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납작 복숭아 대신 바치는 글

2026.10.02 | 조회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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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기 전 머물렀던 아테네 중심부의 호스텔에서 외로움이 극대화되었다. 호스텔은 한국의 성수 같은 동네에 있었다. 멋있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널린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대화를 나누고 와인을 마셨다. 그곳에서 나는 얼굴은 땀 범벅에, 빨지 않아 냄새나는 옷을 입고 있었고 콧잔등에서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쓰며 슬리퍼를 직직 끌고 돌아다녔다. 끈적거리는 이마에 들러붙는 앞머리가 싫어 뒤로 넘겨버렸고 몇 가닥이 얼굴 앞으로 떨어졌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과 바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붙는 것을 느꼈다. 그들에게 나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 한 명뿐이란 걸 아는데도 시선이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했다. 내일이면 한국에 돌아간다는 생각에 전 재산을 써버렸고, 시내에서 공항까지 이동할 버스비만을 남겨두었으며, 머리는 사자갈기처럼 부풀어 올라있었으며 저녁은 오 유로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금요일 저녁을 함께 보낼 연인도 없었고 좋은 곳에서 데이트하며 밥을 사주는 사람도 없었다. 지나가서는 안 되는 곳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마치 야만인 출입금지지대처럼 말이다.

 

유럽 여행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기로스(케밥 비슷한 음식)를 사러 갔다. 숙소 근처에 후기가 좋은 곳이 있었고 당연하게도 줄이 늘어서 있었다. 식당이 밀집한 중심부라서 그런지 가족, 연인, 친구끼리 몰려와서 한 명은 자리를 잡고 한 명은 서서 주문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걸 함께 할 사람이 없었고, 이 북적이는 인파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견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기로스를 포장한 뒤 숙소로 다시 빠르게 걸으려고 했으나 발가락이 슬리퍼 앞코를 넘어 튀어나오기만 했다. 무거운 슬리퍼는 뒤로 축축 처졌다. 기로스를 들고 한 끼에 삼십 유로, 한 병에 칠십 유로는 하는 와인을 마시며 데이트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옷과 즐거워보이는 얼굴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피하고 빠르게 걸었다. 겨드랑이는 젖어왔고 습한 공기에 온몸이 무거웠다.

 

숙소의 루프탑은 의자가 여덟 개, 책상이 네 개 있는 좁은 테라스였고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서 숨을 내쉬며 기로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치기 위해 샀던 납작복숭아 세 개와 모차렐라 치즈를 함께 먹었다. 기로스에 들어있는 빨간색 소스를 여기저기 흘리고 묻히면서 먹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손에 묻은 소스를 입에 넣어서 훑었고 납작복숭아의 씨앗에 붙은 과육까지 남김없이 빨아먹었다. 침과 기름이 묻은 손가락은 입고 있던 티셔츠에 문질러서 닦았다.

호스텔 루프탑 

©본인 촬영 
호스텔 루프탑  ©본인 촬영 

그날 점심때는 아테네 공항 근처에 있는 브라우론의 아르테미스 신전에 방문했다. 이곳은 주로 결혼 전이나 출산을 앞둔 여성들이 방문해 기도를 올리고, 소녀가 성인 여성이 되는 의례를 진행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유물로 소녀들의 인형이나 옷들이 종종 발견되었다고. 마주친 관광객을 다 합쳐봐야 스무 명 겨우 될 듯한 그곳에서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나는 보는 사람이었고 원하는 자연과 사람과 오래된 대리석과 새똥이 묻은 의자의 흔적을 오래도록 쳐다볼 수 있었다. 혼자서 방문한 사람은 없는 듯했지만, 그들과 물리적으로 먼 거리감과 비언어적 소통이 불필요함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뜨끈한 햇살에 이마에 땀이 고였다. 목뒤와 등을 타고 그것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브라우론 성소의 표지판을 읽었다. 눈과 머리가 영어를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석 달간의 여행 동안 지칠 대로 지친 몸뚱어리는 무감각해져 이곳의 어떤 것에도 감동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편안했다. 매미 소리와 주변의 고속도로에서 차가 달리는 소리, 멀리 있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햇살 아래 깨어져서 들려왔다. 몇백 년은 된 듯한 무화과나무 주변에는 거대한 그림자와 의자 한 개가 놓여있었고, 무화과 냄새가 났으며 누가 데리고 온 것인지 모를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대형견이 그늘 아래에 엎드려 있었다.

브라우론의 아르테미스 신전 

©본인 촬영
브라우론의 아르테미스 신전  ©본인 촬영

들판 한쪽에는 기둥이 줄지어 서 있었다. 챗지피티에게 써달라고 부탁한 기도문을 기둥 뒤편에 서서 읽었다. 경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내가 내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두려움 앞에서 작아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내 눈을 밝히고 발을 굳건하게 해달라고. 한국어로 읽는 기도가 그리스 신에게 어떻게 전달이 될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렇게 오 분 정도 서서 기도문을 읽었다. 공물로 사 들고 간 납작복숭아는 두고 올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그대로 들고 나왔다.

 브라우론의 아르테미스 신전 기둥들 ©본인 촬영  
 브라우론의 아르테미스 신전 기둥들 ©본인 촬영  

브라우론의 아르테미스에서는 어린 소녀들이 곰을 흉내 내며 달리고 춤을 추는 의식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후대 연구자들은 이 의례를 결혼을 앞둔 소녀가 공동체의 여성으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결혼 전의 여성을 야생/자연의 존재로 보았고 실제로 결혼 이후에서야 그들의 삶이 인정받는다고 하였다. 야생의 여성을 길들이기 위해 결혼과 출산이라는 멍에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곳에서도 한국에서도 나는 야생의 존재였다. 강요가 사라진 시대에서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성애 기반의 연애, 결혼, 출산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인생을 거는 대담함과 용기가 부러웠다. 본인 스스로 채우는 제약에 아무런 의심이 없는 사람, 그걸 진정으로 원할 수 있는 사람,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 나는 그 모든 걸 가지지 못했다. 길들여지고 싶은 생각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도 없다.

 

북적거리는 저녁 식당가에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수긍하지 않겠다고 객기를 부리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웨이터들도 있는 힘껏 차려입고 몸매가 드러나는 형형색색의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은 채 서빙을 하고 있었다. 나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그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고 앞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려가며 서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잠든 후 더러워진 도시를 치우는 사람들이 바닥을 물청소할 때에야 숨을 쉴 수 있는 사람. 세상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막상 제일 중요한 의례 앞에서 도망쳐 나온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서 나를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사실은 어떻게든 밖으로 밀려 나가버리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 어딘가에도 마음을 두지 않아 언제든 떠나도 슬프지 않기 위해서. 한국이 너무 그리웠다. 집에 가서 빨래를 하고 햇볕 냄새가 스며든 옷을 입고 싶었다. 불을 끄고 걸어도 익숙한 곳에 몸을 누이고 싶었다.

 

시즌 1 끝.

 


* 이번 글은 클로드의 오탈자, 맥락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 어색한 문장의 지적을 받은 뒤 직접 고쳐서 작성되었습니다.

**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적응하느라 마지막 편 발행이 늦어졌습니다. 사전에 공유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 시즌 2는 10월 12일부터 시작합니다.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곳을 다시 보려고 합니다.

**** 시즌1에 대한 후기, 글에 대한 감상, 그저 하고 싶은 말, 혹은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면 편하게 공유해 주세요. 댓글이 불편하다면 이메일(0_mungchi@naver.com)로 보내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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