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ling#16 | “사람은 오백 살까지밖에 못 산대”

고창일의 육아일기 『기타팝파』#4

2021.07.13 | 조회 1.32K |
9
|

오일링Oiling

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의 아티스트들이 직접 만드는 인디팝 문예지, 오일링Oiling 입니다. 프로듀서 단편선과 아티스트 천용성, 전복들, 전유동, 후하, 보일, 소음발광, 선과영이 함께 읽고 씁니다.


편집인의 말

🐮오백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어릴 때 집에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스무살 까지만 살고 싶어요』. 읽으면 안될 것 같아서 읽지 않았습니다. 다섯 살 아들이 그런 책을 읽고 있으면 엄마 속이 어떻겠어요. 하지만, 그 제목은 저도 모르게 마음에 깊이 새겨져, 스무 살이 큰 벽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찾아보니 무려 김창완 선생님이 쓴 책이군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 조금 슬픈 이야기입니다.

아, 근데 왜 또 이렇게 된 걸까요. 요새 뭔가를 쓰다 보면 자꾸 어두워져 버리는 것 같아요. 의도치 않게요. 오일링도 그런 것 같아요. 지난주 상반기 결산은 프로듀서부터 해서 다들 "아이고, 죽겠다" 바이브로 가더군요. 내심 믿고 있던 긍정인 몇들도 전염이라도 됐는지. 옛날에는 형광등 100개를 킨 것처럼 밝았는데, 지난 주는 50개 정도만 켰더라고요. 강력한 검열과 편집을 통해 긍정을 주입할까도 싶지만. 미리 준비해둔 다음 주 제 원고도 썩 밝다고는...😩

오늘도 👉손가락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8호 「생각이 너무 많다는 생각」부터 사용 된 망상 전용 이모지입니다. 오늘은 이런 망상을 했어요. "아, 근데 진짜 500살까지 사는 거면 어떡하지?""팡이가 맞고 창일이 형이 틀린 거면 어떡하지" 👉 국민연금이 곧 고갈 된다는데 👉 어차피 안 내니까 상관없잖아. 안 낸 내가 승자다! 👉 근데 그럼 옛날 사람도 살아 돌아오려나 👉 이순신이 1545년생이군 👉 몇 집까지 낼 수 있을까? 👉 모차르트도 상상마당에서 공연하면 웃기겠다.

찌는 여름 나기에 망상 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천용성


전복들 고창일의 육아일기 『기타팝파』 #4

🐚“사람은 오백 살까지밖에 못 산대”

요즘 팡이는 어디건 펄쩍펄쩍 뛰어다닙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서서 외치곤 해요.

“아빠 조심해!! 개미!!”

생명에 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혹여나 벌레를 밟게 될까 봐 발밑을 살피고 소리를 질러요. 천원 가게에서 꽃씨나 화분을 사달라고도 하고 물에 넣으면 자라는 공룡을 사서 아이처럼 돌보기도 합니다. 자기 전엔 휴지로 만든 이불을 덮어주기도 하고요. 지는 이불 덮어주면 질색 팔색을 하고 발로 걷어차면서. 며칠 전에는 투덜거리며 유치원의 친구 얘기를 하더군요.

🐱팡이   아빠 근데 소영이는 거짓말쟁이야
🐚창일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
🐱팡이   글쎄, 사람은 오백 살까지밖에 못 산다는 거야.
🐚창일   (동공 지진) 그래? 그것 밖에 못 산다고?

일단―2021년 6월 기준―팡이보다 소영이가 조금 더 똑똑한 것은 확실합니다. 팡이는 삼십까지 밖에 셀 줄을 모르고 삼십보다 큰 수 뒤엔 무조건 백을 붙입니다. “삼십 백만큼 많아” 같은 식으로요. 토니 스타크의 딸 모건 스타크는 팡이랑 같은 나이에 “삼천만큼 사랑해 I love you three thousand”를 말했죠. 아무래도 모건, 소영이, 팡이 순으로 똑똑한 것 같아요. 하지만 셋 중 팡이가 압도적으로 귀여우므로 종합 순위는 팡이가 1위입니다. (내 딸이 쵝오🤣) 아무튼 그래서 저는 오백은 커녕 백도 채우기 힘든 인간의 수명에 관해 설명을 해줘야 했습니다.

🐚창일   팡아 사람은 사실 백 살까지밖에 못 살아|
🐱팡이   (놀랐다가 분한 눈빛으로 바뀌어서는) 그거 밖에 못산다고?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요. 일단은 세 가지를 얘기하고 싶었어요. 친구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잘 못 알고 있는 거다. 누구나 잘 못 알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거기에 하나 더, 오래 사는 것보다는 잘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도 해야 할 것 같았고요. 이 모든 걸 얘기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참 무쓸모하다, 고창일😔―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설명해보기로 합니다.

🐚창일   팡이가 좋아하는 개미들은 몇 년을 살까?
🐱팡이   몰라
🐚창일   1년

혼란스러운 듯 크게 눈을 뜨고 저를 쳐다봅니다.

🐚창일   망망이모네 고양이 뭉치나 멍멍이들도 길어야 20년 정도를 살아.

닭똥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팡이   그럼 팡이는 몇 년 살아?
🐚창일   100년 정도 살겠지? 사실은 잘 몰라. 사람은 언제나 죽을 수 있거든.
🐱팡이   아빠, 엄마도?
🐚창일   응, 엄마, 아빠도

말하다 우는 팡이는 처음 봤습니다. 부딪히거나 다쳐도 잘 안 우는 아이인데. 

🐱팡이   그럼… 할아버지 할머니는요? 할아버지 할머니 얼마 못사는 거예요?
🐚창일   아니 그게 아니고
🐱팡이   어(울음)~  떠(올라간 울음)~ 케(더 큰 울음)~ 우앙(샤우팅)”

갑자기 존댓말을 쓰기 시작합니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고 의사 선생님들도 열심히 일하고 계시니 우리는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거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건강하시니까 더 오래 사실 거라고 달래 봤어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터진 울음은 멈출 줄 몰랐고 제 말은 아무 위로도 되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한심하다는 듯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렇게 팡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목놓아 울다가 잠들었습니다.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어요. 팡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요. 시트콤 같지 않나요. 하지만 마음 한편엔, 무거움이 남아있었습니다. 아이 마음에 생채기를 낸 것 같아서요. 너무 솔직하게 말한 건 아닐까, 그냥 맞장구를 쳐 주는 게 나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죽음을 처음 마주한 순간도 기억이 났어요. 제가 팡이 만할 때였어요.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이름은 '꽃또'였습니다―를 개장수에게 도둑 맞았었는데 짓궂은 동네 형들은 꽃또가 보신탕이 되었다가, 응가가 되었을 거라며 놀렸습니다.

생각과 망상이 계속됐습니다. 내가 병들거나 다치면 어떡하지?👉희귀혈액형이라 수혈받기 어려운데👉모아둔 헌혈증은 어디 뒀더라👉보험은 충분히 들어놓았나👉애들 둘 다 대학에 보낼 만큼은 받을 수 있을까👉내가 죽어도 아내는 금방 다시 연애하고 누군가에게 사랑 받으며 살면 좋겠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자꾸 분해져,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저는 즙짜기로 유명한 즙가고, 즙가답게 몇 가지 우는 스킬―소리 안내고 울기 같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수석에 있던 아내는 제가 우는 걸 봤던 것 같아요. 피식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목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티셔츠 앞을 축축하게 적셨습니다. (분하다😤)

팡이보다 여섯 배 넘는 시간을 살아왔지만 팡이가 아는 것과 제가 알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뭔가를 알려 줄 생각 말고 같이 고민만 해주자고 다짐합니다. 오백 년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주어진 생은 무사히 마치고 싶습니다. 인생은 금물(Golden Water)이니까요. 결론도 교훈도 없는 육아일기네요.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습니다. 

🐚전복들 고창일


[이주의 추천곡]Sister's Barbershop - Life is Golden Water

🔥사설🔥

모두의 연기📆

오일링 16호 발행을 앞둔 7월 12일 월요일 부로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발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오소리웍스와 함께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대거 취소·연기 되었습니다. 오소리웍스와 함께하는 아티스트만이 아니라 인디음악생태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연기되었습니다. '등록된 공연장'에 한해 공연을 진행할 수 있다는 지침이 내려왔는데, 홍대앞 공연장의 대부분은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식 공연장으로 등록하기 위해선 상당한 수준의 설비를 갖춰야하며, 음료 및 주류 등을 판매할 수 없습니다. 스탠딩 기준 50여 명, 좌석 기준 20~30여 명 정도가 들어가는 작은 라이브 클럽이나 복합문화공간의 경우에는 규모상 등록가능한 수준의 설비를 갖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주말로 한정되는 공연티켓 판매만으로는 공간을 유지하기에 역부족인 까닭에 음료, 주류를 판매하는 카페나 펍 등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 클럽이 확진자 동선에 포함되는 등, 상당히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안한 동시에, 일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계속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걱정도 됩니다. 홍대앞에서 함께 활동해나가고 있는 현장의 많은 예술인들이 관할구청, 시, 정부 등에게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해나가고 있지만 행정이 받아들이는데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구성원으로서 해야할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는 목요일에는 장혜영 국회의원과 함께 마포구 음악생태계에 관련한 토론회에 참가해요. 관심 있으신 분은 체크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모두의 안녕을 빌면서.

🍔단편선 발행인


📺오소리뉴스📺

🐮천용성 @yongsung000

[공연] 7. 14(수), 옥선쌀롱, *유튜브 '옥바라지선교센터' 라이브 스트리밍

*7월 24일 재미공작소 코멘터리 룸은 COVID-19 확산세에 따라 연기되었습니다.

🐤전유동 @jeonyoodong

*7월 12일 네스트나다 공연은 COVID-19 확산세에 따라 연기되었습니다.

😙후하 @hoohaa.seoul

*7월 18일 아이다호 공연은 COVID-19 확산세에 따라 연기되었습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오일링Oiling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9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홍민아

    0
    over 3 years 전

    오늘도 즙가의 갬동적인 육아일기에 마음이 따뜨으으읏 해집니다. 저도 어렸을 적 아부지와 비슷한 대화를 했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사람은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서 그 곳에서 모두 다시 만난다고 하셔서 안심 했었죠! 공주인줄 알았던 그 때의 전 빤짝 거리는 하늘나라를 상상 했었답니다! 😎 팡이도 아부지의 현답을 잊지 못할거에요 ㅎㅎ (그리고 계속되는 공연 취소에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시국 모두 함께 잘 견뎌 보아요!💪🏻💪🏻💪🏻💪🏻💪🏻)

    ㄴ 답글 (3)
  • 낸기라

    0
    over 3 years 전

    ㅜㅜ 공연 연기들은 많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응원의 메세지까지는 아니라도 응원하는 마음만이라도 싣고 싶어서 댓글 남깁니다. 팡이의 순수하고 예쁜마음이 무더위로 무거운 심신에 청량함을 주네요 육아일기~~오일링 감사해요~~ 팡아 고마워♡

    ㄴ 답글 (2)
  • 여기님

    0
    over 3 years 전

    사랑스럽고 사려깊은 팡이 곁에 항상 고민해준다는 아빠가 있다는 게 앞으로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팡이의 상냥함과 눈물은 아빠를 닮은 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어요 모쪼록 팡이네가 고민보단 즐거움이, 설령 고민하더라도 서로 으쌰으쌰하며 좋은 답을 함께 찾아 나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오백살까진 아니더라도 살면서 계속 오소리웍스 아티스트분들의 공연도 보고 머리싸매고 고민해도 어떻게든 답을 찾으며 살아가고 싶네요! 부디 공연장에서 뵙는 그날까지 모두들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라요🙏🏻✨

    ㄴ 답글 (1)
© 2024 오일링Oiling

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의 아티스트들이 직접 만드는 인디팝 문예지, 오일링Oiling 입니다. 프로듀서 단편선과 아티스트 천용성, 전복들, 전유동, 후하, 보일, 소음발광, 선과영이 함께 읽고 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