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야쿠르트 아줌마가 사회 안전망이 된 나라, 그리고 배달 플랫폼이 된 나라

같은 유산균 음료 배달원이 일본에서는 고독사를 막고, 한국에서는 신용카드를 배달한다.

2026.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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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s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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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구독자님, 한국에서의 야쿠르트와 일본에서의 아쿠르트의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아시나요?

지난주 BBC가 흥미로운 기사를 냈어요. 일본의 야쿠르트 레이디가 "비공식 사회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25년간 매주 월요일 도쿄 북서쪽의 80대 노부부를 방문해온 한 야쿠르트 레이디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요. 그 노부부는 이렇게 말했어요. "자녀가 독립한 후, 매주 누군가가 우리 얼굴을 보러 온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에요."

같은 시기, 한국의 hy(구 한국야쿠르트)는 배달앱 '하이노크'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프레시 매니저가 야쿠르트 대신 음식을 배달하는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거예요. 1971년, 같은 뿌리에서 시작한 두 나라의 '야쿠르트 아줌마'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오늘은 이 갈림길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일본: 유산균 배달이 고독사 예방이 되기까지

일본에는 현재 약 4만 명의 야쿠르트 레이디(일본은 야쿠르트 배달원을 이렇게 불러요.)가 활동하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는 8만 명에 달하고요. 이들의 일은 단순해요. 매일 아침 같은 동네의 같은 집을 돌며 유산균 음료를 배달하는 거예요. 한 명이 하루 40~45가구를 방문해요.

그런데 이 단순한 반복이 예상치 못한 사회적 기능을 만들어냈어요.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9%예요. 2024년 상반기에만 고독사로 사망한 사람이 4만 913명이에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686명이 늘었어요. 일본 정부가 2021년에 '고독 담당 장관'까지 임명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예요.

야쿠르트 레이디 는 이 틈새를 메우고 있어요. 정해진 시간에 방문했는데 인기척이 없거나, 지난번 배달한 제품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이상 징후로 감지해요. 2020년 기준으로 약 3,000명의 야쿠르트 레이디가 131개 지자체의 요청을 받아 3만 7,000명 이상의 독거노인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어요.

이 시스템의 시작이 흥미로워요. 후쿠시마의 한 야쿠르트 레이디가 독거노인의 고독사 소식을 듣고, 자비로 노인들에게 야쿠르트를 배달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 자발적 행동이 지역 사회복지사와 지자체를 움직였고, 결국 전국적인 '예의 방문(Courtesy Visit)' 프로그램으로 확산됐어요. 개인의 움직임이 기업 전체로 퍼진거에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야쿠르트 후쿠시마 공장이 멈추고 배달할 제품이 떨어지자, 야쿠르트 레이디들은 스스로 판단해서 물과 컵라면을 고객에게 무료로 배달했어요. 당시 CFO는 인력 감축을 제안했지만, CEO 와타나베 히로미는 오히려 전 직원의 고용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했고요. 생산이 재개된 후 5개월 만에 매출이 전년 수준으로 회복됐어요.

한국: 같은 네트워크, 전혀 다른 방정식

한국 hy의 프레시 매니저도 약 1만 1,000명이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550개 물류 영업거점, 하루 500만 개의 제품 처리량. 규모만 보면 일본 못지않아요. 그런데 hy가 이 네트워크를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요.

2021년 사명을 한국야쿠르트에서 hy로 바꾸면서 '유통 전문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어요. 온라인몰 프레딧을 열고, 유제품 외에 화장품, 밀키트, 생활용품까지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프레시 매니저의 냉장 전동카트 '코코'는 더 이상 야쿠르트만 싣지 않아요. 이유식 배송 대행, 생활용품 업체 와이즐리의 제휴 배송, 심지어 신용카드 배송까지 맡고 있어요.

2024년에는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구 메쉬코리아)을 인수하고, 배달앱 시장까지 진출을 시도했어요. 프레시 매니저가 음식 배달까지 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는 거예요.물론 한국에서도 프레시 매니저의 돌봄 기 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한국 야쿠르트 공식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약 3만 명의 독거노인 안부를 확인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독거노인의 고독사 현장을 발견한 프레시 매니저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건 사업 모델의 핵심이 아니라 부수 효과에 가까워요. 기업의 투자와 전략적 방향은 철저하게 물류 플랫폼 쪽을 향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봉사활동, 사회적 책임 활동에 일환으로서 하고 있는거죠.

실적도 이 방향을 뒷받침해요. hy의 2024년 매출은 1조 6,826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8% 증가했어요. 소재 B2B 사업은 2020년 35억 원에서 시작해 2021년 100억 원으로 278% 성장했고요. 프레딧 매출 목표는 1,000억 원이에요.

왜 같은 네트워크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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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갈림길을 만든 건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조건이에요.

첫째, 고령화의 단계가 다릅니다. 일본은 이미 인구의 29%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예요. 2050년에는 1인 고령자 가구가 1,100만에 이를 전망이에요. 돌봄의 공백이 사업 기회보다 사회적 위기로 먼저 다가오는 단계예요. 한국은 아직 초고령사회 진입 직전이에요. 물론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지만, 지금 이 순간의 시장 환경은 '돌봄 수요'보다 '배달 경쟁'이 더 뜨거워요.

둘째, 경쟁 환경이 완전히 다릅니다. 한국에는 쿠팡, 배달의민족, 컬리, 마켓컬리 등 라스트마일[1]​ 배송의 치열한 전쟁터가 펼쳐져 있어요. hy의 프레시 매니저 네트워크는 이 전쟁에서 차별화된 무기가 될 수 있어요. 냉장 배송 인프라를 이미 갖추고 있으니까요. 반면 일본에서는 편의점(콘비니)이 이미 생활 인프라의 대부분을 흡수해버렸어요. ATM, 공과금 납부, 행정 서류 발급, 택배 접수까지. 세븐일레븐은 2017년부터 고령자 다수 거주 단지에 특화 점포를 열어 식사 배달, 입·퇴거 서류 접수, 대형 쓰레기 처리까지 대행하고 있어요. 편의점이 '하드 인프라'를 담당하는 사이, 야쿠르트 레이디는 편의점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온기'라는 소프트 인프라를 채우게 된 거예요.

셋째, 제도적 맥락이 다릅니다. 일본 정부는 고독사를 국가 의제로 설정하고, 지자체가 민간 기업과 협정을 맺어 안부 확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체계를 만들었어요. '미마모리(見守り)'[2]​라는 이름의 이 시스템에 야쿠르트, 우편배달부, 가스 검침원까지 참여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독거노인 돌봄이 별도의 복지 체계(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등)로 운영되고 있어서, 민간 기업의 배달 네트워크가 사회 안전망으로 제도화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저는 이 이야기에서 '민간 기업이 사회 인프라가 되는 조건'에 대한 힌트를 읽어요.

야쿠르트 레이디가 사회 안전망이 된 건 야쿠르트 본사가 "우리는 사회적 기업입니다"라고 선언해서가 아니에요. 후쿠시마의 한 야쿠르트 레이디가 자비로 노인에게 음료를 배달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고, 지자체가 이 모델의 가치를 인식해서 제도적 뒷받침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회사는 이 흐름에 저항하지 않았어요. 이게 핵심이에요.

야쿠르트 레이디의 돌봄 기능은 전형적인 비의도적 시장(unintended market)이에요. 처음부터 설계된 게 아니라,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부산물이 사회적 수요와 맞닿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예요. 이런 시장은 인위적으로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대신, 이미 형성되어 있는 걸 인식하고 수용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필요해요.

한국의 hy가 선택한 플랫폼 전환도 합리적인 판단이에요. 매출 1조 원대에서 정체된 기업이 성장 동력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한국도 10년 안에 일본과 비슷한 초고령사회에 진입해요. 그때 hy의 프레시 매니저 네트워크가 가장 가치 있어지는 순간은, 이 네트워크가 배달 플랫폼으로서 효율을 극대화한 때가 아니라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순간일 수도 있어요.

일본의 야쿠르트가 보여주는 건, 사회 인프라가 되는 기업의 조건이 기술력이나 자본이 아니라 반복적 대면 접촉의 지속성이라는 거예요. 일본은 야쿠르트 뿐만 아니라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이 일본의 정부가 하지 못하는 사회 복지의 빈틈을 메꿔주는 역할도 해주고 있어요. AI가 효율화하는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대체 불가능한 자산은 '매주 월요일 문을 두드리는 사람'일 수 있어요.

마치며

정리하면 이래요. 일본의 야쿠르트 레이디는 초고령사회라는 조건 속에서 비공식 사회 안전망으로 수렴했고, 한국의 프레시 매니저는 라스트마일 배송 경쟁이라는 조건 속에서 물류 플랫폼으로 확장했어요.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례예요.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는 2030년대 중반, 지금 플랫폼화를 추구하는 hy의 1만 1,000명 네트워크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그건 기업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그 네트워크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해요. 일본의 사례는, 그 역할이 위에서 설계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먼저 만들어진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추천 영상

개인적으로 챙겨보는 슈카월드에서 일본의 편의점(콘비니) 세븐일레븐이 국가 인프라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설명한 영상이에요.

각주

  1. [1] 라스트마일(Last Mile): 물류에서 최종 배송 거점에서 소비자의 문 앞까지 도달하는 마지막 구간을 말해요. 전체 배송 비용의 50% 이상이 이 구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물류 기업들의 핵심 경쟁 영역이에요.
  2. [2] 미마모리(見守り): '계속 지켜봄'이라는 뜻의 일본어예요. 법적으로 정의된 용어는 아니지만, 독거노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활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여요. 지자체, 민간 기업,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중층적 돌봄 체계를 의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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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KBMA와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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