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국경은 썩 친숙한 존재는 아닙니다. 동쪽, 서쪽, 남쪽으로는 바다라 국경선을 보기 어렵습니다. 북쪽으로는 북한의 존재 때문에 실질적으로 중국, 러시아와의 경계를 보기 힘듭니다. 사실상 국경 역할을 하고 있는 군사분계선도 민간인의 왕래가 자유로운 곳이 아닙니다. 게임 '문명'을 할 때 유독 한국 플레이어들만 군대를 국경 근처에 배치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고, 이에 대해 이웃 나라가 항의하는 것을 의아해 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벨기에는 유럽 국가답게 옆 나라와의 왕래가 자유롭습니다. 바다와 접하는 부분은 작고,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과 국경을 맞대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에는 매우 낯선 일들이 일어납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가르는 바를러 마을의 복잡한 국경
바를러 마을은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위 이미지는 바를러 마을의 지도인데 진하게 표시된 부분이 벨기에 땅인 바를러헤르토흐, 연한 부분이 네덜란드 땅인 바를러나사우입니다. 지도만 봐도 건물 단위로 나라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더 심해서 한 건물 안에도 국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출입문의 위치를 기준으로 벨기에의 건물인지 네덜란드의 건물인지를 정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출입문마저 두 나라에 걸쳐 있는 집도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국경이 생겨난 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 중세에 브라반트와 브레다 지역의 영주들이 서로 복잡하게 땅을 주고 받고 사고 팔고 나눴습니다. 후에 브라반트 지역은 벨기에로 브레다 지역은 네덜란드로 각각 다른 국가에 속하게 되면서 두 지역 영주가 소유한 땅의 경계가 그대로 국경선이 되었습니다.
두 나라가 전쟁 중인 것도 아니고, 앞서 말했듯 국경을 넘나드는 게 자유롭기 때문에 별다른 불편함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관광 수익 등의 이익이 있기 때문에 굳이 국경을 정리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흔하게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농부가 바꿔 버릴 뻔한 프랑스와의 국경선
한편 2021년 프랑스와의 접경 지역인 에르클린에서는 한 농부가 트랙터를 몰고 지나가다가 걸리적거리는 돌을 치워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인적도 드문 곳에 150kg짜리 돌이 하나 놓여 있으니 이동에 불편하여 몇 걸음 옮겨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돌이 바로 벨기에와 프랑스의 국경을 표시해두는 비석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뒤늦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발견돼 살펴보니 이 비석이 원래 위치에서 2.29m 쯤 옮겨진 바람에 약 1,000 제곱미터의 땅이 프랑스에서 벨기에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서 양국의 가벼운 농담만 오가고 국경은 그대로 유지가 되었지만, 내 땅 한 뼘도 갖기 힘든 세상에 나라의 땅을 1,000 제곱미터나 넓힐 뻔한 재밌는 사건이었습니다. 작은 돌의 위치 때문에 두 나라의 땅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묘하게 영화 '파묘'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같이 볼 링크
나무위키 국경 문서
BBC, 'Europe's strange border anomaly'
조선일보, '농부가 돌 하나 치웠는데... 프랑스-벨기에 국경이 바뀌었다'
SBS, '[Pick] '돌' 잘못 치웠다 분쟁 날 뻔…벨기에 농부의 아찔한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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