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오소리웍스 비하인드 2021
시간의 흐름은 물리적 사건이겠으나 시간의 구분은 인류의 자의에 따른 것일테다. 시간은 연속되어 경험된다. 2021년의 시간들에 대해 말할 때, 2020년의 시간을 소환하게 되는 것은 그래서 ― 내게는 ―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편,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 2021년은 아마 그쯤 시작되었던 것 같다고.
가까운 연말들이 떠오른다.
2017년의 연말, 내 과오로 밴드를 잃은 지 몇달이 지났다. 음악하는 것과 듣는 것을 멈췄다. 시간날 때마다 카페에 가 《DIY 뮤직 가이드북》 원고를 썼다. 음악을 계속 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직장에 다녀보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서 찾는 유능한 인재인양 인력을 포장하고 머리를 잘랐다. 머리를 자르기 직전, 밴드와 마지막 공연을 했다.
2018년의 연말, 어느덧 1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그만두기 전, 마지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음원유통 과정을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초기 과정이었다. 솔루션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은 이후로도 듣지 못했다. 퇴사에 맞추어 다니기 시작할 빅데이터 관련 사설교육기관에 등록했다.
2019년의 연말, 다시 직장을 옮겼다. 새 직장에서 원하던 바를 이루진 못했지만 약간의 성과들을 만들었다. 취업박람회에서 문화예술계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만나 상담을 해주고, 좋은 친구들이 있으면 따로 명함을 주었다. 처음 프로듀싱 한 타인의 음반, 천용성의 《김일성이 죽던 해》가 발매된 후 이런저런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모두의 동요》와 《소닉픽션》의 발매를 도왔다.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2020년의 연말은 가장 고즈넉했다.
12월이 되면서 정부는 강력한 셧다운 정책을 추진했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모두 취소되었다. 모임은 취소되었지만 친구들을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직장의 동료들과, 친구들과, 아주 작은 규모로 진행되는 만남이 이어졌다. 월초부터 중순까지 매일 술을 마셨다. 오래 살던 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2주 쯤 술을 마시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남은 2주 정도는 집에 가만 있었다. 가만 있으면서, 매일 피아노를 쳤다. 용성의 새로운 음반에 들어갈 곡들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혼자 몇시간 씩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망상의 나래들이 펼쳐졌다. 혼자 영화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팀 버튼, 길예르모 델 토로의 것들과 같은 세계를 오며갔다. 갖은 오케스트레이션이 동반되는, 방만한 편곡을 진행하다가 용성에게 가끔 들려주었다. 다행히 용성은 좋은 방향이라는 피드백을 주었다. 용기를 얻었다. 계속 내키는 대로 스케치 해나갔다.
상반기의 스케쥴이 타이트했다. 유동과 다음 발매될 EP, 그리고 그 전에 발매될 싱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디플로도쿠스를 내기로 했는데, 막상 다른 작업을 진행하느라 작업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유동이 준 첫 버젼의 demo는 보다 어쿠스틱한 퍼커션이 들어간 버젼이었다. 듣다보니 전자음악이 접목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아주 약간의 트랩trap을 가미해보자고 제안했다.
종일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중해서 하루 종일 음악 작업, 음악 이야기만 하다보면 기묘한 분위기에 취해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아나기도 한다. 유동과 1.5일 정도 같이 있기로 했다. 인천에 가야하니, 가는 김에 유동의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파제까지 와서 같이 demo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제에게 전화해보니 뜬금없이 좋은 장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유동도 나도, 작업도 중요하지만 장어가 더 중요하다는 합의를 이루었다. 파제가 그릴까지 들고 왔다. 유동네 작은 집에 모여 밤새도록 장어를 구워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들 집에 갔고 나는 바닥에, 유동은 침대였다. 시계를 보니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조금 더 잘 요량으로 눈을 붙였다. 갑자기 인기척이 났다. 유동이 일어나더니 세수도 안 하고선 작업실로 들어가더니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인간은 왜 잠을 안 자, 속으로 툴툴대며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비트를 찍고, 기타를 연주하다 보니 이른 오후가 되었다. 잠깐 쉬지요, 하곤 유동네 좁은 거실에 잠깐 누웠다. 유동과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3분도 안 되어 갑자기 유동이 답이 없었다. 슥 보니 코도 살짝 골면서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래, 조금 쉬지. 나도 눈을 감았다.
2021년 첫 발매작은 [전복코믹스]로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발매를 위한 준비는 지난 2020년 가을부터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발매가 코앞으로 다가온 2월 말 쯤, 전복들의 창일이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텀블벅을 해야할 것 같은데요. 미리 논의되지 않았고, 발매가 코앞인데 갑작스레 크라우드 펀딩을 하자고 하니 짜증이 몰려왔다. 네, 일단 저도 지금 해야하는 일들이 많아서 제가 직접 진행하긴 어렵고 전복들이 진행하면서 그때그때 공유해주시면 저도 피드백을 드릴게요.
며칠 있다가 연락이 왔다. 페이지 제작이 완료되어 검수를 신청했다고. (텀블벅은 아티스트가 페이지를 만들고 검수신청을 한 후, 통과가 되면 정식으로 펀딩을 오픈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중에 있다.) 검수 신청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공유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페이지에 접속해보니 펀딩 오픈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정보들이 상당히 빠져있었다. 이거 왜 이렇게 했어요, 이거 어차피 검수 탈락 각이니까 가이드 보고 다시 만들어주세요, 라면서 가이드를 던져줬다. 결과는 당연히 검수 탈락. 또 하루이틀 있으니 다시 검수신청을 했다며 연락이 왔다. 아니, 나한테 먼저 공유를 해줬어야지! 하면서 다시 페이지를 체크하니 역시 여러 정보들이 빠져있었다. 화가 났다. 가이드는 읽어보았어요? 했더니 바빠서 안 읽었다는 답변이었다. 이 과정이 한번 더 동일하게 일어났다. 창일에게 전화했다.
발매 미루죠. 전 이 컨디션에서 발매 못할 거 같아요.
‘프로듀서'라는 직함으로 똑같이 크레딧에 올라도 실제 프로듀서로서 하는 일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음악의 매우 세세한 부분, 심지어는 작사와 작곡까지도 다 건드리는 케이스도 있는 반면 전체적인 컨셉과 일정관리, 계약관리, 사무 쪽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때로는 돈만 투자하는 케이스도 있을 것이다. 후하의 경우는 전자와 후자의 중간에서 후자 쪽으로 살짝 이동한 정도에 가깝다. 성진영이 전체적인 운영을 담당하고, 지고가 음악 감독 역할을 한다. 이환희는 기술적인 서포트에 능하다. 이 구도에서는 제작 파트가 비어있기 때문에, 제작 전반을 서포트하고 음악과 관련된 큰 그림은 지고와 같이 논의한다. 직접 제안해주기 보다는 지고가 정리해온 것들을 같이 들으며 주로 컷cut 하는 게 일이다. 어떤 일이건 컷은 중요하다. 컷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후하는 지난 해 발매된 싱글 [Fall]의 사운드를 좋아하지 않았다. 퀄리티는 좋았지만,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이 처음이라 자신들의 색을 충분히 내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Spring] 작업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기타톤을 써보았다. 비용과 일정 문제로, 언제나 그랬듯 타이트한 작업이었지만 전보다 레코딩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레코딩이 좋으면 믹싱은 보통 프리패스다. 레코딩에서 이미 원하는 바가 구현되었다면 믹싱에선 정리정돈만 잘 하면 만사형통인 까닭에서다. (믹싱이 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레코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첫 믹스가 나왔고 멤버들에게 보내주었다. 그런데 지고에게 연락이 오더니, 믹스를 엎어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텀블벅을 진행했고 유통사에 입고도 해야하는 탓에 빠르게 공장으로 보내야하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화가 나 성진영에게 연락을 해보니 멤버들끼리 논의한 건 그렇게 크리티컬한 이슈들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수정할 사항을 정리한 뒤, 지고와 다시 연락해 최종 피드백을 정리했다. 생각해보면 지고가 이야기한 부분은 나도 수정하고 싶었던 부분들이었다. 다만 일정에 쫓긴다는 이유로 마음 속으로 이미 네고에이션 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음반을 만든다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야. 새삼 혼자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작업 내내 용성이 기운이 없어보였다. 특히 보컬을 녹음할 때쯤 되니 거의 바닥에 들러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이 빠져보였다. 한번은 네 음반 만드는데 네가 그렇게 힘빠져 있으면 나보고 어쩌란 거냐, 하면서 화를 낸 적도 있다. 나중에 듣기로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이유가 가장 컸던 듯하다. 많은 동료들이 모여 열심히 레코딩 했는데 막상 자신의 목소리가 얹어지니 곡의 좋음이 가려지는 듯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쳇, 나는 용성 목소리 좋은데. (좋지 않아요?) 게다가 첫 앨범 낼 때보다 더 좋아졌다는 말이야. 그렇게 말해보았자 용성의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홍보 때 썼던 문구 그대로 30명이 넘는 인원이 투입된 큰 작업이었다. 작업의 규모가 크다보니, 상대적으로 작은 노래들은 조금씩 레코딩이 뒤로 밀렸다. 〈설〉의 레코딩은 거의 녹음일정의 마지막 쯤으로 잡혔다. 실은 다른 곡들 작업하느라 힘이 빠져서, 레코딩 하는 당일까지도 별 계획 없이 스튜디오로 향하게 되었다. 머쉬룸레코딩스튜디오의 천학주 실장은 언제나처럼, 또 이 양반들 계획없이 왔네, 하면서 역정을 냈다. (툴툴대도 할 거 다 해준다.) 이리저리 고민하다 기타와 보컬을 동시에 녹음하신 방식으로 진행해보기로 했다. 큰 부스에는 내가 들어갔고, 작은 부스에는 용성이 들어갔다. 큰 부스와 작은 부스 사이에 있는 창문을 통해 서로 눈빛을 맞교환 하며,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편안한 시간. 앞선 시간들에서의 스트레스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용성은 언젠가 〈설〉에 대해서, 이 노래는 나밖에 못 부른다는 식으로 얘기한 적이 있다. 용성이가 용성이 하는 노래라는 거. 이건 또 무슨 근자감이야. 하여간에 하나 같이 다들 제멋대로야.
부산대 앞의 한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 입구쯤 와서 소음발광 동수 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동수, 기영, 기태, 보경 줄줄이 나왔다. 같이 담배 한 대 태우고 합주실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소음발광의 연주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묵묵히 들었다. 기타 이펙터를 어떻게 쓰고 있나, 악기 세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슥슥 둘러보았다. 3곡 쯤 차분하게 듣고서, 동수 씨에게 말했다.
그런데 동수 씨, 너무 시끄러워서 솔직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좀 줄여야해요.
파제네 집은 꿀단지다. 언제나 좋은 음식과 좋은 향기로 넘쳐난다. 게다가 기타가 너무 많다. 파제는 마음씨도 좋다. 정성스레 음식을 만든 다음,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또 그렇게 좋아한다. 아마 우리 먹는 것만 보아도 배부를 것이다. 실제로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지는 알 수 없다. 조만간 테스트 해봐야겠다. 음식 주면 한 점도 안 남기고 다 먹어봐야겠다.
여하간 작업을 하려면 파제네 집으로 가는 게 언제나 유리하다. 작업도 하는데 맛난 것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동과 한 번 하루종일 이번 EP 기타편곡 박살내봅시다, 라고 제안하니 자연스레, 안 그래도 지금 쌈장에 2주 정도 숙성시킨 돼지고기가 있는데, 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 참 좋은 일이다.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파제네로 향했다. 문득, 그래도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다행이야, 라는 생각을 했다. (쌈장에 2주 정도 숙성시킨 돼지고기가 있기 때문에 좋은 친구라는 것은 아니다.)
창일에게 삐졌다. 삐졌다니 내가 소심한 사람 같지만 삐질만 해서 삐진 것이다. 가을 새 싱글 녹음한다고 서울 올라올 계획 잡고 스튜디오도 예약해두었는데 막상 준비가 잘 안 되고 있는 듯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레코딩 이틀 쯤을 남겨두고서, 은아 씨가 최근 무리한 탓인지 건강이 갑작스레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밴드 음악은 어쨌건 몸으로 하는 일이니까,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진행했다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것이 우려되어 나와 학주 모두 레코딩을 미루자고 제안했지만 전복들이 부득불 오겠다고 했다. 그럼 일단 진행해보죠, 했는데 당일되니 준비가 모자른 것이 상당히 태가 났다. 다소 경황없이 레코딩이 시작되고, 진행되었다. 계획이 어그러져 현장에서 판단한 부분도 많았다. 창일도 확신이 없어보였고, 그날따라 작업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곡을 쓴 창일이 집중을 못하니 나는 더 예민하게 굴었다. 다음날, 창일에게 앞으로 이렇게 하면 우리 앞으로 진짜 작업 못해요,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중에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니 전복들에게도 내가 모르던 어려운 상황들이 있었다. 이해는 갔지만 이해는 이해고 일은 일이다.)
실은 〈할머니 소파〉의 작업을 시작하려던 때부터 나는 줄곧 〈할머니 소파〉의 싱글 발매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곡의 좋고 나쁨을 떠나 싱글로서 좋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작업을 진행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작업하는 내내 마음이 충분하지 못했다. 창일도 그런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가라앉은 것은 〈할머니 소파〉가 발매된 다음이었다. 특히 이야기의 원 출처인 옛 드러머 성현 씨의 글과 다큐멘터리 식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서. 비록 우당탕탕 만들었지만 그 속에는 좋은 이야기가 있었구나, 그때야 비로소 느꼈다.
연말에는 소음발광이 주최한 《소음 페스티벌》이 열렸다. 소음발광과 전복들이 연주하는 날, 나도 부산에 내려갔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오방가르드에서 열린 뒷풀이. 창일과 한쪽 구석가서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지난 일들. 다음 일들. 무리하는 것들. 잘 진행되지 않는 것들. 하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들.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도화선》의 타이틀 〈꽃밭에서〉의 비디오는 밴드 검은잎들의 기타리스트 성민 님이 촬영했다. 카메라 렌즈 앞에 스타킹 같은 것을 씌워서 일부러 어둡고 흐릿한 이미지들로 표현했다. 음반 커버도 모노톤이었다. 《기쁨, 꽃》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색상을 쓰고 싶었다. 내가 느낀 소음발광의 음악은, 물론 어둡고 폭력적인 부분도 많았지만, 결론적으로는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남김없이 드러내는 음악이었다. 디자인과 비디오에서의 연출이 보다 명료해졌으면 했다. 뮤직비디오 감독을 물색하던 중, 전설의 펑크록 다큐멘터리 《노후대책없다》의 이동우가 떠올랐다. 그 자신이 스컴레이드, 슬랜트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펑크록 밴드의 일원이기도 한 친구다.
이동우는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했다. 누가 본인에게 돈 주고 찍어달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멋있는 걸 찍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멋있을 필요 없다, 귀엽게 가자, 귀여운 게 장땡이다, 라는 식으로 설득했다. (이동우는 하드코어 펑크를 연주하지만 귀여운 건 못 참는다.)
뮤직비디오 찍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직장 업무 때문에 직접 내려갈 수 없는 일정이었다. 다음날인가 찍어야 하는데도 시놉시스가 없었다. 동우 형 ― 우리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형이라 부른다 ― 에게 연락해봤더니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냥 소음발광이랑 재미있게 놀다 올 것이라고만 얘기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저러겠지 했다. 한편으론 바로 내일이니까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어, 라는 마음.
다음날이 되었다. 이틀에 나누어 찍을 예정이라 하던데, 저녁까지 별 소식이 없었다. 밤이 되어서야 동수 씨에게 연락이 왔다. 깔깔 껄껄 하는 주변 소음이 심했다. 잘 찍었어요? 네, 잘 찍었어요. 뭐 했어요? 그냥 놀았어요. 아니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닌거야! 허허허, 잘 찍었어요.
완성된 〈춤〉의 뮤직비디오는 내가 태어나서 본 포스트 펑크 뮤직비디오 중 가장 차분한 비디오였다. 그것도 좀 ― 비현실적으로 예뻐서 ― 믿기지 않았는데, 동우형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단 형, 찍은 게 너무 많이 남아서 그러는데 그냥 하나 더 만들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기쁨〉의 뮤직비디오. 내게는 2021년의 비디오. 이런 비디오를 만들 수만 있다면,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나도 아쉽지는 않겠지.
보일을, 말 그대로 덜컥 수락했다. 수락은 했는데, 일렉트로닉이라니, 뭘 어째야 하는지 난감했다. 친구이자 일렉트로닉을 주로 다루는 레이블 영기획을 운영하는 하박국은 볼 때마다 이걸 왜 네가 내, 이건 내가 내야하는데, 라면서 타박을 줬다. 게다가 보일은 생각보다 깐깐했지만, 꼭 그만큼 허술했다. 재능과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았지만 이를 정리하는 걸 상당히 어려워했다. 그리고 술을 좋아했다. 우리는 작업을 빙자해, 오래 술을 마셨다. 몇 달 동안 음악 이야기하면서 술만 마시다가 술을 마시는 걸로는 작업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랜 동료인 룸306의 허민에게 연락했다. 허 선생, 우리 오랜만에 작업 하나 같이 해봅시다.
보일은 기준이 높다.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시도를 하고 싶지 않아한다. 그 점이 늘 보일을 괴롭혀왔다. 공연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 예전에는 공연 안 했어요? 했어요. 그럼 왜 안 해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참 까탈스러운 사람이야. 하지만 동시에 꼭 그만큼 허술한 사람이라서. 《2021 오소리웍스 이어 - 엔드 파티》에서도 준비가 안 되었다면서 공연 못하겠다고 하더니 후하가 급히 필요하다고 하니 두 번 합주하고선 바로 무대에 올라 해냈다. 하면 되잖아요? 정말 다들 마음대로라니까.
《2021 오소리웍스 이어 - 엔드 파티》가 끝났다. 뒷풀이를 할 수 없었다. 소음발광의 동수, 보경은 하루 자고 간다 했다. 내일 점심이나 먹어요, 했다. 이 글을 마무리 짓는 지금이 바로 그 내일이다.
샤워를 했다. 매우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을 즐긴다. 뜨거운 물을 맞고 있으면 여러 생각들이 든다. 내게 앞으로가 있을까, 앞으로가 있다면 잘 해낼 수 있을까. 잡생각도 한다. 용성하고 이런 공연을 만들어보면 좋겠는데. 유동이랑 엮어서 뭘 어떻게 해볼까. 후하 싱글 언제 낼 계획이지. 전복들이랑 경주 가기로 했는데 맛난 거나 먹었으면 좋겠다. 소음발광 내년 싱글 낼 때 편곡을 좀 도와야 하나, 관악 좀 넣어보고 싶은데. 생각을 하다보니 살이 빨갛게 익을 정도로 뜨거워졌다.
물기를 털어냈다.
친구들하고 하는 밴드도 조금 더 신경써야할텐데.
왠지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중식당에 가기로 했다. 크림새우 먹어야지.
끝.
그리고 이것은 2022년 예고편.
🍔단편선 발행인
📺오소리뉴스📺
🐮천용성 @yongsung000
[공연] 1. 2(일), 18:00, 벨로주 홍대, '2022 새해의 포크'
😙후하 @hoohaa.seoul
[공연] 12. 29(수), 스피크이지썸띵(용산)
🐤전유동 @jeonyoodong
[공연] 1. 29(토), 재미공작소(문래)
⚡소음발광 @soumbalgwang_official
[공연] 1. 8(토), 프리즘홀(합정), '서울부산대구제주교류전'
🍔단편선 @danpyunsun
[공연] 1. 16(일), 삼문당커피컴퍼니(통영)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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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오왕 길다길어! 단편선님의 수필같은 장문의 글에 감동받고, 공감하고 웃고 갑니다 크림새우 마무리라니..! 그저 감탄감탄 (크림새우는 못참죠) 이어엔드파티에 참여하지 못한게 너무너무 슬픈 오늘이군요..ㅠㅠㅠㅠ 21년 수고 많으셨어요 오소리여 영원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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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2U
나는 단편선의 팬이다!!! 틈만 나면 은퇴 가수라고 선언하고 남의 앨범 프로듀싱만 하는 단편선이 미웠다!!!!!! 나는! 단편선의! 음악이! 듣고! 싶다고~~ 그러던 2021년... 엥? 어쩌다보니 이제 프로듀서 단편선에게도 입덕해버렸습니다. 올여름을 버티게 해준 [수몰] 완전 소중됨. 개인적으로 존나 짜쳤던 2021년. 내가 난지 뭔지 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삶에 재미를 던져줌... 아 나 이런거 좋아하네~~ 완전 재밌네~~ 음악만 재밌는게 아니고 오일링도 재밌음ㅇㅇ 이어엔드파티 아니었으면 별다른 에피소드도 없이 암울한 2021을 마감쳤을듯... 암튼 오소리 이 집 잘하네~~~ 내가 졌다~~믿듣단~~애휴~ 믿듣오소리 2022도 가보자고~~~^^ 그치만 나는 ^^단편선^^ 노래가 제일 듣고싶다고~~^^ 단편선도 앨범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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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는 율리아
아니, 이르케 솔직하셔두 되는건가요?!ㅋㅋㅋ. 단편선님 글은 울컥,장황, 솔직, 디스, 반성, 걱정. 그리고 마지막 반전 유머로 꼬리내리기. 와^^~반합니다요. 최고의 리더 단편선님. '내가 리더가 될 상인가~ .'암요. 매 순간, 과장없이 거짓없이 진심이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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