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 bocca al lupo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다 신기한 문구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In bocca al lupo"라는 문구이다.
bocca는 입이라는 뜻이고, lupo는 늑대라는 뜻이다. in은 영어의 in과 같은 의미이고, al은 ~ 안에서 라는 의미이다. 즉, "in bocca al lupo"를 직역하면 "늑대의 입안에서"가 된다.
그런데 이 관용어는 "행운을 빌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탈리아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왜 이 말이 Good luck에 해당하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문화와 관련된 관용어일까?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한 가지는 늑대를 사냥하던 사냥꾼에게 "늑대의 입에 들어가지 않기를," 즉 늑대에게 물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탈리아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in bocca al lupo"는 주로 중요한 시험을 앞에 둔 사람 또는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는 사람에게 말한다고 한다. 늑대의 입과 같은 상황에서도 잘 이겨내고 돌아오라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늑대가 자신의 새끼를 무언가로부터 보호하거나 동굴로 옮겨야 할 때 입으로 물어서 데려간다고 한다. 즉, 위험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는 엄마 늑대의 보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늑대의 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보다 긍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삶의 시련이 가지고 있는 양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사는 동안 늑대의 입안에 들어간 듯한 상황을 종종 만난다. 크고 작은 시험부터 감당하기 힘든 시련까지.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 매우 괴롭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그 시간 덕분에 내가 성장했음을 깨닫곤 한다.
나는 종종 남편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면서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지냈던 시간을 떠올리며 대화를 한다. 나는 뭄바이에서 살았던 1년이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남편이 구해 놓은 집을 본 순간, '과연 이곳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집이 너무 작거나 방이 2개뿐이거나 벌레가 나온다거나 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 집의 화장실이 너무 힘들었다. 마치 재래식 화장실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청소를 해도 화장실 구조는 바꿀 수 없었다. 주방 하수구에서 쥐가 나왔을 때는 그 집에 대한 정이 완전히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들과 남편이 학교와 회사에 간 후, 홀로 고요히 있을 때 들리던 "찍찍찍" 소리, 벽을 긁는 소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게 했다. 설마.... 하며 며칠을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 들어갔을 때, 검은색 형체가 싱크대 위에서 움직이는 걸 목격했을 때 나는 주저앉아 울부짖고 말았다.
가끔 외국인 친구들이나 한인교회 집사님 집에 가면 집이 너무 좋아 입이 쩌억 벌어졌다. 넓은 거실이나 방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화장실은 또 어떻고. 깨끗한 주방에서는 요리할 맛이 절로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집에는 청소해 주는 아줌마가 있었다. 그들의 아파트 컴파운드 안에는 대부분 수영장이 딸려 있었다. 가끔 그들이 함께 수영을 하자고 초대해주면 아이들 수영복을 챙겨 그들의 집으로 향하곤 했다.
내 상황과 그들의 상황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무엇을 위해 이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안개 낀 어두운 터널?
아니, 그건 분명 늑대의 입에 들어간 듯한 상황이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탈리아의 삶을 힘들어한다. 특히 싱가폴, 홍콩, 베트남 등 서비스가 매우 좋은 나라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유독 힘들어한다. 여긴 유럽이 아니라 '제2의 중국'이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느려터진 행정 시스템, 말이 안 통하는 공무원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 다른 사람 눈치는 전혀 보지 않는 자기중심적 사람들.
하지만 나는 이곳이 너무 좋다. 행정은 느리지만, 결국엔 진행되기 마련이고, 안하무인 공무원들이 때론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힘드니 이탈리아어 공부를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힘든 상황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힘든 상황이 미래의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늑대에게 잡아먹힐 것 같은 상황일 때, 이제 곧 죽을 것 같아 낙심하지 말고, 나를 지켜주기 위해 엄마 늑대가 나를 입으로 물어 안전한 처소로 옮겨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혹시, 지금 늑대의 입에 들어간 듯한 상황에 처했다면 당신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In bocca al lupo"
2. 이탈리아에서 담배란?
요 며칠 인터넷에 "제니 흡연 논란"으로 꽤나 시끄럽다. 이탈리아 남부 카프리에서 화보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을 받던 중, 실내에서 전자담배 흡연을 한 모습이 브이로그에 떡하니 올라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로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큰 충격이거니와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실내 흡연을 한 것은 더욱 문제라고 사람들은 지적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5년 전, 제니의 불법주차 관련된 기사까지 재소환 되어 "갑질 연예인" "개념 없는 연예인"이라고 말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영상을 편집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인데 실내 흡연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를 아무런 필터링 없이 올렸다는 사실과 주위에서 실내 흡연에 대해 아무도 제재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 모두 '전자 담배 실내 흡연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밀라노 거리를 거다 보면 담배를 피는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이른 아침, 학생들이 가방을 매고 학교 가는 길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은 아주 흔한 일이다. 어린아이 손을 잡고 등교를 시키며 담배를 피우는 엄마, 유모차를 끌며 담배를 피우는 엄마, 학교 앞에서 선생과 학부모가 맞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선생님들이 학교로 출근하기 전 교문 앞에 함께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렵다.
며칠 전 길을 걷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한 여자가 전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역시나 깊은 연무가 뿜어져 나왔다. 그 연기가 내 코로 들어왔다. 그런데, 딸기 향이 나는 것이 아닌가?
전자 담배의 연무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던 담배 연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달콤한 향기가 난다. 그러니 전자 담배는 아무 데서나 피울 수 있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에도 이런 전자 담배를 많이 애용하는 것 같다. 며칠 전 넷플릭스로 보았 청소년 드라마 "하이라키"에는 재벌들의 자녀가 다니는 "주신고"가 나온다. 그 드라마에는 학생들이 전자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한국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유럽에서는 너무 흔한 일 중 하나이다.
담배를 커피나 술 같은 개인의 기호식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과연 오를까?
술이나 담배는 혼자 마시지만, 담배는 주위 사람들에게 간접 흡연이라는 피해를 준다. 그러니 담배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엄격한 법으로 통제해야 하는 제품"으로 취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약류의 약물처럼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처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30년 넘게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형부도 담배를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명 인플루언서로서 제니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죽일 듯이 덤벼드는 언론이나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전후 상황을 확인하지 않은 채 비난부터 퍼붓는 키보드 워리어는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비난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한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슈가 생기면 모든 사람들이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가 말을 보태는 상황은 조선 시대의 멍석말이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 둘 돌을 내려놓고 돌아간다.
우리는 정말 깨끗한 사람들인가 되묻고 싶다. 타인의 잘못 하나를 꼬투리 잡아 사회에서 매장시켜버릴 듯이 달려드는 사람들은 정말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들인가?
현시대는 매우 쉽게 다양한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인터넷 기사, 유튜브, sns를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생활부터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정보까지 매우 쉽게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콘텐츠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눈과 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 또한 내 중심적인 글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공감이 되는 부분은 취하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버려도 상관없다.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과 생각대로 글과 영상을 대할 때 우리의 사회가 더욱 건강해질 거라 생각한다.
3. 선량한 사람들
지난 일요일 저녁, 저희 가족은 Pavia파비아라는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밀라노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차로 가면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마침 비까지 내렸습니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 쉬어야 할 남편과 함께 이곳까지 간 이유는 바로, 이인재 성악가님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였어요. 이인재 성악가님은 제가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의 첫 인터뷰이 이십니다. 그분의 삶을 듣고 글로 쓴 이후, 저는 이인재 성악가님 부부를 더욱 응원하게 되었고,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게 되었거든요. 인스타그램에서 공연 소식을 들은 순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이 있는 곳은 천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담한 예배당이었어요. Basilica di San Marcello in Montalino 라는 교회입니다.
12세기 초에 지어진 고대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교회는 평소엔 내부를 공개하지 않지만,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는 공개를 한다고 해요. 마침 이렇게 역사가 깊은 곳에서 공연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총 10 명의 성악가들이 노래를 불렀는데요, 그중에 2명은 일본인 성악가였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 분들이었어요. 이렇게 오래 된 이탈리아 교회에서 동양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몹시 고무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이 별로 없었어요. 스트라델라 지역 행사라고 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오질 않았더라고요. 전 그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정말 양질의 공연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전 지금 밀라노살이 3년 차입니다. 처음 밀라노에 왔을 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독고다이로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몇몇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한 번씩 커피도 사주셔서 그나마 초기 밀라노 정착 생활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 결심을 한 게 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자!"
작은 관심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특히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들에게 관심은 다시 노래할 수 있는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제 관심은 그들을 향한 응원이자 박수였어요.
그 관심은 밀라노에 새로 온 사람들을 향하기도 합니다. 저희가 밀라노 초기 정착기에 느꼈던 외로움을 잘 알기 때문인데요. 그때 들었던 "커피 한잔할까요?" 이 말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도 잘 압니다.
그런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 매거진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잘 몰랐던 한 사람의 삶을 듣고 글로 쓰다 보면 저는 삶 앞에 겸손해지곤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 내 가치관이 무조건 옳다"라는 아집에서 멀어질 수 있었어요. 다양한 삶 앞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지요.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 매거진은 제 브런치에서 연재하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브런치에서 읽어주세요.
그럼 이번 주도 행복하게 보내기실 바랍니다.
Buona Settiman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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