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2년 코로나 시기, 해외여행이 막힌 사람들의 돈이 국내 소비로 몰렸다. 보복소비였다. 동시에 SNS에 올릴 수 있는 스몰 럭셔리 소비가 유행했다. 명품 가방은 못 사도 30만 원짜리 오마카세 한 끼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었다.
2020년 전후 서울 강남 기준 디너 오마카세는 1인 15만~25만 원대가 주류였다. 코로나 기간 수요가 과열되면서 2022~2023년에는 20만~30만 원 이상으로 가격이 뛴 매장이 크게 늘었다.
매장 수도 폭증했다. 오마카세는 20·30세대의 대표적인 성공의 상징, 스몰 럭셔리의 대명사가 됐다.
지금 무너지고 있다
전환점은 명확하다. 검색량이 2023년 1월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했다. 예약 데이터도 같은 신호를 보인다. 2023~2024년 캐치테이블 외식 카테고리 예약 1위였던 '일식 오마카세'가 2025년에는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가격은 일부 조정됐다. 18만 원짜리 디너를 9만 원으로 낮추는 반값 할인 사례가 다수 보도됐다. 그런데도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게 지금 상황이다.
폐업은 계속 늘고 있다. 하루 평균 2곳씩 문을 닫는다는 현장 증언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강남·성수·연남·압구정 등 오마카세 밀집 상권에서 임대 문의와 간판 철거가 늘었다는 보도도 이어진다.
업계에서는 오마카세 시장이 '포화 → 과포화 → 질 하락 → 가격 부담 → 수요 증발' 구조로 흘러 지금은 쇠퇴 구간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왜 갑자기 꺾였는가
ⓒ 네이버 뉴스
고물가가 외식을 사치품으로 만들었다
냉면 한 그릇이 1만 2,000원대를 넘고, 외식 한 번에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소비자물가는 2026년 5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2024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식은 이제 필수 소비가 아니라 가장 먼저 줄이는 항목이 됐다. 그중에서도 1인당 20만~30만 원대 고가 외식이 제일 먼저 잘려나간다.
ⓒ 여행을말하다 기사
엔저가 오마카세를 이겼다
일본 여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4년 방일 한국인은 881만 명이었다. 같은 예산으로 한국 오마카세 한 끼를 먹느니, 일본 현지에서 진짜 스시를 먹는 여행 전체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북스톤 / 김짠부
MZ세대가 짠테크로 갔다
코로나 시기 '스몰 럭셔리'를 즐기던 MZ세대가 고물가·실질소득 정체 국면에서 짠테크·가성비 소비로 방향을 틀었다. 플렉스 대신 초저가 주점, 무한리필, 가성비 뷔페가 그 자리를 채웠다.
가정간편식(HMR) 시장은 2017년 3조 4,000억 원에서 2023년 6조 8,000억 원으로 성장했고, 2026년에는 7조 1,000억 원을 넘을 전망이다. 오마카세 수요가 빠져나간 자리를 편의점 프리미엄 도시락, 구내식당 오픈런, 밀키트가 채우고 있다.
(* YONO : You Only Need One.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합리적 소비 성향)
그런데 어떤 셰프는 여전히 잘 나간다
시장 전체는 무너지고 있는데, 예외가 있다. 그 예외를 만든 게 셰프의 셀러브리티화다.
ⓒ 흑백요리사, Netflix
흑백요리사가 만든 예약 전쟁
캐치테이블 분석에 따르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1 방영 후 출연 셰프 매장의 검색량은 전주 대비 74배 증가했다. 저장 수는 1,884% 늘었다. 평균 예약 증가율은 148%였고, 일부 매장은 예약 건수가 4,937.5%까지 폭증했다.
시즌2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방영 전후 5주 비교에서 출연 셰프 매장의 예약·웨이팅 이용자 수가 평균 303% 증가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미쉐린 레스토랑 전체 이용 건수는 전년 대비 21.2% 늘었는데, 그중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 식당의 이용 건수는 42.2% 급증했다. 시장 평균보다 두 배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손종원 셰프의 미쉐린 레스토랑 이타닉 가든은 점심 25만 원, 디너 37만 원의 높은 가격에도 예약 가능한 날짜가 거의 없어 '빈자리 알림'만 가능한 상태라는 보도가 반복된다.
ⓒ 유튜브, JTBC Ent
셰프가 연예인이 됐다
흑백요리사 방영 이후 SNS에서 '미슐랭'·'파인다이닝' 언급량이 2023년 대비 각각 43.2%, 11.4% 증가했다. 흥미로운 건 검색 패턴의 변화다. 사람들이 '오마카세 맛집' 대신 '손종원', '샘킴' 같은 셰프 이름을 직접 검색하기 시작했다.
과거 엄격한 장인 이미지였던 셰프가 이제는 팬덤을 가진 캐릭터가 됐다.
편의점에 셰프 이름을 건다
이 셀러브리티화는 곧바로 산업이 됐다. 편의점 3사가 대대적으로 셰프 협업 상품을 냈다.
GS25는 에드워드 리 셰프와의 간편식을 출시 한 달 만에 100만 개 판매했다. CU는 권성준 셰프의 밤 티라미수 컵을 250만 개, '급식대가' 이미영 조리사 시리즈를 700만 개 팔았다. 세븐일레븐은 최강록 셰프와 협업한 프리미엄 소주를 초도 물량 1만 병을 3일 만에 완판시켰다. 이마트24는 손종원 셰프 협업 상품을 40일 만에 30만 개 팔며 역대 최단 기간 최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인기 오마카세의 예약은 이제 콘서트 티켓팅과 비슷해졌다. 예약 오픈 시각이 공지되고, 정해진 순간 수초 만에 마감된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모수]의 경우 4인 크리스마스 디너 예약권에 최대 80만 원의 웃돈이 붙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거래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청담동 고급 스시 오마카세는 2인 예약에 10만 원 웃돈을 붙여 54만 원에 거래되는 사례도 나왔다.
일부 브로커나 헤비 유저들은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예약 오픈 시간에 다수의 자리를 선점한 뒤 되파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게 불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연·스포츠 입장권과 달리 식당·호텔 예약권은 암표 규제 대상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웃돈을 붙여 되파는 행위를 직접 처벌할 규정이 없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윤남노 셰프는 자신의 매장 예약을 되파는 브로커들을 SNS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실명 공개까지 경고했다. 일부 셰프들은 리셀 적발 시 예약 앱에서 영구 블랙리스트 처리, 현장 신분 확인 강화 같은 자체 대응에 나섰다.
노쇼와 예약금 전쟁
ⓒ 네이버 뉴스기사 검색
예약제 특성상 노쇼는 오마카세·파인다이닝에 치명적이다. 한 타임 전체 테이블이 노쇼되면 그날 영업이익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존에 예약보증금을 총 이용금액의 10% 이하로 권고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강남의 한 유명 오마카세는 디너 가격 35만 원에 예약금을 33만 원, 약 90%까지 받는 사례가 보도됐다. 1인 5만~10만 원, 많게는 식사 가격의 70~100%를 예약금으로 받는 매장이 흔하다.
소비자 불만이 이어졌다. "식당 예약금 2명에 66만 원", "1시간 전 취소도 환불 불가" 같은 사례가 보도됐다.
2025년 말, 정부가 방향을 바꿨다. 공정위·중소벤처기업부는 소상공인 노쇼 피해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개정했다. 오마카세·파인다이닝처럼 예약 기반 업종은 위약금을 총 이용금액의 40%까지 설정할 수 있도록 상향했다. 현실의 관행을 제도가 뒤늦게 따라간 셈이다.
프리미엄 다이닝은 사라지는가
ⓒ 신라호텔 앳홈(신라호텔 프리미엄 밀키트)
지금까지의 그림을 종합하면 답은 명확하다. 오마카세 붐은 꺾였지만, 프리미엄 다이닝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이 재편을 세 층으로 본다.
최상단 슈퍼 프리미엄
: 미쉐린 스타,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처럼 확실한 브랜드력을 가진 곳. 여전히 예약 전쟁과 리셀 수요가 이어진다.
중상위 진짜 프리미엄
: 산지·숙성·셰프 스토리·공간 경험에서 일관된 정체성을 가진 매장. 충성 고객층으로 생존한다.
퀄리티가 모호한 중간층
: 버블기에 우후죽순 생긴 비싼데 특별할 것 없는 매장들. 가장 빠르게 도태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이 시장에서 캐치테이블과 네이버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다. 프리미엄 다이닝 매장들은 네이버 플레이스·예약을 신규 고객 유입과 검색 노출용으로, 캐치테이블을 예약금·웨이팅 관리와 재방문 헤비 유저 대상 채널로 병행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캐치테이블 매출은 2023년 75억 원에서 2025년 301억 원으로 4배 성장했는데, 이는 방한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함께 프리미엄 다이닝 예약 인프라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결과로 풀이된다.
결국 살아남는 조건은 하나로 수렴한다. 가격에 걸맞은 납득 가능한 프리미엄을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그 프리미엄을 셰프 개인기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재현할 수 있는가.
시장은 계속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붕괴 속에서 어떤 이름은 더 크게 자란다.
본 글의 수치는 네이버 데이터랩, 행정안전부 폐업 통계, 캐치테이블(와드) 공식 분석 자료,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안,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 외식 트렌드 보고서 및 주요 언론 보도(2020~2026년 기준)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시장 규모·폐업 상권별 세부 수치 일부는 공식 통계 부재로 추정치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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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덤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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