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으로 본 한국정원문화

청백을 보물로 여기는 외다리나무 사유

008.안동 만휴정 원림

2024.06.21 | 조회 232 |
from.
茶敦온형근

월간 조경헤리티지

한국정원문화를 당대의 삶으로 벅차고 가슴 설레이며 살아 숨쉬게 하는 일

안동 만휴정 원림 – 청백을 보물로 여기는 외다리나무 사유

 

올괴불나무 꽃을 흔드는 청딱따구리의 울음

 

올괴불나무 - 만휴정 협문 담장 아래 참죽나무 하층식생(2024.03.24.) 
올괴불나무 - 만휴정 협문 담장 아래 참죽나무 하층식생(2024.03.24.)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의 너럭바위 바위글씨를 친구 삼아 그 옆에 비스듬히 누웠다. "내 집에는 보물이 없다, 있다면 오직 청백뿐이다"라는 바위글씨이다. 청백(淸白)은 청렴하고 결백한 삶을 말한다. 청렴 결백하게 살아가는 게 가장 귀중한 보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이다. 특히 공직자나 지식인들에게 청백리 정신의 표상으로 새겨지는 가치이다.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흰색 색감의 너럭바위를 따라 바라보며 시선이 만난 곳, 그곳은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처럼 짙고 깊은 소였다. 그런데 청딱따구리가 다급한 성조로 우짖는다공기 속을 뚫고 내게 꽂혔는데도 송암 폭포의 장엄한 파열음에 섞이지 않는다. 연속적인 노래는 날카로우면서 담장 아래 몰래 숨어 핀 올괴불나무(Lonicera praeflorens Batalin) 꽃을 흔든다. 괴불나무에 비하여 꽃은 아래로 향하고 열매자루는 길다. 올괴불나무는 일찍 핀다는 뜻의 ‘올’자를 붙여 이름을 만들었듯이 학명과 영, 일명에도 같은 속성을 지녔다.      

 

속명인 ‘로니세라’는 독일의 수학자이자 식물학자인 식물학자인 아담 로니서(Adam Lonicer, 1528-1586)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었다. 로니서는 약용식물 연구로 유명하며, 그의 책 "크로이터부흐(Kreüterbuch)"는 당시 매우 영향력 있는 식물학 서적이었다.1) 종소명 ‘프래플로렌스’는 라틴어 ‘prae’(앞서, 먼저)와 ‘florens’(꽃이 피는)의 합성어로, 먼저 꽃이 피는 뜻을 지닌다이 종이 다른 인동과 식물들보다 일찍 개화하는 특성을 드러낸다. 명명자 ‘바탈린’은 러시아의 식물학자 알렉산더 테오도로비치 바탈린(Alexander Theodorowicz Batalin, 1847-1896)을 가리키며, 그가 이 종을 처음으로 기재하고 명명하였다. 영어명이 ‘얼리-블루밍 허니서클’(Early-blooming honeysuckle)로 일찍 피며 꿀이 담겨 있는 둥근자리를 강조한다. 일어명 역시 ‘하야자키효탄보쿠’(ハヤザキヒョウタンボク)로 ‘하야자키’는 '빨리 피는'이라는 의미이고, ‘효탄’은 '박'을 의미한다. 열매의 모양에 착안하였다. ‘보쿠’는 '나무'를 뜻하며, 이 식물이 관목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려준다.     

 

청딱따구리의 파고드는 음색이 올괴불나무 연분홍 꽃잎에 스민다. 그때마다 소녀 발레리나의 토슈즈를 닮은 홍자색 꽃밥이 파르르 떤다. 올괴불나무 여린 줄기에는 작년에 수직으로 하강한 참죽나무(Toona sinensis (A.Juss.) M.Roem.) 열매껍질인 각두(殼斗)가 걸렸다. 참죽나무의 열매는 삭과(蒴果)이다. 터진 삭과는 5개의 판으로 갈라지면서 겉의 갈색과 안의 우유색이 열개하여 목련꽃처럼 보인다. 마치 황목련이 핀 것처럼 언뜻 보였다. 열개한 판 모양의 평면은 별 모양이다. 그 안쪽에 납작한 타원형 종자가 2열로 배열되었다. 열개하면서 튀어나와 날개를 믿고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진다. 종족 유지를 위한 진화의 결과이고 생존 전략이다.     

참죽나무 열매 (2024.03.24.)
참죽나무 열매 (2024.03.24.)

만휴정 원림의 시경을 읊는다     

만휴정 원림으로 다가서는 길은 적당한 경사를 품었다. 선계로 오르는 승선의 느낌을 안긴다. 길 양쪽에서 이어지는 산이 단아하다. 나직하게 눌러앉은 산에는 제법 송림(松林)이 우거졌다. 낌새채지 못하였는데 어느새 고도는 고개 하나를 넘었다. 이윽고 산길이 세차게 솟아오른다 싶더니 폭포 소리에 동학(洞壑)2)이 요란하다. 폭포를 따라 올려다본 시선 위에 고색창연한 만휴정의 풍경이 엿보인다. 길을 버리고 비탈을 향해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내리꽂는 시선으로 폭포에서 떨어지는 깊은 소가 으르렁댄다. 높은 암벽을 탄 채 날 듯이 하얀 포말의 물길이 기세등등하다. 화강암 암벽이 계곡 전체를 빈틈없이 가로질렀다. 근육질 몸매의 암벽은 울뚝불뚝하면서 표면이 매끄럽다. 거대한 한덩어리의 바위이다. 물은 바위의 낮은 곳으로 몰려 물길을 내고 기대어 흐른다. 화강암 암반 표면에는, 쏟아지는 송암 폭포의 경위서를 빼곡하게 새겼다. 만휴정의 시경을 하나 남긴다.     

 

만휴정 외나무다리

온형근               

 

 

 

   만휴정 오르내리는 냇길 둑마다

   개나리 노란 꽃눈 울먹이며 터지려 안달이다.

   금방이라도 망울 터트려 가슴을 활짝 펼칠 기세

 

   내 집의 보물은 청렴과 결백

   바위글씨 새겨진 너럭바위에

   비스듬히 누워 손을 괸 채 풍류에 든다.

   너럭바위로 다가선 거대한 흑갈색 암반을 한 송이 진달래꽃이 벋댄다.     

 

   산자락 아래로 부는 바람이

   왼쪽 어깨를 툭 치길래 돌린 고개

   거기 그 자리에 작은 생강나무

   천지인의 세상에 나온 첫 꽃망울인 듯 다소곳이 물길을 내려다본다.

   오른쪽 어깨 저편 둑길에 핀 환한 생강나무

   제법 굵은 줄기에 생동이라는 문장을 반점으로 새겼다.     

 

   천 년 억겁을 지닌 너럭바위의 품은

   산맥의 암반과 마주친 곳에 골 하나 내준다.

   물길이 빠른 몸놀림으로 소리 내며 흐른다.

   꼭 내주는 데로 흐르라고 댓잎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처럼 낮으면서 명료한 음조로 사뢴다.

   한쪽만 내주고도 금방 바다의 칠흑을 이룬다.

   급하게 휘몰던 가마소 저만치 비켜서 외나무다리 가로지른다.     

 

   만휴정 외나무다리가 은하수 건너는 바다처럼 칠흑을 버릴 때

   맑은 물은 ‘보백당 만휴정 천석’에 달이 뜨고 맴돌다 부딪히며 창창해진다.

   이쯤 되면 청백리는 세상을 잊고 선계에 머물 수밖에

   송암 폭포가 가마소 물을 조용히 모았다 쏟아내는 것을     

 

   만휴정 정자 마루 조금씩 삐그덕대며 울어도

   맨발에 전해지는 결 푸른 나무 질감으로

   마음 긁힌 서정일랑 잊으라고 물소리 찰랑하다.

   맞은편 와석을 대로 삼아 내려다보는 만휴정은 

   산 아래 둑길로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저녁 어스름 한가득하다.          

 

-2024.03.24.     

 

만휴정을 오가는 둑길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개나리 꽃망울이 단단하다. 매화는 터지고 개나리는 아직 계류의 추운 기운에 움츠렸다. 만휴정 원림에서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21)의 청백리로서의 겸손을 배운다. 너럭바위에 앉아 생강나무 꽃의 화사함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야말로 만휴정 원림의 풍경을 단촐하게 뽑아준다. 너럭바위를 내려간 계류는 칠흑의 바다같은 소를 만든다. 만휴정의 외나무다리는 바다에 떠있는 은하수이다. 은하수는 칠흑의 소를 버린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에서 흘러 내려온 거대한 암반을 작은 진달래꽃 하나로 버팅기는 모습은 경이롭다. 경이로움은 겸손을 부르고 겸손은 경이로움을 모신다.     

만휴정 개나리 (2024.03.24.)
만휴정 개나리 (2024.03.24.)

 

생강나무의 생애 첫 꽃망울에서 다소곳이를 보았다그 다소곳이는 흐르는 물길로 다가서며 수줍음을 버린다반면에 둑가에 있는 생강나무 성목은 줄기에 '생동'이라는 문장을 새겼다환한 눈매를 머금은 생강나무의 꽃이 온몸으로 봄의 생동을 후련하게 내뿜는다. ‘다소곳이’와 ‘생동’이라는 풍경의 언어가 만휴정 원림의 경관 키워드로 다가서는 순간이다. ‘다소곳이’와 ‘생동’만으로 봄의 활력은 고스란히 내몫이다. 만휴정의 외물은 시간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다. 암반처럼 하나같이 의연하다. 암반의 한쪽으로 기울어 흘러도 금방 칠흑같은 가마솥처럼 바다를 이루는 모습은 장관이다. 자연의 순리를 들추지 않아도 거대한 풍광에 절로 숙연하다. 송암 폭포의 장엄한 모습에서 세속의 시끄러운 삶의 잔영을 잊는다. 만휴정 정자 마루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아까 폭포에서 듣던 포효와 으르렁대는 기세가 순화되어 편안하다. 만휴정은 폭포와 독대하지 않음으로써 마땅한 사유의 참모습에 들 수 있다.     

만휴정 생강나무
만휴정 생강나무

 

만휴정의 중심, 보백당 만휴정 천석과 계원 공간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의 「만휴정중수기」에는 폐허에서 묵은재(黙隱齋) 김영(金泳, 1702~1784)이 완성을 못하고,3) 둘째 아들 김동도(金東道, 1734~1794)가 뜻을 이어 중수하였는데 1790년(경술년)이다. 5개월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 한 줄기 날아오르는 샘물이 마침내 분분히 격발하여 층층의 폭포를 이루니, 세 개의 웅덩이가 그 떨어지는 곳을 받는다. 속칭 웅덩이를 가마솥이라 하는 것은 그 모양 때문이다. 물의 깊고 얕음이 또한 가마솥의 크고 작음을 따르니, 비 온 뒤 물이 많은 날의 그 경치는 알 만하다. (…)      

-김양근, 「만휴정중수기」, 『동야집』, 제7권, '기', 한국고전종합DB.

 

만휴정 계곡은 만휴정의 서쪽과 남쪽 방향의 450m 정도의 봉우리 양쪽 산맥에서 흘러내린다. 산봉우리에서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곳이라 수량은 풍요롭다. 계곡에서 물러나 축대로 높게 단을 쌓아 앉은 만휴정이다. 등지고 있는 산이 달려와 암괴로 마치는 터에 오붓하게 자리한다암괴의 아래쪽은 단층을 지어 건물과 편안하게 마주하나 위쪽은 만휴정을 내려다본다병풍처럼 감싸주는 암괴가 내어준 자리에 만휴정이 앉았다. 만휴정 계원(溪苑)의 바위 위를 흐르는 계류를 「만휴정중수기」에서는 송천(松川)이라고 하였다. 계류는 외나무다리로 건넌다. 매우 간단하였을 구조였겠으나 지금은 다리를 받치는 시멘트 기둥이 가운데를 받치고 양쪽 끝은 한쪽은 만휴정 축대, 한쪽은 길 아래 솟은 바위의 한 면을 잇댄다. 답면은 양쪽에 원통형 나무를 걸치고 그 사이에 아스팔트 역청을 채워 제법 견고하다. 여기서 저 유명한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유진초이가 고애신에게 “합시다 러브, 나랑... 나랑 같이”라는 공전(空前)의 대사를 날린 곳이다.     

 

정자에 앉으면 외나무다리로 눈길이 간다. 「만휴정중수기」에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세찬 물줄기를 받아 가마소를 이루는 세 개의 깊은 소인 삼홍(三泓)이 이어진다고 하였다. 홍(泓)은 어둡고 휘몰아치는 형상이 가마솥 안과 닮았다. 그래서 이곳 계곡을 토박이들이 ‘가마골’이라 했을 것이다.  한자로 가마 부(釜)라고 하였으니〔三泓者承其落處。俗謂泓爲釜。以其形也〕 오늘날 사용하는 소(沼)의 표현이다. 물의 깊고 얕음이 소의 크고 작음을 따른다. “비 온 뒤 물이 많은 날의 그 경치는 알 만하다〔雨後水盛之日 其景可知〕.” 라고 경관을 평가하였다.

김양근의 '만휴정즉'(1790) - 만휴정 증수 축하 절구시 3수 (2024.03.24.)
김양근의 '만휴정즉'(1790) - 만휴정 증수 축하 절구시 3수 (2024.03.24.)

김양근은 만휴정의 빼어난 경관에서 얻은 감흥을 시경으로 창작한다. 웅장하고 신비로운 폭포와 연못기이한 바위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만휴정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한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 속에서 한가롭게 풍류를 즐기는 겸손한 은자의 삶에 대한 동경이 잘 나타난다. 전문을 읽는다.     

 

겹겹 쌓인 물이 급하게 흘러내리고 /層層透急水, 층층투급수
물이 모이는 곳은 절로 가마소를 이루었네 /匯處自成釜, 회처자성부
열 길이나 되는 푸른 바위가 비취 같고 /十丈靑如玉, 십장청여옥
그 속에는 신령스러운 것이 있네. /其中神物有, 기중신물유     

폭포와 깊은 연못도 있고 /瀑淵猶或有, 폭연유혹유
가장 볼 만한 것은 너럭바위이다. /盤石最看大, 반석최간대
희끗희끗 다듬어져 있으니 /白白如磨礱, 백백여마롱
백 명은 앉을 수 있겠다. /百人可以坐, 백인가이좌     

난간 앞 세 개의 가마소가 둘러 있고 /檻前三釜繞, 함전삼부요
시흥이 날개 돋듯 일어나는 정자이다. /詩興翼然亭, 시흥익연정
문드러져 질펀한 꽃들이 다투어 웃고 /爛漫花爭笑, 난만화쟁소
온산을 계곡물에 모두 담아내는 형국이다. /一山盡蘸形, 일산진함형     

-김양근, 「만휴정즉」, 만휴정에 걸려있는 시판. 〔필자 역시(譯詩)〕

 

층층이 쏟아지는 폭포와 깊은 연못, 크고 넓은 너럭바위, 난간 앞 가마소 등 만휴정을 이루는 자연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백인가이좌라며 수많은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의 크기를 강조하고, ‘시흥익연정이라 하여 시심이 절로 일어나는 정자의 분위기를 표현한다. ‘난만화쟁소’의 모습을 통해 꽃들로 가득한 생동감 넘치는 만휴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일산진잠형은 온 산의 모습이 연못에 비쳐 담겼다며 자연과 경물이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풍광을 자아내는 만휴정을 시경으로 함축한다.     

 

만휴정 원림의 삼소삼송(三沼三松)     

 

만휴정을 중심으로 세 개의 소로 만휴정 원림 공간을 나눈다. 만휴정에서 송천 계곡 건너 앞산을 바라보며 우측 너럭바위 ‘청백석’과 그 아래의 ‘칠흑소’, 외나무다리 아래 송암 폭포 암반 꼭대기 ‘정천석’에 모인 ‘정소’, 그리고 송암 폭포 아래 용의 신령스러움을 지닌 ‘용소’ 공간이 그것이다. 이른바 삼소(三沼)의 공간이다. 여기다 송림(松林), 송천(松川), 송암(松巖)의 삼송(三松)을 더하여 삼소삼송(三沼三松)을 만휴정 원림의 공간 특징으로 삼는다.     

만휴정 원림의 삼소삼송(三沼三松) -3개의 소인 1. 칠흑소, 2. 정소, 3. 용소가 송림, 송천, 송암과 조화롭다. 귀를 씻으며 경관을 즐길만한 선계이다. (자료 : 필자)
만휴정 원림의 삼소삼송(三沼三松) -3개의 소인 1. 칠흑소, 2. 정소, 3. 용소가 송림, 송천, 송암과 조화롭다. 귀를 씻으며 경관을 즐길만한 선계이다. (자료 : 필자)


첫 번째 공간인 ‘청백석(淸白石)’4) 너럭바위 공간은 직접 너럭바위에 기대어 앉거나 서성일 때 그 진가를 만난다. ‘만휴정 외나무다리’의 시경이 이 너럭바위에서 탄생하였다. 만휴정을 내려다보면서 좌우의 산맥과 그 사이로 흐르는 계류의 시원함과 쾌활한 소리를 귀한 손님으로 삼아 대접한다. 차도구를 갖춰 여럿이 차를 나누어 마시며 심산유곡을 환담하기에 편한 곳이다. 너럭바위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착착치치(鑿鑿齒齒)’5)의 계곡이다. 하얀 화강암의 너럭바위가 담요처럼 넓게 펼쳐졌고〔素氈,소전〕 흰 눈처럼 깨끗하다〔白雪,백설〕. 이곳 너럭바위 공간을 「만휴정중수기」에는 다음처럼 묘사한다. “상류는 전의곡(全義谷)이 되니, 이 시내의 동쪽으로 아득히 달려가는 것이 굽이굽이 십여 리나 되고, 곧 마당 같은 큰 돌이 있어 산과 시내가 만나는 곳에 언덕이 있는데, 또한 모두 빽빽하게 늘어서 촘촘하게 이어져 흰 담요를 첩첩이 쌍아놓은 것이나 흰 눈을 평평하게 깔아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 물이 그 사이에서 형세를 따라 휘돌아 졸졸 비단과 죽림의 소리를 내는데그 근원이 이미 멀고 골짜기가 점차 낮아지면 한 줄기 날아오르는 샘물이 소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곳이 첫 번째 가마소인 바다같은 모습의 ‘칠흑소(漆黑沼)’6)를 이룬다.      

너럭바위 칠흑소 공간
너럭바위 칠흑소 공간

 

두 번째 공간은 만휴정을 배경으로 한 외나무다리 공간이다. 만휴정의 중심 공간이다. 그 사이를 낮은 담장이 가로막아 계원의 전모가 한눈에 노출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계곡 건너 앞산으로 시선이 옮겨지면서 올려다본다. 앙감(仰瞰)의 시선으로 경관을 이끈다. 산자락마다 와석으로 이루어진 많은 대가 독특한 지형 경관을 형성한다. 만휴정 낮은 담장 너머는 평탄한 계곡의 계원이 전개된다. 이곳 마당같이 펼쳐진 계원의 바닥도 암반이다. 완만한 경사로 물은 태극의 형상으로 휘돌며 흘러서 천천히 흐른다. 흐르는 물이 다시 아래쪽 ‘정천석(亭泉石)’7) 바위에 부딪히며 작은 소를 만든다. 이곳이 두 번째 가마소인 ‘정소(亭沼)’8)를 이룬다. ‘정소’가 있는 ‘정천석’ 공간이다. 물이 폭포로 나가기 전에 잠시 쉬며 머문다. 칠흑소’에서 ‘정소’까지의 직선거리는 50m 정도이다.      

정천석의 정소 공간 (2024.03.24.)
정천석의 정소 공간 (2024.03.24.)

세 번째 공간은 송암 폭포가 만드는 선계의 영역이다. ‘정소에 휘돌며 모였던 물이 꽉 조인 수구(水口)를 통과하면서 거대한 수직 절벽 암반으로 폭포를 이룬다. 하얀 포말의 물줄기가 커다란 웅덩이를 만든다. 이곳    이 세 번째 가마소인 ‘용소(龍沼)’9)로 선객이 사는 곳이다. 송암 폭포는 손대지 않은 기막힌 승경으로 범접하기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이곳을 신선의 경계로 삼아 은일하는 명분이 언어와 문장 없이도 저절로 간파된다. 이른바 송암 폭포의 절경 공간이다. “송암(松巖)에서 폭포를 완상하는 일은 그 뜻이 실로 귀를 씻는 데 있었으니, 어찌 다만 경물을 위한 것이겠는가?〔松巖玩瀑之行 其意實在洗耳 何但爲景物役也〕” 라고 「만휴정중수기」에 송암 폭포의 의경을 표상한다. 폭포를 감상하고자 함이 아니라 귀를 씻기 위함이라고 명백하게 밝혔다.      

송암폭포의 용소
송암폭포의 용소

만휴정 건물의 중심점에서 반경으로 영역을 설정한다. 만휴정 건물 중점에서 반경 20m의 영역이 만휴정 계원에 해당한다. 만휴정 건물 중점에서 반경 50m의 영역에 너럭바위 공간과 송암 폭포 공간이 포함한다. 신선 같은 이가 머물던 만휴정과 ‘용소’로 하여금 만휴정 원림의 신비하고 영묘한 풍광을 표상하게끔 보살핀다.     

 

겸손보다 실행이 더 어렵다는 청백리의 삶     

 

김계행은 연산조 때 대사간으로 권세를 가진 간신을 비판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다. 가장 그윽하고 절경인 곳을 찾았다. 바로 지금 만휴정 자리이다. 김양근의 「만휴정중수기」에는 “송천(松川)의 바위 위에 쌍청헌(雙淸軒)을 지었다. ‘쌍청’은 맑은 물과 맑은 달에서 취한 이름이다. 훗날 만휴정의 옛터이다〔家于松川巖上 軒曰雙淸 蓋取水與月 今晩休 其舊址也〕.” 라고 기록하였다. 송천 계곡에서 일찌감치 바위산을 등지고 물러나 앉은 만휴정은 청매가 활짝 피어 담장 위로 매화 향기 짙다겸손보다 실행이 어렵다는 청백리의 삶은 보물이다. 말년의 청백리가 쉴 곳으로 삼은 만휴정의 첫 이름은 쌍청헌이다. 물이 맑고, 거기에 비친 달이 또한 맑다. 정자에 오른다. 정자에 걸린 제영시와 만휴정 가문의 금과옥조가 양쪽에 걸려 있다. 김계행은 실질을 중시하였다. 청백한 일상은 실질과 통한다. 청백하지 않은 부귀영화보다 백세에 걸쳐 향기롭게 흐른다는 ‘유방백세(流芳百世)’를 선택한다. 고위 공직자가 청백리로 일관한다는 것은 보통의 발원으로는 힘들다. 김계행의 청백의 삶은 경이로운 도전의식과 겸손의 처신그리고 소문에 현혹되지 않는 진정성으로 살필 수 있다.     

 

경이로운 도전의식은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 강직함에서 찾는다. 사헌부 감찰 때 국왕의 뜻을 거스르는 민감한 간언을 과감하게 던져 외직인 고령현감으로 옮기는 등 대립과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묵계에 은거지를 일찌감치 마련한 것도 벼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내적 결기에서 비롯한다. 또한 겸손의 처신은 총명한 척 않는 자세이다. 욕심을 다스리는 절제가 앞서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두루뭉술하면서도 속으로 영악한 사람들이 있다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김계행의 청백은 겸손의 처신에서 발현한다. 영악하지 않아 명예와 사익을 챙기지 않는다. 그런 그의 청백 정신은 국문을 받는 자리에서 정적의 도움까지 받는다. 모자랄 정도로 겸손한 그의 처신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지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소문을 추구하지 않았다. 실제보다 과장된 명성은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다. 영예로운 일도 질시와 화의 근원이 된다. 시기와 질투에 편승하여 멀쩡한 유명인을 가라앉히는 세태는 그때와 지금이나 나아진 게 없다. 그러니 나를 수양하여 본래면목을 밝힌다세상의 온갖 구설수를 피해 은거할 장소로 만휴정을 경영하였다. 이처럼 만휴정 원림은 김계행의 경이로운 도전, 겸손의 처신, 삶의 진정성에서 경영되었음을 밝힌다.     

오가무보물 편액(2024.03.24.)
오가무보물 편액(2024.03.24.)

만휴정에 걸린 김계행의 유훈이 현판으로 양쪽에 걸려 있다. 하나는 너럭바위에 바위글씨로도 새긴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이다. 내 집의 보물은 청백이라는 신념을 목판으로 새겼다. 김계행의 당호인 보백당(寶白堂)의 출처이다. 죽산(竹山) 박원형(朴元亨, 1411~1469)은 김계행보다 20년 선배이다. 그가 아들에게 남긴 청백을 주제로 한 시가 있다.     

 

오늘 술독 앞에 앉아 여러 순배 술을 마시는데 /今日樽前酒數巡 금일준전주수순
네 나이 서른여섯의 푸른 청춘이라네. /汝年三十六靑春 여년삼십육청춘
나의 집안에 보물이라곤 오직 청렴과 결백이니 /吾家寶物唯淸白 오가보물유청백
원컨대 네가 무궁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전하라. /要自傳傳無限人 요자전전무한인     

-박원형, 「병중시자안성」, 󰡔동문선󰡕 제 22권, ‘칠언절구’, 한국고전종합DB.  

 

자신의 아들도 본인처럼 청백의 정신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남다르다. 보물은 청렴과 결백 뿐이니 너와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라고 한다. 박원형은 세종 때 급제하여 문종, 세조, 예종으로 이어지는 동안 청백을 신조로 영의정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캐비넷에 갇힌 고위 관료, 청백의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     

 

만휴정 정자 마루에 앉아 오른쪽을 보면 맑게 빛나는 너럭바위가 보인다전의곡(全義谷)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곳 너럭바위 언덕에서 주춤한다너럭바위는 언덕 모두를 차지한다그 바위에 새긴 글씨가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이다. 맑고 결백한 처신이 곧 보물이라면 보물일 것이라는 선언이다. 오늘날 오랜 경륜의 정치가와 공공에 대한 봉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당당한 관료가 소위 ‘캐비넷에 갇혀’ 할 말을 삼키고 있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청백이 보물이어야 하는데 다른 것을 보물로 여기면 어김없이 캐비넷이 열리고 닫기는 순환의 고리에 든다. 왜 모를까?     

만휴정 마루에 앉아 또 하나의 유훈을 살핀다. 지신근신(持身謹愼), 지인충후(持人忠厚)이다. 몸가짐을 삼가고, 남에게는 정성을 다하라는 말이다. 김계행의 5대손인 김중청(金中淸, 1567~1629)이 지은 「연보」를 들춘다. 명예로움을 쌓는 일은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가진 게 늘수록 지킬 것도 많다. 80세(1511년) 때의 기록을 읽는다.     

유훈 : 몸가짐과 정성
유훈 : 몸가짐과 정성

내외 종친이 모두 모여서 헌수를 올리는 때 내외 자질손 중에 대소과에 급제한 자가 10여 인이나 되고, 관직에 있는 자가 7인이나 되었다. 문전은 하인들로 뒤덮이고, 당실은 하객으로 가득했으니, 보는 자마다 부러워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선생은 더욱더 경계하고 타이르기를, “너희들이 연달아 과거에 이름을 올린 것은 또한 다행한 일이다. 이 고장 사람들이 더러는 나를 보고 복이 많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번창함이 두려움을 더할 따름이니 너희들은 몸가짐을 삼가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정성을 다할 것이며, 경박한 일로써 죽음을 앞둔 늙은이에게 욕됨이 없도록 해라.”라고 하였다.     

-김중청, 「연보」, 『보백당선생실기』 권1.     

 

조개(皁蓋, 지방 수령)들이 문전을 메우고 귀객(貴客)들이 당(堂)에 가득하여 보는 자마다 부러워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한다. 복이 많다는 말도 부담이고 칭송이 높아질수록 두렵다. 칭송과 비난은 실질적이지 않다. 성만(盛滿, 넘치도록 가득참)의 두려움만 더해진다고 하였다. 허식을 멀리하고 실질을 중시한다. 86세(1517년)에 천수를 다하면서 이렇게 유언한다. 청백을 대대로 전하며 공손과 삼감과 효우로 화목하고교만하거나 경박한 행동으로 명예를 훼손하거나 실추시키는 일은 하지 말며, 상제(喪祭)는 오직 정성과 경건을 다하고 낭비나 허례를 일삼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끝까지 경이로운 겸손의 경지를 넘나든다. 훌륭한 일을 해낸 게 없으면서 훌륭한 이름을 얻는 것이것을 내가 매우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김계행의 청백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하다.          

1) 크로이터부흐(Kreüterbuch) 책의 전체 제목은 "Kreuterbuch, Künstliche Conterfeytunge der Bäume, Stauden, Hecken, Kräuter, Getreyde, Gewürtze"(약초책, 나무, 관목, 생울타리, 약초, 곡물, 향신료의 기술적인 묘사)로, 독일어로 쓰여졌으며 155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크로이터부흐’는 당시 유럽에서 출판된 대표적인 초기 근대 본초학 서적 중 하나이다. 약용 식물 중심으로 다양한 식물의 특징, 서식지, 약효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으며, 약 700여 종의 식물을 다룬다. ‘로니서’는 식물의 생김새를 목판화 삽화를 사용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도입한다. 16세기 유럽의 지적 풍토와 본초학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2) 동학(洞壑) : 산천의 경치 좋은 곳 또는 깊고 큰 골짜기, 여기서는 깊고 큰 골짜기를 지칭.

3)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불행히 되었다〔役未就而不幸〕.’라고 ‘만휴정중수기’에 기록되었다.

4) 청백석(淸白石) : 너럭바위에 새겨진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의 바위글씨를 줄여서 너럭바위의 이름으로 이글에서 사용하였음.

5) 鑿鑿(착착)은 물건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이고, 齒齒(치치)는 물건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이다. 따라서 '鑿鑿齒齒(착착치치)'는 물건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계곡의 암석이 모두 빽빽하게 늘어서 있음을 ‘착착치치’로 표현하였다. 의태어 ‘빽빽하다’로 대신할 수 있다.

6) 칠흑소(漆黑沼) : 너럭바위를 휘돌아 아래로 모여든 깊고 커다란 소를 그 칠흑같이 진한 색깔을 강조하여 이글에서 이름으로 사용하였음.

7) 정천석(亭泉石) : 만휴정 앞 계류의 바닥을 흐르는 물을 가로막은 역삼각형 화강암에 새겨진 바위글씨인 ‘寶白堂晩休亭泉石’에서 끝의 세 자인 ‘정천석’을 이글에서 이름으로 사용하였음.

8) 정소(亭沼) : 정천석 앞에 흘러운 물이 잠시 쉬며 머무는 소의 이름을 晩休亭의 ‘정’을 따서 ‘정소’라고 이글에서 이름으로 사용하였음

9) 송암 폭포 아래 깊은 소를 용소(龍沼)로 이름하였다. 당나라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에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살면 명산이고, 물은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살면 신령스럽다〔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에서 착안하였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

『월간::조경헤리티지』은 한국정원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짧은 단상과 긴 글을 포함하여 발행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설계 언어를 창발創發합니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주체적, 자주적,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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