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그 거절을 다 받아내면서 밀어붙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새벽배달을 당연하게 쓰고 있다.
불편해서 직접 시작한 창업
ⓒ 더중앙플러스 FACTPL 아티클(2022년)
김슬아는 글로벌 금융 · 전략 컨설팅 출신이다.
웰슬리 칼리지에서 정치 ·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골드만삭스 서울·홍콩, 맥킨지 홍콩,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베인앤컴퍼니를 거쳤다. 시장을 분석하고 비즈니스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본업이었다.
일상 속에서 특히나 강하게 보였던 것이 신선식품 유통의 문제, 비효율이었다고 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식품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상하다고 느꼈다. 믿을 수 있는 식재료인지 알 수 없으니까 직접 보고, 만져보고, 고민하는 것이었다. 온라인은 더 심했다. 사진만 보고 신선도를 믿어야 하는데, 받아보면 기대와 다른 경우가 잦았다.
맞벌이 부부가 퇴근 후 신선한 장을 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좋은 먹거리를 편하게, 믿을 수 있게 사는 경험.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불가능했다.
해답은 새벽배송과 믿을 수 있도록 정말 상세한 상품 상세페이지이었다. 단순히 온라인으로 파는 것만으로는 신선식품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밤에 주문하면 아침에 바로 받을 수 있어야, 신선함이 보장되고 생활 패턴에도 맞는다. 여기에 직접 품질을 검증한 상품만 투명하고 상세히 공개하고 파는 구조라면, 고객이 믿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2015년 1월, 더파머스(현 컬리)를 설립했다. 전국 산지와 공장을 직접 발로 뛰며 공급자를 발굴했다. 설립 2개월 만에 엔젤·VC 합산 50억 원을 유치했다.
근데 그 돈이 금방 바닥났다. 물류와 IT 시스템 구축에 대부분 쏟아붓다 보니, 2015년 말엔 자금이 바닥날 위기가 찾아왔다. 첫 번째 고비였다. 결국 2016년 7월 170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넘겼다.
김슬아 대표 왈, "시리즈 A 전까지 100곳이 넘는 투자자에게 같은 피치를 반복하며 거절당했다. 누가 이걸 쓰겠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하려는 건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새벽배달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다
ⓒ 컬리(Kurly)
2015년 5월, 마켓컬리가 오픈했다.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 전에 배송하는 샛별배송이 시작됐다.
문제는 이걸 실행할 인프라가 없었다는 거다. 새벽에 냉장·냉동 식품을 문 앞까지 배송하는 택배사는 없었다. 컬리는 물류센터와 배송 조직을 사실상 직접 만들었다. 업계에서 택배 회사를 새로 만드는 수준이라고 평가할 만했다.
초기 타겟은 도심의 맞벌이 30·40대였다. 퇴근 후 장 볼 시간이 없고, 좋은 식재료에 기꺼이 돈을 쓰는 사람들. 프리미엄 가격과 한정된 배송 권역 때문에 시장성 회의론도 많았지만, 한 번 써본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재구매율이 70%를 넘었다. 한 번 쓰면 못 끊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팬덤이 생겼다.
컬리의 성공이 알려지면서 쿠팡이 움직였다. 2018년 '로켓프레시'로 신선식품 새벽배송에 진입했다. 대형마트, SSG닷컴도 뒤따랐다. 컬리가 만든 카테고리에 공룡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컬리의 선택은 경쟁이 아니라 포지셔닝이었다. 쿠팡이 전국 커버리지와 물량으로 싸울 때, 컬리는 큐레이션과 품질로 차별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누구나 파는 것이 아니라 컬리가 검증한 것을 파는 회사로.
왜 10년 동안 적자였나
ⓒ 오픈애즈
컬리의 수익 구조를 이해하려면, 왜 처음부터 직매입을 택했는지부터 봐야 한다.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마켓플레이스는 판매자가 상품을 올리고, 플랫폼은 거래 수수료를 받는다. 재고는 판매자가 안는다. 플랫폼 입장에선 재고 리스크가 없어 자산이 가볍다.
컬리는 반대였다. 모든 상품을 직접 사들여서 물류센터에 보관하고 직접 배송했다. 재고를 전부 떠안는 구조다. 대신 품질 통제가 가능했다. 컬리가 판매하는 상품은 컬리가 직접 검증한 것이었다. 그 신뢰가 재구매율 70%를 만들었다.
근데 이 구조는 돈이 엄청나게 든다.
물류센터 투자, 콜드체인 유지비, 포장재, 배송 인력. 매출이 늘수록 비용도 같이 늘었다. 영업손실이 2020년 1,163억 원, 2021년 2,177억 원, 2022년 2,334억 원으로 매년 커졌다.
연도
매출
영업손익
2020년
약 1조 원
-1,163억 원
2021년
1조 5,614억 원
-2,177억 원
2022년
2조 372억 원
-2,334억 원
2023년
2조 774억 원
-1,436억 원
2024년
2조 1,956억 원
-183억 원
2025년
약 2조 3,671억 원
약 +131억 원 (추정)
2022년엔 코스피 상장을 추진했다가 철회했다. 공모 시장이 침체되면서 기업가치가 프리IPO 당시 4조 원에서 8,000억 원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렇다면 나름의 경쟁사인 오아시스마켓은 왜 흑자인가. 오아시스는 처음부터 다른 구조로 갔다. 오프라인 직영점과 산지 직송을 기반으로 재고 회전율을 높였다. 마케팅 경쟁도 하지 않았다. 2024년 매출 5,171억 원에 영업이익 229억 원. 컬리보다 매출이 4분의 1이지만 확실하게 흑자다.
컬리는 규모를 먼저 키운 뒤 효율을 잡는 전략이었고, 오아시스는 처음부터 효율을 지킨 전략이었다. 어느 쪽이 맞다고 말하기 어렵다. 컬리가 택한 길은 쿠팡이 택한 길과 같은 논리였다.
계획된 적자로 규모를 키우고, 그 다음에 흑자를 낸다.
쿠팡은 2023년에 그걸 증명했다. 컬리는 2025년에 하려 하고 있다.
뷰티컬리 _ 새벽배달의 다음 챕터
ⓒ 컬리(Kurly) / 시사저널e 기사 참조
2022년 11월, 컬리가 뷰티 플랫폼을 열었다.
에스티로더, 라 메르, 랑콤, 설화수, 논픽션. 새벽배달 식품 앱에서 팔 것 같지 않은 브랜드들이 들어왔다. 2025년엔 에르메스 뷰티까지 입점했다. 입점 브랜드가 1,000개를 넘었다.
왜 식품 회사가 뷰티를 파는 걸까.
구조의 문제다. 신선식품은 마진이 얇다. 원가가 높고, 유통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보관 비용도 든다. 반면 뷰티는 마진이 두텁다. 단가도 높다. 같은 물류 인프라를 쓰면서 더 높은 마진을 낼 수 있는 카테고리다.
컬리의 고객층과도 맞는다. 30·40대, 프리미엄 제품에 기꺼이 돈을 쓰는 사람들. 식품에서 구축한 신뢰가 뷰티로 옮겨갈 수 있었다. '컬리가 파는 거면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카테고리를 넘어서도 작동했다.
2024년 뷰티컬리 거래액은 전년 대비 23% 성장했다. 비식품 카테고리 확장이 컬리의 EBITDA 개선에 직접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뷰티가 단순한 추가 사업이 아니라 수익성 구조를 바꾸는 축이 되고 있다.
흑자의 문턱에서
ⓒ 이뉴스투데이 기사(2024년)
2025년, 컬리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 약 2조 3,671억 원, 영업이익 약 131억 원. 아직 공식 확정 수치는 아니지만, 복수의 보도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다.
첫째, 물류 효율화다. 김포 물류센터 자동화와 비효율 센터 폐쇄로 운반비를 2024년 기준 전년 대비 약 8% 줄였다. 쌓아온 물류 인프라가 드디어 효율을 내기 시작했다.
둘째, 수익 구조 전환이다. 처음엔 전 상품 직매입이었지만, 지금은 3P(판매자 위탁)와 풀필먼트 서비스를 병행한다. 식품·뷰티는 직매입 품질 기준을 유지하고, 패션·리빙·가전 등은 위탁 비중을 늘렸다. 재고 리스크를 줄이면서 수수료 수익은 키우는 방향이다.
셋째, 마케팅 효율화다. 공격적인 할인과 쿠폰 경쟁에서 빠져나와, 멤버십(컬리 멤버스)과 객단가 상승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고객을 새로 끌어오는 비용보다 기존 고객을 더 잘 쓰게 만드는 방향이다.
적자를 줄인 게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꿨다. 그 결과가 10년 만의 흑자다.
컬리가 증명하려는 것
ⓒ 컬리(Kurly)
김슬아는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말했다.
"고객이 원하는 건 예쁜 앱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신선식품이다."
10년 동안 그 하나를 붙들었다. 100곳 넘는 투자자에게 거절당하고, 자금이 바닥날 위기를 넘기고, 쿠팡이 따라오고, IPO가 무산됐을 때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직매입 구조를 고집한 건 효율보다 신뢰를 택한 결정이었다. 그 신뢰가 재구매율 70%를 만들었고, 뷰티컬리에서도 통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제 컬리는 IPO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연간 흑자 기조를 유지해 기업가치 디스카운트를 해소한 뒤, 시장 상황을 보며 국내 상장을 다시 노린다는 방향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을 10년 동안 한 결과가 흑자로 나왔다. 다음은 그 흑자가 일회성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일이다.
본 리포트의 수치는 컬리 공시 및 주요 언론 보도(매일경제, 한국경제, 동아일보, 뉴스핌 등 2025~2026년 기준)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2025년 영업이익 수치는 공식 확정 공시 전 보도 기반 추정치입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두덤두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도대체 왜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