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ta e bella!

때 늦은 사과란 없다 [from 쭘마인밀란]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

2023.10.27 | 조회 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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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umma in Milan

밀라노에 입성한 한국 아줌마의 유쾌한 생활밀착형 밀라노 이야기

2023. 10. 27.
2023. 10. 27.

며칠 전 아침,

"자기야, 잠깐만 나 할 말이 있어." 하며 남편이 날 불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이런저런 나만의 일을 한 후, 아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의 학교 간식과 남편 점심, 남편의 셔츠 다림질까지 한 후 한숨 돌리고 있던 나는 그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있잖아. 그때 그거.... 그거 진짜 미안했어."

그...거....? 그게 뭘까.... 10년 넘게 살다 보니, 크고 작은 잘못한 일이 많다. 사과를 한 적도 있었고, 사과도 없이 그냥 시간이 지나니 잊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는 도대체 언제 적,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일까?

"그거 있잖아, 치타공에서 아이스크림 일.... 생각해보니 그때는 나도 너무 어렸었고,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강박이 좀 심했던 것 같아.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잘못했던 것 같아. 자기한테도 미안하고, 지안이 한테도 미안하고. 그때 소은이 임신했을 때인가? 소은이에게도 미안하고. 내가 참 미안하네....."

아.... 그 일, 치타공 아이스크림 사건.... 

잊어 먹고 있었다. 그때 그 사건을. 

 


 

그러니까 내가 남편을 따라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따라간 지 약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나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축복받은 내 자궁은 그와 결혼하자마자 첫 아이를 임신하더니, 그를 8개월 만에 만나자마자 또 둘째를 임신했다. 정말이지 축복 받은 자궁인데.... 지금은 없네....) 

남편이 구해 놓은 집은 하필이면 한국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었고, 벵골어도, 영어도 못 했던 나는 온종일 집에만 있었다. 무슬림 국가라서 겁이 났던 나는 주중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남편이 쉬는 일요일에만 함께 교회를 가거나 마트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환경에도 엄청난 적응력을 발휘하는 '초적응인간' 

나는 치타공에 간 지 두세 달 만에 외출을 감행했고, 3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과일 가게에 가서 흥정을 했다. 6개월 즈음 되었을 때부터는 둘째를 임신해 배가 나온 상태에서도 릭샤를 타고 마트를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며 겁도 없다며 화를 내곤 했지만, 온종일 남편만 목 빠지게 기다리며 집에만 있는 것은 감옥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매달 생활비를 주었다. 그 생활비로 한 달을 지내고 나면 빠듯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결혼해 아이까지 키워야 했던 그는 미래를 위해 지금 돈을 아끼고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돈까지 아껴 써야 하는 내 신세가 참 처량하게 느껴지곤 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길 왔는지, 뭘 믿고 그를 따라왔는지. 누구라도 붙잡고 신세 한탄을 하고 싶었지만, 그 모든 게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나는 꾸욱 입을 닫았다.

 

그날도 심심해하는 아이를 데리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왔다. 그중에 맛있어 보이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치타공에서는 야채나 과일은 매우 쌌지만, 수입품 과자는 꽤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비싸봤자, 얼마나 비싸겠나.... 생각하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맛있어 보이는 걸로 하나 샀다.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금액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 영수증을 하나하나 드려다 보던 남편이 비싼 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싼 현지 아이스크림을 사면 되는데 이렇게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 왔냐며,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나를 나무랐다. 지금 우리는 미래를 위해 아껴야 하며 돈을 계획적으로 잘 써야 한다는, 잔소리도 덧붙였다. 

나는 그거 얼마나 한다고, 나 먹을려고 산 것도 아니고 당신이랑 지안이 먹으라고 산 거라고, 억울해 하며 따졌다. 하지만 그는 다시 가서 환불을 하거나 다른 물건을 교환을 해야겠다며 그 아이스크림을 들고 마트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은 환불이나 교환이 안된다고 써있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그를 따라나섰다. 마트에 가서 영수증을 보여주며 실수로 이걸 샀다고,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했지만, 마트에서는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다시 집으로 가지고 왔고, 그는 비싼 수입산 아이스크림을 아주 맛있게 해치웠다.  

 

자고로 임신했을 때 남편이 잘못한 건 두고두고 떠오르는 법. 

나는 잊을만하면 그 일이 떠올랐고, 남편에게 그때 그 일을 언급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 사과를 받았지만, 장난 반 진담 반의 사과였다. 그 일도 10년 이상이 되니 어느새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졌다. 

남편이 그 일을 먼저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사과한 것도 처음이었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다니. 남편과 함께 산 12년의 세월이 그저 흐른 것은 아니었나 보다. 

 

두 아이의 아빠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면서 남편 또한 큰 부담을 안고 살았다. 어렸을 적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경험은 남편에게 돈에 대한 강박으로 돌아왔고, 무책임했던 아버지의 부재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돌아왔다. 그 강박과 부담은 "미래를 위해 지금 아끼며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런 강박과 부담, 신념이 산산이 깨진 건 남편이 공황장애를 앓고 난 이후였다. 미래를 위해 지금 아끼고 돈을 모아도 건강이 나빠지면 아무것도 아니며,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그는 절실히 느꼈다. 공황이 왔던 그 시간 역시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덕분에 그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10년 전 잘못이든, 5년 전 잘못이든, 바로 어제의 잘못이든. 내 잘못이 떠오른다면 지금 바로 "미안해"하고 사과하길 바란다.

때 늦은 사과란 없다. 그리고 사과는 언제나 옳다. 

 

 

 


슬로우리딩 11기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슬로우리딩 마지막 주에는 그 책에 대한 에세이를 한 편 써서 제출해야 합니다.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책의 문장을 인용해 글을 써봄으로써 한 번 더 책의 내용을 복기하고, 문장에 빗대어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로우리딩을 하면서 책을 내 삶에 적용시켜 봅니다. 

멤버들의 글을 받아 편집하는 일이 결코 쉽진 않아요. 디자인도 해야 하고, 목차도 잡아야 하고, 오타도 확인해야 하고요. 매번 힘들지만, 차곡차곡 쌓여가는 문집을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낍니다. 벌써 11권의 문집이 쌓였거든요. 

저희 멤버 중엔 1기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참여하고 계신 분이 계세요. 바로 미숙님이신데요, 미숙 님은 제가 처음으로 '선량한 글방'을 만들어 글쓰기 모임을 모집했을 때 참여하신 분이세요.  

미숙님께서 처음 썼던 글이 아직도 저는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미숙님께서는 부끄럽다 하시겠지만, 점점 더 발전해가는 미숙님을 볼 때 마다 뿌듯함을 느껴요. 

 

대박 사건 하나! 

저희가 이번에 슬로우리딩 했던 책은 바로바로 정재승 교수님의 열두 발자국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뇌과학자인 교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내용인데요, 인문학 같기도 하고, 과학 서적 같기도 했습니다. 

저희 멤버 중 한 분이신 민숙 님께서 인스타그램에 저희 슬로우리딩에 대해 포스팅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글을 정재승 교수님께서 딱 보신 거에요. 그리고 댓글을 남기셨습니다. 

"다음 줌 미팅 하시면  저도 불러주세요!"

이 댓글 하나로 저희 단톡방은 난리가 났습니다. 민숙 님께서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아주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슬로우리딩 3년 차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마치 연예인을 대하는 듯한 마음으로 교수님께 디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2월 중순에!!! 함께 줌 미팅을 하길로 했어요~~~~ 

세상에나 만상에나~~~ 

우리 슬로우리딩 가족들에게 크나큰 선물이자, 동기부여가 되어주었습니다. 

 

슬로우리딩 12기 책은 어마어마한 벽돌 책,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입니다. 걱정도 되지만, 기대도 많이 되네요. 혼자서는 읽기 힘든 책이겠지만, 함께 읽으니 또 끝까지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코스모스 슬로우리딩 멤버를 추가로 4명 모집했는데요, 하루 만에 끝났답니다 ^^ 혹시나 슬로우리딩 관심 있으시면 13기에 줄을 서 주세요~~ 13기는 아마도 2024년에 시작할 것 같군요. 

 

그 외에 "고전문학 읽기모임"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제가 꼭 하고 싶은 독서모임이라서요. 첫 작품으로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코스모스 책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권을 교보문고 해외 배송을 시켰어요. 책 값은 6만원이었지만, 배송비가 8만원이 나왔...... ^^;; 

그래서 더 열심히, 아주 열심히, 배송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읽을 생각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함께 읽으실 분 계십니까? 

댓글로  달아주세요. ^^ 


쭘마인밀란 매거진을 아주 개인적으로 매주 금요일에 발행하고 있습니다. 밀라노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었지만, 쓰다 보니 가족 이야기를 더 많이 쓰게 됩니다. 하긴, 가족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으니 가족 이야기를 빼면 쓸 말이 없기도 하네요. 

최근에 브런치가 새롭게 개편이 되면서 "크리에이터" 작가들에게 연재 브런치북 발행과 응원하기 등의 기능이 생겼습니다. 저는 궁금한 것은 못 참고 직접 해보는 성격이라서 이것도 직접 해보았어요.  응원하기 기능이 과연 도움이 될지 궁금하기도 했고, 매주 연재를 할 수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사실은 책을 쓰고 싶은 마음에 미리 기획을 하고 목차를 잡아 둔 것이 있었어요. 1년 전에 진아 작가님, 정아 작가님과 함께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을 공동 저서 로 낸 후 소소하게 글은 계속 썼지만, 책을 쓰진 못했거든요.  

저는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인 글수밤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줌으로 만나 1시간 30분 동안 각자의 글을 쓰고 30분 동안 그 글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모임을 만든 이유는 제 글쓰기 프로그램을 통해 브런치 작가가 되셨거나,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창구를 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특히 브런치 작가에 합격한 후, 처음의 동기부여가 사라지고 꾸준히 쓰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브런치에 아무리 글을 써도 읽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글 쓰기가 싫어지죠. 

사실 저도 브런치에 글은 쓰지만, 브런치에 일부러 들어가서 글을 읽진 않습니다. 그것 말고도 읽을 게 너무 많거든요. 하지만 글수밤에서 글을 쓰고 공유해준 글은 꼭 들어가서 읽어봅니다. 그리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남깁니다. 혼자서 외롭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함께 글을 쓰고 나눌 때, 조금 즐겁게, 조금 더 오래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진아, 정아 작가님과 지금껏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이유도 바로 함께 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일상을 살지만,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고, 뿌듯해 하는 저희 세 사람의 관계는 분명, 공동저자 그 너머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혹시, 함께 글을 쓰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선량한 글방 오픈 채팅방으로 들어오세요. 그러면 제가 줌 링크를 보내드리고, 글을 나누고, 삶을 나누실 수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글수밤이 글월밤으로 변경됩니다. 월요일 저녁 9시 ~11시까지 함께 만나 글을 씁니다. 단 한분이 참여하시더라도 저는 그 시간을 꼭 지키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 덕분에 저도 매주 글을 쓸 수 있었거든요. 

선량한 글방 입장 코드는 1004입니다. 

 

브런치 연재 브런치북은 이번주 수요일에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La vita e bella, 인생은 아름다워"에요. 제가 그 영화를 참 많이 좋아하는데요, 이곳 이탈리아가 배경이거든요. 유태인 아빠가 독일군에 잡혀 포로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아들을 살리기 위해 삶의 유머와 해학을 잃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도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저는 이곳 밀라노에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지난 2년 동안 비자 때문에 생고생을 했고, 딸아이가 화상을 입었었고, 제가 급성 전신 알러지로 응급실에 가야 했고, 매달 이제는 한계인 것 같다며 짐을 싸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남편 덕분에 이탈리아 말을 배우지도 않았고, 언젠간 떠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살림살이를 잘 사지도 않았지만. 저는 지난 2년이 정말 즐거웠답니다. 힘든 와중에 느끼는 삶의 행복과 즐거움이 바로, 해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 시간이 되신다면 제 브런치에 들러서 글을 읽어주시만 참 감사겠습니다. 

 

 

 

그럼, 11월 첫 금요일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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