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의 말
🐮 아이 러브 일관성
일관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에게 일관성이란 일종의 통일성입니다. 자신과 타인에게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고, 사안 A와 B에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원칙이 바뀌는 것은 괜찮습니다. 어느 순간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도, 혹은 변절할 수도 있죠. 하지만 공시적으론 일관되어야 합니다. 그렇기만 하다면 저는 빨간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어요. 인간적 매력과 색상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까.
저의 명저 『내역서 II』(2021)』에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 싫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일관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저를 바보로 만듭니다. 웃는 얼굴로 선의나 협조 때로는 희생을 요구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난 후에는 얼굴을 바꿉니다. 안 본 지 십 여년이 된 친구에게 부담 갖지 말라며 모바일 청첩장이 옵니다. 옛정에 뭐라도 보냈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아무런 인사도 없죠. "언제 한번 보자" 하는 상투적인 말조차도. 대충 그런 겁니다. 전체 문자를 안 보내는 게 어딘가요. 모두에게 보내느라 결국 아무한테도 보내지 않는 그런 문자요.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화나게 하는 건 인간적인 실수가 아니라 비인간적인―심지어는 기계적인―실수입니다. 세월호 학생들을 제적시킨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사망한 군인의 월급을 돌려받으려 소송을 건 국방부 이야기는요?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회는 인간이 기계가 되길 바라니까요. 저는―충분히 기계적이기만 하다면―기계적인 사람도 좋습니다. 다만, 시작과 끝 사이에 얼굴을 바꾸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들에 대한 저의 태도와 입장을 정할 수 있도록요.
🐮천용성
전복들 고창일의 육아일기 『기타팝파』 #7
🐚 인사하지 않기
아내가 이직 겸 구직에 성공했습니다. 기특하다고 궁디를 팡팡 해주었지만 기쁨은 잠시뿐. 앞으로의 일상이 역대급으로 빡쎄질 것 같다는 불안이 엄습했습니다. 제가 한 발이라도 더 움직여서 아내를 덜 힘들게 해야겠죠. 어제는 먼저 퇴근한 제가 저녁을 만들었습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토마토 통조림이 있길래, 토마토를 넣은 야채 카레를 만들었어요. 너무 시지 않은가 싶었지만 늘 그렇듯 아내는 왕따봉을 내밀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저녁을 참 오랜만에 했네요.
“인사하기”를 주제로 팡이와 한참 얘길 나눴습니다. 사실 저는 방청객이었고 패널은 엄마와 팡이였어요. 팡이는 인사에 대해 묘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아빠-엄마 외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불편하대요. 추석 때 오랜만에 본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몰래 귓속말로 인사를 했고, “아빠 엄마 눈감아” 하고는 아무도 못 듣게 소리 없이 삼촌 숙모 귀에 인사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아빠나 엄마 뒤에 숨어요. 하기 싫은 걸 하지 않는 건 저를 닮은 것도 같네요.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누가 누가 인사를 더 잘하는지 서로 자랑을 했대요. 그런데 팡이는 그게 왜 자랑거리인 건지, 친구들이 무엇을 자랑스러워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사는 정말로 반가울 때, 반가운 사람에게만 해줘도 충분하다고 얘기해줬습니다. 억지로 할 필요도 없다고 얘기도 해줬어요. 여기까지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인사를 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하니까 하는 것도 있다고도 얘기해줬습니다. 제발 1절만 고창일.
그리곤 저를 돌아봤습니다. 나는 정말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고 살아왔던가?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오해를 사는 것을 굳이 피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불편해지는 건 귀찮아하기에 ‘하기’보다는 ‘해치우’는 마음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신입사원 스타일의 제 폴더인사를 받고 머쓱했다는 회사 후배들도 있어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에선 일부러 의미를 지웠습니다. 꿀꺽 삼키고 지나가면 다 까먹으니까.
아이와의 시간도 음악과의 시간도 전과같이 안녕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맞벌이에 육아는 쉽지 않은 일이죠. 삶에서 음악이 최우선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지만, 앞으로는 더 그럴 것 같아요. 짧았던 홍대 생활을 마친 후론 늘 생업과 생존이 우선이었습니다. 제 몇 안 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는, 그럼에도 음악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일단 생존에 성공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시간을 만들 수 있고 음악은 그 뒤로 자연스럽게 (혹은 운이 좋게) 따라 나와주는 거라 믿고 싶어요.
육아 전쟁의 틈바구니 안에서도 밴드는 계속됩니다. 새 싱글도 만들어야 하고, 잡혀있는 스케쥴도 소화해야 하고, 신곡도 만들어야 하고, 저 못지않게 육아와 일에서 악전고투 중인 원정이도 팀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은아의 건강도 걱정되고, 경래의 격무도 걱정되고. 하지만 동지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으며 살 겁니다. 영화는 끝이라도 있지, 현생은 로그아웃도 엔딩크래딧도 없으니까요.
*다음 달부터는 전복들 멤버들과 함께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아직 정확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은아는 고양이 집사 혹은 선생님으로 뭔가를 키우는 얘기를 할 것이고, 원정이는 저랑은 또 다른 육아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아요. 경래는 화분에 물이라도 줘보라 얘기하겠습니다. 또 아나요? 더 재미있을지.
🐚전복들 고창일
📺오소리뉴스📺
🐮천용성 @yongsung000
[이벤트] 10. 21(목), 예술가들의 플레이리스트(Zoom 온라인 강연)
[공연] 10. 23(토), 2021 파주포크페스티벌 On Youtube
🐤전유동 @jeonyoodong
[공연]10. 20(수), 20:00, 마포문화재단, 인디열전 (비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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