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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년간 성격 검사를 열심히 받았어요. MBTI, 에고그램, DISC, 태니지먼트 그리고 이제 이름도 기억 안 나는 타고난 기질 검사, 현재 우울한 상태 등에 대한 검사까지 기회가 되는 족족 참여했죠. 사람의 성격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해 특징을 제시하고 개발해야 하는 강점과 보완해야 하는 약점을 알려주는 검사를 받고 나면 나라는 인간이 성장해 나갈 방향성을 얻은 듯 해서 늘 기분이 좋았어요. 나에 대해 이해했으니 이제 행동만 하면 되겠다는 착각. 사실 눈에 보이는 모든 평화는 거대한 평화 두 글자 밑의 다양한 발버둥과 갈등, 충돌, 고민을 포함하고 있는 건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해하면 타인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단초가 되며, 나를 이해하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희로애락 앞에 메타인지를 갖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제가 받았던 성격 검사 중 그나마 제가 이해하고 있는 MBTI와 전문가들에게 설명을 들었던 DISC, 태니지먼트에 대해서 공유하려고 해요.
프로이트의 제자로도 유명한 심리학자 칼 융이 등장합니다. 그의 심리적 유형 이론이 MBTI로 이어졌거든요. 융(Jung, 1971)의 심리적 유형 이론은 인간이 받아들인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할 때 본인이 선호하는 방식에 모두 차이가 있다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는 심리적 유형을 태도와 기능으로 구분하였습니다.
태도는 정신의 방향성입니다. 외향적 태도는 생각, 사고 등이 주로 외부 세계를 향하고 나 자신 보다 외부의 대상에게 관심을 두기 때문에 외부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내향적 태도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나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다음으로 기능유형에서 판단기능은 합리적 기능으로 판단을 내릴 때 사고와 감정 중 어느 쪽을 즐겨 사용하는지를 구분합니다. 인식기능은 비합리적 기능으로 무언가를 인식하는 경우 감각과 직관 중 어느 쪽을 주로 사용하는지를 구분합니다. 이때 인간은 사고하고 판단함에 있어 한 카테고리에서 하나의 기능을 중점적으로 사용하며 한쪽이 강해지면 다른 쪽은 약해집니다. 예를 들어 논리적으로 고민하고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동시에 공감도 잘할 수는 없다고 보실 수 있습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개발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입니다. MBTI는 성격을 태도, 인식, 판단 기능에서 각자 선호하는 방식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외향/내향의 구분은 마음을 주로 쓰는 방향과 관심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내 생각이 주로 어디를 향해 가는가. 외향성이 강한 사람은 외부 세계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하기를 선호하고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편이 많고 타인에게 스스로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내향성이 강한 사람은 주로 자신의 내면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시간을 두어 글로 표현하기를 선호하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행동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깁니다.
감각/직관의 구분은 대상을 인식하는데 어떤 기능을 주로 사용하는가를 의미합니다. 감각형은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것을 중시해 일 처리가 철저하고 세심하게 관찰하며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편입니다. 직관형은 세상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육감을 활용하는 경향이 강해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래서 비유적인 묘사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사고/감정의 구분은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때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를 의미합니다. 사고형은 객관적인 사실(증명된 것, 수치화된 것 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분석적으로 판단하기를 즐기고 원칙, 규범, 공정성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편입니다. 논리적 사고를 기반으로 삼고자 하기 때문에 맞고 틀림에 대한 결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형은 관계, 상황적인 특성과 맥락을 고려해 판단하기를 선호합니다. 관계와 맥락에 집중하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식으로 정서적 측면에 집중하고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등에 관심을 둡니다.
판단/인식의 구분은 상황에 대처하는 데 판단과 인식 중 어느 쪽으로 더 선호하는가에 대한 경향성을 의미합니다. 판단형의 사람들은 빠르고 합리적이며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자 하기 때문에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조직적, 체계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식형의 사람들은 상황에 맞추어 활동하고 모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 호기심이 많고 계획의 유무와 별개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MBTI도 다른 성격 유형 검사처럼 각각의 요소보다는 각 요소들의 조합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 요소들을 조합한 숫자가 16개. 그리고 이 유형 조합 안에도 주기능, 부기능, 열등기능과 3차 기능이 있어요. 주기능은 가장 자주 사용되고 가장 선호되며 그래서 가장 강한 기능을 의합니다. 부기능은 이 주기능이 더욱 강해지도록 보완하는 기능입니다. 3차 기능은 부기능의 반대! 열등기능은 주기능의 반대에 위치하는 기능으로 주기능이 강할수록 약해지는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감정(F)이 주기능이라면 사고(T)가 열등기능이 되어 사고형의 특징인 정보 기반 논리적 사고 등이 약할 수 있어요.
더 자세한 내용은 MBTI 검사를 유료로 받아보면 쉽게, 심지어 모든 사항에 대하여 설명을 들으실 수 있어요. MBTI 검사는 고용노동부 심리상담 센터, 각 시에 있는 상담센터, 학교나 직장에 심리상담센터나 관련 지원센터가 있다면 그곳도 이용 가능하고 만약 유료로 해보고 싶으시다면 한국 MBTI 문화원을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상세 설명서를 받아보실 수도 있어요. 가격은 16,800원에서 32,800원 사이고 가격 차이는 일반, 심화, 어린이, 직무 및 적성용으로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만약 인간의 해설이 필요하다면 상담센터를 통해 검사하실 수 있어요. 가격은 5만 원부터 부가적인 검사, 상담료 등에 근거해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직무 관련 MBTI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면 백종화 님의 저서와 강연, 워크숍을 참고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이미 글이 너무 길어졌다는 것을. 다른 성격 검사에 대해서는 더 간단하게, 제 검사 및 워크숍 경험기를 담아 적어보겠습니다. 이렇게 앞으로 몇 주는 성격 검사로만 쫙쫙 쓰게 되겠네요. 참고로 저는 ENFP입니다. 평생 부정하고 싶었던 요소들, 저를 괴롭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한 결과라 너무 싫었지만, 해설도 듣고 전문가 이야기도 듣고 나니 저는 정말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어요. 제가 가진 약점이 제가 하는 일에 크리티컬한 부분이라 매일 혼나고 있지만 제가 가진 강점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좋은 방법을 찾고 시간을 쌓아나가야겠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인생은 역시 희로애락으로 가득가득합니다.
🌎_빼주세요
몸과 마음에 기운이 없어 여느 때보다 매식을 많이 한 한주였다. 지난주 식료품, 특히 신선야채를 사 왔음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채 새로 완성된 음식을 사 와서 먹기 일쑤. 그에 대한 좌절과 회한은 다음 기회에 써 내려가기로 하고, 이번 이야기는 음식을 사서 싸 들고 오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투쟁에 대한 것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나오는 경우는 매우 적고 대부분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파는 음식을 구매해 집으로 가져가서 먹곤 했다. 식기를 구비하지 않은 장소에서 먹는 경우를 기본으로 상정하고 있는 건지 대부분은 일회용 수저, 포크를 넣어주곤하는데 일단 나는 이것을 적극 거절한다. 배달의 민족 앱에서도 수저 포크 안 받기가 기본 설정으로 적용(2021년 6월부터)되고 있을 정도 아니겠나. 하지만 가끔 음식 준비 과정에 일회용 식사 도구의 자리와 순서가 완벽하게 예비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 실패한 적도 있다. 피자헛에서 위에 치즈가 잔뜩 올라간, 호일 그릇째로 그라탕처럼 구워져 나오는 오븐치즈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빨간 리본이 묶인 (피자 박스보다는 훨씬 작은) 종이상자를 열자 낱개 비닐 포장이 된 흰색 일회용 플라스틱 포크가 짠, 하고 들어있었다. 아, 여기서. 종이상자 자체가 호일 그릇 옆에 딱 포크 하나 놓을 여유공간을 둔 사이즈였다.
일회용 플라스틱 포크 하나가 대수겠냐 싶겠지만 나에겐 대수다. 혹시 노리밋의 지난 글들을 읽으셨다면 눈치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 지구라는 필자 보통 쩨쩨한 게 아니로군, 하고요. 양말 하나를 어떻게 골랐다느니 배달 짜장면은 나무젓가락 맛이 8할이라느니. 집에 안 쓰는 물건이 늘어난다? 닦아서 분리 배출해야 하는 쓰레기가 생긴다? 그것은 너무나… 너무나도 성가신 일이다. 나는 내 소유인데 내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존재한다는 걸 의식할 때 무지하게 짜증을 내는 인간이다. 물론 나 자신에게. 머리를 짧게 잘라서 머리 끈, 머리핀을 안 쓰는데 그게 계속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추억용품으로 분류해 고등학교 교표 배지나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받은 포켓몬 딱지와 함께 골판지 신발 상자에 수납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요즘 건강 상태 덕에 손을 못 대 난장판이 된 주거 상황에 힘입어 그 스트레스로 건강 상태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일회용 그릇에 담긴 음식이 비닐봉지에 싸여서 오토바이로 부르릉 배달 오고 그걸 다 먹고 나면 기름 묻은 플라스틱 그릇과 숟가락이 집에 생긴다고요? 그걸 그대로 쓰레기로 내놓으라고요? 아, 아. 괘로와.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집에 이미 있는 가벼운 밀폐용기를 가게에 들고 가서 여기에 포장해 주세요, 하는 전법을 구사하고 있다. 위에 말한 오븐스파게티처럼 메뉴에 따라, 혹은 집에서 빈 그릇을 들고 음식을 사러 나오는 상황이 아니라 예정에 없이 음식을 사서 들어가는 상황일 경우에는 불가하지만 가능한 한 그렇게 하고 있다. 이미 집에 있던 그릇이니까 설거지해서 다시 쓰는 건 자연스럽다. 그것이 설령 본죽 테이크아웃 그릇이라도... 보통 본죽 포장 용기 큰 놈은 음식의 양이 뚜껑을 가볍게 닫을 정도일 경우 부피 800ml 정도를 담는다. 저번에 궁금해서 계량컵으로 한 번 재봤는데 물 900ml를 채울 수 있다. 아주 가볍기 때문에 들고 나가기도 좋고 혹시 파손되어도 크게 아깝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많이 말한 대로 에코프렌들리-지속 가능한 소비-열혈 재사용을 실천하겠다고 쓰던 플라스틱 반찬통을 모두 버리고 유리용기 세트를 새로 구비하는 무시무시한 짓보다(솔직히 이건 친환경 실천이라기보단 FLEX다.) 어쩌다 얻은 본죽 일회용 그릇에 음식 100번 담는 게 낫다고.
그리고 또 하나, 본죽 테이크아웃 하면 또 무엇이 생각나나. 당연히 장조림이지. 본죽 필수요소, 장조림 배추김치 생선젓갈같은잘게다져진빨간거(지금 쓰면서 알아보니 황태초무침이라고 한다) 무동치미. 사실 나는 이런 것들도 많이 거절한다. 피자 살 때 오이피클, 통닭 살 때 무절임, 떡볶이에 단무지. 아, 본죽을 예로 든 건 잘못이었다. 죽 사먹을 때 장조림 배추김치 황태무침은 다 챙겨 먹고 싶다. 양이 적어서 그런가? 나는 무절임이나 단무지는 양이 많아 거의 남기곤 한다. 포장 음식은 물론 식당에서 밥 먹을 때도 곁들이 찬을 많이 거절한다. 풋고추와 쌈장 먹지 않아요, 주메뉴가 이미 있는데 반찬이 너무 많아요, 국도 짠데 김치 3종류나 필요 없어요. 사실 혼자 먹을 땐 냉면에 삶은 달걀도 빼달라고 한다. 나는 계란 맛이 영 유쾌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오믈렛, 반숙 맛달걀, 일본 챠완무시풍 계란찜 정도가 아니면 입에 넣고 싶지 않은 정도라. 같이 먹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냉면의 삶은 달걀 반쪽을 넘겨주는 세상에 다시 없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없으면 그냥 음식물쓰레기 25g 추가발생이다. (삶은 달걀 1개의 무게가 평균 50g 정도라고 한다. 이것도 궁금해서 지금 찾아봤다.) 안 쓰는 물건이 수중에 있으면 치를 떨고 과잉소비 문화를 못 견뎌 하는 인간이 과연 음식물쓰레기는 참을 수 있을까요?
보통 이렇게 먹기 전에 밑반찬을 일부, 혹은 전부 거절하면 가게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 쉽다. 기본 제공되는 포장 용기, 식사 도구를 미리 거절했을 때도 그렇다. 파이 가게에선 100원을 깎아주었고 수프 집에선 음식을 정량보다 약간 많이 줬다. 용기나 음식 준비도 전부 비용이니까, 자영업자 입장에서 나는 괜찮은 손님일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이 많이 팔리든 비용이 덜 나가든 본인 수입과는 상관이 없는, 월급 혹은 시급을 받는 직원 입장은 어떨까.
사실 나는 예전에 본사에 돈 내고 사와야 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값이 아깝다고 손님이 매장에 남기고 간 빨대는 설거지해서 다른 손님에게 몰래 다시 내주라는 미친 지시를 내리는 대리점 사장 밑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팬데믹 사태와 무관한,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제한은 커녕 기후 위기라는 말조차 대중적이지 않던, 빨대 내부 세척용 작은 사이즈 솔이란 게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런 옛 시절의 일이긴 한데. 나는 그냥 나의 위생 관념과 양심으로 사장과 선배 직원 몰래 매번 새 빨대를 뜯어서 손님에게 내줬다. 손님이 빨대를 매장에 두고갈 거라면 아예 누가 쓴 빨대라는 게 티가 나서 버릴 수 있게 입에 문 쪽을 다 씹어놓으라고 속으로 빌기도 했다. 가게에서 내가 받은 일회용 빨대가 남이 쓰고버린 빨대를 겉만 씻어 새것인 척 다시 내준 거라니 코로나19는 물론 신종플루도 유행하기 이전 시절의 일이라도 끔찍하지 않은가? 사업주라는 사람들은 비용을 줄이겠답시고 직업윤리나 상식을 거스르는 이상한 업무를 직원에게 지시하곤 하는데… 인간의 주의력과 양심이라는 자원을 깎아 먹어 장기적으로 더 혹독한 '비용'을 치르는 짓이라는 걸 알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해줬으면 한다. 근데 그게 안 되니까 저런 지시를 하는 거겠지.
지금 설명하려던 것은 나의 저 슬픈 기억과 방향성은 전혀 다르지만 결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업주는 좋아할지 몰라도 그거 해준다고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닌 입장에서는, 하던 대로 하던 일과 다른 것을 굳이 요구하는 손님은 진상이 되는 거 아냐?
괜찮습니다, 일회용품 안 쓸 거예요, 나는 무시무시한 에코투사다 활동의 성가신 지점은 사실 여기라고 생각한다. 대개 (내게 실패 경험을 제공한 피자헛처럼) 프랜차이즈라면 정해진 매뉴얼이 존재하고, 그렇지 않은 가게라도 손님을 받으면 진행하는 고정된 업무 진행 과정은 있게 마련이다. 예전에 아로마티카에서 인터넷으로 샴푸 등등을 사고 받은 사은품 중에 신용카드에 붙이는 메시지 스티커가 있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 "빨대 주지 마세요" "비닐봉투 주지 마세요" "영수증은 필요 없습니다" 나는 이 스티커를 아직 쓰지는 않았다. 빨대 주지 말라는 말은 음료를 파는 가게에 통하는 말이겠는데… 이 스티커를 받은 당시의 나는 매일 일과처럼 카페에 가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비닐봉투 주지 말라는 말은 비닐봉투를 추가비용 없이 그냥 주는 재래시장이나 동네 가게에서 자주 할 말인데 결제할 때 이걸 붙인 카드를 내민다고 해서 계산해 주던 직원이 글을 읽고 비닐봉투를 안 줄 거라는 기대는 내겐 없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어디서든 비닐봉투를 거절해 왔는데 보통 이런 가게에서는 내가 "비닐봉지 안 주셔도 돼요."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직원은 내가 고른 상품의 가격을 말하며 바로 비닐봉투 더미에 손을 대 한 장을 펼치는 중이다. 20년 이상 쌓인 경험이니 믿어도 좋다. 물건 주면서 말해도 계산하느라 못 듣고 나중에 한 번 더 말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알아들어줄 때까지 그냥 말해야 한다. 비닐봉지 안 주셔도 돼요. (또 비닐봉투 주지 마세요 이러면 젊은 여자가 감히 명령조로 말한다고 화내는 사람도 있다! 안 주셔도 돼요, 괜찮습니다, 정도의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것도 20년 이상 쌓은 경험이다 xxx들!)
하지만 매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좀 번거롭다. 왜 신용카드 스티커까지 나왔겠는가. 말하는 입장도 성가시니까 그렇겠지. 매번 이렇게 말하는 게 성가시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모든 일이 남을 귀찮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혹은 걱정을 품기도 쉬우리란 생각이 든다. 원래 배려심에서 시작한 행동인걸. 그런데 그 때문에 오히려 남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나 싶다면, 그 또한 배려심. 그 일이 원래 그렇게 하는 일이 아닌데, 이렇게 해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일인데, 그건 모른 채로 혹은 무시한 채로 나한테는 다르게 해달라고 요구하는=손놈이 되는 게 아닌가. 나도 이런 생각을 자주는 아니지만 몇 번은 떠올렸다. 고민까지는 솔직히 안 했다. 나는 내가 일회용품 안 쓰고 쓰레기 덜 만드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요즘 들어 생각의 관점이 조금 바뀐 부분이 있다.
가게에서 일하는 건 사람들이다. 그 사람이 업주든 알바든 간에, 오로지 그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일을 할 때 으레 하던 대로 쭉쭉 쳐내며 일회용품을 오지게 퍼트릴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론 그 사람 역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 일회용품을 덜 써야겠다는 문제의식을 품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비록 알바지만 손님이 안 먹은 우리 가게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손님으로 가서 마주하는 가게 사람이 나의 이거 빼달라 저거 해달라는 요구를 기꺼워한다면, 그건 유형의 비용 문제에 달린 것만이 아닐 거라는 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별 큰 이유 없이 비닐봉지 안 받는 나처럼 별 대단한 생각 없이 빼달라는 거 빼주는 걸 수도 있겠고, 나같은 손님이 보일수록 이대로 일회용품을 마구 풀어내는 시스템은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고 결국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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