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9, 가족의 나, 나와 가족

🐴,💃🏻🐆,👌,🌎::

2022.06.26 | 조회 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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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밋

동갑내기 30대의 좌충우돌 각자도생 일주일 취재기

💃🏻🐆 멋장이미식가 Kelly, 👌 그럴 수 있다 ㅇㅋ, 🌎 미라클 지구,

🤎 그리고당신, 구독자


👌_책 대여

엄마랑 가끔 서점에 가서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온다.

이북리더기도 있는데 여전히 엄마는 책장을 넘기는 걸 좋아한다.

엄마가 찾는 코너는 주로 문학 코너다. 그중에서도 수필.

그날도 엄마랑 도서관의 수필이 가득 꽂힌 책장 앞을 서성이는데, 수필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에 눈에 띄어서 내용을 살펴보니, 남편의 시각에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와의 에피소드를 사랑스럽게 수록해 놓은 수필집이었다.

책장 앞에 서서, 아무 데나 펼친 쪽의 에피소드를 대충 눈으로 훑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옆에 서서 빌려 갈 책을 고르는 엄마를 쓱 돌아봤다.

‘지금도 이런 책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아플까, 엄마는.’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평소의 엄마를 봤을 때 이제는 완전히 무덤덤해지고도 남았을 거라 여기지만.

그래도 뭔가 엄마가 이 책을 고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골랐어?”

라고 묻기에, “아니.”라고 대답하고서 정리되어야 할 책을 놓아두는 트롤리 위에 들고 있던 수필집을 내려놨다.

그 책 대신 고른 만화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_다시, 나.

동물은 다 좋아하지만 특히 발이 큰 개가 무척 좋다. 발이 큰 개가 유독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이고 그래서 내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경험에서 나오는 편견이다. 무지개 다리를 건넌 첫째는 몸에 비해 발이 큰 개였다. 새하얀 털이 빳빳했던 어린 시절이 아니면 기나긴 병치레에 혼란스러워 하던 모습, 몸이 딱딱했던 마지막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난다. 화장터에 다녀온 다음날 봤던 붉은 튤립과 너무 맑았던 하늘도 떠오른다. 우리는 조용히 숨을 거둔 강아지에게, 늙어 떠났어도 영원히 강아지인 우리 강아지에 대해 말할 때면 여전히 많이 사랑해서 늘 고맙고 미안하다고 느낀다. 지금도 서투르고 무지하지만 첫째는 처음이라는 이유로 더했다. 우리는 무지하고 뻔뻔했다. 더 많이 함께 하고 더 많이 살펴야만 했는데. 이런 생각과 동시에 6 킬로그램 미만의 말티즈 믹스가 오래 오래 살았던 건 발이 컸기 때문이라고 대화를 나눈다. 발이 큰 개 이야기는 마치 허벅지가 두껍고 탄탄한 인간의 이야기와 같다. 단단하고 건강한 몸에서 나오는 여유.

그동안 레터를 쓰면서 운동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분으로는 요가가 100분의 90, 그 외가 10. 2021년에서 22년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나는 항상 근육이 단단한 허벅지와 복근을 꿈꿔왔다. 문자 그대로 건강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도 강하게 바라는 건 대부분의 경우 태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패시브 스킬로 만드는 미래다. 현재 상사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스킬 활용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은 타인의 실책과 실수에 관대하고 본인의 손해를 감수하며 거듭 기회를 준다. 상대가 하던 일이 그에게 맞지 않는 거라고 사료된다면 상식적으로 가정된 범주를 넘어 다른 해결 방식을 제시한다. 안 되는 이유 보다 해결책을 찾는데 집중하고 실행한 뒤 개선점을 찾아 다시 시도한다. 그래도 안 되는 이유가 명확하다면 빠르게 정리하고 다른 길을 찾는다. ‘은 친근하지만 업무에 있어 명확하고 적극적이다. 안 되는 이유를 마주쳤을 때 직접 다시 확인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다. 본인이 정답이라고 단정짓지 않아 타인의 의견을 묻고 듣는데 거침이 없으며 더 나은 해결책으로 함께 도달한다. 사람이 아닌 문제와 현재에 집중한다. ‘은 해야 하는 일과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함으로써 사람과 문제를 구분한다. 우리가 하나의 조직으로 모였을 때 갑자기 그 조직이 그 사람의 인생이나 정체성 그 자체가 되는 게 아니니까. 그 조직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내가 스스로 정하는 부분 반, 조직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 반이다.

하지만 정작 발이 커지고 싶은 개인 나는 정신이 없다. 초조함, 불안함 속에서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한데 나는 좀, 자연인이 되고 싶은 기분이다. 타인의 아주 사소한 행동에도 마음이 쉽게 틀어진다는 건 내게 한줌의 여유조차 사치인 상황이라는 신호다. 타인에게 100분의 99 상황에서 감사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1의 상황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건 이미 레드 플래그다. 내가 발이 클 때까지 최대한 인간과 접점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다른 강아지들처럼 치고 박으며 무럭무럭 크는 그런 개가 되려면 결국 짖고 물고 부딪혀야만 하는 걸까. ‘’, ’’, ’도 나 같은 시기를 지났던 경험 때문에 나 같은 종자를 견딜 수 있게 된 걸까.

첫째는 떠나기 1년쯤 전부터 직선으로 걷지 못 했다. 제 꼬리와 싸우는 애기 동물처럼 끝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방향성 없이 둥글게 둥글게, 홀로.


🌎_양말의 문제

감염병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이후 출근을 안하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라고는 못하겠지만 꽤나 선명하게 닿아왔던 것은 양말 빨래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원래도 외출을 잘 안하는 편이었을텐데 출근마저 안하니 하루종일 양말을 신고있지 않게 된 것이다. 원래도 똑같이 생긴 민무늬 양말만 여러 개 사서 돌려신던 편이라 서랍 속 양말들의 들고나는 자리가 티가 나진 않았지만 아예 출입을 안하면 그건 또 별개. 또 다른 편에서 보자면 똑같이 생긴 민무늬 양말만 여러 개 사서 돌려신는다는 건 질 좋은 양말을 한 종 잘 선택해 한 상점에서 이루어지는 한 번의 구매로 여러 켤레 마련한다는 거다. 예전에 노리밋에서 왼손가위 사는 얘기를 할 때 선택지가 적어서 열심히 골라야하고 또 비싼 걸 사야하는 고통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양말 하나 사는데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는 걸 보면 그냥 내가 물건 살 때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고 혼자 피곤해지는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여기서 함께 사는 사람,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얹혀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나의 아빠 엄마인데 최대한 짧게 설명하자면, 아빠와 나와 엄마의 운동화 사이즈는 285mm, 255mm, 235mm이다. 서로 사이즈 차이가 확실하기 때문에 같이 신는 양말은 없다. 아니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저번 주, 아빠가 내일 또 신어야 한다고 빨래통에 안넣고 안방 구석에 모아둔 양말이 내 출근용(이었던) 검은 민무늬 양말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난 화가 났다.

내가 당장 외출해야하는데 꼭 필요해서 찾고있던 양말이라 기가 막혔던 건 전혀 아니다. 그거랑 똑같은 양말이 두 켤레 더 있다. 그거 말고도 양말 많다. 저건 내 물건인데 가족이 그걸 모르고 함부로 쓰네? 하는 단순한 짜증도 약간 있었긴 한데 하루 종일, 일하면서 8시간 이상 신고 있었던 양말을 다른 편한 양말이 없다는 이유로 내일도 신어야 한다고 꼬불쳐놓고 있음 이 문장의 모든 것이 문제.

아빠는 몇 년 전부터 다리가 붓는 문제 때문에 발목이 조이지 않는 양말을 찾아헤매고 있다. 거기에 자가면역성(크게 곤란한 병은 아니되 자주 도지고 생활 속의 관리가 필요한 난치성 질환이라는 뜻) 피부염 때문에 피부에 쓸데없는 자극을 주거나 통풍이 잘 안되는 소재도 아웃. 본인이 그런 체질인데 양말을 빨래도 안하고 하루 더 신는다니 질색할만하지 않나? 게다가 아빠가 이번에 본인 것인 줄 알고 신은 내 검은 양말은 작년에 똑같은 걸 아빠 몫으로도 같이 사왔는데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과 똑 같은 양말이었다. 장목, 40수 면으로 짜인, 무늬 없는, 무압박, 남성 정장 양말. 내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이되 230~250사이즈에게 권하는 보통 여성용 양말보다는 훨씬 커서 내 발에 약간 헐렁하고, 여름에도 덥지 않게 재질은 얇고, 그러면서 튼튼해서 오래신어도 단정해야한다는 내 기준을 만족시키는 양말을 골라골라 사면서 이건 다리가 부어서 고생하는 아빠가 신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내 건 검은색, 아빠 건 네이비색으로 샀던 물건이다. 하지만 작년에 그 네이비색 새 양말을 찔러줬을 때 아빠는 단번에 이것도 발목이 빡빡해서 신기 불편하다고 했고, 나는 말쑥한 새 양말의 끝단처리된 양말목 안쪽 바느질을 다 뜯어 돌돌이 양말로 만들어서 다시 내밀었다. 근데 그때는 그래놓고 이제와서 똑같은 양말을, 목도 안뜯은 채인 내 몫의 검은 양말을 가져가서 좋다고 신어? 본인 생각해서 사오고, 불편하다고 했을 때 고쳐서 다시 주기까지 했는데, 그때 외면했던 거랑 똑같은 양말을 이제와서 편하다고, 또 그것만 신고싶다는 이유로 지저분한 양말을 내일 다시 신으려고 방구석에(이후 구간 반복.)

나는 평소 화를 잘 안내는 편이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근거와 사례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아무튼 감정이 상했을 때 님이 지금 이러이러이러한 걸 해놓고 나한테 저러저러하라고 하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 님이 잘못하지 않았냐?’는 식으로 조목조목 말로 따지는 스타일이다. 다만 이 말하기 와중에 상태는 내가 화났다는 것을 다 알게 되며 본인 나름대로 심정적인 압박도 느끼는 것 같다. 이번에 아빠한테 양말 얘기를 했을 때도 이랬던 것 같다. 정리하자고 아빠 앞에서 아빠 양말 서랍을 다 터뜨려놓고 버릴 건 버리자고 하면서 윗 문단에 구구절절 써놓은 작년부터의 정황을 짧게 말하니 아빠가 의외로 순순히 알았어. 잘못했어.”라고 해주는데 웃기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아무튼 똑같은 그놈, 네이비색 양말을 추가주문했다.


✒ 이달의 편집자 💃🏻🐆

세 명이서 레터를 쓰다보면 신기하게도 한 주차에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요. 이번주에는 가족과의 관계를 각기 다른 소재와 방식으로 하고 있어서 신기합니다. 우리의 매일 속에는 이렇게 신기한 일들이 조금씩 숨어 있는 거겠죠. 이번 주도 안녕히, 다음주에 만나요.

 

노리밋에서는 두 명이 일주일에 한 번 한 주를 살며 경험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님, 다음 주에도 같이 놀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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