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이었다. 한 명뿐인 팀원을 데리고 독서모임을 하러 카페에 갔다. (지금은 두 명이 됐다.) 일상을 주제로 글을 미리 써오기로 했었고, 독서모임을 빙자해 글쓰기 검사를 받는 시간이었다.
입사한지 몇 달 되지 않았던 팀원은 글쓰기가 부담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이럴 땐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쓰라는 뻔한 대답 대신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을 들어주고 예시를 들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창문 밖에 보니 매미가 죽어있더라구요"
"그걸로 글 써볼까요?"
"이걸로요? 어떻게요?"
"창문 밖에 보니 매미가 죽어있다고 했잖아요. 그럼 뒤에는 어떤 문장이 와야 뒤로가기 안 누르고 계속 읽을까요?"
그땐 여름이었고 여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름하면 수박이나 장마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것으로 여름을 이야기엔 진부하다. 그렇다고 그것을 제외하면 어떻게 그 계절을 설명할 것인가.
설명하지 않으면 된다. 설명하지 않을 수록 매력적인 글이 된다. 자꾸 설명하려고 하니 진부해지고 진부해지니 재미가 없다. 뻔한 사실을 나열한 것만큼 재미 없는 글도 없다.
"음... 매미가 죽었으니까 가을이 오고 있다? 아니면 매미가 죽을만큼 더운 여름이었다?"
"꼭 여름이나 계절을 이어갈 필요는 없어요. 분위기만 가져가볼까요? 매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때요? 뭔가 안타깝죠? 그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보는 거예요."
"다음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오..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시험을 준비 중인 고시생이 이번이 첫 시험인지 아니면 계속된 시험에서 떨어진 건지에 대한 궁금함 등등이요."
"정확해요. 여름을 이야기할 때 꼭 여름 자체를 묘사할 필요는 없어요. 대신 그 계절만의 갑갑함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묘사가 돼요. 죽은 매미를 통해 계절감만 가져오고, 그 뒤에서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 계절감이 없이 시험에서 떨어졌다고부터 시작하면? 진부해서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거예요."
"와. 그렇게 이야기가 연결되면서 말이 되니까 신기하네요. "
"이야기는 원래 동떨어져있다가 다시 수습될 때 가장 큰 매력이 있어요"
시험을 앞두고 걱정이 되서 전날 밤 전화를 한 엄마의 목소리.
결과를 확인하기 전에 목이 말라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는 화자.
혹시나 이번 시험까지 떨어지면 다른 노선을 생각했던 화자.
무엇이든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나는 한 문장을 말했지만, 그 뒤로 떠오르는 당신의 생각은 당신만의 이야기다. 어쩌면 화자는 본인을 매미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을 무더운 여름에 금방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에 비유했을지도 모른다.
실패하기 싫어서 가장 가까운 두 이야기를 잇는 대신, 실패하기 위해 가장 먼 이야기를 이어보는 건 어떨까. 수습하기만 한다면 그건 성공한 이야기가 된다.
여전히 글쓰기가 고민이라면 이번 뉴스레터가 큰 도움이 되었기를.
P.S 글쓰기에 부담을 느끼던 그 팀원은 여전히 부담을 느끼며 매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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