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ling#72 | 선입견

전유동이 만난 새들 『전유동만새』 #8, 강동수의 음반 수집기 『나의 인디유산 답사기』 #7

2022.08.23 | 조회 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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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링Oiling

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의 아티스트들이 직접 만드는 인디팝 문예지, 오일링Oiling 입니다. 프로듀서 단편선과 아티스트 천용성, 전복들, 전유동, 후하, 보일, 소음발광, 선과영이 함께 읽고 씁니다.

편집인의 말

🐮대왕록페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에는 막국수촌이 있는데요. 저는 그곳의 막국수를 아주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많이 갔어요. 가장 유명한 가게는 '강계봉진막국수'와 '홍원막국수' 두 집인데요. 저는 '봉진' 쪽을 좋아합니다. 맛이 좀 더 원초적이랄까요. 홍원의 문제는 너무 맛이 있어서 '막'한 느낌이 없다는 것이죠.

얼마 전 갔을 때는 봉진이 문을 닫아서―연중무휴라더니!―아쉽게도 홍원을 먹었습니다. 그대로 올라가자니 또 아쉬워서 영릉을 갔고요.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황후가 묻힌 무덤입니다. 제가 자란 이천에는 사적이 별로 없어서 소풍으로 여주를 한 번씩 들르곤 했습니다. 영릉-신륵사가 공식 코스였죠. 근데 그 소풍이 벌써 25년 전이라니.

서울에 있는 능과 다른 것은 능 자체보다는 그것이 놓인 땅입니다. 넓은 땅. 언제부턴가 이렇게 넓은 곳을 보면 페스티벌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옛날엔 풋살장을 놓고 싶었는데―듭니다. "이 쪽에 스테이지를 하나 두고, 이 쪽에 부스를 두고, 이 쪽에 메인을. 이름은 역시 대왕록페가 좋겠지." "문화재청과 협상은 편선한테 맡기고..." "헤드라이너는 역시... 소음발광과 모스크바서핑클럽?"

🐮천용성


전유동이 만난 새들, 『전유동만새』 #8

🐤만월산에서 만난 새들

인천에 있는 만월산은 집에서 가깝다. 2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 이사를 도와주겠다며 집으로 찾아온 친구가 얘기했다. “, 내가 장담하는데 형 2년 안에 저 산에 한 번도 안 오를걸?” 그 말에 동요한 걸까? 그 해 발표한 정규앨범 수록곡인 75 데시벨 뮤직비디오를 만월산에서 촬영했다. 촬영 전에 사전 답사를 하겠다고 산에 올라 쇠딱따구리를 만났다. 서로 가까이 있었음에도 인지하지 못하다가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첫 만남이 깔끔하지 못했다. 하지만 산에 오르면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번아웃을 겪었다. 번아웃은 열심히 해서 마음이 지치는 것이 아니라 분명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만 어떤 곳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고 있었지만, 시간을 허비하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체감되는 성과나 성취감은 거의 없었다. 욕심이 많은 것은 아닐까. 또 다른 루틴이나 환기가 필요하다. 날씨가 좋아서 2년 만에 만월산으로 향했다. 등산로 초입부터 참새 소리와 까치 소리가 반겨 주었고 조금 더 들어가니 동네 박새가 여기에 다 모여있었다. 쭈이찌 쭈이찌 쭈이찌.

박새가 나무 틈새에 있는 먹이를 발견했나보다. 정신없이 나무를 쪼아댄다. 참새류의 작은 새들은 뒤통수가 정말 귀엽다.

작은 봉투를 들고 왔어야 했다. 등산로 곳곳에 작은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었다.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쓰레기들은 들고 올라갔다. 인간이 미안해.

어디에선가 오목눈이의 소리가 들렸다. 찌르르, 찌르르, 찌르르. 나를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훑어보며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새들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에게는 새들만 알 수 있는 오라가 보였으면 좋겠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대부분 낮은 풀숲에 몸을 숨기고 모여 있다. 하지만 오목눈이는 대부분 무리보다는 이렇게 단독 개체로만 관찰됐다. 호기심도 더 많은 것 같다. 오목눈이에게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일렁거린다.

산을 다시 내려가다가 알 수 없는 움직임이 감지됐다. 사부작거리는 소리 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한 친구가 낙엽 아래를 뒤지는데 얼이 빠져있었다. 색과 크기는 바다직박구리 같은데 바다직박구리가 이 산속에 있을 리 만무하다. 도감을 열어 찾아보니 되지빠귀 수컷이다. (다음 화는 도감 앱을 추천해드릴게요.) 멀리서 찍은 사진이라 흐릿하다. 좀 더 선명하게 보여드리기 위해 유튜브 영상 링크를 남깁니다.

되지빠귀 수컷의 등은 멀리서 보면 채도가 낮은 보라색처럼 보인다. 멱은 흰색이고 배는 밝은 주황색이다. 자연의 조화가 어떤 이유로 되지빠귀를 이렇게 빚어낸 것일까. 생각에 잠겨서 자리를 옮기다가 경망하게 큰 소리를 냈는데 되지빠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낙엽 아래를 뒤지고 있었다.

요즈음 비가 많이 왔다. 만월산의 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다. 만월산에 오르며 찍었던 사진들로 이번 전유동만세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번 오일링이 올라올 때는 장마가 지나갔을까? 더 많이 온다는데 다들 무사했으면 좋겠다. 사람이든 숨탄것이든. 그리고 어두운 장마로 우울감을 가진 오일링 구독자 분이 계시다면 화창한 만월산의 풍광을 보며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유동의 추천] Bon Iver & St. Vincent - Roslyn

🐤전유동


소음발광 강동수의 음반 수집기 『나의 인디유산 답사기』 #7

⚡선입견

최근 공연을 자주 하면서 친해진 밴드들이 여럿 있다. 저번주 토요일과 오늘 모스크바서핑클럽과 함께 기획한 공연 '부산의 기쁨, 서울에서 저공비행'을 마무리했다. 그런 김에 모스크바서핑클럽을 소개하려고 한다.

처음 팀이름만 보고 선입견에 음악을 듣지 않았다. 심지어 같이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도 듣지 않았다. “죄송한데.. 기타 스트랩을 안 챙겨와서 그런데 좀 빌려주시겠어요?” 기타/보컬의 정기훈이 대뜸 대기실에 와서 스트랩을 빌려갔다. 그리고 몇 분 뒤 “죄송한데.. 기타 줄도 있으시면 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 양아치는 뭐지 싶으면서도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나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 같기 때문에 흔쾌히 빌려줬다.

이렇게까지 준비성 없는 밴드는 도대체 어떤 밴든가 궁금해서 방송 리허설을 보러 갔다.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음악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들리지 않음에도 이 밴드가 너무 궁금해졌고, 그래서 서울-부산 교환 공연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고 나서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정규 1집 《저공비행》을 들었다.

60-70년대 싸이키델릭 로큰롤을 기반으로 슈게이징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공간감 그리고 팝의 감각까지 지닌 앨범이었다. 이 시대에 싸이키델릭을 중점을 두고 음악을 하는 것이 뚝심있게 느껴졌다. 그 뚝심은 왜 이제껏 듣지 않았나 후회가 될 정도로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었다. <모든 밤은 사라지고>를 들으며 한 여름의 불타는 밤을 떠올렸고, <백야로>를 들으며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해보았다.

저번주 공연보다 오늘 공연에서 모스크바서핑클럽은 더 아름답게 불타올랐다. 관객들을 춤추게 만들고 연신 환호성이 그치지 않는 멋진 공연이었다. 이 밴드가 페스티벌에 올라가면 어떤 느낌일지 정말 궁금하다.

작은 막을 부순 후에 보이는 것들이 소중하다. 덕분에 나는 친구이자 팬을 자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또 생겼다. 좁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멋진 것들을 선입견으로 지나칠 때가 많다. 조금 더 귀와 눈을 열고 모든 것에 다가가는 태도를 지니고 싶어졌다.

[동수의 추천]모스크바서핑클럽 - Through Her

⚡강동수


🔥특보🔥

🐚전복들의 새 싱글에서 원정이는 깔끔하다

※ 전복들의 〈원정이는 깔끔해〉 클립은 발매 당일인 8월 27일 토요일 정오, 대구·경북 기반의 인디 웹진 '빅나인고고클럽'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최초공개될 예정이다.

지난 겨울, 2022년 오소리웍스의 첫 공식일정으로 진행되었던 전복들 X 경북 음악창작소의 세 결과물 중 두 번째가 공개된다. 2018년, 그때만 해도 결성 초기 단계였던 전복들이 낸 《우주가 전복해》 싱글을 리빌딩하는 프로젝트가 중반부에 접어드는 것. 지난 봄 발매했던 〈봄나물〉 2022 버전에 이어 이번에는 〈원정이는 깔끔해〉의 차례다. (레코딩 과정과 관련해서는 지난 2022년 1월 11일 발간된 오일링 41호의 특보 《🐚전복들, 2022년 새 음악 새 뜻 새 기강 확립을 위한 경주 전지훈련 다녀와》를 참조.)

레코딩 자체는 두 계절 전에 이루어졌으나 믹싱과 마스터링, 커버 이미지 구성, 텍스트 등의 작업은 천천히 이루어졌다. 무언가 조그만 것이라도 낼 때마다 프로필을 새로 찍는 기이한 전통은 이번에도 유지된다. 근황을 전하는 작은 인터뷰와 곡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은 소개도 전해진다고. 한편 기타리스트 원정이의 몹시 겁이 나는 내용의 화보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파원 역시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으며 다만 몹시 겁을 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전복들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발매일까지 천천히 업데이트 될 전망.

한편 전복들의 리더 고창일은 프로듀서의 계속되는 앨범 제작 압박에 땀을 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겨울, 소음발광이 주최한 부산에서의 파티 뒷풀이에서 "언제까지 EP나 싱글만 낼 것이냐?"며 채근한 것이 시작, 프로듀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작곡 및 데모의 진도를 체크하며 불 같이 성질을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가오는 2023년, 전복들은 과연 앨범을 낼 수 있을 것인가.

🍔단편선 특파원


📺오소리뉴스📺

🐮천용성 @000yongsung

[공연] 8. 28(일), 20:00, 아이다호

[공연] 9. 14(수), 18:00, 게토얼라이브, 아리랑 TV '라이브 온'

🐚전복들 @cosmicabalone

[음반] 8. 27(토), 12:00, 〈원정이는 깔끔해〉 발매

[공연] 9. 3(토), 19:00, 클럽 헤비, 'Big Night'

🐤전유동 @jeonyoodong

[공연] 8. 27(토), 15:00, 숲세권 라이브, '전유동 단독공연 : Platanus'

😙후하 @hoohaa.seoul

[공연] 8. 24(수), 18:00, 벨로주 홍대,  아리랑 TV '라이브 온'

[공연] 9. 3(토), 17:00, 무대륙, 'MUB'

🪐선과영 @boktea @haha_hangun

[음반] 8. 12(금) - 8. 30(화), 선과영 1집 《밤과낮》 발매 후원 텀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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