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보낸 글은 첫 문단이 삭제된 채로 발송되어 글이 다소 어색했을텐데요. 다시 추가하여 메일을 발송합니다 :-)
비가 내리던 월요일 오후. 집 밖으로 나섰습니다.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설마 별 일 있겠어?'하는 마음에 러닝화를 신었습니다. 빗방울은 약했지만 바람은 거셌습니다. 신발도 신발이지만 메고 있는 백팩도 신경 쓰이기 시작합니다. 혹시나 지퍼가 살짝이라도 열려있어 빗방울이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 서서 잠시 확인하면 될텐데 귀찮다는 이유로 도착하기 전까지 확인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보통 걱정이 되는 날에는 지퍼가 잘 잠겨있습니다. 마치 가스불을 키고 나온 건 아닐까?하고 다시 집에 돌아가면 잘 닫혀있는 것처럼요.
신발이 흠뻑 젖을만큼 비가 내린 게 아니라도 러닝화는 빗물을 먹기 충분했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가서 갈아신을까?'
'처음부터 다른 신발을 신고 나올 걸'
언제나 이런 식이었습니다. 설마 별 일 있겠어? 방심하는 순간 별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요. 순간의 유혹을 참지 못하면 당연한 결과는 언제나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저는 많은 유혹이 도사리는 순간에 당연하지 않은 결과를 바라는 요행을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매운 음식을 먹거나 우유를 먹으면 아주 높은 확률로 속이 뒤집히곤 합니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오늘만큼은 매운 음식을 시켜 먹어야겠어', '아메리카노 대신 라떼를 먹어야겠어'라고 결심하곤 하지요. 그 결심엔 어떤 결과가 따르더라도 후회하지 말아야하는데 저는 언제나 그렇듯 속이 뒤집히면 '아.. 먹지 말 걸' 후회하고 맙니다.
어쩌면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매운 음식이나 우유가 아니라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스스로를 그 곳으로 몰고가는 제 자신이 아닐까요.
운이나 행복은 내 것이 아닙니다. 오지 않는다는 것이 디폴트(기본값)인 셈이지요. 만약 그것들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면 필요할 때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이지요.
비오는 날 러닝화를 신고도 젖지 않겠다는 마음.
매운 음식을 먹고도 속이 뒤집히지 않겠다는 마음.
우유를 마시고도 배탈이 나지 않겠다는 마음.
이 모든 사건들은 '행운'이 깃들지 않는 한 당연한 결과로 이어지는 일임에도 저는 혹시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요행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요행을 바라는 순간 불행이 찾아왔지요.
불행이 찾아오면 요행을 바랬던 나 자신을 원망해야하지만 스스로를 원망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 러닝화, 매운 음식, 우유처럼 남 탓을 하곤 합니다.
남 탓은 새로운 불행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남 탓을 통해 우린 배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또 다시 비오는 날 러닝화를 신을 것이고, 속이 뒤집힐 것을 알면서도 매운 음식을 먹고 우유를 마실 테니깐요.
지금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면서 비에 흠뻑 젖은 양말은 여전히 찝찝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비 오는 날과 러닝화를 원망하는 대신 집을 나서기 전 '설마 별 일 있겠어?하는 사소한 마음을 원망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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