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끝나갑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면, 1년 간 실타래처럼 얽힌 기억들을 풀어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 마음을 따라 일시정지는 한 해 동안 우리를 통과한 콘텐츠들을 살피며 <우리끼리 이것저것 어워즈>를 열어보았습니다. 저희가 뽑은 작품(혹은 작품 아닌 것)을 보며 구독자님도 구독자님만의 마음 속 시상식을 열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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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생각을 스치는 것들이 많아 몇 번을 고쳐 썼어. 그러다 내가 올해 가장 빚지고, 가장 의지했던 콘텐츠는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였다는 생각을 했어. 2024년은 꽤 정신이 없어 집중해서 독서를 하지도 영화를 보지도 못했던 한 해였는데, <정희진의 공부>는 올해의 앎과 사고에 심폐소생을 해 준 콘텐츠야. 개인적으로 정희진 선생님의 팬이 되기도 했고… (GV랑 북토크도 다녀옴…). <공부>는 매달 통찰과 시의성을 지닌 주제들로 위로와 지식, 웃음과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주었어. 정희진 선생님의 말들 중 기억 나는 것들을 내가 기억하는 대로 적어볼게. “이기려 하지 말아라. 실패도 전략이며, 우리는 약자가 될 때 비로소 선한 삶을 살 수 있다.” “공부하는 삶은 착취하지 않고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슬픔을 두려워하는 조증의 시대다. 하지만 애도는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회사를 다니며 1년 동안 반복적인 삶을 굴리다 보니 사고가 정지하는 듯 했어. 자신과 타인을 돌아보지 않고 폭주기관차처럼 사는 삶이 스스로와 주변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며 공부와 생각의 가치와 필요성을 느꼈어. 그런 한해, 2024 나의 선생님이 되어준 콘텐츠를 ‘올해의 콘텐츠’로 선정해 보았어. 정희진 선생님은 2025년 안식년을 가진다고 하셨는데, 난 2025년에도 <정희진의 공부>를 망령처럼 떠돌며 한 해동안 지난 콘텐츠들을 복습해보려고. 공부하는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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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콘텐츠라… 딱 하나만 꼽기 어려워. 콘텐츠 과소비러 & 잡식러로서 항목별로 공유해볼게. 나만의 작은 시상식 (두구두구)
1. 올해의 시리즈 : 플리백 (Fleabag) : 내가 여태껏 찾아 헤매던 이야기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는 내내 감탄했던 시리즈야. 만나는 사람마다 추천했던 시리즈이기도 하고. 완벽하지 않은, Messy heroine 이야기가 끌린다면 꼭 도전해봐. 주인공의 감정을 결 따라 낱낱이 느낄 수 있을 거야. 언젠가 이 주제로 글 쓰는 날이 오길...
2. 올해의 영화 : 챌린저스 : 이 영화를 봤다고 해도 될까. 상해 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청했거든. 본편 비율은 찾아볼 수 없는 손바닥만 한 스크린, 노이즈 가득 헤드셋, 상대편 서브처럼 치고 들어오는 기내식…이 와중에도 몰입했다면 믿을 수 있겠어? OST를 들을 때마다 손에 땀이 맺히는 지경에 이르렀어. (*리빙포인트 - 동네 테니스장 가서 OST 틀고 관전해봐. 타시가 되)
3. 올해의 음악 : 케이팝 : 신곡만 나오면 냅다 들어보는 리스너로서 몇 곡 골라봤어. 모아보니 힙합 베이스 곡을 사랑했던 것 같다! 츄라이 츄라이
🍳 - “쌀알만 하던 내가 겨우 달걀만 해진 것 뿐인데”
“끝까지 가볼래 포기는 안 할래 난 - 쓰러져도 일어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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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 - 올해 김고은 배우님을 마주친 건 영화 <파묘>를 시작으로 <대도시의 사랑법>, <백현진쑈: 문명의 끝>까지 총 3번이었는데(더 많을 수도…). 세번 다 다른 얼굴로 강렬한 인상을 주어 감히 ‘올해의 배우’로 김고은 배우를 선정해 보았어. 개인적으로는 <백현진쑈>에서 등장한 김고은 배우의 모습이 무척 새롭고 인상적이었는데. 냉장고 빛만 흘러나오는 무대 위에서 조명, 관객을 마주하며 울다가 원망하다 소리치는 김고은 배우의 독백이 정말 정말 압도적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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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 월러 브릿지 - 입이 닳도록 말하고 있는 <플리백>의 작가/연출이자 주연 배우. 흔히 알고 있는 <킬링 이브>의 작가/연출이야. 카메라 넘어 제4의 벽을 뚫고 끊임없이 우리를 바라보는 (주시하는?) 피비. 여성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 놓고, 그 판 안에서 마음껏 연기하는 그녀의 다음 행보가 기대돼. 올해 그녀를 마주한 건 2024년을 통틀어 가장 큰 행운이야. 곧 그녀가 재해석한 <툼레이더> 시리즈도 나올 예정이니 함께 기다려보자.
피비의 평소 성격,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터뷰 하나 추천할게. (드라마 속 그녀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사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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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살려줘요. 약속해요. 죽기를 바라지 말아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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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하얼빈 中
이 부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윤석열 퇴진 집회 장면을 꼽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여의도 집회 중 하루, 촬영을 하러 건물 옥상에 올라가 집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어. 국회의사당 앞에서부터 여의도공원을 넘어서까지 가득찬 사람들의 모습과 다양한 불빛들, 함께 외치는 목소리를 보았어. 그리고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 모르던 사람들끼리 얼싸 안고 함께 환호했던 장면도 2024년을 보내며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야. 계엄령이 떨어졌던 밤, 이런 어둠이 두렵고 절망스러웠는데.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함께 외치는 목소리가 이렇게 크다는 것, 우리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에서 빛을 느꼈어. 이 장면을 기억하며 서로가 단절된 듯하고, 절망이 반복되는 것 같아 보여도 작은 빛 하나는 잃지 않고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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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면이 좋을까 고심했는데... 보자마자 탄성이 나왔던 장면으로 하나 뽑아봤어.
<지니 앤 조지아 S2> 극 중 조지아의 결혼식,
환히 웃는 그녀의 얼굴 아래로 Until I Found You 가 오버랩 되는 장면이야.
숱한 역경을 거쳐 사랑을 만난 그녀 (Georgia)에게 이보다 더 알맞은 노래가 있을까?
(*주의 : 이 뒤부터 잔인함. 시각적인 건 아니고 플롯이 잔인해)
"Georgia, wrap me up in all your - I want you in my a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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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방송 <하이에나 클럽>
신곡보다 듣던 노래, 듣던 플레이리스트를 계속 찾아듣게 되는 요즘. DJ Bora Kim 씨가 진행하는 언더그라운드/인디 라디오 음악방송 <하이에나 클럽>은 나의 작은 우물에 새로운 물을 공급해주는 채널이었어. 어디지… 전주를 가던 때였을까… 버스 안에서 듣던 Visla fm의 선곡이 너무 좋은 거야. “DJ 누구야!” 하면서 그가 진행하는 <하이에나 클럽>에까지 찾아가게 됐어. 선곡도 정말 최곤데 노래 사이사이에 들려주는 본인의 사랑 이야기나 잡담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야. 나는 ‘팟빵’을 통해서 방송을 듣는데 생각보다 구독자 혹은 청취자가 많지 않아 너무 아쉬운 마음에 영업을 해봅니다... 10월 EP.28 이후로 업데이트가 되고 있지 않은데 다들 많은 구독 및 후원을 해주어… 하이에나 클럽과 보라킴씨가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 신선한 노래 수혈이 필요하시다면 새해엔 <하이에나 클럽>을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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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브레이크 하이 - 먼저 시놉시스부터 들려주자면, 하틀리 고등학교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모조리 폭로한 도발적인 벽화 (일명 SEX MAP). 아머리가 벽화를 그린 장본인으로 밝혀지고. 이제 그녀는 학교의 왕따가 되어 골치 아픈 결과와 마주해야 한다.
호주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이고, 90년대 원작을 Gen Z 버전으로 리부트한 작품이야. 눈 시릴 정도로 쨍한 옷에, 모든 주인공이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신없지. 종종 일시 정지를 누르고 멈춰가기도 해. 이래서 섣불리 추천하지 못하겠어. 소재도 상당히 자극적이고, 아이들의 입도 굉장히 거칠거든 (호주 슬랭 배우기엔 안성맞춤이야)
하지만 아이들은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고 과감하게 덤벼들어. 모든 플롯이 '성적, 대학'으로 향하는 한국 하이틴과 다르게 이들은 각각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는 점이 신기하더라. 많아봤자 17~18살인데 나는 그 나이쯤 갈등에 휘말리지 않고자 입을 꾹 다물고 살았거든.
아무쪼록 혈기 왕성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리 쾌감을 느껴보았으면 좋겠어. 초반에 공감성 수치가 심할 수 있긴 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아줘. 금세 아이들과 정들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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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라이즈 블리딩 - “넌… 사랑 같은 거 하지 마라…”
상상을 초월하는 대사와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 퀴어 퀴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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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 현실과 꿈 (이야기)의 경계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해낸 영화.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가 지닌 치유의 힘을 다시 믿어보기로 했어. 재개봉 했으니 꼭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체험하시길 (제발!) 기회가 된다면 더 폴 로케이션 세계 여행을 해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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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 올해 극찬을 받은 이 영화… 저도 애정합니다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많이 이야기됐듯 ‘악의 평범성’을 훌륭히 영상화 하고, 소감으로 팔레스타인 학살을 언급하며 영화 속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였어. 평범하고 안온하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과 홀로코스트 소리의 대비를 통한 학살의 일상화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알겠으나, 105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러한 형식의 반복과 지속에서 내용보단 감독의 의도에 집중하게 됐고 이미 인지한 내용을 계속해서 듣는 느낌이었던.... 단편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어. 그저 내가 개인적으로 서사보다 형식으로 이야기하려는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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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라이브즈 - 국내 개봉 전부터 기대평 가득했던 영화. 나 또한 무척 기대했어. 얼마나 기대했냐면, 프라하 여행 중 짬 내어 상영관을 찾았을 정도. "인연"이라는 한 단어로 시작과 끝을 맺는 영화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둘 사이 충분한 서사가 느껴지지 않았어. 본디부터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감정 이입이 될락 말락 흠칫하게 되었던 영화야. 어쩌면 오래된 인연은, 흐릿하게 간직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굳이 선명도를 높일 필요가 있을까? 그와 별개로 영화 속 NYC 풍경은 아름다웠다! 충분히 낭만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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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필요 - 홍상수 영화를 보고 나올 때면, 명상 혹은 산책을 한 뒤에 느껴지는 잔잔한 평화로움을 느끼곤 했어.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 같기도 했고. 영화 <여행자의 필요>는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온 ‘이리스’라는 사람의 일상을 담아. 영화를 보며 여행은 과거도 미래도 떼어놓고 지금을 살아가겠다는 다짐 섞인 행위라 생각했어.
삶도 여행 하듯 유유자적 흔한 동네의 비석을 흥미롭게 살피고, 신발을 벗고 냇물에 발을 담구기도 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질문을 던지고, 익숙한 일상의 일부를 낯선 이에게 내어주며 살 수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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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 매 컷이 명화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면면만 보여주는 시리즈. 내가 이 극에 들어간다면... 리플리와 디키가 묵는 숙소의 스태프가 되어 보고파. 미심쩍은 대화에 귀 기울여보고, 가끔 드넓은 풍광에 젖어 들어 빨랫감도 놓쳐보고. 진상을 밝히러 온 탐정에게 몇 가지 중요한 진술도 해주는 거야. 대신 리플리와는 절대 엮이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지만. 조심조심 리플리의 자취를 쫓아 이탈리아 일주 해보는 것이 내 소원이야. 멀지 않은 일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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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과학적 진실. 기쁨으로 가득찬 날도 슬픔에 잠긴 날도 지구가 움직이는 한 반드시 끝난다. 그리고 새로운 새벽이 찾아오는 것이다.
새벽의 모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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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날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요.
가로막으면 날아 올라서라도 넘어가면 되죠, 시간은 좀 걸릴지라도!정숙한 세일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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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 구상에서 제작까지 28년이 걸렸고, 아무도 영화를 걸어주려 하지 않아 감독이 직접 개봉을 시켰던 덕분에 지금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닿을 수 있다는 게 마법 같다고 생각했어. 쓸모 없어 보이고, 무력해 보이기도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 우리를 살릴 수 있음을, 생을 포기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구원을 얻기도 함을, 쓰러진 우리를 우리가 다시 일으킬 수 있음을 보이는 이 영화를 2025년 나에게 보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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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하 -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스물이었고, 내심 난 안정적인 스물일곱을 맞으리라 장담했어. 그런데 어느새 내가 프란시스 나이에 다다랐다니. 2025 새해는 도시를 달음박질하는 그녀의 열정을 닮고 싶은 해야. 어떠한 이유로든 무력해질 때쯤, 이 영화를 보내어 꿈을 일깨워 주고 싶다.
P.S. 올해 연말결산은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비중이 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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