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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UI 위에서 작동하는 짜증 경제, 에이전트가 무너뜨린다?!

구독 해지에 4페이지 6클릭, 이 짜증의 정체는 연 250조 원이나 되어요.

2026.05.03 |
from.
Kwangseob

들어가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얼마전 제가 다뤘던 어도비 다크패던 뉴스레터 기억 하시나요? 요즘 미국은 이 다크패턴 소송들이 결론이 연달아 나오면서 이 주제가 뜨거워요. 아마존 프라임을 해지해 본 적 있으세요? 4페이지를 넘기고, 6번을 클릭하고, 15개 선택지를 통과해야 해요. 아마존 직원들은 이 해지 절차를 내부적으로 '일리아드 플로우(Iliad Flow)'라고 불렀어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만큼이나 길고 지난한 여정이라는 뜻이죠.

이건 아마존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스탠퍼드 경제학자 닐 마호니(Neale Mahoney)와 Groundwork Collaborative의 채드 마이젤(Chad Maisel)이 올해 2월 발표한 보고서는 이런 '짜증'의 총비용을 산출했어요. 미국 가계에 연간 1,650억 달러, 한화로 약 250조 원. 보고서는 이걸 '짜증 경제(Annoyance Economy)'라고 불렀어요.

저는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다른 질문이 떠올랐어요. 이 짜증이 작동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거든요. 사람이 화면 앞에 앉아서 직접 클릭해야 한다는 거예요. 만약 그 전제가 사라진다면?

🔍 250조 원짜리 짜증의 해부학

마호니와 마이젤의 보고서는 짜증 경제의 비용을 항목별로 분해했어요. 스팸·로보콜 피해가 330억 달러(약 50조 원), 보험 관련 행정 처리에 216억 달러(약 33조 원), 각종 숨겨진 수수료가 900억 달러(약 136조 원), 의료 대기 시간에 190억 달러(약 29조 원)예요. 하루 평균 1억 3천만 건의 스팸·불법 마케팅 전화가 미국에서 걸려오고, 월 200억 건의 스팸 문자가 발송돼요.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건 다음 대목이에요. 구독 해지를 어렵게 만든 기업들의 매출이 14%에서 최대 200%까지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스탠퍼드의 아이나브(Liran Einav), 클로팩(Benjamin Klopack), 마호니가 2023년에 발표한 논문[1]​의 핵심 발견이에요. 해지를 어렵게 만드는 게 단순한 실수나 관성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설계된 수익 모델이라는 뜻이죠.

아마존의 '일리아드 플로우'가 대표적이에요. 2025년 9월, FTC(미국 연방거래위원회)와의 재판이 시작된 지 3일 만에 아마존은 25억 달러(약 3.8조 원)에 합의했어요.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내부 이메일에는 직원들이 원치 않는 구독을 "말 못 할 암(unspoken cancer)"이라고 부르고, 구독 유도 행위를 "좀 음침한 세계(a bit of a shady world)"라고 표현한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짜증은 버그가 아니에요. 기능(feature)이에요.

그리고 그 피해는 지갑에만 머물지 않아요. 2019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거의 4분의 1이 행정적 번거로움 때문에 의료 서비스를 미루거나 포기한 경험이 있었어요. 진료 예약, 보험 청구, 서류 처리에 들어가는 시간만 연간 216억 달러어치예요. 짜증 경제는 돈과 시간만 빼앗는 게 아니라, 건강까지 갉아먹고 있어요.

🖱️ 짜증 경제의 작동 원리: UI라는 무대

한 발 물러서서, 이 짜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생각해 볼게요.

다크 패턴[2]​이라고 불리는 기만적 UI 설계의 핵심은 인간의 인지 편향을 화면 위에서 이용하는 것이에요. 손실 회피(해지하면 혜택을 잃는다는 프레이밍), 현상 유지 편향(기본값을 유지하려는 경향), 관성(귀찮은 일을 미루는 습관). 유럽인지공학학회(EACE)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다크 패턴이 적용된 해지 절차에서 사용자 신뢰도가 28% 하락하고, 사용성 점수가 54% 감소했어요.

그런데 이 모든 전략에는 공통 전제가 있어요. 사람이 UI를 통해 서비스와 상호작용한다는 것이죠. 4페이지 6클릭의 일리아드 플로우가 작동하려면, 사람의 눈이 화면을 보고, 손이 버튼을 누르고, 뇌가 15개 선택지 사이에서 피로를 느껴야 해요.

FTC는 법적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했어요. 2024년 10월에 확정된 '클릭 투 캔슬(Click-to-Cancel)' 규칙은 "가입만큼 쉽게 해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담았지만, 2025년 7월 연방항소법원이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무효화했어요. FTC는 2026년 3월 새로운 규칙 제정 절차를 다시 시작했지만, 완성까지는 수년이 걸릴 전망이에요.

법이 짜증 경제를 따라잡기 전에, 기술이 먼저 구조를 바꿀 수 있어요.

🤖 AI 에이전트는 UI를 보지 않는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변화가 있어요. AI 에이전트의 등장이에요. 2026년 현재, AI 에이전트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가트너는 2026년 말까지 기업 애플리케이션의 40%가 AI 에이전트를 내장할 것으로 전망했고, 시장 규모는 2025년 78억 달러에서 2030년 526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돼요. OpenAI의 Operator, Anthropic의 Computer Use, 구글의 Project Mariner 같은 서비스들이 이미 사용자 대신 웹을 탐색하고 작업을 수행하고 있어요.

핵심은 이거예요. AI 에이전트는 UI를 경유하지 않아도 돼요. API[3]​가 있으면 API로, CLI[4]​가 있으면 CLI로, 없으면 화면을 직접 조작하는 Computer Use 방식으로 작업을 수행해요. 하지만 에이전트의 본질적 지향은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택하는 거예요. 사람처럼 화면을 보며 감정적으로 지치지 않아요. 15개 선택지가 나와도 0.1초 만에 '해지 확인' 버튼을 찾아 클릭할 수 있어요.

첨부 이미지

다크 패턴의 무기인 인지 과부하, 손실 회피 프레이밍, 관성 유도는 인간의 심리를 겨냥한 것이에요. AI 에이전트에게는 통하지 않아요. "지금 해지하면 무료 배송 혜택을 잃게 됩니다"라는 팝업이 떠도,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지시("프라임 해지해 줘")만 따를 뿐이에요.

더 중요한 건 장기적 방향이에요. 에이전트가 보편화되면, 서비스와의 상호작용 자체가 UI에서 API로 이동해요. 사람이 브라우저를 열고 버튼을 누르는 대신, 에이전트가 curl[5]​ 명령이나 API 호출로 직접 서버와 통신하는 거죠. 이 세상에서는 아예 '4페이지 6클릭'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이건 기존 자동화(RPA)와는 차원이 다른 변화예요. RPA는 화면의 버튼 위치를 기억해서 클릭을 재현하는 방식이라, 웹사이트 레이아웃이 바뀌면 바로 고장났어요. 2025년 기준으로 영국 기업들은 RPA 봇 하나를 유지하는 데 연간 약 3만 8천 파운드를 쓰고, UI 업데이트 후 실패율은 42%에 달했어요. AI 에이전트는 이와 달리 화면의 '의미'를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거나, 아예 화면을 우회해서 API로 직접 소통해요. 수요는 자연스럽게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경로, 즉 프로그래밍 가능한 인터페이스 쪽으로 쏠리게 돼요.

오스왈드의 시선

제 경험에서 보면, 짜증 경제는 전형적인 '마찰을 수익화한 비즈니스 모델'이에요. 가입은 원클릭, 해지는 일리아드. 이 비대칭이 매출 14~200%를 만들어냈어요.

그런데 이 모델은 하나의 가정에 기대고 있어요. "소비자가 직접 UI를 탐색한다"는 거죠.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이 가정이 무너져요. 에이전트는 curl -X POST /api/cancel-subscription을 날리면 끝이에요. 4페이지도, 6클릭도, 감정적 회유도 필요 없어요. 그리고 에이전트에게 합리적인 경로는 당연히 API나 CLI 쪽이에요. UI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안정적이니까요. 수요는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밍 가능한 인터페이스 쪽으로 쏠릴 거라 생각해요.

물론 기업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예요. API 접근을 막거나, 에이전트를 감지해서 차단하는 새로운 형태의 마찰을 만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본질적으로 고객이 떠나는 것을 기술적으로 막는 행위이고, 규제와 시장 양쪽에서 압력을 받게 돼요. 아마존이 25억 달러를 내고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게 그 증거예요.

짜증 경제의 진짜 적은 법이 아니라 기술일 수 있어요. 그리고 그 기술은 이미 문 앞에 와 있어요.

마치며

제가 2023년에 정리한 UI/UX의 비밀이라는 페이지가 있어요. 이 페이지는 당시 많은 인기를 끌며 여기저기 퍼졌고 이를 통해 불펌도 일어나고 이걸로 책도 내는 분도 계시고 강의까지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봤어요. 뭐, 그래도 가만히 뒀어요. 어차피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가장 부끄러워 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근데... 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보니 잘 모르겠네요. 짜증 경제라는 말이 자리잡은걸 보면 뭔가 저도 일조한 거 같고 그러네요.

첫째, 짜증 경제는 연간 250조 원 규모의 실제 경제적 비용이에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기업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마찰이에요.

둘째, 이 마찰은 UI라는 무대 위에서만 작동해요. 사람의 인지 편향과 감정적 피로를 이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셋째, AI 에이전트는 UI가 아닌 API/CLI로 서비스와 소통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이 변화가 짜증 경제의 전제 자체를 허물 수 있어요.

다음에 구독 해지 버튼을 찾아 헤매게 되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짜증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당신 대신 클릭해 줄 에이전트가 이미 존재하는 세상에서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 Annie Lowrey, "America's Annoyance Economy Is Growing", The Atlantic, 2026년 2월. : 짜증 경제의 실제 사례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사예요. : 짜증 경제의 실제 사례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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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광섭, 언제가 써먹는 심리효과 101, 2023. 06. 01. : 출처를 표시하고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영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시거나, 재가공할 경우 미리 고지를 해주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 룰을 지킨 사람은 "조코딩"으로 활동하시는 조동근님 오직 한 분 이십니다.

각주

  1. [1] NBER Working Paper: 미국 국립경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연구 논문이에요. 동료 심사 전 단계의 논문이지만, 경제학 분야에서는 사실상의 표준 연구 채널로 통해요.
  2. [2] 다크 패턴(Dark Pattern): 사용자를 속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행동으로 유도하는 UI/UX 설계 기법이에요. 해지 버튼을 숨기거나, 가입보다 탈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에요.
  3. [3]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소프트웨어 간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표준화된 통로예요. 화면을 거치지 않고 서버에 직접 요청을 보낼 수 있어요.
  4. [4] CLI(Command Line Interface): 텍스트 명령어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방식이에요. 마우스 클릭 대신 키보드로 직접 명령을 입력해요.
  5. [5] curl: 서버에 HTTP 요청을 보내는 명령어 도구예요. 브라우저 없이도 웹 서버와 통신할 수 있어서, 개발자들이 API를 테스트할 때 많이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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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KBMA와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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