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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라레터 16호] 할리 데이비슨: 120년의 역사 속에서 빛나는 전통과 혁신

팬들과의 깊은 유대감으로 살아남은 모터사이클의 아이콘

2024.09.10 | 조회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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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라 팀원이 대화하며 나온 마케팅 관련 "왜"라는 질문을 데이터와 사례로 풀어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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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시 러닝화를 신고 도로로 나서고 싶어할 텐데,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브랜드가 있어. 오늘은 그 중에서도 '할리 데이비슨'을 소개할게.

무려 120년의 역사를 가진 이 브랜드는 단순한 모터사이클 제작 회사를 넘어, 팬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왔어.

할리 데이비슨이 이렇게 많은 찐팬을 거느리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 목차 1️⃣ 할리 데이비슨의 시작 2️⃣ 좋은 시기가 오면 안 좋은 시기도 온다 3️⃣ 이들을 구원한 로널드 레이건의 보호조치 4️⃣ 문화적 성장과 고객 전략으로 재기한 할리 데이비슨

1️⃣ 할리 데이비슨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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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데이비슨은 1903년에 설립됐어. 1903년에는 포드 자동차의 첫 판매와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성공이 알려지던 때이기도 해. (우리나라는 대한제국이었을 때야. 1월 8일 제네바 협약에 가입했지.)

대표는 윌리엄 할리와 아서 데이비슨이었고, 이들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할리 데이비슨이 되었어. 이들은 첫 제품으로 ‘시리얼 넘버 1’을 만들었는데, 설계도는 이미 1901년도에 완성했다고 해. 창업주와 함께 언급되는 또 다른 인물도 초창기 할리에서는 중요한데, 월터 데이비슨이라고 아서 데이비슨의 형이었어.

창업주를 포함한 초창기 멤버들은 헛간에서 그들의 첫 생산 모델을 제작했어.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어도 빠르게 성장하며 4평에서의 공간이 67평까지 커지기도 했어. 여기서 약 50대의 모터사이클을 생산했지. 1907년의 일이야.

윌리엄 할리는 엔지니어로서의 역할을, 아서 데이비슨은 영업의 역할을 맡았는데, 특히 아서 데이비슨의 영향이 컸어. 추가로 영입했던 데이비슨 형제들도 각각의 역할을 뚜렷하게 하여 시스템부터 시작해서 재무나 엔지니어로서 필요한 부분까지 각자 일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며 신뢰로 일을 했어.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는 것이 창업주들이 데이비슨 형제에게 사장과 부사장직을 줬거든. 이후 이들의 승승장구가 시작됐어.

2️⃣ 좋은 시기가 오면 안 좋은 시기도 온다

1900년대 초반은 자동차 산업의 부흥기였다고 해. 우리가 알고 있는 브랜드 중 포드도 이때 나왔지.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할리도 ‘V 엔진’을 개발했어. 특징은 소음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제품이었어. 속도보다 완성도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었지.

모터사이클의 판매 수익은 주로 레이스 경기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 주말에 레이스 경기를 하고 유명해진 제품들이 판매가 됐거든. 1914년 할리는 레이스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참여했어. 좋은 성적을 거두는 팀의 경기력 때문에 ‘레킹 크루(기존 강자를 깨부수는 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도 해.

1차 세계 대전에 군용으로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높아진 판매량은 종전 후 스페인 독감의 유행과 여러 경제적 이슈 때문에 다시 낮아지기도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개발과 추가로 일어난 2차 세계 대전에서의 납품 덕에 살아나게 됐지. 승전국의 의미와 더불어 군인들이 타고 다니는 모습, A급이 아닌 C급 모델도 보급하면서 승승장구했었어.

하지만 이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어. 군인들이 모터사이클을 개조하며 달렸고 커스텀하기 시작했거든. 뿐만 아니라 낮은 품질이라는 이슈도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지. 가장 큰 건 일본의 모터사이클 시장이 미국까지 진출해 영향을 줬던 거야. 성능은 좋은데 값이 싸. 그럼 당연히 다른 제품을 사겠지? 이런 일이 생기면서 위기가 찾아왔어.

3️⃣ 이들을 구원한 로널드 레이건의 보호조치

1969년 인류가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을 때 할리는 AMF라는 기업에 인수되었어. 핵 개발에도 참여할 만큼 컸던 AMF는 다수의 회사를 인수 및 합병하며 경영했는데, 할리는 인수되면서 생산의 간소화와 인력 감축을 시행하게 됐지.

너희 이지 라이더라는 영화 들어봤니? 미국에서는 달 착륙과 함께 히피 문화도 유행하고 있었거든. 영화에서 나온 할리의 모습이 비록 좋은 이미지로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작품이 히트를 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으로 기억되기도 했어. 그게 판매량으로 이어져 1969년 전년도보다 1,100대 이상 높은 15,575대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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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상승할 것 같던 판매량(3만 대 이상)도 오일 쇼크를 맞이하며 혼란이 생겼어. 연료비가 상승하면 모터사이클 판매량이 줄어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었고 문제는 값싼 연료비로 충당한 오일의 질이었어. 질 낮은 연료 때문에 엔진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거든. 판매량이 높아질수록 문제가 일어날 확률도 커진 거지.

1981년까지 2차 오일 쇼크가 계속되면서 판매량이 40% 가까이 떨어졌던 AMF는 할리에게 손을 놓기 시작했어. 이 시기 창업주의 손주 윌리 G. 데이비슨은 1981년 6월 16일 다시 회사를 사들여서 경영을 시작해. 품질 개선과 기술 도입, 재고 관리 체계를 정비했고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을 벌기도 했어.

산업 보호 조치라며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배기량 700cc 이상의 수입 모터사이클에 대한 관세를 4%에서 45%로 10배나 높였거든. 지금까지 유명한 커뮤니티인 H.O.G(The Harley Owner Group·이하 호그)도 같은 해에 설립하기도 했고. 착실히 준비해서일까? 전설의 엔진인 ‘에볼루션 엔진’도 개발하면서 재기의 시작을 알렸어.

4️⃣ 문화적 성장과 고객 전략으로 재기한 할리 데이비슨

1990년대의 미국은 승전국과 문화의 성장을 보여주는 시대였어. 소비에트 연방(소련)과의 냉전도 1993년에 끝나면서 자본주의 문화를 주장했던 ‘자유’의 나라 미국의 이미지를 할리도 같이 얻으며 나간 거지. 판매량은 1990년에 59,000대에서 시작해서 1993년에는 82,000대를 기록했을 만큼 고속 성장을 이루고 있었어.

보다 고속 성장을 장기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들었던 건 브랜드만의 ‘체험 전략’이었어. 제품의 기술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뒤로 하고도 강력했던 전략 때문에 원래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어. 한창 혼다나, 야마하, 스즈키 등의 일본 기업들이 이동 수단으로서의 효용성을 부각시킬 때 할리는 전통, 자유, 도전 정신을 강조했거든.

브랜드 체험을 위해 호그를 만들어 소속감을 높이며 4년 만에 10만 명 돌파, 100만 명을 넘어 현재는 전 세계 14,000여 개의 지부가 생기는 업적을 이뤘어. 뿐만 아니라 프로모션 비용의 7-80%를 기존 고객에게 투자하며 광고가 아닌 랠리와 모터사이클 행사에 쓰는 모습을 보여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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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그 랠리 투어를 떠나거나 파티를 개최했어. 할리 본사에서 펼쳐지는 서머페스트를 비롯해 영화나 음악축제, 로큰롤, 레이싱팀까지 지원하는 이들의 모습은 매년 연 회비로 45달러를 내고 싶게끔 만드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할리는 1990년대의 문화적 성장과 독창적인 판매 전략을 통해 재기할 수 있었어. 브랜드의 상징성과 고객과의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할리는 단순한 모터사이클 제조업체를 넘어 전 세계의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앞으로도 커뮤니티 빌드, 고객 영업의 끝판왕인 할리의 찐팬 사랑하기가 계속되기를 바라. 


오픈카톡방(참여코드 : ohmara)에서 마케팅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인사이트를 서로 공유할 수 있어! 지금 얼른들어와서 같이 얘기를 나눠보자고 ☺️ 
참고로 우리는 인스타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니 많은 팔로우와 관심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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