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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설 이야기
설 연휴에 가장 기대하는 건 무엇인가요?
전 세계적으로 모든 명절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정하고 있어요. 명절 전날 이른 퇴근을 시켜주는 건 가족 모임을 준비하거나 모임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한 회사의 배려입니다. 설 선물은 다같이 먹을 음식을 만들 요리 재료 혹은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식음료 등이 대부분이고요. 오래된 방향성처럼 가족과 만나는 일을 고대하는 사람도 분명 많겠지만, 저는 2일 이상의 휴일이라는 부분만 보며 달려 왔답니다.
설과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그다지 할 말이 없어요. 가족에게 발생한 미스터리를 쫓다 보면 늘 그렇듯 가족 구성원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는 건 쥐뿔도 없죠. 외부인에게 가족의 흠을 잡게 되는 경우야 늘 발생하지만 굳이 앞장서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꺼내는 건 사실 모르는 주제에 대해 가볍게 말을 떠드는 셈입니다.
상대와 나 사이에 쌓인 앙금이 내 눈을 덮고 우리는 서로를 관찰하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관계는 상호적으로 형성되고 성장하며 변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와 연결되기를 바라며 서로에게 발길질을 하고 있는 가족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안다고, 그래서 못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번 설 연휴 첫날에는 친구를 만났어요. 발렌타인 팝업스토어를 갔는데 예쁘지만 정말 엉성하기 그지 없었던 팝업이었어요. 팝업은 아쉬웠지만 친구는 신기할 정도로 늘 잘 듣고 질문하는 사람이라 저는 대화를 하며 올해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 지 스스로 정리하게 되었어요. 올해는 꾸준히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템포를 조절하기, 나의 방향성과 목표에 초점을 맞추어 외부의 반응과 요인에 휩쓸리지 말기, 나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기.
친구를 만나기 전날까지도 저는 머리가 복잡했거든요. 1월 2일부터 죄다 망쳤고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너무 끔찍해서 돌이킬 수 없는 것만 같았어요.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웃으며 버티는 게 맞는지 그게 나의 최선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던 시간이었죠. 친구는 가타부타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대신 질문을 계속 던졌을 뿐이에요. 제가 직장 생활을 늦게 시작한 만큼 친구는 한참 선배인데도 말이에요.
오히려 설이라, 이 친구와의 만남이 저에게 주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 설, 가족과의 관계에 치이고 있을 때 그 친구와 보낸 시간을 떠올릴 수 있도록 연이 닿은 거 아닐까요. 결국 가족도 나와 전혀 다른 개체이니까요.
성공적인 궁그미가 되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오늘 적당히 보냈던 거 같아요.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지 않는 설이었어요. 덕담하고 기원하는 말을 뱉을 지 언정 가족의 흠을 잡고 비난하는데 합류하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다만 바라건대, 내년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기를. 그게 어렵다면 내년에는 다른 집에 살아 분리된 개체가 되기를 바라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바라는 일이 수월히 이루어지길, 주변 분들과 모두 함께 건강한 검정 토끼의 해 보내시기를 바라요.
🌎_무제
어릴 때 내내 살았던 집은 산 근처였다. 언덕 정도나 될까 말까한 높이였지만 근처에 드문 녹지였고 약수터가 있어서 운동 삼아 물뜨러 갔다가 한바퀴 돌고 오는 사람들이 그때만 해도 많았다. 도로에 면한 비탈에는 질긴 개나리 관목이 무리지어 있고 산 전체에 아까시 나무가 가득하다. 5월쯤 되면 아카시아 꽃이 피었다. 엄지손가락으로 한번 우묵하게 누른 것처럼 동그랗게 말린 모양의 작고 누르스름한 흰꽃들이 포도처럼 한데 모여 나무에 조랑조랑 달린다. 바람에 흔들릴 때 멀리서 보면 앞은 부드러운 진녹색이고 뒷면은 회녹색인 잎사귀 색과 섞여서 회색으로 반짝인다. 아마 빛이 그 난리를 부리는 동안 배어나왔을 꽃향기가 도로 하나와 건물 서너 줄 사이를 거뜬히 뚫고 방향만 산쪽을 향해 있을 뿐인 내 방 창문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바람이라고 느끼지도 못할 만큼 부드럽게 들어온 공기 속에 달콤하고 싱그러운 꽃 냄새가 느껴질 때 나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눈조차 뜨지도 않고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기뻐했었다. 어쨌든 나도 비디오 세대의 아이였으니까. 풀은 도로와 전봇대 사이 틈새에 자라는 것이고 주워든 돌멩이는 열에 아홉은 곧 손안에서 부스러지는 시멘트 조각이고 나무는 남의 집 담 안에 있는 나무였던 골목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생생한 자극이 색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철이 되면 재채기를 연이어 열번 스무번씩 하고 코가 막혀 입을 벌리고 숨을 쉬면서도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이라는 건 까맣게 모르고 아카시아 꽃 필 때를 기뻐했다.
바람을 마주하는 것이 괴로웠다. 이 칼날 같은 마른 공기가 아득할 정도로 들이쉬는 숨마다 물기가 배어들고 포근해질 시기는 금세 다가오겠지만, 지금 이 얼어붙은 바람을 맞는 게 너무 괴롭다. 나는 거의 말라비틀어지고 있다. 몸도 정신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고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으니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고 사라진 사람을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 계절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꽃 피는 날은 기대한다. 나는 가능한 일만을 바랄 수 있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 이달의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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