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동 원림 미학

겨울산의 근육

조원동 원림 미학.028

2025.12.15 | 조회 27 |
from.
茶敦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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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의 근육

온형근

 

 

 

겨울비 내리는 날은 산을 찾는다.

산은 젖을지 말지를 재고 있는 그 순간즈음이다.

 

얼음 맺히는 음지에는 진흙탕으로 첨벙대고

수런대던 낙엽은 은빛 내보이며 환호

메말랐던 언덕 아래 오솔길은 단단한 근육

길을 밝히듯 까치 종종거리며 앞길로 먼저 나선다.

 

겨울비, 쓸쓸함을 바가지로 퍼붓는 비라

피할 수 없을 때 살 떨리도록 맞이하여 품을 수밖에

다닥대며 산발로 두들기는 빗소리는 거리를 부르고

산 아래 정류소 의자에 앉아 비 피하는 고요

 

시작 메모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날이다. 기어이 겨울비가 내린다. 산행 출근 시간에 저절로 이끌려 신발 끈을 조인다. 산은 젖을지 말지 재고 있을 테지만, 나는 이미 젖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선다. 초입의 음지는 얼음이 풀려 질척인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탕, 낭패가 아니다. 대지가 물을 마시는 적나라한 소리다. 마른 입술처럼 바스락대던 낙엽들이 물기를 머금더니 은비늘처럼 번득인다. 숲이 환호성을 지르는 듯하다. 비로소 발바닥에 닿는 땅의 감촉이 달라진다. 푸석하던 흙길이 빗물을 빨아들여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이것은 흙의 살점, 아니 산의 근육이다. 비를 맞아야만 드러나는 저 단단한 생명력. 나는 그 근육을 밟으며 산의 힘줄을 따라 걷는다.  앞서가는 까치 한 마리가 젖은 날개를 털며 길을 틔워준다. 빗줄기는 굵어지고, 쓸쓸함이 바가지째 쏟아진다. 피할 곳 없는 능선, 차라리 온몸으로 맞는다. 살이 떨리도록 차갑지만, 가슴 안쪽에서는 뜨거운 김이 오른다. 쓸쓸함을 정면으로 품으니 외려 충만하다. 하산길, 산 아래 낡은 정류소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거리의 차량이 빗소리를 머금을수록, 젖은 몸을 뉘인 이 좁은 의자는 깊은 고요의 심연이 된다. 빗속을 뚫고 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하고 고요한 휴식이다.

"메말랐던 언덕 아래 오솔길은 단단한 근육, 피할 수 없을 때 살 떨리도록 맞이하여 품을 수밖에 The path down the parched hill is firm muscle; when unavoidable, it must be met with trembling flesh and embraced"

겨울산의 근육
겨울산의 근육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월간::조경헤리티지』은 한국정원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짧은 단상과 긴 글을 포함하여 발행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설계 언어를 창발創發합니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주체적, 자주적,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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