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물 제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가 어쩌다 한국에...?

2023.11.18 | 조회 1.58K |
0
|

침략 등의 이유로 인해 다른 나라의 보물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병인양요 때 약탈당했던 외규장각의궤를 프랑스 정부로부터 환수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례는 익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한국이 해외 유물을 갖고 있는 사례에 대해선 들어 보셨나요? 대한민국의 보물 제 904호는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입니다. 한국은 저 멀리 그리스까지 팽창하려 했던 역사도 없고, 고대 그리스의 상인이 유라시아 대륙을 빙 돌아 삼한에서 거래를 하는 모습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는 어쩌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걸까요?

대한민국 보물 제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대한민국 보물 제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마라톤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때 처음 만들어진 종목입니다. 이 종목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싸웠던 마라톤 전투 이야기를 살짝 각색하여 기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를 더 강조하기 위해서 마라톤 우승자에게는 고대 그리스의 유물을 부상으로 주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스피로스 루이스가 받았던 고대 그리스의 유물입니다.

첨부 이미지

그리고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듯,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리스의 브라디니 신문사는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주기 위해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를 IOC에 맡겼습니다. 하지만 IOC는 올림픽의 아마추어리즘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우승자에게 부상을 전달하는 것을 꺼렸습니다.결국 이 투구는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베를린에 남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손기정 선수는 전달받지 못했던 것일까요?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웠던 시대에 뭔가 알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당시 일본은 식민지 출신 우승자의 권리를 대변할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손기정 선생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거나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건의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 사실은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10년이 지난 1946년부터 이 투구를 찾아 나섭니다. 그 사이 베를린도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청동 투구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86년, 서독 올림픽위원회가 베를린 올림픽 50주년을 맞아 손기정 선수에게 청동 투구를 돌려 주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50년 만에 청동 투구를 받은 손기정 선수는 자택에서 이를 애지중지 보관하다가 후에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뜻과 함께 국가에 기증하였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 투구를 맡게 됩니다.

투구를 써보는 손기정 선수
투구를 써보는 손기정 선수

이 투구는 현존하는 코린토스 양식 투구들 중 가장 초기에 제작된 것들 중 하나라 학술적인 가치도 높고, 보존상태도 뛰어납니다. 거기에 이런 이야기까지 더해져, 1987년 서구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페퍼노트에서 이전에 54년이 넘게 걸렸던 마라톤 기록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수십 년 전의 올림픽이다 보니, 경기 중간에 가정 집에 들어가 물을 마시는 등 지금의 상식으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었는데요, 오늘도 마라톤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고대 그리스 유물이 수여되는, 옛날 올림픽의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페퍼노트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무단횡단은 불법이어야 할 이유가 없고, 플라스틱은 일회용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마케팅으로 바뀌어버린 사회의 기준. 저는 요즘 1899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189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자동차는 보이질 않습니다. 길에는 걷는 사람

2024.10.19·조회 2.18K·댓글 4

38분 만에 끝난 전쟁

영국-잔지바르 전쟁에 대해 알아 봅니다. 한국은 여전히 전쟁 중인 국가입니다. 1953년 휴전을 하였으나 종전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전쟁은 7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역사에는 고작 38분 만에 끝

2024.11.02·조회 3.26K·댓글 2

고기비가 내려와

요로 물고기비 축제, 켄터키 고기비 사건, 케랄라 붉은비 등 각종 특이한 비가 내렸던 현상에 대해 알아봅니다. 'It's Raining Men'이나 '사랑비' 같은 곡은 비현실적인 비가 내려오는 모습을 가사로 삼아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정말 이렇게 특이한 비가 내렸다는 기록...

2024.02.25·조회 2.09K·댓글 3

일본 빼고 다 써서 일본을 물리친 일본의 발명품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대활약을 펼친 야기-우다 안테나에 대해 알아봅니다. 페퍼노트를 쓰며 가장 안타까웠던 소재 중 하나가 '연은분리법'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이 글은 은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기술을 조선에서 발견했지만, 정작 조선은 써먹지

2024.07.13·조회 2.13K

인간과 침팬지를 교배하려 했던 과학자

윤리적 논란을 일으킨 '휴먼지(Humanzee)' 프로젝트.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혼혈이라는 얘기를 전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수만 년 전이 아니라 고작 100년 전에, 현생 인류의 새로운 교배종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소련의

2024.07.20·조회 5.75K

아 맞다, 전쟁 중이었지

영국과 네덜란드, 전쟁 당사자들조차 전쟁 중인 걸 까먹어버린 335년 전쟁. 30여 분 만에 끝나버린 전쟁에 대해 메일을 보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그렇게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반대로 가장 긴 전쟁으로 눈을 돌려

2025.01.11·조회 1.47K
© 2026 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뉴스레터 문의pppr.note@gmail.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