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녹턴의 음악처방전 #4
나는 어릴 때부터 말이 없는 아이였다.
우리 엄마는 늘 이렇게 칭찬했다.
"우리 딸은 말이 없어서 어디 가서도 말을 잘 안 하니까 참 이뻐~"
(참고로 난 딸 셋중 막내딸이고, 둘째언니가 말이 많았다고 한다)
아빠는 늘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는 조용한 게 답이라고 배웠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들이 내 목소리에 자물쇠를 채울줄은
'아.. 말을 안 하는 게 좋은 거구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맞는 거구나'
'조용한 게 사랑받는 방법이구나'
그렇게 나는 점점 내 감정을 숨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잘 넘어갔다.
사춘기가 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음 안에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점점 커지는데
딱히 표현할 데가 없었다.
말하면 안 된다고 배웠으니까.
말을 안 해서 칭찬 받았으니까.
그때부터 음악을 들으며 혼자 위로했다.
음악은 내 유일한 피난처였다.
이어폰을 꽂으면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열렸다.
노래 가삿말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줬다.
멜로디가 내 감정을 알아봐줬다.
클라이막스 부분에 가수가 울부짖듯 소리를 지르면 그 순간 희열이 느껴졌다.
나 대신 소리쳐주는 것 같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노래방을 갔다.
혼자서 고음을 질러봤는데 속이 뻥 - 뚫리는게 아닌가
카타르시스.
온몸에 전율이 흘렀고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신호였다.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건
일상에서는 그만큼 죽어있었다는 거니까.
말을 참고, 감정을 누르고, 조용히 버티는 게
내 삶의 기본값이 되어버렸던 거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고, 난 사무직으로 취업했다.
직장생활 2년차.
매일 출근길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이 생각을 매일 매일 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다들 이러고 살겠지?' 하며 버텼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이 말이 낯설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 감각,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이 하루를 건너뛰고 싶은 그 감각.
나는 그게 뭔지 안다.
그렇게 꾹 참고 5년을 버텼더니,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 했다.
소화가 안 됐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새벽에 자주 깼다.
늘 걱정이 많고 모든 게 불안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억울했다.
그리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지?’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지?’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28살 겨울에 우울증이 왔다.
말과 표정이 사라졌다.
출근 길에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숨이 턱 막히고 죽을 것처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날도 있었다.
행동도, 생각도, 기억력도 모든 기능이 느려졌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건,
내 안에 두 개의 자아가 있는 듯 몸과 마음이 분리된 느낌이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내가 너무 싫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몇 달간, 새벽 내내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수도 없이 찾아봤다.
근데 찾을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갔다.
그렇게 약 1년 반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가면을 쓴채 세상을 살아갔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음악심리상담사’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돕고 있다.
음악심리학, 음악치료, 심리치료, 상담학
여러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평생 억누른 게
감정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걸.
내가 음악심리상담사가 된 이유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롭고 힘든 감정이 아직도 올라온다.
그래서 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며
혼자 끙끙 앓고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
어딘가 존재할,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들한테 말해주고 싶다.
"이상한 게 아니야"
"약한 것도 아니야"
"그냥, 어떻게 해야되는지 아무도 안 알려줬던 거야"
그래서 이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음악을 통해
흔들렸던 내 정체성을 찾았고
다시 살아가야할 삶의 의미도 되찾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때문에
직장과 심리학 공부를 병행했다.
새벽에 일어나 심리학 공부를했고
퇴근하고 집에오면 피아노연습을 했다.
아침에 눈 뜨는 게 설레는 이 기분이
직장인이 된 이후 처음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니까
더이상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주체적으로 내가 끌어가는 삶을 살게되었다.
'아, 나도 이런 기분으로 인생을 살 수 있구나'
포기하고 싶은 날도 많았지만
이 생각을 하며 미래의 모습을 상상을 하면 다시 힘이 솟아났다.
'나는 반드시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찾아줄거야'
'과거의 나같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게 도와줄거야'
'잃어버린 목소리(내면의 소리)를 되찾아 주체적인 삶을 살게 할거야'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살다보니
정말 내 꿈과 가까워졌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사실,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말하면 안 된다고 배웠으니까
30년 넘게 참아온 거였다.
그걸 깨닫는 순간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꽁꽁 잠겨있던 내 마음의 자물쇠를 부숴준 노래가 있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던 내가
처음으로 "이게 나야" 라고 말할 수 있게 해준 노래.
오늘 소개할 노래는
이 노래는 숨기고 살던 사람이
드디어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을 담은 곡이다.
"I'm not scared to be seen I make no apologies, this is me"
(남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아. 난 사과 따위 하지 않아. 이게 나니까)
이 한 줄을 처음 들었을 때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내가 마음 속으로 수천 번 외치고 싶었던 말이었으니까.
이 노래가 자가치유가 되는 이유
우리는 오랫동안 나를 숨기며 산다.
가족, 친구, 회사,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이런 나약한 나를 보여주면 안 돼" 라고 배웠으니까.
근데 숨기는 게 몸 안에 쌓이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불면증,
소화 장애,
만성 불안.
이게 다 나를 억누른 결과다.
이 노래는 그 억눌린 사람한테
처음으로 이렇게 말해준다.
"괜찮아. 너대로 보여줘도 돼.
너의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워"
이 말이 닿는 순간
오래 닫혀있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면
비로소 내가 뭘 원하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 뜨는 게 설레는 삶.
남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 이 노래를 들어보자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에 뭔가 올라온다면
지금 어딘가에서 나를 숨기고 있다는 신호다.
스스로에게 딱 한 가지만 물어보자.
"지금 나는 누구한테 어떤 모습을 숨기고 있나?"
그 답이
지금 당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알려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도 내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행 중이다
근데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제는 억누르지 않는다.
감정이 올라오면 외면하지 않는다.
그 감정을, 그 감각을 따라간다.
음악이 내 마음 속 뭔가를 툭, 건드릴 때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 감각을 따라가면
내가 뭘 원하는지 보이기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당신도 그럴 수 있다.
나는 목소리를 찾는 데 30년이 걸렸다.
근데 당신은 나보다 훨씬 빨리 찾을 수 있다.
이제 안내해줄 사람이 있으니까.
다음 편부터는
음악으로 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눠보겠다.
구독하고 있으면 이 소식을 제일 먼저 알게 될 것이다.
구독해줘서 고맙습니다.
새벽녹턴 🌙
— 모두가 잠든 새벽, 비로소 들리는 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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