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散文

귀룽나무

5월에 삿자리를 깔고 봄날의 소풍을 즐기는 나무

2026.03.26 | 조회 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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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敦온형근

조경수목 문화콘텐츠 - 귀룽나무

5월에 삿자리를 깔고 봄날의 소풍을 즐기는 나무

 

봄이 먼저 오는 나무

 

나무들 아직 스산하여 쓸쓸한 가지만 내놓고 있다.

오직 귀룽나무만 봄이 친하다. 다들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그지없이 털어놓지 못할 때 귀룽나무는 싹을 전개한다. 그리하여 삭막하기만 한 풍경에 색감을 안겨 준다. 아직 꽃은 이르지만 새싹이 내는 연푸름은 사람을 어루만지기에 넉넉하다.

3월이면 이미 연녹색 새싹이 가지 끝에서 돋는다. 4월이면 잎이 무성해진다. 다른 꽃나무들이 잎보다 꽃을 먼저 내세우는 계절에, 귀룽나무는 반대로 간다. 잎이 어느 정도 나온 다음 꽃이 핀다. 이것이 귀룽나무의 방식이다.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봄이 오기도 전에 스스로 봄을 만든다.

꽃으로 유명한 나무들은 대부분 잎이 나오기 전에 꽃부터 활짝 핀다. 피고 나서 온갖 너스레를 다 떨고 꽃잎을 떨어뜨린다. 그런 후에야 잎을 틔운다. 귀룽나무는 잎이 먼저 나온 후 꽃이 핀다는 것이 다르다. 잎이 나온 후 꽃이 피는 나무들의 꽃은 크게 관심받지 못함에도, 귀룽나무의 꽃은 마치 잔치를 하듯 푸짐하고 환하다.

5월이 오면 절정이다.

잎이 짙어갈 즈음 나무를 감추면서 하얀 꽃이 눈처럼 매달려 있다. 나무를 온통 순백으로 덮어 씌운다.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발산한다. 그야말로 꽃이 구름처럼 난만하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귀룽나무를 구름나무라 부른다. 흰구름과 같이 희고 순결한 꽃이 가지가 휘어질 듯 가득 달리기 때문이다.

나무가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꽃이 나무를 뒤덮는다. 나무의 주도권이 꽃에게 넘어가는 것이 5월의 어느 날이다.

귀룽나무의 꽃은 잔치를 하듯 푸짐하고 환하다

계곡 가장자리를 걷다 보면, 아직 다른 나무들이 헐벗은 채 서 있는데 귀룽나무만 이미 초록 기운을 두르고 있다. 봄이 먼저 오는 나무가 있고, 늦게 오는 나무가 있다. 귀룽나무는 언제나 먼저다. 전국 어느 계곡이든 이른 봄, 가장 먼저 연록색 새싹을 틔우는 나무를 만나거든 귀룽나무를 의심해볼 일이다.

 

온형근, 조경수목 문화콘텐츠, 드림북, 2019, 154쪽
온형근, 조경수목 문화콘텐츠, 드림북, 2019, 154쪽

이름의 뿌리 - 구룡목에서 귀룽나무로

 

귀룽나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아홉 마리의 용을 의미하는 구룡목九龍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굽이치듯 보이는 수많은 잔가지와 검은 비늘 같은 수피, 뒤틀리듯 자란 거목의 모습이 용이 솟아오르는 형상을 닮았다. 귀롱나무라는 기록도 발견되니 귀롱, 귀룽 등으로 음운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설은 줄기껍질이 거북龜의 등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나이 든 귀룽나무의 수피 앞에 서면 이해가 간다. 흑갈색으로 세로로 가늘게 갈라지는 패턴이 거북이 등을 연상시킨다. 거북 귀龜, 용 룡龍. 귀룡목, 귀룽나무.

구름나무라는 이름도 있다. 북한에서 부르는 이름이지만, 남한 문헌에도 등장한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춘천도호부 편에 구름나무를 의미하는 운수雲樹라는 명칭이 보인다.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구름처럼 뒤덮이는 장면에서 온 이름이다. 꽃이 구름이 되는 나무. 그것을 먼저 알아본 사람들이 이름을 붙였다.

일제강점기에 나카이Nakai가 저술한 《조선삼림식물편朝鮮森林植物編》에는 구름나무로 추정되는 'Kurum-nam'과 귀롱목으로 추정되는 'Korön-mok'이 함께 기록된 것을 보면, 지역에 따라 각기 쓰인 듯하다. 같은 나무를 두고도 계곡 마을마다 이름이 달랐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조밀하게 꽃이 피는 것을 묘사하여 조리稠李 또는 조리稠梨라 부른다. 일본 북해도에서 자라는 벚나무라는 뜻의 에조노우하미자쿠라. 영어로는 Bird Cherry 또는 European Bird Cherry. 새들이 즐겨 먹는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에서 온 이름이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와 가깝게 지냈다는 뜻이다

 

귀룽나무, 구름나무, 구룡목九龍木

조리稠李, Bird Cherry

 

모두 이 한 나무를 두고

각자의 언어로 부른 것이다

나무의 이름을 따라가면 그 나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가 읽힌다. 귀룽나무는 용이었고 구름이었고 거북이었다. 그리고 새들의 나무였다.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를 한 몸에 품은 나무를 달리 찾기가 쉽지 않다.

 

수형과 위용 - 원정형이 만드는 풍경

 

학명은 Prunus padus L.이다.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 높이 10~20미터까지 자란다. 분포는 북반구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걸친다. 유럽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동아시아까지,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일본까지. 귀룽나무의 세계는 넓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산지의 개울가나 습기 있는 토양에 자생한다. 해발 1,800미터 이하 어디서든 계곡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흔하다는 건 그 땅과 오래 함께 살아왔다는 뜻이다.

수형이 압도적이다. 나무의 윗부분에서 줄기가 올라와 전체적으로 둥근 공 모양의 커다란 수형을 만든다. 원정형 수형圓頂形 樹形이라고 한다. 이 원정형 수형의 귀룽나무를 멀리서 바라볼 때의 느낌은 묘하다. 나무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다. 꽃이 필 때는 더욱 그렇다. 하얀 꽃이 그 둥근 수형을 전부 뒤덮으면, 거기에 구름 하나가 내려앉은 것과 같다.

20~30미터는 떨어져서 봐야 한다. 그래야 전체 수형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가까이 서면 나무에 압도당해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좋은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과 같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귀룽나무가 있다

대단한 위세의 큰 몸집을 가졌다

이 나무가 꽃을 피울 때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현관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그 정도 거리에서야

귀룽나무의 위엄이 제대로 읽힌다

 

저절로 발길이 운동장 가로질러 바싹 들어서게 한다

다가가선 괜히 쳐다보고 서성거리면서 즐긴다

어린가지는 자갈색이다. 가지를 꺾으면 고무 탄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방향식물이다. 파리가 이 냄새를 싫어해서 파리 쫓는 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파리를 쫓아내는 게 아니라, 파리가 피해 다니는 것이니 꽃이 활짝 피는 5월에 삿자리를 깔고 그곳에 앉아 귀룽나무 가지를 꺾어 두르고 봄날의 소풍을 즐길 만하다. 향기도 좋고 벌레도 없다. 이런 자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수피는 흑갈색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로로 가늘게 갈라진다. 껍질눈이 있다. 오래될수록 그 갈라진 패턴이 깊어지고 촘촘해진다. 그것이 용의 비늘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거북이 등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 든 귀룽나무의 수피 앞에 서면 시간이 느껴진다. 이 나무가 자라는 동안 얼마나 많은 봄이 지나갔을까.

 

온형근, 조경수목 문화콘텐츠, 드림북, 2019, 155쪽
온형근, 조경수목 문화콘텐츠, 드림북, 2019, 155쪽

 

꽃이 피는 방식 - 잎 다음에 오는 꽃의 당당함

 

봄꽃들의 전략은 대개 비슷하다. 잎보다 꽃이 먼저다. 잎이 없는 맨 가지에서 꽃을 터뜨린다. 그래야 눈에 잘 띈다. 꽃가루를 옮겨줄 곤충을 유혹하기 쉽다. 진화의 결과이다.

벚나무가 그렇다. 산수유가 그렇다. 목련이 그렇다. 개나리가 그렇다. 우리가 봄꽃으로 아는 나무들이 대부분 그렇다. 귀룽나무만 다르다.

귀룽나무는 잎이 먼저다. 4월에 이미 잎이 무성해진다. 다른 꽃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지우는 동안, 귀룽나무는 조용히 잎을 키운다. 그리고 5월에, 잎이 충분히 짙어졌을 때, 비로소 꽃을 피운다.

전략이 다르다. 꽃과 잎이 함께 있다. 녹색 바탕 위에 흰 꽃이다. 벚꽃이 하늘을 배경으로 피는 것과 달리, 귀룽나무 꽃은 잎사귀를 배경으로 핀다. 그러니 대비가 분명하다. 작은 꽃들이 모여 꼬리 모양으로 길게 달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무 가득 주렁주렁 푸짐하다. 나무 전체가 뭉실뭉실 피어나는 꽃송이다.

향기가 강하다. 달콤하고 진하다. 멀리서도 맡을 수 있다. 이 향기가 벌을 부른다. 귀룽나무는 꽃의 시각적 화려함 대신 향기를 선택했다. 잎 사이에 섞여 있으니 시각적으로는 덜 드러나지만, 향기로 존재감을 알린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5월의 귀룽나무를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압도적인가를. 잎이 무성한 나무 전체가 흰 꽃으로 뒤덮이면, 그것은 숨는 게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봄의 절정에서, 봄의 방식이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꽃은 4~6월에 새가지 끝의 총상꽃차례에 모여 달린다. 흰색, 지름 1.0~1.5센티미터. 꽃차례는 길이 10~20센티미터이며 20~30개의 꽃이 달린다. 아래쪽에는 잎이 달린다. 꽃자루는 길이 1센티미터쯤이며 꽃대와 더불어 털이 난다.

잎은 어긋나며 도란형 또는 타원형, 길이 6~12센티미터, 폭 3~6센티미터이다.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1~2센티미터이며 위쪽에 샘점이 있다.

융건릉에는 작은 물길 건너 평탄한 습지가 있다. 여기에 귀룽나무숲이 전개된다. 잎이 무성할 정도로 나왔을 때 이미 꽃송이를 매달아 아래로 쳐진다. 달콤하고 진한 향기 속에서 귀룽나무 꽃을 올려다보는 것. 봄이 마지막 문장을 쓰는 자리가 거기다.

 

온형근, 조경수목 문화콘텐츠, 드림북, 2019, 155쪽
온형근, 조경수목 문화콘텐츠, 드림북, 2019, 155쪽

 

취발이의 손에 든 가지 - 양주별산대놀이와 귀룽나무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취발이의 복식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등에 학을 그린 청창의를 입고 붉은 띠, 푸른 행전에 귀룽나무 생가지를 들고 있다. 쇠뚝이로 나올 때는 곤장을 들고 있다."

청창의는 벼슬아치가 평상시에 입던 소매가 넓고 뒤 솔기가 갈라져 있는 푸른색 웃옷이다. 행전은 각반으로, 바지를 입을 때 정강이에 감아 무릎 아래 매는 것이다. 이때 취발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귀룽나무 가지이다. 취발이는 귀룽나무 가지로 땅을 쳐서 노장을 물리친다. 그런 후에 남아 있는 소무를 유혹하여 살림을 차린다.

왜 귀룽나무였을까.

귀신 쫓는 나무라고 잔가지를 회초리로 만들어 귀신 들린 사람을 때리면 귀신이 물러간다고 할 만큼, 귀룽나무는 벽사辟邪의 나무였다. 잔가지가 늘어지며 부드럽고 연하다. 그 부드러운 가지로 땅을 치면 귀신이 물러난다는 믿음. 나쁜 것을 쫓아내는 힘. 그 힘을 가진 나무가 산대놀이 무대 위의 소품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어릴 때부터 회초리로 쓰이던 나무였다. 아이들을 혼낼 때 귀룽나무 가지로 회초리를 만들었다. 그 회초리에는 단순한 체벌의 의미 외에도,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의미가 덧붙어 있었을 것이다. 민속의 세계에서 식물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각각이 기운을 지니고 있고, 그 기운을 이용하는 것이 민간의 지혜였다. 귀룽나무는 벽사의 기운을 지닌 나무로 오랜 세월 사람들 곁에 있었다.

궁궐에 귀룽나무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선 초기 북방민족 침입을 막는 정책적인 의미와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나쁜 기운을 막아내는 나무를 궁궐 주변에 심은 것이다. 꽃 때문에 심은 나무가 아니었다. 나라를 지키는 나무였다.

무대 위에서도, 궁궐 담장 안에서도, 귀룽나무는 같은 역할을 했다. 나쁜 것을 내쫓는다는 것. 오래된 믿음이 그만큼 단단했다.

 

취발이가 귀룽나무 가지를 들고

노장 앞에 섰다

 

부드럽고 연한 가지

그러나 그 힘은 단단하다

 

무대 위에서 오래된 믿음이

한 번 더 살아난다

 

귀룽자리 - 삿자리를 깔고 봄날의 소풍을

 

꽃이 활짝 피는 5월에 삿자리를 깔고 그곳에 앉아 귀룽나무 가지를 꺾어 두르고 봄날의 소풍을 즐길 만하다.

이것이 단순한 제안이 아니다. 《남북한 말 비교 사전》에 삿자리는 남한에서 갈대로 엮은 자리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갈대나 구름나무(귀룽나무) 껍질 같은 것으로 걸어서 만든 자리라고 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귀룽나무의 속껍질로 결은 삿자리를 구름자리 또는 귀룽자리라고 한다.

귀룽나무 껍질로 자리를 엮었다. 속껍질이 결이 좋고 질겨 자리 재료로 쓰였던 것이다. 그 자리를 들고 귀룽나무 그늘 아래 깔고 앉았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귀룽자리 위에서 귀룽나무 꽃을 올려다보는 것. 봄날의 완성된 풍경이다.

이 삿자리 문화에서 귀룽나무와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가 드러난다. 꽃만 보는 관계가 아니었다. 껍질을 이용하고, 가지를 꺾어 쓰고, 그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 나무와 사람이 서로의 삶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귀룽자리. 이 단어를 가만히 발음해보면 봄이 느껴진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귀룽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귀룽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옆에 두고, 한나절을 보내는 것. 꽃향기를 맡으며, 꽃이 흔들리는 걸 바라보며. 이것이 귀룽나무와 함께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어린가지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니 파리도 오지 않는다. 달콤한 꽃향기는 코를 채운다. 5월 햇볕이 잎 사이로 내려온다. 이런 조건을 갖춘 소풍 자리를 따로 찾을 필요가 없다. 귀룽나무가 다 해결해 준다.

 

구황식물의 무게 - 쓴맛이 입맛을 살리던 시절

 

귀룽나무는 먹는 나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귀룽나무의 식용성이나 구황성이 기술된 것은 《조선의 구황식물과 식용법》이다. 새싹 잎은 이른 봄에 데쳐서 나물로 먹으며, 열매는 숙기에 날로 먹는다.

새싹 잎은 어떻게 해도 쓴맛이 강하다. 잘 삶아서 충분히 물에 불리면 가능한 대로 쓴 정도를 완화할 수 있다. 이것을 기름에 둘러 삶으면 다소라도 쓴맛을 거두게 되고, 다소 쓴맛이 오히려 입맛을 자극하여 식욕을 돋우게 된다. 꽃이삭, 열매 및 새 잎의 소금절이, 햇나물의 구황 및 식용적 가치가 있다. 우리네 선조들은 이를 즐겨 먹었다.

구황식물이라는 말의 무게가 있다. 굶주린 시절에 먹었던 것들. 맛있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먹었던 것들. 귀룽나무 새싹의 쓴맛을 참아가며 먹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귀룽나무는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새싹을 내는 나무. 굶주림을 버티게 해주는 나무.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7월에 까맣게 반짝이며 익는다. 까만색 익은 열매는 버찌와 유사하다. 이 나무의 열매로 술을 담가 먹기도 한다.

《중국본초도감》에서는 귀룽나무의 열매를 취리자臭李子라 한다. 안덕균의 《한국본초도감》에서는 앵액櫻額이라 한다. "비위脾胃 기능을 강화시켜 설사를 그치게 하고 소화력을 높인다."고 하였다. 구룡목九龍木은 귀룽나무의 가지를 말하는데, 몸에 풍이나 습한 기운이 침범하여 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 허리 통증, 관절통, 척추 질환, 설사를 치료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약초꾼들이 구룡목이라 부른다. 민간에서 간염, 지방간, 간경화증 같은 간 질환과 근육통, 근육마비, 허리 아픈 데, 중풍, 신경통, 관절염에 쓰였다. 한 나무가 이렇게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고, 몸의 나쁜 것을 쫓아내는 약재로도 쓰였다. 귀룽나무는 그 역할을 안팎에서 다 했다.

 

치악산 구룡사와 아홉마리 용의 전설

 

치악산 구룡사九龍寺. 아홉 마리 용의 절.

신라 문무왕 재위 시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 이름의 유래에 귀룽나무 전설이 전해온다.

사찰 이름 자체가 귀룽나무, 즉 구룡목九龍木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다. 산중 계곡가에 크게 자라던 귀룽나무들이 용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어, 그 나무들의 이름이 사찰 이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든, 귀룽나무와 용의 관계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굽이치는 가지, 검은 수피, 거목이 자라는 방식. 이것이 용의 이미지와 맞닿는다. 겨울에 잎이 다 지고 가지만 남은 귀룽나무를 바라보면 이 전설이 납득된다. 뒤틀리고 굽이치는 무수한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영락없는 용의 형상이다.

5월에 꽃이 피면 사찰 앞마당에 구름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구룡사라 불렀을 것이다. 이름에는 기억이 있다. 나무에도 기억이 있다.

치악산 계곡가에 가면 지금도 귀룽나무가 있을 것이다. 5월에 꽃을 피우고, 7월에 까만 열매를 매달고, 가을에 붉게 단풍이 들 것이다. 그 나무들이 구룡사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귀룽나무를 식별하는 법 - 계절마다 다른 얼굴

 

귀룽나무와 비슷한 나무가 있다. 개벚지나무이다. 이 둘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꽃차례 하부를 보는 것이다. 꽃차례 하부에 잎이 없는 것은 개벚지나무이며, 하부에 잎이 달리는 것은 귀룽나무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잎이나 가지를 뜯어 단면의 냄새를 맡아 보는 것이다. 귀룽나무는 고무 같은 불쾌한 냄새가 나므로 쉽게 식별이 가능하다. 향기로운 꽃향기와 달리, 가지와 잎에서 나는 냄새는 전혀 다르다. 이 이중성이 귀룽나무이다.

계절마다 식별 방법이 다르다.

이른 봄에는 가장 먼저 연록색 새순을 틔우는 나무를 찾는다. 아직 다른 나무들이 헐벗은 채 있는데 혼자 초록 기운을 두른 나무. 그것이 귀룽나무이다.

봄에는 꽃차례 아래 잎이 달린 것을 확인한다. 달콤하고 진한 향기가 먼저 온다. 향기를 따라가면 귀룽나무다.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된다. 원정형 수형이 크고 풍성하다. 열매가 까맣게 익기 시작한다.

가을에는 붉게 단풍이 든다. 열매가 완전히 까맣게 익는다. 새들이 열매를 따 먹는다. Bird Cherry라는 이름이 실감나는 계절이다.

겨울에는 잎이 다 지고 가지만 남는다. 잎이 없는 겨울이면 이리저리 얽힌 무수한 가지들로 인해 하늘을 쳐다보는 이들에게 금방 눈에 띄는 나무가 바로 귀룽나무이다. 뒤틀리고 굽이치는 가지 패턴이 독특하다. 아홉 마리 용이 보인다.

수피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귀룽나무 수피는 흑갈색으로 세로로 갈라지며 껍질눈이 뚜렷하다. 나이 든 나무일수록 수피 패턴이 깊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귀룽나무를 알게 되면, 산을 걸을 때마다 귀룽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나무와 친해지는 방식이다.

 

온형근, 조경수목 문화콘텐츠, 드림북, 2019, 158쪽
온형근, 조경수목 문화콘텐츠, 드림북, 2019, 158쪽

 

속성 수종의 두 얼굴 - 빠른 성장과 식재의 원칙

 

귀룽나무는 벚나무의 종류 중 가장 생장이 빠르다. 단시일에 경관을 짜임새 있게 만들고 그늘을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이 조경 현장에서 귀룽나무를 선택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빠른 나무에는 빠른 나무의 역할이 있다. 새로 조성된 공원에 심으면, 다른 나무들이 자라는 동안 먼저 경관을 만들어 준다. 그늘을 제공한다.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속성 수종이라는 말은 장점이기도 하고 조건이기도 하다.

다만 너무 빠르게 자라는 속성 나무이기에 작은 집안에 심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10~20미터까지 자란다. 원정형 수형이 커지면서 주변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작은 정원에는 맞지 않는다.

고온 건조하고 척박한 곳에는 식재를 피하는 것이 좋다. 습기가 있는 음지 또는 비옥한 사질양토에서 잘 자란다. 추위에 강하다. 공해에도 강하다. 염기에도 강하다.

귀룽나무 관상의 포인트는 전정을 하지 않고 자연형으로 늘어지는 가지의 유연함에 있다. 인위적으로 다듬으면 이 나무의 본질이 사라진다. 가지를 늘어뜨리고,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는 것. 그 자연스러운 과정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이 나무를 잘 쓰는 방법이다.

번식은 주로 종자를 파종하거나 접목과 삽목을 한다. 종자를 채취한 뒤 건조하지 않도록 모래와 섞어 저장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한다. 접목은 주로 절접과 아접을 하며 벚나무를 대목으로 사용한다. 빨리 노쇠하는 경향이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삽목은 8월에 녹지삽목으로도 50% 이상의 발근율을 얻는다.

맹아력도 강하다. 잘라도 다시 살아난다.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공공 공간의 나무 - 공원과 학교에서의 쓸모

 

귀룽나무는 관상가치가 높다. 햇빛을 좋아하지만 내음성도 있다. 추위에 강한 수종이다. 꽃이 필 때는 나무 전체가 꽃으로 뒤덮이므로 공원이나 학교의 조경수로 쓸모가 뛰어나다.

열매가 많아 야생 조류의 서식 환경 조성에도 유효한 나무이다. Bird Cherry. 새들의 체리. 7월에 까맣게 익는 열매를 새들이 좋아한다. 새들을 불러들이는 나무다. 생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원에 심으면 꽃향기와 새소리를 함께 얻는다.

수형이 웅장하면서 단정하니 그늘을 만들어 주는 녹음수로 적당하다. 초봄에 가장 일찍 잎을 내는 수종으로 연녹색의 새로 나온 가지가 특징이며, 가을철 붉은 단풍도 매력이다. 야외 정자 근처 등에 심어 꽃과 그늘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예전부터 궁궐이나 마을 어귀, 사찰 주변의 습윤하고 비옥한 사질 토양에 많이 심었다. 공공장소의 넓직한 공간을 활용하는 조경수로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

학교에 심기에도 좋다. 학생들이 매일 보고 지나는 나무. 봄에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여름에 그늘에서 쉬고, 가을에 단풍을 보고, 겨울에 가지를 보는 것. 그것이 나무를 통한 교육이다.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운동장 귀룽나무처럼, 학교 체육대회에 학과별로 자리 잡고 응원하는 장소로 매년 쓸모 있게 사용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서울식물원은 치유의 정원과 바람의 정원에 귀룽나무를 심었다. 치유. 바람. 둘 다 귀룽나무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향기가 있는 나무니 치유의 정원에 어울린다. 원정형의 풍성한 수형이 바람에 흔들리니 바람의 정원에 어울린다.

 

봄의 서열 - 귀룽나무가 차지한 자리

 

벚꽃이 봄의 대표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4월이면 벚꽃 축제가 전국에서 열린다. 사람들이 몰린다. 사진을 찍는다. 벚꽃이 봄의 얼굴이 된 지 오래다.

귀룽나무는 5월이다.

벚꽃이 지고 난 후. 봄꽃 축제들이 모두 끝나고, 초록이 짙어지는 그 시점에. 귀룽나무가 핀다. 봄꽃의 서열에서 마지막이지만, 그래서 혼자 남는다. 다른 꽃들이 다 지고 난 뒤, 홀로 환하게 피는 것. 경쟁이 없는 시간에 피는 것.

귀룽나무 아래는 조용하다. 혼자 서서 꽃을 올려다볼 수 있다.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꽃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벚꽃 구경 나갈 때 사람들 사이에 치여서 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 귀룽나무는 조용한 봄을 원하는 사람을 위한 나무다.

봄의 마지막 주자. 그래서 봄이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붙드는 나무. 귀룽나무 꽃이 지면 봄이 끝났다고 생각해도 된다.

 

벚꽃이 지고

철쭉이 지고

라일락이 지고

 

귀룽나무 꽃이 피는 날

봄은 마지막 문장을 쓴다

 

달콤하고 진하다

오래 남는 향기

그것이 봄의 마침표다

 

수피를 읽는다 - 나이 든 귀룽나무 앞에서

 

나무를 볼 때 수피를 본다. 수피에 나무의 이력이 담겨 있다.

귀룽나무의 수피는 흑갈색이다. 어린 나무는 매끄럽다. 나이가 들수록 달라진다. 세로로 가늘게 갈라지기 시작한다. 깊어진다. 촘촘해진다. 그 갈라진 패턴이 거북의 등이 되고, 용의 비늘이 된다. 구룡목이라는 이름이 수피에서 온 이유가 있다.

나이 든 귀룽나무의 수피 앞에 서면 시간이 느껴진다. 이 나무가 자라는 동안 얼마나 많은 봄이 지나갔을까. 얼마나 많은 꽃이 피고 졌을까. 껍질눈이 있다. 수피에 작은 구멍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무가 숨 쉬는 구멍이다. 귀룽나무의 껍질눈은 뚜렷하다.

가지를 꺾으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고무 탄 것 같은 냄새. 방향성 물질이다. 이 냄새가 파리를 쫓는다. 여름에 야외에 나갈 때 귀룽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가지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오래된 방충의 지혜다.

뿌리는 넓게 퍼진다. 습지에서 잘 자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기가 있는 곳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고 넓게 뻗는다. 그 안정된 뿌리 위에 거대한 수형이 서 있다. 위에서 보면 구름이고, 옆에서 보면 용이고, 아래에서 보면 뿌리가 깊다.

 

귀룽나무가 있는 풍경 - 장소들의 기억

 

귀룽나무가 잘 어울리는 장소들이 있다.

사찰 주변이다. 물가에 사찰이 있고 계곡을 끼고 있으면 그 계곡가에 귀룽나무가 자란다. 5월에 귀룽나무 꽃이 피면 사찰 풍경이 달라진다. 흰 꽃이 녹색과 어울리고, 사찰 기와지붕과 어울린다. 그 위에 향기가 더해진다. 절에서 귀룽나무 향기를 맡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봄의 기도 같은 것.

왕릉 숲이다. 조선왕릉 주변에 귀룽나무가 자생하는 경우가 많다. 습윤한 토양, 비옥한 땅, 사람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자연 상태. 귀룽나무가 좋아하는 조건이 다 있다. 융건릉 귀룽나무숲이 대표적이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 융릉 주변 습지에 귀룽나무숲이 있다. 왕릉을 걸으면서 귀룽나무 꽃을 보는 것이 가능한 장소다.

공원 호숫가다. 수변 공원에 귀룽나무를 심으면 좋다. 물에 가까운 귀룽나무가 더 크게 자란다. 꽃이 물에 비친다. 향기가 물 위를 걸어온다.

산속 계곡이다. 자생 귀룽나무를 찾으려면 계곡이 있는 산을 이른 봄에 걷는 것이 가장 좋다. 헐벗은 나무들 사이에서 연록색 잎을 달고 있는 나무. 그것이 귀룽나무이다. 5월이면 달콤한 향기가 계곡 전체에 번진다.

귀룽나무를 찾아 나서는 것 자체가 귀룽나무와 친해지는 방법이다.

 

조경가의 눈 - 식재 전략과 공간 구성

 

조경가의 눈으로 귀룽나무를 보면 몇 가지가 분명해진다.

귀룽나무는 독립수로 심기에 좋다. 홀로 서 있을 때 수형이 가장 잘 드러난다.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혹은 수경시설 옆. 물 근처가 좋다. 귀룽나무의 뿌리가 물을 좋아한다. 물가에 심으면 더 잘 자란다.

군식으로 심을 수도 있다. 여러 그루를 함께 심으면 숲처럼 된다. 5월에 그 숲을 걸으면, 사방에서 귀룽나무 향기가 진하게 난다. 이런 귀룽나무숲이 융건릉에 있다.

다른 나무들과의 계절 배합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귀룽나무는 초봄에 가장 먼저 잎을 내고 5월에 꽃을 피운다. 벚나무, 산수유, 목련, 개나리가 4월에 피고 지는 동안 귀룽나무는 5월에 시작한다. 이것을 계절 계획에 활용하면, 봄 내내 꽃이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된다.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든다. 열매가 까맣게 익는다. 겨울에는 독특한 가지 패턴이 있다. 사계절 내내 볼거리가 있는 나무이다.

귀룽나무 관상의 포인트는 전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형으로 늘어지는 가지의 유연함에 있다. 전정하지 않고 크게 자라도록 두면, 그 나무 아래 공간이 자연스럽게 그늘이 되고 쉼터가 된다. 이것이 귀룽나무를 조경 공간에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계절 관찰 기록 - 귀룽나무와 함께 나이 드는 일

 

귀룽나무를 오래 보다 보면 계절마다 다른 얼굴이 보인다.

이른 봄. 계곡 입구에서 귀룽나무를 만난다. 아직 다른 나무들이 헐벗었는데 귀룽나무만 연록색 새싹을 달고 있다. 이것이 시작이다. 봄이 이 나무에서 먼저 열린다.

4월 초. 잎이 제법 커졌다. 아직 꽃은 없다. 잎만 있다. 다른 나무들이 꽃으로 화려할 때 귀룽나무는 조용히 잎을 기른다. 이 절제가 5월의 폭발을 준비한다.

4월 말. 꽃대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꽃봉오리다. 꽃이 피기 전이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다.

5월 초. 꽃이 피기 시작한다. 먼저 아랫가지부터. 아래에서 위로 순서대로 피어간다.

5월 중순. 절정이다. 나무 전체가 흰 꽃이다. 향기가 강하다. 꽃차례가 아래로 늘어지며 흔들린다.

5월 말. 꽃이 지기 시작한다. 흰 꽃잎들이 바람에 날린다. 꽃 눈이 내린다. 꽃이 지는 방식도 귀룽나무는 특별하다.

6월. 꽃이 다 지고 작은 열매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직 초록색이다. 잎이 가장 무성한 계절. 그늘이 된다.

7월. 열매가 까맣게 익는다. 새들이 온다. 새들이 열매를 따 먹는다. Bird Cherry라는 이름이 실감난다.

가을. 잎이 붉게 든다. 귀룽나무만의 붉음이 있다.

겨울. 잎이 다 지고 가지만 남는다. 가지의 뒤틀린 패턴이 드러난다. 용이 보인다.

이 과정을 매년 반복해서 본다. 나무가 자라는 것도 보인다. 나무와 함께 나이 드는 것이다.

 

꽃말이 가리키는 것 - 사색과 상념의 나무

 

꽃말은 사색, 상념이다.

귀룽나무 꽃을 보면서 사색에 잠긴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것이 꽃말이 된 것이다.

달콤하고 진한 향기 속에 서서, 흰 꽃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생각이 깊어지는 것. 귀룽나무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이 사색이다.

상념도 마찬가지다. 귀룽나무 꽃향기를 맡으면 기억이 떠오른다. 예전 봄이 떠오른다. 어딘가에서 맡았던 비슷한 향기가 떠오른다. 누군가 생각난다. 상념이 일어난다.

이 꽃말이 정확하다. 사색과 상념. 이 두 단어가 귀룽나무를 완전하게 설명한다. 화려하게 피어 사람을 흥분시키는 나무가 아니다. 조용하게 피어 사람을 생각 속으로 끌어들이는 나무다. 그것이 귀룽나무다.

 

조경수목을 문화콘텐츠로 보는 시각 - 귀룽나무를 통해

 

나무를 문화콘텐츠로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귀룽나무를 통해 생각한다.

귀룽나무는 식물학적 정보가 있다. 장미과 벚나무속, 학명 Prunus padus L., 낙엽 활엽 교목, 높이 10~20미터. 이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나무를 아는 게 아니다. 나무의 껍질만 안 것이다.

귀룽나무는 삿자리의 재료였다. 귀룽자리. 귀룽나무 껍질로 만든 자리. 옛 사람들이 그 자리를 들고 귀룽나무 아래 깔고 앉았다. 이것이 문화다.

취발이가 귀룽나무 가지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산대놀이의 소품. 벽사辟邪의 의미. 이것이 민속이다.

구황식물로 새싹을 데쳐 먹었다. 쓴맛을 참아가며. 살기 위해. 이것이 역사다.

구룡목九龍木이라는 이름으로 약재가 되었다. 허리 통증, 관절통, 척추 질환을 치료했다. 이것이 의학이다.

치악산 구룡사의 이름이 귀룽나무에서 왔다. 사찰의 이름이 한 나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전설이다.

이 모든 것이 귀룽나무라는 하나의 나무 안에 있다. 식물학, 민속, 역사, 의학, 전설. 이것이 문화콘텐츠다.

나무 하나를 이렇게 읽을 수 있으면, 산을 걷는 일이 달라진다. 계곡 가장자리에서 귀룽나무를 만나는 일이 달라진다. 그냥 지나치는 나무가 아니라, 이야기가 들리는 나무로 바뀐다. 조경수목을 문화콘텐츠로 바라보는 시각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귀룽나무를 만나러 가기 전에 - 탐방을 위한 실용 정보

 

귀룽나무를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전국 어디든 계곡이 있는 산을 가면 귀룽나무가 있다. 해발 1,800미터 이하, 계곡이나 하천가, 습기 있는 곳. 특히 이른 봄에 연록색 새순을 가장 먼저 내는 나무가 귀룽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5월 중순이 꽃의 절정이다. 서울 기준 5월 초~중순. 남부 지방은 조금 빠르다. 북부나 고지대는 5월 말까지도 꽃이 있다.

꽃을 보러 갈 때 향기를 먼저 맡는다. 귀룽나무가 가까이 있으면 달콤하고 진한 향기가 먼저 온다. 향기를 따라가면 귀룽나무다.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아 확인하는 것은 자제할 일이다. 확인이 필요하다면 잎을 살짝 뜯어 냄새를 맡아본다. 고무 같은 냄새가 나면 귀룽나무다.

열매가 익는 7월에도 찾아가볼 만하다. 까맣게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귀룽나무. 새들이 열매를 따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경수로 심은 귀룽나무는 서울식물원 치유의 정원과 바람의 정원, 각 도립수목원, 학교 조경 수목원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이름표가 붙어 있으니 확인하기 쉽다.

융건릉 귀룽나무숲을 권한다. 5월 오전, 평일.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 습지 옆 귀룽나무 아래. 거기에 돗자리를 깔고 앉는다. 꽃향기가 온다. 새소리가 온다. 꽃이 흔들린다.

이것이 귀룽나무 소풍이다.

 

귀룽나무와의 시간은 계속된다.

 

귀룽나무에 대해 쓰는 일은 끝이 없다.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에서 가르치던 시절부터였다. 운동장 가장자리의 귀룽나무. 5월마다 현관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나무. 그 나무가 지금도 거기 있을 것이다.

매년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싹을 낸다. 다른 나무들이 봄을 준비하는 동안 혼자 이미 봄을 살고 있다. 5월이면 꽃이 핀다.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낸다. 새들이 온다. 학생들이 그 아래서 쉰다.

나무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한다. 사람이 떠나고 다시 온다. 나무는 그 자리에 있다.

귀룽나무를 문화콘텐츠로 쓴다는 것은 이것이다. 이 나무와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을 쓰는 것. 이 나무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것. 이 나무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 나무가 얼마나 깊은 나무인지 전하는 것.

귀룽나무는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나무이고, 봄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나무이다. 이른 봄의 연록색 새싹에서 시작해서, 5월 하얀 꽃의 절정을 거쳐, 가을 붉은 단풍으로 이어진다. 겨울 용처럼 뒤틀린 가지가 남는다. 사계절 내내, 귀룽나무는 무언가를 보여준다.

눈이 있어야 보인다.

 

귀룽나무 아래 앉아 있다

자리를 깔고

가지를 꺾어 옆에 두고

향기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봄의 마지막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음 봄이 기대된다

 

귀룽나무 Prunus padus L.

과명: 장미과 Rosaceae

속명: 벚나무속 Prunus

수형: 낙엽 활엽 교목

수고: 10~20m

개화기: 5월 (흰색 총상꽃차례)

결실기: 7~8월 (흑색 핵과)

자생지: 전국 산골짜기 · 하천가 · 호숫가 (해발 1,800m 이하)

생육환경: 습기 있는 음지 · 비옥한 사질양토

꽃말: 사색, 상념

별칭

구름나무 (북한) / 구룡목九龍木 (약재명) / 귀중목 / 귀롱나무 Bird Cherry · European Bird Cherry (영명) / 稠李 · 稠梨 (중국명)

한약명

취리자臭李子 (열매) / 앵액櫻額 (열매) / 구룡목九龍木 (가지) 효능: 비위脾胃 강화, 설사 치료, 소화력 향상 가지: 풍습 · 허리 통증 · 관절통 · 척추 질환 치료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월간::조경헤리티지』은 한국정원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짧은 단상과 긴 글을 포함하여 발행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설계 언어를 창발創發합니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주체적, 자주적,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합니다. 

"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는 '방달초예반발(放達超睿反撥)'의 정신을 지향합니다." 
매임 없는 활달한 시선으로 전통의 경관을 응시하며, 보편적 슬기를 뛰어넘는 통찰로 그 속에 담긴 옛사람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나아가 고착된 현실의 언어를 거슬러, 오늘날의 현대적 언어로 우리 정원의 미학을 다시 다스리고 되살리는 평론 작업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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