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4, 달력을 보는 방법

💃🏻🐆,🌎::입동,알림

2022.11.12 | 조회 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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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밋

동갑내기 30대의 좌충우돌 각자도생 일주일 취재기

💃🏻🐆 멋장이미식가 Kelly, 🌎 미라클 지구,

🤎 그리고 당신, 구독자


💃🏻🐆_하지만 필요와 현실은 다르니까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의 개체수 만큼 점술이 존재하는 것 같다. 24절기 중 하나인 입동에는 무뿌리점, 날씨점, 보리점 등을 묶어 “입동을 즈음하여 점치는 풍속이 여러 지역에 전해”지고 있고 이를 “입동보기”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입동 [立冬] (한국세시풍속사전)) 입동보기 중 서울 촌사람이 칠 수 있는 점은 날씨점 정도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겨울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하고, 전남 지역에서는 입동 때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추위를 가늠하기도 한다. 대개 전국적으로 입동에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추울 것이라고 믿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입동 [立冬] (한국세시풍속사전))

날씨점을 믿어본다면, 이번 겨울은 따뜻하고, 작년처럼 미세먼지가 화려할 예정이다. 그래도 사무실은 늘 활동하기 좋을 정도로 따뜻하고 공기가 맑으며 청결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히터를 알아보고 있다. 라디에이터가 작동하니 그걸로 난방을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들어왔더니 라디에이터는 이미 무덤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난방기를 여러 개 구매해서 깔아두기에는 사용 가능한 전력이 부족했다. 이제 다른 방안을 구상해 답을 찾고 있다. 주말이 낀 덕에 잠시 중지. 어이도 없지만 정말 사사건건 지식산업센터가 그리운 매일입니다. 인간 개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게 맡겨주세요.

그 와중에 독립도 고민하고 있다. 겨울이 따뜻하다는 날씨점 결과 덕인지 몰라도 계기도 용기도 났을 뿐 아니라 예산에 맞는 집이 나타났다. 평생 한 집에서 하숙을 치며 살았기 때문에 집 볼 줄 몰라 친구들에게 물어보며 부동산 중개인과 약속을 잡았다. 약속은 잡았지만 이 집이 바로 적당한 집일 거라는 생각도 기대도 없어서 따뜻한 겨울 날씨에 감사할 따름. 만약 적합한 집을 금방 만난다면 냉장고든 세탁기든 다 사야 하니 그것도 날씨에 감사해야 한다.

입동은 겨울의 시작이다. 내가 열매나 나무나 동면하는 생물이라면 더 선명하게 그 기준이나 선을 구분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인간이라 잘 모른다. 작년에는 분명 가을과 겨울의 바람이 달랐는데 아직 바람은 가을바람이다. 겨울바람은 조금 더 날카롭게 피부를 베어내는 듯한 감각을 남긴다. 아니면 이번에는 바람이나 날씨가 아니라 전반적인 세계의 변화, 시장의 변화로 오기로 한 걸까. 다른 방식의 겨울이 성큼 시작되는 바람에 나는 조금 더 불안하고 그래서 조금 더 따뜻한 날씨에 자주 감사한다.

겨울은 이렇게 사람에게 매사 조금씩 감사하는 마음을 조용히 기르도록 만든다..

 


🌎_반갑지 않은 '기념일' 이야기

노리밋의 창시자(!)이며 함께하는 필진이자 내 신뢰하는 친구인 Kelly님에게 몇년에 한 번 꼴로 듣던 말이 있는데, ‘어떻게 머리를 그렇게 기르냐’는 것이다. 처음 만났던 시절 이후 나는 Kelly님이 타고난 머릿결이 아름답다는 것을 여러 차례 전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가능케하는 것은 아무래도 머리카락을 길게 오래 기르기 힘들게 하는 섬세한 성질들인듯 싶다. 아무튼 그 물음에 내가 대꾸하는 말은 이렇다. 머리는 그냥 살고 있으면 저절로 길어진다. 멍하니 날짜를 보내다보면 손톱이나 발톱이 길게 자라듯이.

이렇게 나날을 헤아리지 않고 흘려보내는 나라는 사람에게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자신의 생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런말이 있지 않은가. 난산한 엄마들이 매해 자식들 생일 무렵이 되면 날짜 맞춰 앓아눕는다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도 주인공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여행이 끝나 고향에 돌아온 후에도 나즈굴의 칼에 찔렸던 날과 괴물거미 실롭의 가시에 찔렸던 날이 돌아오면 매해 고통을 겪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반지의 제왕]의 작가 J. R. R. 톨킨은 그 자신이 세계대전 참전 경력이 있기도 하고 현대전 병사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묘사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하나라고도 하니.

나에게게는 매해 수능 시험 전 무렵이 그런 시기다. 고등학교 3학년, 만 17세였던 나는 그 해 10월 무렵의 기억이 영 확실하지 않다. 연필로 눌러쓴 글씨를 지우개로 열심히 지운 것 마냥 흐려진 기억은 종이 위에 우묵한 자국을 열심히 살피고 앞뒤로 쓰인 글을 흝어가며 짐작해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로 묘연하다. 믿고 있던 가족에게 성추행당하고 책임이 있는 보호자는 피해자인 내 탓을 하며 발을 뺐다. 주변의 모든 환경이 우선 눈앞에 있는 수능이나 잘 보라는 압박을 주며 나를 마취시켰다. 그전까진 흔한 생리통도 하나 없던 나는 생전 처음 겪는 실혈량에 아연실색했고 매일 집에 가자마자 방문을 잠그고 잠들어 12시간, 14시간을 자고 새벽 5시에 눈을 뜨면서도 그것이 우울과 무력감 때문인 줄을 모른 채 그냥 내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며 자책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어떤 증거라도 될까 싶어 남겨운 고3 때의 스케줄러는 범죄피해를 인식한 후 그 달이 통째로 텅 비어있다. 뭘 기록하고 남겨둘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 생기고 세월에 따라 깊어져온 부모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정말로 나 자신의 생일도 좋아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서로에게 괜한 일이 벌어진 계기 같으니까.

올해는 진짜로, 진짜정말로 다 잊고 있었는데, 뜻밖에 몸이 알려줬다. 제때제때 찾아오면 오히려 건강의 시금석이 되어줘서 별로 귀찮게 생각하지도 않는 나의 월경, 그러나 평소같지 않은 실혈량, 통증. 문득 떠오르는 날짜. 아, 젠장.

때론 챙기고 싶지않은 것도 무언가가 계시처럼 때 맞추어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더 발버둥치는 거다. 3월에 고로쇠수액을 사마시고 10월에 시장에서 홍옥사과를 사냥하고 때가 되면 친구들 생일선물을 고민해서 챙기고. 나로 살고 지금을 살기 위해, 버둥버둥.


✒ 이달의 편집자 🌎

Small moves make big changes,
우리는 지나가는 날짜와 모든 명절과 미신을 우리 이야깃거리에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해 내 기억 속에 붙잡기 위해서요. 이 작은 움직임이 구독자에게 닿았으면 좋겠네요.

노리밋에서는 두 명이 일주일에 한 번 한 주를 살며 경험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님, 다음 주에도 같이 놀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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