는 앨범을 찾기 힘들었다.

처음은 혼자만 듣던 음악이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흥미로웠다. 허나 어느새부터 힙합이 돈만 쫓는 듯한 모양새가 퍽 못마땅했다. 그러니 이찬혁이 힙합의 중심부에서 “힙합은 안 멋져”를 외쳤을 때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누군가가 “너가 생각하는 힙합은 힙합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듣는 내가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3년정도 힙합과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티빙에서 제작한 랩퍼블릭을 보며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선입견을 갖고 바라봤던 몇몇 래퍼들이 1시간 넘게 즉흥에서 싸이퍼를 뱉는 것을 보며 카메라 뒤에서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됐다. 그만큼의 노력을 나는 해본 적이 있던가라는 질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결국 나는 아직 이룬 것 없이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 정체돼 있는데 혼자 커버린 힙합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글을 어떻게 매조지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공식대로라면 이 열등감을 딛고 나도 노력을 하고 성장하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적당한 노력으로 적당히 먹고 살만큼의 성과만 거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다만 괜히 힙합이 멀리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느낀 질투와 열등감에 틱틱댔던 나를 돌아보게 했을 뿐이다. 그 감정들마저도 나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일 테니까.

🎤그날이 오면 - 화나

“그래 절대로 내 평생 이 노래 속 내용대로

될 수 없대도 난 또 계속 해서 외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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