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다시 한번 짐을 싸서 숙소를 옮겼다. 밀라노 시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을 중심으로 남양주 정도라고 할까. 우리가 지내게 될 세 번째 숙소는 몬차라는 곳에 있었는데, 몬차 시내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다. 밀라노 시내를 벗어나면 사방이 시골이다. 건물도 많지 않고, 밀과 보리, 옥수수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우리 숙소도 보리밭 바로 옆에 있었다.
체크 인을 하고 룸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여니 보리밭이 넓게 보였다.
"저 정도의 보리밭을 가지고 있으면 만석꾼일까?"
뭐든지 자본으로 연결 시키는 남의 편이 못마땅해서 눈을 흘겼다. 농사일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자의 상상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는 언제나 목가적 삶을 꿈꾼다.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 소리가 들리고 정원에 고요히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즐기는 삶. 조금만 발길을 돌리면 숲이 있는 삶.
나는 그가 원하는 삶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나 할까 싶다. 우리가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이룰 수 없는 삶이기도 하다. 로또에 당첨될 일도 경제적 자유를 이룰 일도 없기에 당신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꾸욱 참았다.
숙소에서 밀라노 시내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등하교를 남편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3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이 아침마다 막힐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걸 확인하곤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일어나~ 지금 출발해야 해~" 늦장 부리는 아이들을 다그쳤다. 결국 아이들은 지각을 했다.
아침 7시 20분에 아이들과 남편을 보내면 내 세상이 된다. 일단 급한 일부터 시작한다. 이번 주부터 시작한 쓰담쓰담 4기 오픈채팅방으로 들어간다. 한국 시각으론 새벽 4시에, 밀라노 시각으론 전날 밤 9시에 배달한 글감에 맞춰 부지런히 글을 쓴 멤버들의 글을 하나하나 읽는다.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울컥하다가, 배시시 웃다가 어느 순간 충만해진다.
'아.... 내가 이래서 쓰담쓰담을 계속하고 있지....'
누군가의 삶을 읽는다는 건, 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누군가의 과거를, 누군가의 눈물을, 누군가의 노력을 읽으며 나는 온 마음 다해 응원의 댓글을 보낸다. 이 순간만큼은 주술 호응이나 문장의 인과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온종일 글감을 생각하다 영감이 떠오르면 그것을 쓰는 시간. 직접 쓰는 시간은 단 10분일지라도, 글감을 생각하며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모든 시간이 바로 쓰담의 시간이다. 바로 삶으로 나를 쓰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었으니, 이제 내 글을 쓸 시간이 되었다. 출간을 위한 원고를 마저 써야 한다. 마음연결 출판사 대표님으로부터 받은 피드백 원고를 노트북 화면에 띄워 놓고 멍~하니 바라본다.
"대표님, 저는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도 정 이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면 이 단어는 어떨까요? 그리고 이렇게 감정을 뺀 문장은 제 문체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전 감정을 드러낸 건조한 문장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짠단짠, 과장과 축소가 넘나드는 문장이 좋다고요....."
중얼중얼 대표님께 항의를 해본다. 하지만 대표님의 피드백대로 글을 수정하고 있는 날 깨닫는다. 이런, 이번에도 지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장을 이어가지 못할 땐 피드백 원고를 그대로 화면에 띄워놓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또는 블로그에 글을 쓴다. 아니면 인스타그램 피드를 하나 만든다. 그러니까 아이들과 남편이 없는 시간 동안 계속 글을 쓰거나 글을 읽는다.
이곳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충분히 쉬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며 체력과 마음을 키우고 싶었다. 다음 주부터는 내가 버스를 타고 아이들을 픽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도 글을 쓰고 있다. 가족들이 없는 시간 내내, 아무도 날 찾지 않는 시간 내내, 고요한 시간 내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겐 쉼의 시간이 아니라 숨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글은 나에게 호흡이나 마찬가지다. 들숨과 날숨이 멈추면 더 이상 살 수 없는 것처럼. 글은 나에게 들숨과 날숨이다. 짧은 글과 긴 글, sns글과 책 쓰기, 나의 글과 타인의 글을 넘나들며 숨을 쉰다.
지금 이시간은 나에게 심호흡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좀 더 깊고 좀 더 길게 숨을 쉬기 위한 시간. 심호흡의 시간을 충만히 가지고 나면, 나는 좀 더 깊고 좀 더 긴 길을 쓸 수 있을까.....
"선량님은 분명 잘 되실 거예요."
최근에 이 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잘 되고 싶다.... 잘 되고 싶다.... 진짜 잘 되고 싶다.... 이 마음을 품은 지 꽤 되었다. 그런데, 잘 된다는 게 과연 뭘까?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그게 명확하지 않다는 걸 곧 깨닫는다.
흔히 말하는 "잘 된다"는 내가 쓴 책이 갑자기 잘 팔린다거나, 내가 갑자기 유명해진다거나, 갑자기 돈을 많이 번다거나.... 누가 봐도 잘 된 경우를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세 가지 유형에 모두 해당되지 않으니, 아직 잘 안된 것인가? 누군가 새워 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다 보니, 나는 계속 잘 안된 상태에 머물렀다.
기준을 한번 바꿔보기로 했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처음으로 글을 썼을 때 어땠더라? 내가 쓴 글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출판사에 투고했다. 지금은 그게 너무나도 창피해 모두 거둬들이고 싶다.
처음으로 글쓰기 모임을 했을 때 어땠더라? 가슴이 두근거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과연 누가 관심을 가져줄지, 신청자가 있을지.... 걱정되어 하루에도 여러 번 신청서를 확인했다. 두세명이 모였을 때는 너무 기뻐 눈물이 다 났다.
처음으로 전자책 만들기 강의를 만들었을 때 어땠더라? 아무리 기다려도 신청자가 없어서 조용히 모집 피드를 삭제했다.
일 년 전, 매거진을 처음 만들어 발행했을 때 어땠더라? 총 열다섯 명의 구독자에게 매주 글을 발행했다. 나는 그분들이 너무 고마웠지만, 지속할 수는 없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보니, 그때 비해 잘 되긴 했다. 두 번째 기획 출간을 준비하고 있고, 쓰담쓰담은 하루 만에 마감이 되고, 전자책 코칭도 하고 있고, 쭘마인밀란 매거진 구독자가 100명을 향해 하고 있다. 나.... 잘 되고 있네?
"선량님은 꾸준히 하시니, 분명 잘 될거예요."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꾸준히 쓰면 언젠가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지.... 정말 다행인 것은 중간중간 고비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글을 계속 썼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잘 되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는 글이 습관을 넘어 삶이 되어버렸다.
나는 나 혼자 말고 함께 잘 되고 싶다. 함께 공동저서를 준비하는 작가님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고, 글방 가족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고, 출판사 대표님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들 틈에 끼어서, 나도 좀 더 잘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우리 함께, 잘 되어볼까요?
지난 주일, 나는 예배 중간에 앞으로 나가 간증문을 읽었다. 간증문은 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인데, 7주 동안 참여했던 '마더와이즈' 수료식 이후 간증문을 써야 했고, 팀 대표로 앞에 나가 그 간증문을 읽어야 했다. 순전히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서 뽑힌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역시나.... 신비주의로 남았어야 했나.... 하지만 이미 밀라노 교회 분들 몇 명이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셨고, 내가 매일 올리는 피드를 보고 계시니, 더 이상 신비주의는 통하지 않았다.
간증문과 에세이는 비슷하면서 다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야 한다는 점에서 에세이와 같지만, 기독교적인 시선과 문장을 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간증은 말 그대로 내가 경험했던 은혜의 경험을 쓰는 일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내가 간증해야 하는 게 맞는 일이었던 것도 같다.
밀라노에 다시 와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둘째 딸아이가 화상을 입어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한밤중에 아나필락시스 반응으로 급하게 응급실에 다녀오기도 했고, 갑작스럽게 숙소를 옮겨 다니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수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성경 공부에 참여했으니,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바쁜데 이상하게도 수요일 오전 시간을 꼭 지켜서 성경 공부에 참여했다. 지하철과 트램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 교회에 가면 커피와 간식이 있었는데, 그게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이 좋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성악이나 패션 계통으로 유학 온 청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다시 청년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더욱이 함께 성경 공부에 참여했던 자매가 집을 소개해 줘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은혜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고심하며 간증문을 써서 보냈다. 보내고 나니, 비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중복된 표현과 잘못된 문장을 퇴고하며, 좀 더 은혜스럽게 써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에세이가 그렇듯 거짓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은 모두 같은 것 같다. 책을 쓰든, SNS에 쓰든, 짧은 글을 쓰든, 긴 글을 쓰든.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쓸 때 그게 가장 제대로 쓴 글인 것 같다. 간증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은혜를 과장해서 쓰는 순간, 그것은 거짓이 되고 만다. 은혜를 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욕을 먹고 있는 것 아닌가.
약간 떨린 목소리로 간증문을 다 읽고 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내려왔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최선양 집사님은 작가님이십니다. 작가님답게 요점을 잘 써주신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다.
아.... 이렇게 전 교인에게 커밍아웃하고 말았다. 이제 글 쓰는 일이 훨씬 더 조심스러워졌다. 19금 에세이 어떻게 쓰지.....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어느덧 초여름이 되었네요. 요즘 여기는 소나기가 내립니다. 더운 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녹여줍니다.
저는 이번 주에 쓰담쓰담 4기를 시작했어요. 총 열여섯 분이 모이셨는데요, 며칠 지난 후에 모집 글을 보시고 연락을 주신 분도 계셨어요. 정말 감동이지요. 함께 참여해주신 분들 덕분에 4기까지 꾸준히 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엔 제 지인 세 분도 참여하셨는데요, 한 분에 저의 20년 지기 절친 언니고, 다른 한 분은 방글라데시에서 만났던 언니이고, 또 다른 한 분은 뭄바이에서 만났던 절친한 동생입니다. 어쩌다 보니 각자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인연이 된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그분들과 매일 글을 나누면서 새로운 감정에 휩싸이곤 합니다.
쓰담쓰담 4기가 끝나면 여름방학을 할 예정이에요. 여름방학 동안에는 초고클럽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난 매거진에서 미리 말씀드렸듯이, 초고를 쓰는 모임인데요. 5~6명 정도의 소수 인원으로 할 생각입니다.
다음 주엔 슬로우 리딩 5기를 모집 할 예정이에요. 루소의 "에밀" 책으로 슬로우 리딩 할텐대요, 이미 책을 사놓고 기다리신 분도 계시고, 미리 자리를 찜 해 놓은 분도 계세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지난 5월 말에 제가 코칭해서 출간한 안아조 작가님의 '마음속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요' 책이 유페이퍼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교보문고나 예스24, 알라딘은 아니지만, 최근에 유페이퍼에서 전자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거든요. 저는 크몽보다도 유페이퍼를 더 선호하는데요, 전자책 ISBN을 발급 받아 여러 서점에서 유통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번째 전자책일대일코칭도 하고 있어요. 두 번째 책은 따스한 스피커 '따스코치'님의 스피치 책입니다. 실용서에 에세이적인 부분이 가미 된 책인데요, 저는 이 책을 코칭하며 저에게 필요한 스피치 기술을 몰래 연습해보기도 하고, 호흡법을 따라 해 보기도 했답니다. 분명,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책 같아요. 이 책은 부크크 종이책으로도 만들 예정이랍니다.
쭘마인밀란 매거진도 어느덧 25회가 되었어요. 매거진도 여름엔 잠시 휴식기를 가질 생각인데요, 아직 날짜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구독자가 100명을 향하고 있는데요, 더 재밌는 이야기, 더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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