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인재 전쟁에서 지고 있다

GDP 대비 R&D 투자 세계 2위인 한국이, 인재 경쟁력 순위에서 25위 밖으로 밀려난 이유

2026.03.05
from.
Kwangseob
오즈의 지식토킹의 프로필 이미지

오즈의 지식토킹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주로 기술, 인문학,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들어가며

구독자님, 요즘 뉴스를 보면 '인재 전쟁'이라는 단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해요. 미국과 중국의 AI 인재 쟁탈전, 실리콘밸리 과학자들의 유럽 이주… 그런데 이 전쟁의 진짜 승패를 가르는 건 누가 더 많은 돈을 쓰느냐가 아니에요.

한국은 R&D에 GDP 대비 약 5%를 쓰고 있어요.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에요. 프랑스는 약 2.2%로 한국의 절반도 안 돼요. 그런데 지금 전 세계 과학자들이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고 있어요. 한국행 비행기는 아니에요.

오늘은 글로벌 인재 전쟁의 지형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이 이 전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H-1B: 혁신의 연료에서 정치적 뇌관으로

이 이야기의 시작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미국은 냉전이 끝나고 정보기술 시대가 열리면서, 전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를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H-1B 비자를 만들었어요. 1990년 이민법(Immigration Act of 1990)을 통해 탄생한 이 비자는 연간 6만 5천 명 한도로 고급 전문직 외국인 인력을 받아들이는 제도였어요.

효과는 즉각적이었어요. 닷컴 붐 시기에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스타트업들이 H-1B를 통해 글로벌 엔지니어를 대거 채용했고, 한때 의회는 연간 한도를 19만 5천 명까지 늘리기도 했어요. H-1B는 말 그대로 실리콘밸리의 연료였던 거예요.

그런데 이 비자의 성격이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해요. 2000년대 중반부터 인포시스, 타타, 코그니전트 같은 IT 아웃소싱 기업들이 H-1B의 최대 사용자로 떠올랐어요. 이들은 인도에서 중간급 기술자를 대량으로 데려와 미국 내 일자리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비자를 활용했죠. '초엘리트 인재를 위한 비자'라는 원래 취지와는 동떨어진 거였어요.

결정적 전환점은 2016년이에요. 러스트벨트[1]​의 백인 노동자들이 H-1B를 '일자리를 빼앗는 비자'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분노를 정치적으로 흡수했어요. 2025년에는 H-1B 신규 신청에 10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행정명령까지 내려졌어요. 혁신의 도구가 정치적 뇌관이 된 거예요.

그리고 비자 정책만 바뀐 게 아니에요.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과학 예산도 대폭 삭감했어요. 미국 국립보건원(NIH) 예산은 약 480억 달러에서 40% 가까이 삭감 논의가 진행됐고, 컬럼비아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같은 명문 대학들은 연구비 동결과 소송에 휘말렸어요. 미국의 과학 생태계 전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프랑스: "돈 대신 자유를 줄게"

이 틈을 가장 영리하게 파고든 나라가 프랑스예요.

사실 프랑스의 전략은 2017년에 시작됐어요.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Make Our Planet Great Agai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후 과학자들을 프랑스로 초청했어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는 영구 연구직을 제안했고, 약 6천만 유로 규모의 기후 연구 재단을 설립했어요.

그리고 2025년 4월, 프랑스는 한 단계 더 나아갔어요. 'Choose France for Science'라는 플랫폼을 정식 런칭한 거예요. 이건 프랑스 국가연구기관(ANR)이 운영하는 공식 채널로, 전 세계 과학자들이 온라인으로 지원할 수 있어요. France 2030이라는 540억 유로 규모의 국가혁신투자계획의 일부이고, 인재 유치에만 약 15억 유로가 배정되어 있어요.

여기서 주목할 건 프랑스의 접근법이에요. 단순히 "돈을 많이 줄게"가 아니라 세 가지를 약속했어요.

첫째, 학문의 자유예요. 미국에서 정치적 이유로 특정 연구 주제가 제한되거나 특정 용어 사용이 금지되는 상황에서, 프랑스는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하세요"라고 말한 거예요. 둘째, 영구직 안정성이에요. CNRS는 한번 채용되면 자발적 퇴직이나 은퇴 때까지 보장되는 영구 연구직을 제공해요. 미국의 '텐뉴어 트랙'[2]​보다 훨씬 안정적인 조건이에요. 셋째, 프로젝트 참여 기회예요. 예를 들어 NASA에서 해고된 한 천체물리학자에게 마르세유 대학교는 3년 계약과 함께 프랑스에서 발사되는 모든 우주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파격 조건을 내걸었어요.

결과는 놀라웠어요. Choose France for Science 첫 선정에서 46명의 연구자가 선발됐고, 이 중 41명이 미국 출신이었어요. 엑스-마르세유 대학교가 독자적으로 운영한 'Safe Place for Science' 프로그램에는 300명 넘게 지원했어요. ERC(유럽연구위원회) 시너지 그랜트에서도 미국 기반 연구자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전년 12건에서 21건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어요.

중국: "양보다 폭"으로 승부하다

프랑스가 '연구의 자유'로 과학자들을 끌어들인다면, 중국은 완전히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어요. 2025년 10월 1일, 중국은 K비자라는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공식 시행했어요.

K비자가 기존 비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어요. 고용주 스폰서가 필요 없어요. 미국의 H-1B가 반드시 기업의 후원이 있어야 하는 것과 달리, K비자는 본인이 직접 신청할 수 있어요. STEM 분야 학사 이상이면 지원 자격이 주어지고, 장기 체류, 세금 감면, 주거 지원, 자녀 국제학교 접근까지 패키지로 제공돼요.

그리고 중국은 이걸 한 가지 기준으로 통일하지 않았어요. 지역별로 자체 기준을 설정할 수 있게 했어요. 상하이 자유무역구는 스타트업 창업자, 핀테크, 반도체 전문가에게 초특급 우대를 제공하고, 선전·광둥 지역은 첨단 기술 분야에 집중하면서 별도의 세금 환급 기준을 적용해요. 하이난은 관광·금융·항공우주를 타깃으로 잡았고요.

또 하나 눈여겨볼 건, 중국이 영어 서류를 받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중국은 전통적으로 모든 공식 서류를 중국어로 요구하는 나라예요. 희토류 수출 관련 서류도 미국 기업에게 중국어로 작성하라고 요구했을 정도죠. 그런 나라가 K비자 신청에는 영어를 허용했어요. 온라인 지원까지 가능하게 만들었고요. 이건 중국이 얼마나 절박하게 외국 인재를 원하는지 보여주는 시그널이에요.

물론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아요. 중국의 16~24세 청년 실업률이 약 18.9%에 달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인재 유치 정책에 대한 소셜미디어 반발이 거세요. 관련 해시태그 조회수가 이틀 만에 약 5억 건을 넘었다는 보도도 있었어요. 하지만 중국 정부의 기조는 분명해요. 전략적으로 선별된 소수의 핵심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거예요.

첨부 이미지

오스왈드의 시선

저는 이 글로벌 인재 전쟁을 보면서 GTM 전략가의 시선으로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어요.

인재 시장에서 승리하는 건 '가격 경쟁'이 아니라 '포지셔닝'이에요.

프랑스는 연간 R&D 예산이 한국의 절반 수준이에요. GDP 대비로 봐도 한국이 약 5%, 프랑스가 약 2.2%로 두 배 넘는 차이가 나요. 그런데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프랑스를 선택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프랑스가 제공하는 건 돈이 아니라 "당신의 연구가 여기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약속이거든요. 중국도 마찬가지예요. K비자의 핵심은 연봉이 아니라 "고용주 없이도 올 수 있다"는 진입 장벽의 제거예요. 인재가 원하는 건 돈보다 기회의 구조를 설계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한국은 어떤가요? INSEAD가 발표하는 글로벌 인재경쟁력지수(GTCI) 2025에서 한국은 Top 25 밖으로 밀려났어요. R&D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투자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인재 경쟁력에서는 포르투갈보다 낮은 순위라는 거예요. 미국조차 9위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Top 10 안에는 있어요.

제가 보기에 한국의 문제는 투입(input)과 유인(attraction)의 불일치예요. 돈은 많이 쓰지만, 그 돈이 해외 인재가 한국을 선택할 이유로 전환되지 않고 있어요. 프랑스가 "학문의 자유"를, 중국이 "비자의 유연성"을 무기로 삼는 동안, 한국이 글로벌 인재에게 제시하는 고유한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은 무엇인지 솔직히 명확하지 않아요.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프랑스의 마크롱이 보여준 건, 뛰어난 인재는 연봉이 아니라 "내 연구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내가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가"에 반응한다는 거예요. 한국도 돈을 더 쓸 게 아니라, 그 돈으로 어떤 기회의 구조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예요.

마치며

정리하면 이래요. 첫째, 미국의 H-1B 축소와 연구비 삭감이 글로벌 인재 이동의 방아쇠를 당겼어요. 둘째, 프랑스는 돈이 아니라 '연구의 자유와 기회'라는 포지셔닝으로, 중국은 '진입 장벽 제거'라는 구조 설계로 이 인재를 흡수하고 있어요. 셋째, 한국은 R&D 지출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 투자가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이는 힘으로 전환되지 않고 있어요.

인재 전쟁에서 이기는 건 '얼마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약속을 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한국이 글로벌 인재에게 건넬 수 있는 약속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게,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관련 영상


 

각주

  1. [1] 러스트벨트(Rust Belt): 미국 북동부~중서부에 걸친 옛 제조업 중심 지역이에요.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이 포함되며, 제조업 쇠퇴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지역을 가리켜요.
  2. [2] 텐뉴어 트랙(Tenure Track): 미국 대학의 교수 임용 제도로, 일정 기간(보통 5~7년) 심사를 거쳐 통과하면 종신 재직권(tenure)을 얻는 구조예요. 통과하지 못하면 대학을 떠나야 해서 불안정하다는 비판이 있어요.
첨부 이미지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KBMA와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6 오즈의 지식토킹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주로 기술, 인문학,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뉴스레터 문의me@oswarld.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