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려주신 구독자 님 감사합니다.
밀라노에서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매거진을 준비했습니다.
쭘마인밀란 매거진에서는 제가 사용하고 있는 sns와는 다르게, 좀 더 생활밀착형으로, 좀 더 솔직하고 진솔하게, 좀 더 웃프게 글을 씁니다.
슬픈 내용을 웃기게 쓰는 것, 웃긴 내용이지만 담담하게 쓰는 것이 제 삶의 모토이자 글의 방향성입니다. 그게 바로 삶의 해학이자, 글을 읽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가을 시즌 동안에도 무료로 발행할 예정이에요.
하지만 여러 방법으로 후원해 주신다면 기꺼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제 삶의 한 단면은 꽤 행복하고, 유쾌하지만 다른 한 단면은 어둡고 칙칙합니다. 그런 다양한 삶의 조각들을 구독자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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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약 두 달 동안 한국에서 휴가답지 않은 휴가를 보내고 8월 25일에 밀라노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한국에 막 도착했을 때는 말도 잘 통하고, 편리한 내 나라가 너무 좋아서 영영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낸 지 3주 정도가 되면 슬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내 명의의 집은 아니지만, 내 손때가 묻은 살림이 있고, 내 머리카락이 뒹굴고 있는 침대가 있는 장소. 노브라 티셔츠 차림에도 뭐라고 흉 보는 사람이 없는 그곳. 바로 집이다. 갑작스러운 수술로 한국에서의 일정이 십여 일 정도 길어졌다. 자궁 수술 후 출혈의 가능성도 있거니와 무거운 물건을 들면 안 되고, 쪼그려 앉으면 안 되고, 오랫동안 앉아있어도 안된다는 수술 후 주의 사항 때문이다. 한국에서 밀라노로 오는 것은 이 모든 주의 사항을 어겨야 하는 일이다.
수술을 하고 20일 후에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남편은 먼저 밀라노로 떠난 후였고, 나는 아이 둘과 함께 커다란 화물용 짐 3개와 기내용 짐 3개, 노트북 가방과 크로스백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짐을 많이 챙기지 않으려 했으나,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안 가져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들이 차고도 넘쳤다.
다행히도 12시간의 비행에도 내 골반은 잘 버텨주었다.
드디어 밀라노에 도착해 컨베이어 밸트에서 짐을 하나하나 찾아 카트에 싫었다. 아이들에게 기내용 가방을 하나씩 맞기고 나는 카트를 밀며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쓴 그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출국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휴대폰을 향해 있었다.
“야!”
우리가 가까이 갈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는 그를 향해 얕은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는 그의 손에는 여전히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이혼을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가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간 사이에 나는 카트에서 짐을 내렸다. 주차할 곳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는 눈치껏 차를 세우고 짐을 실어야 한다. 적당한 곳에 짐을 내려놓고 우리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차가 오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다른 차가 와서 주차를 하더니 짐을 싣기 시작했다. 망연자실했다. 이제 우리 차는 어디에 주차를 하지….
그때서야 우리 차가 보였다.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짐을 싣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자동차 머리를 들이밀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얼른 차에 타라고 말한 뒤 트렁크를 열었다. 그가 내려 짐을 차곡차곡 싣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욕심내어 들고 온 가방들이 트렁크에 다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들의 발밑과 앞좌석에까지 가방을 쌓아 놓은 후 내 몸을 뒷자석에 구겨 넣었다.
그는 집으로 운전을 하며 계속 코를 훌쩍거렸다. 쉬지 않고 재채기를 했다. 왜 그러느냐, 알러지가 생겼느냐, 집에 먼지가 많아서 그런 것이냐, 일은 잘되고 있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응, 아니”라고 답했다.
두번째로 이혼을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집에 왔는데 마음이 허전했다. 집안 곳곳에 쳐진 거미줄과 바닥을 줄지어 기어다니는 개미 떼가 눈에 밟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싱크대에는 씻지 않은 그릇이, 베란다에는 시들어 버린 화분이, 책장에는 뿌연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세 번째로 이혼을 결심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날 베개와 이불을 가지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서 잠을 잤다. 일주일 내내 안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나의 이런 파행적인 행동에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아 보였다. 낮에는 최소한의 도리를 하고, 밤에는 소파에서 잠을 청하며 어떻게 이혼을 말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새웠다. 이혼 후에는 또 어떻게 살지 여러 가능성을 헤아렸다.
이혼을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너네들, 엄마 아빠 헤어지면 누구랑 살 거야?”
[이혼한 결심 2는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엄그아가 중학생이 되었다. 한국 나이로 치면 아직 6학년이지만, 프랑스 교육 과정은 초등 5년, 중등 4년이기에 한국에서는 초등학생이지만, 여기서는 중학생 취급을 받는다.
중학생이 되어 새로운 반 배정을 받은 아이는 두 번 큰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 충격적인 진실은 같은 반에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과목 별로 교실을 옮겨 다니고, 다른 반 아이들과 혼합되어 수업을 듣기도 하기에 같은 반의 의미가 크진 않지만, 여러 친구들 중에 단 한 명 과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우 실망스러워 했다.
두 번째 충격적인 사실은 반에 예쁜 여자아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중학생이 되면 여자친구를 한 명 만들고 싶었다는 엄그아는 올해도 여자친구는 물건너 갔다고 생각했다나….
7살 때부터 프랑스학교에 다닌 엄그아는 매번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엄그아가 맨 처음 좋아했던 여자아이는 귀엽고 예쁘게 생긴 ‘미라’라는 아이였다. 그 반에 여자아이는 총 10명 정도였고, 그 중에 미라는 가장 인기가 좋았다. 반면 엄그아는 함께 놀자고 말도 못 붙이는 아이였다. 함께 놀지는 못해도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사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그 학교를 떠나기 전, 나는 엄그아와 미라를 함께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어색하게 서있지만, 활짝 웃고 있는 엄그아의 표정은 이별을 앞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미라 옆에서 마냥 해맑게 웃고 있는 엄그아를 보면서, 이별의 아픔을 알기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그아가 두 번째로 좋아했던 여자 아이는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큰 ‘티아’라는 아이였다. 티아의 아빠는 인도 사람이었고, 티아의 엄마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유럽인과 인도인의 피가 반반씩 섞인 티아는 동양적인 매력과 유럽적인 외모를 모두 갖춘 아이였다.
좋아한다고 고백을 먼저 한 건 티아였다. 티아의 절친이 장난스럽게 전해준 쪽지에 “나 너 좋아해”라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고. 그 고백을 받은 뒤 엄친아는 티아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급기야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을 선물하기에 이르렀다. 그 둘은 결국 커플이 되어 학교 벤치에 어색하게 앉아 대화를 하거나 아이들 몰래 손을 잡았다나…..
불행히도 이들의 관계는 코로나라는 변수로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부모에 의해 인도를 떠나게 되면서 엄친아는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티아와 헤어지게 되었다. (미안해 아들) 인도를 떠난 후에도 한동안 티아와 스카이프로 연락을 하거나 노블록스 게임을 함께 하며 채팅을 했다.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언젠가부터 티아는 연락을 잘 하지 않았고, 엄그아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드렸다. 그래도 엄그아의 마음 속엔 "나 고백 받아 봤다"는 우쭐함과 "여자친구를 사귀어 봤다"는 오만이 도사리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든 그 오만함이 튀어나오곤 했다. (남자들의 자존심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
그 뒤로 새로운 학교에 입학한 엄친아는 여자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밀라노 프랑스 학교의 여자아이들은 죄다 별로라는 게 엄친아의 말이다.
작년엔 여자친구를 사귀지는 못했지만, 친하게 지내는 같은 반 여자아이가 있었다. 알레그라 라는 이탈리아 여자아이인데, 서로 장난도 치고, 서로 욕도 하는 사이이다. 말 그대로 '여사친'인 것이다.
알레그라는 얼굴이 정말 작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내 주먹에 눈, 코, 입이 붙어있는 정도이다. 성격도 좋아서 친구들도 많다. 역시나 작년 발렌타인 데이 때 같은 반 남자 아이가 알레그라에게 고백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알레그라는 그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고, 그 둘은 그 뒤로 사이가 어색해지고 말았다고 한다. "알레그라가 네 고백을 기다린 건 아닐까?"
"아니야! 우리는 그냥 장난치고 노는 사이야. 걔가 맨날 나한테 뻑*,라고 말하고 다니는 구만...."
그래, 서로 뻑*를 날리는 사이에 고백을 하면 안되지....
“엄마, 나도 고백 받고 싶어.”
얼마전 엄그아가 내게 말했다. 나는 고백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고백을 먼저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고백 할 여자애가 없어. 다 못생겼거든.”
아이의 말에 나는 발끈하며 말했다.
“야, 외모가 다가 아니야. 넌 어떻게 예쁜 애들만 좋아하냐?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요한 거야. 착한 여자를 만나야지.”
“아니,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해야지. 엄마는 외모 안 봐? 만약에 아빠가 못생겼다면 결혼했겠어? 응?”
“음….. 그래도 엄마는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근데.... 아빠는 성격을 봤을까, 외모를 봤을까???”
“아빠도 아마 나랑 같을 걸….”
“그런가???"
나는 아이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잘생긴
남자가 좋다. 요즘엔 송강이 참 좋더라…..
몇 달 전 지하철에서 너무 너무 잘 생긴 이탈리아 남자를 봤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남자가 내 맞은편에 서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가장 쭘마스러운 방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바로 "힐끔거리기".
절대 내가 쳐다본다는 걸 그가 눈치 채서는 안된다. 잘생긴 남자들은 지가 잘생긴 걸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쳐다본다는 걸 그가 눈치챈다면 안 그래도 높은 콧대가 더 높아질 것이다. 그건 그 남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콧대가 너무 높아지면, 여자를 만나기 힘들고, 그러면 그 남자의 삶은 점점 지옥이 될 것이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그 잘생긴 남자가 지하철을 내렸다.
남자들도 예쁜 여자를 보면 똑같을 거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잠시 지내는 동안 한 가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김창옥" 님 강의를 보러 가는 일이었어요. 원래 남편이 좋아하던 분이지만, 남편과 함께 그의 강의를 들으며 힘들었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김창옥 님의 강의를 들어보신 분들은 아실 거에요. 청중들이 쓴 사연을 강의 중에 읽어준다는 것을요. 사실 저는 제 사연이 뽑힐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사연이 뽑히도록 글을 썼거든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사연, 남편의 공황 장애, 강사님 덕분에 회복되었다는 스토리는 누가 읽어도 그럴싸 하니까요.
"혹시나 내 사연 뽑히면 내가 자기 말 잘 해줄게."
이렇게 말했을 때 우리집 남편, 아니 남의 편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어버버버 하지나 마~"
그런데 정말로 제 사연이 뽑혔지 뭐에요? 와....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제가 링크를 보내드릴테니, 꼭 봐보세요~ (저는 뒷 부분에 나옵니다 ^^)
이 영상을 언니들이 봐버렸어요.
그리곤 가족 카톡방에 뿌려버렸지요. 사실 누가 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익명의 구독자가 보는 것과 가족들이 보는 것의 민망함은 천지 차이입니다.
문제는 이번 추석 때 시골에 내려간 언니가 친정 엄마, 아부지께도 이 영상을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오마이갓!!!!
우리 둘째 언니는 이렇게 오지랖이 태평양이고, 설레발이 우주인 언니에요.
부디 남편의 회사 관계자들은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또는 제 옛날 남자친구들은 제발 보지 않기를....
또는 저한테 돈 꿔간 그 언니는 제발 보기를.....
여러분의 삶에도 선물 같은 사람이 있나요?
선물 같은 순간이 있나요?
쭘마인밀란 매거진을 읽는 그 짧은 순간이, 여러분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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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umma in Milan (118)
https://youtu.be/kRDpEXT4EZ4?si=hegrOSTrQl33ZED3
zzumma in Milan (118)
김창옥님 강연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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