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투표하셨나요? 저는 지난주 사전투표를 하고 오늘은 여유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고 노력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은 완벽한 투표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음을 증명한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20세기 물리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린 발견으로 '불확정성 원리'가 있습니다. 이 발견으로 어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아낼 수는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20세기 수학자들에게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이와 같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정리를 통해 자연수를 포함한 수학 체계는 모순이 없으면서 동시에 완전할 수 없다는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20세기 경제학에서도 이 두 정리와 비슷한 이름을 한 정리가 발표됐는데 그것이 바로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입니다. 이 정리에 따르면 민주적인 투표 체계라면 당연히 만족시켜야 할 것 같은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우가 그의 박사논문에서 이 원리를 입증했습니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간단한 말로 거칠게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문제에 대한 세 가지 이상의 대안이 존재합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포켓몬스터로 예시를 들겠습니다. 지우, 웅이, 이슬이가 어떤 포켓몬이 제일 귀여운지에 대해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라는 후보를 놓고 투표를 합니다. 세 사람은 세 포켓몬에 대해 선호를 갖고 있습니다. 만약 이상해씨보다 파이리를 선호하고 파이리보다 꼬부기를 선호한다면, 이상해씨보다 꼬부기를 선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의 세 조건을 항상 만족시킬 수 있는 합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1. 모든 구성원이 한 포켓몬을 다른 포켓몬보다 선호한다면, 사회도 그 포켓몬을 선호합니다. 즉 지우, 웅이, 이슬이 모두가 파이리를 이상해씨보다 좋아했다면, 세 사람의 합의에서도 파이리가 이상해씨보다 선호되어야 합니다.
2. 두 포켓몬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는 이외의 포켓몬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즉 파이리와 이상해씨만 놓고 생각했을 때에는 파이리가 더 좋았는데, 꼬부기를 함께 생각했더니 꼬부기, 이상해씨, 파이리 순으로 좋다고 갈팡질팡해서는 안 됩니다.
3. 웅이와 이슬이의 의견은 무시된 채, 지우의 의견만 따라서는 안 됩니다.
수학적으로 더 엄밀하게 표현한 정리와 그 증명은 영어 위키에 다 실렸을 만큼 짧지만 페퍼노트에서 다루기에는 어려우므로 생략하겠습니다.
이 정리를 통해 효율적이고, 공정하고, 민주적인 투표 방식은 없음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불완정성 정리 때문에 우리가 수학을 포기한 것도 아니듯, 불가능성 정리가 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완벽한 방법은 없을지라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볼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투표도 그렇습니다. 분명 세상을 완벽하게 바꿀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나아지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같이 볼 링크
영어 위키피디아 Arrow's impossibility theorem
한국어 위키피디아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
Kenneth J. Arrow, A Difficulty in the Concept of Social Welfare, The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Vol. 58, No. 4. (Aug., 1950), pp. 328-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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