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저 바닷속 파인애플 🍍

<네모바지 스폰지밥>을 보고

2022.11.11 | 조회 1.0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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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고살지라는 너의 고민과 잘 자란 새빨간 토마토 사진을 보내줘서 고마워. ‘먹는다라는 당위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행위 앞에 무엇을이 붙기 시작할 때, 기존의 것들이 삐걱거리고 새로운 질문들이 피어나는 것 같아. 이 음식이 음식 이전에 무엇이었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됐는지 등등....

나의 최대 고민도 먹고사는 건데, 난 진짜 생계를 유지하다는 뜻의 먹고살기를 고민해. 여러모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나날이야.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질문도 한번 던지면 끝없는 파장을 만들어내다 모르겠다!’로 생각을 접게 만드는, 꽤 위험한 문장이지. 하지만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나날인 것 같아. 터덜터덜 집에 와서 TV로 유튜브를 틀었는데 알고리즘이 1시간짜리 스폰지밥 레전드 모음 영상을 띄워주더라고. 저항 없이 봤어.

초등학생 시절, EBS에서 해주는 <스폰지송> 버전으로 네모바지 스폰지밥을 처음 만났었는데. 뚱이가 별가이고, 징징이가 깐깐징어인 그 버전... 이렇게 추억 속에서 희미해진 애니메이션을 다시 꺼내 유튜브에서 1080p로 보다 보면 아련하기보다는 새로운 것 같아. 그 사이에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고, 시간을 지나오며 내가 꽤 변했다는 걸 감각하게 돼. 뻔하다만 살아가면서 <아기공룡 둘리> 고길동에 대한 감정이 달라지듯, 각자 상황에 따라 같은 애니메이션에서도 다른 게 눈에 띄기 마련이니까. 초등학생 때 나는 이걸 보면서 뭔 생각을 했을까?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징징이를 깐깐하고 무섭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물론, 지금은 가장 공감 가는 캐릭터가 되었지만.

그리고 비키니 시티 생물들이 각자 어떻게 일과 삶을 꾸려나가는지 살피게 됐어. ‘이렇게 사는 게 맞나?’는 고민은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라는 궁금증, 더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것일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더라고.

▲ 선장님, 오프닝에서 “준비됐나~”고 외치는 그림? 사람?
▲ 선장님, 오프닝에서 “준비됐나~”고 외치는 그림? 사람?

만약에! 우리가 어찌어찌해서 바닷속 비키니시티에 갔다고 해봐. 스폰지밥의 파인애플 집을 구경하고, 게살버거의 맛을 궁금해하고 있던 즈음 선장님이 “이 비키니시티에서 가장 되고 싶은 이를 택해라, 그렇게 살게 해 주겠다”라고 말한다면 넌 누구를 택할 것 같아? 

"따하하하하~"  "오, 집게리아... 내 사랑 집게리아" / 스폰지밥
"거기 집게리아죠?" "아뇨, 뚱인데요" / 뚱이
"진작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잘 갔으면 더 좋은 곳에서 일했을 텐데" / 징징이
비키니 시티에 사는 유일한 육지동물 / 다람이 
비키니 시티에 사는 유일한 육지동물 / 다람이 
"넌 해고야!" / 집게사장

(캐릭터를 납작하게 설명하게 된 점 양해 부탁합니다...😥)

침묵만 흐를 것 같은 질문이지... 애니메이션에서는 각자의 캐릭터성이 부풀려져 있으니까 단 하나의 캐릭터로만 살아라! 한다면 곤란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하지만 생각해보면 저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이 결국 다 내 안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모습들이잖아.

내 안에 비키니 시티 있다
내 안에 비키니 시티 있다

가만히 냅두면 게으르고 본능에 충실하고 서투른 뚱이가 되는 것 같고, 가끔은 스폰지밥처럼 긍정 회로를 돌리며 작은 것에 깔깔 웃을 때도 있었고, 대체로는... 징징이처럼 사는 듯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툴툴대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조용하고 평화롭게 혼자 있고 싶어 하지만 이웃 스폰지밥과 애증의 관계를 쌓아가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폰지밥처럼 월요일 좋아라는 소리는 못하겠다...ㅎ

우리 안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있지만 어떤 캐릭터는 주연이, 어떤 캐릭터는 조연이 될 수밖에 없잖아. 2022년 대한민국이라는 물 밖 세계관에서는 징징이와 게걸사장이 주연, 스폰지밥과 뚱이가 조연이 되는 듯해. 이곳에서 대책도 눈치도 없이 긍정적인 비키니 스폰지밥의 모습을 지켜낼 수 있을까?

바늘만 대면 톡 터져버릴, 비키니 시티의 룰에 맞지 않는 비눗방울 사람과 친구가 되어 지켜주고, 작은 애벌레와도 친구라며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사고만 치는 뚱이와 집게리아에서 일할 때도 차근히 설명해주고 응원해주는 스폰지는 현대사회에 취약한 종일 거야. 그래도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보는 듯한 스폰지밥의 눈을 통한다면 칙칙한 서울에서도 여러 빛깔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해면, 불가사리, 오징어, , 고래, 달팽이, 심지어 다람쥐까지 서로 너무 다른 생물종들이 살아가는 비키니 시티! 각자의 성격도 욕망도 다 다르기에 이 육지와 비슷하게 속 터지는 일들이 잔뜩 일어나는 곳이지만 그래도 <스폰지밥>을 즐길 수 있는 건 다음 화에서도 이들은 이렇게 복닥복닥 같이 살아가겠지 하는 믿음 때문인 것 같아.

각자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만 또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생물들. 이곳 육지에서도 생물들의 복닥복닥한 나날이 계속되기를스폰지밥 같은 긍정으로 빌어봐. 쓰라린 거리를 지나다니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들이 앞으로도 스치겠지만 그럴 땐 서로의 발걸음을 살펴주며 이 도시에서 살아나가 보자.

FROM. L


P.S. 마지막으로 미안한 말을 전해. 나의 다음 메일은 12월 중반이 되어서야 쓸 수 있을 것 같아. 그동안 만들었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게 됐거든. 보잘 것 없는 영상이지만...! 88분 짜리를 25분 내로 줄여야 하는 긴급 상황이 되어서 남은 시간 힘껏 해보려고. 상영회를 끝마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올게. 편지의 피크 시즌, 연말에 다시 보자고. 그때까지 잘 지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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