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으로 본 한국정원문화

상처와 연민이 홀연히 사라지는 맑은 길을 깁다

024.옥천 청풍정 호수원림

2025.12.11 | 조회 286 |
from.
茶敦온형근
월간 조경헤리티지의 프로필 이미지

월간 조경헤리티지

한국정원문화를 당대의 삶으로 벅차고 가슴 설레이며 살아 숨쉬게 하는 일

옥천 청풍정 호수원림 - 상처와 연민이 홀연히 사라지는 맑은 길을 깁다

 

청풍정 원림으로 다가서는 멈춤과 응시의 머뭇거림

<물에 비친 청풍정> 대청호의 잔잔한 수면에 가을빛이 붉게 스며들었다. “가을에는 달이 마땅하다[秋宜月]”고 했던 늑천 송명흠의 문장처럼, 청풍정은 차분한 고요를 잃지 않는다. 뭍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가 프레임이 되어, 물가에 낮게 앉은 정자와 숲이 산수화를 그린다. 자연의 품에 안긴 한국정원문화의 겸손한 미학을 보여준다. (2025.11.19.)
<물에 비친 청풍정> 대청호의 잔잔한 수면에 가을빛이 붉게 스며들었다. “가을에는 달이 마땅하다[秋宜月]”고 했던 늑천 송명흠의 문장처럼, 청풍정은 차분한 고요를 잃지 않는다. 뭍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가 프레임이 되어, 물가에 낮게 앉은 정자와 숲이 산수화를 그린다. 자연의 품에 안긴 한국정원문화의 겸손한 미학을 보여준다. (2025.11.19.)

청풍정 원림을 찾는 미음완보(微吟緩步)의 상념은 진한 향기의 풍경이다. 길가에 구르며 찬란한 층을 쌓는 깊이감 있는 황금빛 은행잎의 선명함에 놀란다. 맑아지는 세포의 정서로 시를 남긴다.

결을 깁는다 - 1.~2.

온형근

 

 

 

1.다가서다

바람과 햇살이 좋아 귀한 광채를 머금은 은행잎
금박 편지처럼 흩날리는 잎새 위로 다가서는 동안
한지 위에 번지는 먹물처럼 스미면서 휩쓸리기를
춘풍에 실렸다 억수장마에 젖고 마르기를
연초록 설렘에서 짙푸른 각오까지 잎살을 살찌우더니
낡은 경전의 종이처럼 구겨진 은행잎 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 골짜기를 타고 어드메 사라진다.

깊고 그윽한 황금빛 한결같은 청풍정 다가가는 길
너덜대는 상처로 쓰린 것을 한바탕 초롱초롱한 바람
은행잎도 피차 그러안고 켜와 결을 내더니
더 내몰 수 없는 굽은 길로 부대끼며 치인다.

2.머뭇대다

대청호수가 거울처럼 펼쳐진 저 너머로
종적 드문 백토산 줄기 끝에 청풍정이 아득하다.
한때는 봉우리였을 암석군에 앉아
미완의 조각상처럼 한참을 관조한다.
구름 위에 홀로 솟아 달뜬 듯 보드레한 맵시

이만큼의 거리가 그럴듯하여 닿았다는 생각에
발을 떼지 못하고 물결만 헤아리는데
저토록 날씬하고 산뜻한 아름다움 앞에서 눈부셔
갓 빚은 백자처럼 숨결도 조심스러운 그 모습에
찻잔에 비친 달그림자처럼 손대면 흐트러질 거리를
굳이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할 이유를 묻는다.

이 거리감의 호흡은 모자라거나 흠을 찾을 수 없어
지문이 묻어날 것 같은 투명한 유리벽은 아닐지
그렇지만 필경 걸음걸음이 번역되어 나선다.
저 너머의 천성을 기어이 마주하기로 한다.

<시의 문장을 상상한다> 온형근 시 「결을 깁는다」를 풍경으로 상상한 그림이다. 풍경을 읽는 독자는 아득하게 떠 있는 청풍정을 오래 바라본다. 현실의 소음이 차단되고 고요한 청록빛 수면이 시간을 멈춘 듯 공간은 무한히 확장한다.
<시의 문장을 상상한다> 온형근 시 「결을 깁는다」를 풍경으로 상상한 그림이다. 풍경을 읽는 독자는 아득하게 떠 있는 청풍정을 오래 바라본다. 현실의 소음이 차단되고 고요한 청록빛 수면이 시간을 멈춘 듯 공간은 무한히 확장한다.

 

청풍의 결을 깁는다. 가을의 끝자락, 맑은 바람(淸風)이 깃든다는 청풍정 원림으로 선다. 풍경보다는 소란한 생각 속에 흐트러지고 헝클어진 내면의 결을 바로잡고 싶었다. 실낱같은 바람의 손길이라도 빌려 너절하게 흩어진 마음의 올을 깁고자 했다. 청풍정으로 향하는 길은 눈부시게 노란 은행나무 단풍길이다. 굽이마다 이어진 길은 아슬아슬하게 빛나는 호수와 맞닿는다. 금빛 잎들이 호수를 물들인다. 차 바퀴에 짓밟힌 잎새는 바람골을 따라 휩쓸린다. 이내 제 몸보다 더 짙은 빛깔로 지층을 이룬다. 황금 은행잎 빛나는 길은 속세의 번잡함을 지우는 주문이다. 일상을 벗어난 답사 공간으로의 한 걸음마다 마음의 먼지가 씻긴다. 길이 끝나는 곳, 문득 시야가 터지며 거대한 대청호의 물결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처럼 너른 호수이다. 고요한 수면 위로, 나는 아직 당도하지 않은 정자의 실루엣을 어렴풋이 넘나든다.

때로 온전한 만남에는 섣불리 다가서지 않는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상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가섬을 위한 관조의 아름다움이다. 저 멀리 대청호 너머로 청풍정의 실루엣이 아련하다. 가을 안갯속 한 폭의 수채화이거나, 자욱한 구름 위에 홀로 떠 있는 듯 신비로움이다. 호수 건너서 바라보는 완결된 아름다움을 얻는다. 차마 더 다가서지 못하고 한참을 조각상처럼 멈춰 바라보았다. 굳이 저 안쪽 깊은 곳까지 찾아 들어갈까를 머뭇댄다. 저 고요함의 속살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리감을 깨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실망하지 않을까, 한참 머뭇거리다 저 너머의 본질과 기어이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설령 아름다움의 이면에 감춰진 상처와 슬픔일지라도.

청풍정 원림에서 얻은 평온의 결

결을 깁는다 - 3.~4.

 

 

 

3. 밀려오다

한 걸음 더 가까이
, 호안을 따라 걸을수록
험한 모습 서서히 드러난다.
물가로 밀려온 플라스틱류와 스티로폼, 비닐
청풍정을 향하는 길목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맑은 바람이 깃든다는 청풍정에 이르려면
파렴치한 무뢰한과 내 안의 상처처럼 직면한다.
수몰된 모래밭을 더듬거나 물 밑 마을의 마당을 쓸 듯
사라진 버드나무 십리 길을 들추어내는 동안,
명월암에 새겨진 슬픈 전설의 기억까지
물 아래 잠긴 모든 것들이 떠오른다.

자지러지는 것들은 언제나 생채기를 배태하고
낡은 대나무 지팡이도 금이 가듯 시간의 찢긴 소리
도외시하는 것이 차라리 여차여차하여
내가 깁고 꿰매던 산천의 결을 읽는다.

4.
결을 세우다

드디어 청풍정 마루에 걸터앉는다
.
활짝 트여 드넓은 대청호가 발아래 펼쳐진다.
이상야릇하게 밀려왔던 애처로움과 가여움이
대청호 맑은 물결로 스르르 사라진다.

슬픔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고 상처는 그저 지나간 시간의 무늬일 뿐 물과 하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시선은 거리낌 없이 뻗어 나간다
. 귓가에는 물결에 실린 바람만 청량하게 차오른다.

껴안았기에 바람의 결은 더욱 깊고 단단해져
너덜너덜하던 내 심지로 옹기에 금을 긋듯 선명한 결기
올 사이로 새 실을 꿰듯 빈틈을 채워 직조한다.
맑은 바람의 결로 둘러싸여 튼튼하게 깁는다.
떠나기 싫은 깊은 시간으로 침수될 때
그제야 비로소 고스란히 옹골찬 평온을 얻는다.

 

-(2025.11.19.)

 

아름다움은 종종 장막 너머의 슬픔과 대면한다. 청풍정에 온전히 다가서는 길은 그 땅이 품고 있는 거대한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이다. 먼저, 수몰(水沒)의 기억을 꺼내 본다. 대청댐 건설은 이곳의 천하절경을 물 아래로 가두었다. 한때 이곳에는 4가 넘는 하얀 모래밭이 비단결처럼 펼쳐져, 1만 평 넓이의 소나무 숲이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한때 눈부셨던 풍경만이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도 가라앉았다. 고균 김옥균(金玉均, 1851~1894)과 기생 명월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선생의 앞날을 위해 먼저 간다명월암(明月巖)’이라는 바위의 낭만이 전해진다. 역사의 진실은 낭만보다 가혹하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3일 후, 김옥균은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망명한다. 시공간적으로 이곳 청풍정에 머물렀다는 낭만적 서사는 성립할 수 없다. 진짜 슬픔은 다른 곳에 있다. 그의 부인 유씨와 어린 딸은 실제로 이곳 옥천 땅에 피신하여 10년간 신분을 숨긴 채 온갖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통과하며 청풍정에 이른다.

정자는 소박하나 기품이 완연하다. 거울 같은 호수와 병풍처럼 둘러선 산, 그 모든 풍경을 정자가 화룡점정으로 완성한다.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드넓은 대청호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물결이 햇살에 물비늘을 일으킨다. 수면에 일어나는 물결의 무늬가 호안으로 찰랑댄다. 해는 기울고 산그림자도 길어진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움직이는 동작이 커진다. 물결 지어 자꾸 어른어른 움직인다. 그러자 애잔함이나 연민이 홀연히 사라진다. “슬픔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고 상처는 그저 지나간 시간의 무늬일 뿐이다. 홀연히 경계가 없는 자유로운, ‘무경무애(無境無涯)’의 경지를 만난다. 정자에 앉은 나와 저 너머 산수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시선은 거리낌 없이 뻗어 나간다.” 귓가에는 물결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水波音]수파음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청량(淸亮)한 소리만이 가득하다. 완벽한 평온이 스며든다.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돌이켜 보면, 청풍정 원림의 규모는 청풍정 건물 하나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하나의 경지를 구축한 특별한 풍경 속으로 빨려드는 의식이다. 입구의 안내판은 세월에 바래 글씨마저 흐릿하지만, 희미함이 오히려 뚜렷하고 분명한 일상을 잊으라는 무언의 초대장으로 느껴진다. 이내 눈부시게 노란 은행나무 단풍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길을 모르니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즈음 문득 시야가 터지는 길목에 차를 세운다. 바다처럼 넓은 대청호가 빛나는 모습으로 펼쳐진다. 이미 차의 속도를 늦췄고 창밖의 풍경에 마음을 내어주는 접근 과정 자체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청풍정 원림이 자리한 땅의 지리와 맥락을 살핀다. 땅은 공간의 성격과 기운을 결정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청풍정 원림은 대략 서울에서 2시간 30여 분, 대전에서는 30여 분, 청주에서는 50여 분 소요 되는 거리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도시의 소란으로부터 한 걸음 비켜선 절묘한 거리이다. 이러한 일상으로부터의 온화한 분리는 청풍정 원림이 단순한 수도권의 위성 휴양지를 넘어, 충청권의 핵심 지역으로서의 쉼의 좌표라는 인문의 의미를 부여한다. 청풍정 원림 주변은 백토산(白土山, 171m)을 등지고 금강이 오랜 세월 땅을 깊게 파고들며 만든 감입곡류(嵌入曲流)1)의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과 수직으로 솟은 바위, 그 너머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줄기는 그 자체로 한 폭의 완벽한 산수화를 구성하는 지질학적 배경이 된다.

청풍정 원림의 터는 주산인 백토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금강의 물길이 굽이쳐 흐르는 곡수가 생기(生氣)를 머무르게 하는 배산임수의 길지이다. 주목할 점은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인해 풍수 기운의 성격이 변모했다는 사실이다. 흐르는 물[流水]은 기운의 흐름과 변화를 표상하지만, 대청호의 고인 물[止水]로 바뀌면서 축적과 평온의 기운으로 심상이 변한다. 잔잔하고 드넓은 수면은 산천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水鏡]이다.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고 안정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청풍정 원림 일대는 옥천군지에 군북면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군북팔명소중 청풍정 뒤편의 절벽 바위인 명월암으로 기록되어 있다.2) 조선 후기 성리학자 송명흠(宋明欽, 1705~1768)은 그의 저서 용호산수기(龍湖山水記)’에서 군북팔경의 수양버들이 늘어진 용호리 마을 앞의 늪 풍경인 용호담’, 막지리 장고개 대청호변 금강에 비친 오봉산’, 현재 청풍정이 세워진 명월암을 포함한 뛰어난 산수 풍광을 기록한다. 송명흠은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후손으로 충청 산림을 대표하여 두터운 명성으로 촉망받던 인물이다. 1720(숙종46, 15))에 결혼하여 1722(경종2) 부친 해직으로 옥천 동안리로 온다. 그 해 4월에 도곡(석호리 진걸마을)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후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성리학에 전념한다. 1727(영조3)에 도암 이재(李縡, 1680~1746)를 만난 이후 계속 왕래한다.

 

<청풍정 원림> 청풍정의 위치와 주변 반경 2㎞ 현황도, 송명흠이 「용호산수기」를 쓸 때에 청풍정은 없었지만, 현재의 청풍정 주변인 소정리, 막지리, 용호리, 석호리의 뛰어난 풍광을 기록하여 청풍정 원림의 원경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청풍정 원림> 청풍정의 위치와 주변 반경 2㎞ 현황도, 송명흠이 「용호산수기」를 쓸 때에 청풍정은 없었지만, 현재의 청풍정 주변인 소정리, 막지리, 용호리, 석호리의 뛰어난 풍광을 기록하여 청풍정 원림의 원경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송명흠의 용호산수기에서 만나는 청풍정 원림의 원경관

 

옥천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골짜기에 여러 분지로 이루어져 있다. 분지에는 퇴적암이 깔려 땅은 기름지다. 금강의 옥천 구간은 뱀처럼 구불거리며 흐르는 사행천을 대표한다. 옥천을 관통하는 금강은 이 지역의 지형과 경관을 결정짓는 생명의 물줄기이다. 영동에서 송천을 합하고 청성면에서 보청천을 받아들인 금강은 서북쪽으로 여러 차례 사행하며 흐른다. 강물이 굽이칠 때마다 공격사면3)에는 200미터가 넘는 절벽이 깎여 나가 소금강에 비견될 만큼 뛰어난 경관을 빚어낸다. 군북면에서 군서천(서화천)을 더한 금강은 옥천을 빠져나가며, 그 언저리에 형성된 산간분지의 풍광을 용호산수기를 통하여 읽는다.

송명흠은 이곳을 봉우리가 날개 편 듯하고 무릉도원과 같아 그 좋음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을 전개한다. 용호는 옥천에서 북쪽으로 10리쯤에 있다. 육지이면서도 산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다 물속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이를 물을 뒤집어쓰고 섬처럼 쑥 들어간다[冒水斗入如島]”라고 묘사한다. 흐르는 물이 잠시 멈추어 깊어지는 용이 사는 영적인 공간이 용호이다. 물길은 기운이 새나가지 않도록 물이 산을 감싸는 산태극 수태극의 명당 형국이다. 동남에서 와 서북으로 흐르다 언덕을 감고 남쪽으로 돌아 산을 한 바퀴 휘감는다[圍山盡一帀]’. 지금은 대부분 수몰되었으나 마을 뒷산인 백토산과 능선이 위치한다. 갈매기 고개[鷗嶺]가 서쪽 도회의 번잡함을 꽉 막았고[塞其西] 남쪽은 가운데가 툭 터져[南方豁然中開] 은은히 50리 밖의 산이 보인다[隱隱見半百里外山].

용호를 둘러싼 산들은 뒤가 우뚝하고[皆嶄峻於後] 앞이 수려하다[秀麗乎前]. 특히 서남쪽의 봉우리가 더욱 아름답다[西南諸峯尤美]. 산세의 전망은 마치 새가 날아갈 듯 높이 솟아[望之翼然高臨] 펼쳐졌다. 서로 이어진 듯하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 서대[若相接而不可近者西臺也]이다.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한 산수 미학을 만난다. 그러니까 서대는 청풍정 원림의 서남쪽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산 줄기에서의 전망 역할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포착된다. 물의 서쪽에 더욱 굽이치고 잔물결[益縈廻而漣漪] 쳐서 눈과 달처럼 빛나는 모래와 흰 돌이 있다[有明沙白石]. 이는 송명흠이 거주한 도곡(석호리 진걸마을)의 호안으로 지금의 청풍정 호안과 이어진다. 물 동쪽으로 대여섯 석봉이 물결을 베고 깎아지른 듯 서서[枕流而削立] 우뚝히 삼각을 이룬다[屹然爲三角]. 여러 봉우리 중에 으뜸이 선인봉이다. 지금의 막지리를 감싸는 512m 봉우리이다. 봉우리 아래 물이 모여 깊은 못이 장호이고[水涵滀爲深潭是曰長湖], 그 끄트머리에 콸콸거리며 바위 위로 흐르는 곳이 석탄이다[其尾決決巖頭走曰石灘]. 서남쪽으로 환산(578.8m), 동쪽으로 오봉산(512m) 사이에 청풍정이 위치한다. 용호산수기의 범위는 금강변의 용호리, 석호리, 막지리, 장계리, 류포리, 오대리, 석탄리로 이어지고, 지금은 대청호의 고요한 수면을 안고 있다.

<용호산수기의 공간 범위와 수계 복원도> 늑천 송명흠이 묘사한 옥천 군북면 일대의 승경을 1910년대 지도 위에 비정한 것이다. 현재의 청풍정 위치를 중심으로 금강 물줄기가 동남에서 흘러와 산을 휘감고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산태극 수태극의 형세이다. 지도의 용호리는 소나무 숲속의 옛 마을 터이디. 하류의 석탄리는‘결결암두주(決決巖頭走, 콸콸거리며 바위 위를 달리는 물)’의 현장인 석탄(돌여울)과 일치한다. 특히 막지리 앞의 굽이치는 물길은 ‘모수두입여도(冒水斗入如島, 물을 뒤집어쓰고 섬처럼 쑥 들어간)’의 지형 특징을 실증한다. (자료 : 국토정보앱)
<용호산수기의 공간 범위와 수계 복원도> 늑천 송명흠이 묘사한 옥천 군북면 일대의 승경을 1910년대 지도 위에 비정한 것이다. 현재의 청풍정 위치를 중심으로 금강 물줄기가 동남에서 흘러와 산을 휘감고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산태극 수태극의 형세이다. 지도의 용호리는 소나무 숲속의 옛 마을 터이디. 하류의 석탄리는‘결결암두주(決決巖頭走, 콸콸거리며 바위 위를 달리는 물)’의 현장인 석탄(돌여울)과 일치한다. 특히 막지리 앞의 굽이치는 물길은 ‘모수두입여도(冒水斗入如島, 물을 뒤집어쓰고 섬처럼 쑥 들어간)’의 지형 특징을 실증한다. (자료 : 국토정보앱)

이곳은 사계절이 아름답다. 진실로 좋은 터의 공통된 아름다움[寔勝地之通美也]을 지녔다. 이런 명승의 기운을 지닌 용호에다 괜히 덧붙여 기록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不當於龍湖瀆記之]. 송명흠은 이렇게 말한다. “천년 외진 땅에 가령 내가 오두막을 엮어 그 좋음을 다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치 그 사이에 운수가 좋아서일 테니 아아, 또한 특이할 것이다라고. 송명흠이 작고하고 20여 넌이 지난 1790년경에 청풍정 정자가 용호산수기의 거점 중심 공간에 건립된다. 누군들 송명흠의 이 문장에서 번뜩이는 착안에 들지 않겠는가. 다만 이를 실천하는 게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게 아니다.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좋은 명승지에 특정 원림을 경영하는 이들의 특징을 발견한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운수에 일정 부분 가피를 얻고 있다는 짐작이다. 답사를 다니면서 점점 더 확증 편향이 깊어져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가끔 놀란다.

이곳의 식생을 복사꽃과 오래된 소나무의 풍광으로 기록한다. 예전에는 강을 따라 복사꽃 가득 심어[盛種桃花] 봄이면 비단 물결이 강에서 뒤집히면서[錦浪翻江] 바람에 날린 꽃잎이 강에 떨어져[風吹落江] 무릉도원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천 길이나 되는 노송이 우뚝 홀로 서서[卓然獨立] 풍상에도 그 절개를 바꾸지 않는다. 시끄러운 세상을 피하는 데에는 복사꽃이 쓸모가 없다[避喧者無用桃爲]. 내가 장차 이를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오가면서[吾將撫是而盤桓] 영원토록 용호를 좋아하겠다고 마무리한다. 대청댐 건설 이전의 천하절경 풍광이 물에 잠기고 새롭게 형성된 호수는 상실과 재생이라는 이중의 서사를 부여한다. 청풍정 원림의 정자 마루에 서면, 전망으로 펼쳐지는 산수의 안온함에 세상의 소란스러움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이런 풍경의 향유가 어제오늘의 급조가 아니라 그만큼의 오랜 연륜이 함께 하고 있음을 소름 일 듯 절감한다.

송명흠의 시선과 김종경의 청풍정 조영

 

송명흠의 생애와 청풍정의 건립 시기는 엇갈린다. 용호산수기에는 청풍정정자의 이름이 없다. 자료에 따르면 두 인물의 활동 시기는 약 20년 이상의 차이가 난다. 송명흠은 영조 연간에 활동하며 옥천으로 낙향하여 용호산수기를 남긴다. 청풍정을 건립한 참봉 김종경(金宗經)으로, 건립 연대는 조선 후기인 1790년경(또는 18세기 말~19세기 초)으로 추정한다. 송명흠이 작고한 1768년 이후 20여 년 이상 지나고야 지어졌다. 용호산수기에 청풍정은 나오지 않지만 자연 지명과 마을 풍경선인봉(仙人峯), 장호(長湖), 석탄(石灘), 가산(佳山), 장현(帳峴) 등의 자연 지명과 50여 호의 민가(民居), 소나무 사립문에 초가집(松扉草屋) 이 등장하여 지금의 청풍정 주변의 풍광을 읽는다. 송명흠은 용호라는 장소가 지닌 빼어난 산수와 터의 기운을 크게 기리고 드러낸다.

송명흠의 심미안은 굽이치는 금강 물줄기가 산을 휘감아 도는 형세와 그에 어우러진 백사장, 기암괴석을 포착한다. 그는 한때 화려했던 복사꽃이 사라진 자리를 지키고 선 천년 노송에 주목하며, 그 고독한 형상에서 변치 않는 절개와 선비 정신을 투영한다. 그는 이곳을 세상의 이익과 명예를 좇는 자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오직 마음을 비운 군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은일의 공간으로 규정한다. 송명흠의 이러한 시선은 훗날 이곳에 정자가 들어서야 할 인문학적 당위와 미학적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그가 장소성(sense of place)을 겉치장 없이 기록한 아름다운 터 위에 후대의 김종경이 원림을 완성한다. 송명흠이 청풍정 원림의 가치를 발견한 계획가라면, 김종경은 사람이 머물고 문화가 흐르는 원림을 현실 공간으로 구체화한 실천가이다. 이는 옥천 청풍정 원림이 지닌 깊은 시간의 층위를 보여주는 것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완성되어 가는 한국 전통 조경의 적층(積層)의 미학을 대변한다. 결국 송명흠의 시선을 통해 이곳이 군자가 머물 만한 곳이라는 장소성을 획득하고, 그 위에 김종경이 정자를 지음으로써 송명흠의 경관 독해는 비로소 구체적인 공간 경험으로 완성된다.

 

<옥천 청풍정의 단아함> 청풍정은 화려한 단청이나 웅장한 규모로 압도하는 건축은 아니다. 그것은 옛 금강의 물가 암반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한 채의 ‘비움’이다. 18세기 늑천 송명흠이 글로써 터를 닦고, 참봉 김종경이 서까래를 얹어 완성한 절제와 통합의 미학적 정수를 보여준다. (2025.11.19.)
<옥천 청풍정의 단아함> 청풍정은 화려한 단청이나 웅장한 규모로 압도하는 건축은 아니다. 그것은 옛 금강의 물가 암반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한 채의 ‘비움’이다. 18세기 늑천 송명흠이 글로써 터를 닦고, 참봉 김종경이 서까래를 얹어 완성한 절제와 통합의 미학적 정수를 보여준다. (2025.11.19.)

청풍정의 외형은 정면 3,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하다. 3칸 중 한 칸은 온돌방이고 두 칸은 우물마루이다. 여름은 물론 추울 때에도 이용할 수 있는 실용의 의지를 갖췄다. 마루와 방 사이에는 분합문을 매달아 들어 올려 처마에 걸 수 있다. 방과 마루 그리고 산수가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된다. 이는 한순간에 벽을 허물어뜨리고 정자 내부로 바람과 빛, 물소리를 들이는 소통의 건축을 구현한다. 공포를 두지 않은 민도리집 양식과 3량가의 가구 구조는 장식을 배제하고 재료 본연의 물성을 드러낸다. 이는 스스로 풍경의 일부가 되고자 했던 옛 선비들의 겸양 정신을 대변한다.

청풍정 원림의 경관 미학

 

청풍정의 주초석은 높다. 대청호의 수위 변화를 고려하여 마루 부분은 높은 화강석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다. 멀리서 관조할 때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배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지면에서 떠 있는 듯한 부유감(浮遊感), 혹은 속세를 떠나 선계로 향하는 비상의 이미지를 시각화한다. 정자는 축대를 쌓는 대신 산자락이 끝나는 지점의 거친 암반과 바위 위에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 정자 마루에 앉으면 기둥 사이로 대청호의 광활한 수면과 맞은편 오봉산(선인봉)의 산세가 순하게 다가온다. 나와 산수를 구분 짓던 경계는 소멸한다. 시선은 수평선 넘어 무한으로 확장한다. 풍경을 빌려오는 게 아니라 내가 곧 풍경이 되고 풍경이 곧 내가 되는 무경무애의 미학적 경지에 몰입한다.

 

<물 위에 뜬 배, 청풍정에서 마주한 무경무애(無境無礙)> 높은 주초석 덕분에 마루에 앉으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부유감(浮遊感)이 전해진다. 기둥 사이로 대청호의 광활한 수면과 오봉산의 산세가 막힘없이 밀려든다. 벽을 비워낸 그 자리에서 나와 자연의 경계는 소멸하고, 시선은 무한으로 확장된다. 풍경을 빌려오는 차경(借景)을 넘어, 내가 곧 풍경이 되는 물아일체의 순간이다. (2025.11.19.)
<물 위에 뜬 배, 청풍정에서 마주한 무경무애(無境無礙)> 높은 주초석 덕분에 마루에 앉으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부유감(浮遊感)이 전해진다. 기둥 사이로 대청호의 광활한 수면과 오봉산의 산세가 막힘없이 밀려든다. 벽을 비워낸 그 자리에서 나와 자연의 경계는 소멸하고, 시선은 무한으로 확장된다. 풍경을 빌려오는 차경(借景)을 넘어, 내가 곧 풍경이 되는 물아일체의 순간이다. (2025.11.19.)

청풍정 원림에는 김옥균이 지었다는 밝은 달이 강물을 비추고[明月照江流], 맑은 바람이 소매를 스치네[淸風拂我袖]”라는 시구가 구전된다. 자신을 연모하던 기생 명월(明月)과 머물던 정자 청풍(淸風)의 이름을 넣어 지은 시구로 알려졌다. 죽어서 달이 된 명월이 강물을 비추고, 자신은 청풍정에 머물며 그 바람을 느낀다는 애틋한 중의적 의미를 공간의 콘텐츠로 담았다. 옥천 청풍정의 장소성과 김옥균의 서사가 결합하여 탄생한 고유한 시적 콘텐츠이다. ‘청풍명월(清風明月)’은 한국정원문화에서 산수 경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상투적 표현(cliché)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 표현의 철학적 뿌리는 송나라 문인 소식(蘇軾, 1037~1101)의 산문시 전적벽부(前赤壁賦)에서 찾을 수 있다.4)

소식은 임술년(1082) 가을, 적벽에서 배를 띄우고 청풍서래(清風徐來), 수파불흥(水波不興)’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는의 고요한 밤을 체험하며, 청풍과 명월을 통해 무상(無常)과 무진(無盡)의 철학을 노래했다. 특히 그는 강상지청풍(江上之清風)’산간지명월(山間之明月)’을 다음과 같이 찬미했다.

 

惟江上之清風,與山間之明月,耳得之而為聲,目遇之而成色,取之無禁,用之不竭。是造物者之無盡藏也,而吾與子之所共樂。

오직 강 위의 청풍과 산간의 명월만이 있으니, 귀에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보이면 색이 되며, 차지함에 금지 없고 사용에 고갈이 없다. 이는 조물주의 무진한 보배 창고요, 나와 당신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소식, 「전적벽부」 핵심 부분 재구성, 『고문진보후집』 권8, 동양고전종합DB.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과거 시험 필수 교재인 고문진보(古文眞寶)를 통해 이 작품을 숙독했으며, 누정을 짓고 시를 지을 때 소식의 구절을 전범으로 삼는다. 청풍정 원림에서 등장하는 명월조강류(明月照江流)’청풍불아수(清風拂我袖)’는 소식의 강상지청풍산간지명월을 변주한 표현이다. ‘명월조강류는 시각적 경관을, ‘청풍불아수는 촉각적 체험을 강조한다. 소식이 제시한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색이 되는[耳得之而為聲 目遇之而成色]’ 감각의 다층성을 가져왔다. 특히 청풍불아수()’를 명시함으로써 산수와 하나되는 친밀한 교감을 더욱 강조한다. 물과 달, 바람이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원림의 내부로 끌어들여 완성되는 공간이다. 이러한 청풍정 원림의 미학적 완성은 상실과 재생이라는 역사적 격랑 속에서 단련된다. 원림이 겪어온 시간의 켜와 무관하지 않다.

청풍정 원림에서 경험하는 무경무애의 미학은 상실을 견디고 재생을 거듭하며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빚어낸 정신적 깊이이기도 하다. 청풍정 원림의 시간은 선형으로 흐르지 않고 깊이로 쌓인다. 1900년경의 소실과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인한 수몰, 그리고 1996년의 복원에 이르는 수몰과 재생의 서사는 이 공간을 상처 입은 기억 위에 다시 세워진 치유의 정원으로 자리매김한다. 물 아래 잠긴 옛 터의 기억을 딛고 선 지금의 청풍정 원림은 상실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의 상징이다. 현판에 새겨진 글씨와 명월암에 깃든 전설은 그 시간의 층위를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인문의 쐐기이다. 청풍정 원림의 미학을 관통하는 본질은 비움에 있다. 정자는 벽을 비워 맑은 바람을 얻고 이곳을 찾은 이들은 욕심을 비워 비로소 거대한 산수를 얻는다. 암반 위에 가볍게 띄워진 이 목조 공간은 소유하려 들지 말고 흐름에 잠시 머물라고 나직이 속삭인다. 청풍정 원림이 건네는 위로이다. 한국정원문화가 추구하는 궁극의 지향이기도 하다.

옥천 청풍정 호수원림은 조선 선비의 청렴한 정신과 명월의 애틋한 사랑, 근현대사의 아픔과 대자연의 치유력이 겹겹이 포개진 콘텐츠를 지녔다. 이곳에 깃든 다층의 경관 미학은 마음 정화와 상처 치유, 그리고 경계를 허무는 정신의 자유라는 가치를 선사한다. 정자 마루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호수를 바라본다. 무한한 흐름에 몸과 마음을 싣고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듯한 평온을 얻는다. 소란스럽고 분주한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가장 명료한 장면을 포착한다. 청풍정 원림은 시간을 건너 말을 건넨다. 맑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힘을 지니라 한다. 맑은 바람이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며 무경무애의 산수를 품으며 큰 숨을 내쉬게 한다.

 


1) 감입곡류하천 (Incised Meander) : 평야를 흐르던 구불구불한 강(자유 곡류)이 지반의 융기나 해수면 하강으로 인해, 원래의 구불구불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땅을 깊게 파고 내려가(하방 침식) 형성된 골짜기이다. 강물이 마치 산 사이를 휘감아 도는 듯한 형상을 하며, 옥천이나 영월, 단양 등 우리나라 산간 지방의 하천에서 흔히 본다. 옥천의 둔주봉에서 내려다보이는 한반도 지형이 바로 이 감입곡류가 만든 작품의 하나이다.

2) 군북팔명소(군북팔경)8(1994, 옥천군지) 1. 이지당(二止堂) - 조선후기 기호학파의 중심 서당으로 현재 보물로 지정 2. 청석교(淸石橋) - 군북면 중약리의 오래된 돌다리 3. 용호담(龍虎潭) - 용과 호랑이가 마주하듯 깊은 소() 4. 오봉산(五峰山) - 다섯 봉우리가 솟은 산 5. 소금강(小金剛) - 추소팔경의 부소담악을 가리키는 별칭 6. 감로사(甘露寺) - 옛 사찰터 7. 명월암(明月巖) - 청풍정 뒤편의 절벽 바위, 김옥균과 기생 명월의 전설이 서린 곳 8. 장계교(長溪橋) - 장계 일대의 다리

3) 공격사면과 활주사면 (Cut bank & Slip-off slope) 공격사면 (Cut bank, 攻擊斜面) : 강물이 굽이 도는 바깥쪽이다. 원심력에 의해 물살이 빠르고 힘이 강하여 물살이 강가(제방)를 지속적으로 때리고 깎아내기 때문에 '공격'한다고 표현한다. 깎여나간 자리에 가파른 절벽(River Cliff)이 형성된다. “200미터도 넘는 절벽이나 소금강같은 절경은 모두 이 공격사면에 해당한다. 활주사면 (Point bar, 滑走斜面/퇴적사면) : 강물이 굽이 도는 안쪽이다. 물살이 느려 힘이 약하여 상류에서 떠내려오던 자갈이나 모래가 이곳에 쌓인다. 완만한 모래톱이나 자갈밭이 생기고 홍수 때 범람원 역할도 한다. 지대가 평탄하여 예로부터 마을(취락)이 형성되거나 농경지로 이용된다.

4) ‘청풍명월이라는 어휘 조합 자체는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에 이미 등장한다.청풍명월불용일전매(清風明月不用一錢買, 청풍과 명월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살 수 있다)그러나, 소식의 전적벽부는 이를 철학적 명제로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후대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월간::조경헤리티지』은 한국정원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짧은 단상과 긴 글을 포함하여 발행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설계 언어를 창발創發합니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주체적, 자주적,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월간 조경헤리티지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다른 뉴스레터

© 2025 월간 조경헤리티지

한국정원문화를 당대의 삶으로 벅차고 가슴 설레이며 살아 숨쉬게 하는 일

뉴스레터 문의namuwa@gmail.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