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47.21조 원이었다. 같은 해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은 43.6조 원이었다.
매출은 삼성전자가 333.6조 원으로 SK하이닉스(97.15조 원)의 세 배가 넘는다. 그런데 남긴 돈은 SK하이닉스가 더 많았다.
영업이익률로 보면 격차가 더 벌어진다. 2025년 4분기 SK하이닉스 영업이익률은 58%였다. 반도체 업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수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부실기업이었던 회사
ⓒ 매일경제 기사
SK하이닉스의 출발점은 1983년 현대그룹이 세운 현대전자산업이다. 1999년 LG반도체와 합병했고, 2001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면서 하이닉스반도체로 재출범했다. DRAM 가격 담합 조사, 구조조정, 채권단 관리. 한동안 흔들렸다.
2011년,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지분 21.1%를 3.42조 원에 인수했다. 통신사가 반도체 회사를 왜 사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반도체 업황이 나빴고, 하이닉스는 여전히 구조조정 중이었다.
그 베팅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는 숫자가 말해준다.
2012년 SK그룹 편입 이후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선두기업으로 변신했다. SK스퀘어가 SK하이닉스 지분 20.5%를 보유하고 있는데, SK스퀘어의 총 순자산가치 378.4조 원 중 SK하이닉스 가치가 373.29조 원을 차지한다. SK스퀘어는 사실상 SK하이닉스 하나짜리 회사가 됐다.
왜 HBM에 올인했는가
ⓒ SK하이닉스 뉴스룸
SK하이닉스가 HBM에 집중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삼성보다 약했기 때문이다.
범용 DRAM 시장은 삼성전자가 압도적이었다. 자본·규모·생산능력 모두 삼성이 앞섰다. 같은 게임을 하면 이길 수 없었다. SK하이닉스가 선택한 방향은 삼성이 집중하지 않는 고부가 메모리였다.
HBM(High Bandwidth Memory)은 D램 칩 여러 개를 3D로 쌓아 올린 메모리다. 기존 D램보다 데이터를 훨씬 빠르게 처리하고 전력 소모가 적다. 2016년 AMD GPU에 처음 탑재됐을 때만 해도 틈새 제품이었다. 생산이 어렵고 비쌌다. 범용 DRAM처럼 대량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SK하이닉스는 이 어렵고 비싼 제품에 일찍부터 투자를 집중했다. 삼성이 파운드리·시스템 반도체·스마트폰 등 다양한 사업에 자원을 분산하는 동안, SK하이닉스는 DRAM과 HBM에 집중했다.
그리고 2023년, AI 붐이 터졌다.
챗GPT가 뜨고, 데이터센터마다 AI 서버를 들이기 시작했다. AI 서버의 핵심은 엔비디아 GPU였다. 엔비디아 GPU의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부품 중 하나가 HBM이었다. SK하이닉스가 수년간 쌓아온 것이 갑자기 시장이 원하는 바로 그것이 됐다.
엔비디아를 먼저 잡았다
ⓒ SK하이닉스 뉴스룸
HBM 시장에서 선두가 되려면 엔비디아의 검증을 통과해야 했다.
엔비디아는 HBM 공급사에게 까다로운 퀄테스트를 요구한다. 수율·발열·성능·패키징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한다. 이 검증을 먼저 통과한 곳이 엔비디아 AI GPU의 핵심 공급사가 된다.
SK하이닉스는 HBM3, HBM3E에서 엔비디아 검증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2023~2024년 엔비디아 AI GPU에 들어가는 HBM 대부분을 SK하이닉스가 공급했다.
2023년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90%, 삼성 8%, 마이크론 2%였다. 사실상 독점이었다.
삼성은 달랐다. HBM3에서 수율과 발열 문제를 겪으며 엔비디아 초기 채택에서 밀렸다. 엔비디아의 주요 AI GPU에 본격적으로 HBM을 공급하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격차는 단순한 기술 차이가 아니었다. SK하이닉스가 HBM·TSV·패키징 역량에 조직과 자본을 집중한 반면, 삼성은 넓은 포트폴리오에 자원이 분산된 구조적 차이였다.
2024년에는 SK 58%, 삼성 25%, 마이크론 17%로 점유율 격차가 줄었다. 삼성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이미 HBM3E 12단 적층으로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숫자로 보는 역전
ⓒ 뉴스웨이 기사
SK하이닉스 실적 추이를 보면 AI 붐이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보인다.
2023년 SK하이닉스는 영업손실 7.73조 원을 냈다. 메모리 사이클 불황이었다. DRAM 가격이 폭락했고, 재고가 쌓였다. 같은 시기 삼성전자도 대규모 적자를 냈다.
2024년, AI 붐이 본격화됐다. HBM 수요가 폭발했다. SK하이닉스 매출은 66.19조 원, 영업이익 23.47조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25년, 속도가 더 붙었다. 매출 97.15조 원, 영업이익 47.21조 원. 영업이익률 49%. 그리고 4분기에는 영업이익률 58%를 찍었다.
같은 해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은 43.6조 원이었다. 매출이 세 배 넘는 회사보다 SK하이닉스가 더 많이 남겼다.
DRAM 시장 전체에서도 역전이 일어났다. 2025년 1분기 DRAM 매출 점유율은 SK하이닉스 36%, 삼성 34%, 마이크론 25%였다. SK하이닉스가 처음으로 DRAM 전체 1위가 됐다.
HBM이 SK하이닉스 DRAM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3분기 30%, 4분기 40%로 빠르게 올랐다. HBM이 회사 실적을 통째로 바꾼 것이다.
잘 나가는 회사의 리스크
SK하이닉스가 지금 잘 나가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이 구조에는 리스크가 내재돼 있다.
ⓒ 조선일보 기사, 엔비디아 젠슨황
엔비디아 의존
SK하이닉스 HBM 매출의 상당 부분이 엔비디아 AI GPU용이다. 정확한 비중은 공개되지 않지만, 엔비디아 수요가 꺾이면 SK하이닉스 실적도 꺾인다는 구조는 분명하다.
엔비디아 AI 칩 수요가 둔화되거나, 다음 세대 GPU 전환이 지연되거나, 대형 CSP들이 자체 AI 칩(구글 TPU·아마존 트레이니움 등)으로 이동하면 HBM 수요에 직접 영향이 온다.
ⓒ SK하이닉스 뉴스룸
메모리 사이클
SK하이닉스는 2023년 영업손실 7.73조 원을 냈다. 2년 전 이야기다. 메모리는 수요·공급이 조금만 어긋나도 가격이 폭락하는 구조다.
지금은 AI 수요가 메모리 사이클을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공급능력 확충·AI 투자 속도 조정이 맞물리면 다시 조정 국면이 올 수 있다. TrendForce는 2026년 이후 HBM 성장률이 다소 둔화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 삼성반도체 뉴스룸
파운드리·시스템 반도체 부재
삼성전자는 메모리·파운드리·스마트폰·가전을 모두 가지고 있다. HBM에서 밀려도 다른 사업이 버텨준다.
SK하이닉스는 다르다. DRAM·HBM·NAND가 전부다. 메모리가 꺾이면 대안이 없다. 이것이 집중 전략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중국 CXMT가 DRAM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올리고 있다. Counterpoint에 따르면 2025~2026년 CXMT의 DRAM 점유율은 3~8%까지 상승했다. 당장의 위협은 아니지만 방향이 문제다.
2025년 SK하이닉스 CAPEX(설비투자)는 30.17조 원으로 매출의 31%였다. 전년 17.96조 대비 68% 급증이다. HBM4·용인 클러스터·EUV 장비 도입 등 대규모 투자가 계속된다. 투자가 결실을 맺으려면 수요가 받쳐줘야 한다.
SK하이닉스의 다음 스텝
ⓒ SK하이닉스 뉴스룸
HBM4 : 이번엔 더 빠르게
SK하이닉스는 2025년 2월 HBM4 세계 최초 양산을 시작했다. HBM3E에서 경쟁사를 앞질렀던 것처럼 HBM4에서도 선점을 노리는 전략이다.
다만 2026년 4월 기사에서는 삼성·마이크론이 엔비디아 차세대 AI 칩 'Vera Rubin'용 HBM4 공급을 먼저 발표했고, SK하이닉스는 설계 변경 과정에서 일부 지연이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HBM4 경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 동아일보
미국 인디애나 공장
2024년 8월 미국 상무부가 SK하이닉스와 인디애나주 첨단 패키징 공장에 CHIPS Act 지원금 39억 달러(약 5조 원) 지원 예비 합의를 발표했다. 미국 내 AI 메모리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AMD·CSP 등 북미 핵심 고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미·중 반도체 전쟁 속 지정학 리스크를 분산하는 의미도 있다.
ⓒ 아시아 투데이 기사(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220010005944)
AI 메모리 솔루션 파트너로
SK하이닉스가 지향하는 방향은 단순한 HBM 칩 공급사가 아니다. LPCAMM2·SOCAMM 등 AI 서버·AI PC용 메모리 모듈을 확장해 AI 메모리 솔루션 파트너로 포지셔닝을 전환하겠다는 방향이다. 엔비디아·AMD·CSP와의 협력을 칩 공급을 넘어 솔루션 파트너십으로 심화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역전은 우연이 아니었다. 삼성보다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한 곳에 집중해야 했고, 그 집중이 AI 붐과 맞아떨어졌다.
2023년 7조 넘는 적자를 냈던 회사가 2년 만에 영업이익 47조를 찍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사이클이 얼마나 격렬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당면한 질문은 하나다. HBM이 이 호황을 얼마나 오래 이어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 다음 사이클에 대비할 준비를 할 수 있는가.
[핵심 수치 정리]
항목
수치
기준
SK하이닉스 매출
97.15조 원
2025년 (역대 최고)
SK하이닉스 영업이익
47.21조 원
2025년
SK하이닉스 영업이익률
49% (연간) / 58% (4분기)
2025년
SK하이닉스 인수가
3.42조 원
2011년 SK텔레콤
HBM 점유율
SK 53% / 삼성 28% / 마이크론 19%
2025년 추정
DRAM 점유율
SK 36% / 삼성 34% / 마이크론 25%
2025년 1분기, Counterpoint
[용어 정리]
용어
설명
HBM
High Bandwidth Memory. D램을 3D로 적층해 대역폭을 극대화한 AI 메모리
TSV
Through-Silicon Via. HBM 칩 적층에 쓰이는 수직 관통 전극 기술
CAPEX
Capital Expenditure. 설비·장비 등 자본 투자. 반도체는 수십조 단위 투자가 필수
CHIPS Act
미국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보조금 법안. 미국 내 반도체 공장 투자 시 지원
CXMT
중국 창신메모리(ChangXin Memory Technologies). 중국 DRAM 업체
Solidigm
SK하이닉스가 인텔로부터 인수한 NAND·SSD 사업 자회사
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설계·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
본 글의 수치는 SK하이닉스 공식 IR 자료, Counterpoint Research·TrendForce·SiliconAnalysts 반도체 시장 보고서, 미국 상무부 CHIPS Act 발표, Korea Times·Chosun·AJP 보도(2023~2026년 기준)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HBM 점유율은 기관마다 집계 기준이 달라 추정치로 제시했습니다. 엔비디아 매출 비중 등 일부 수치는 SK하이닉스가 공개하지 않아 확인 불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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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덤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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