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왕국'에 대해선 익히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역사에 손 꼽히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3세가 바로 이 마케도니아 왕국 출신입니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 공화국'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가요?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로, 2019년에는 국호를 변경하여 현재는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이 국호를 변경해야 했던 이유는, 그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마케도니아 왕국을 계승한 국가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로 옮겼을 때에는 '북' 한 글자 차이여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한 글자 차이 때문에 두 나라가 3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갈등을 겪었는데, 오늘은 그 사연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1991년 무렵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비롯하여 공산 진영의 국가들이 대거 붕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또한 이 시기에 해체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남부 지역이 분리,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 남부 지역은 옛날 마케도니아 왕국이 지배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이들은 새롭게 만든 나라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내세웁니다.
다만 이 이름은 그리스인들로서는 도저히 환영할 수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슬라브족이 주축인 국가입니다. 슬라브족은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는 관계가 없는 민족입니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이끈 찬란한 헬레니즘 역사를 계승한 국가를 찾는다면 역시 그리스이고, 언어로 보나 민족으로 보나 마케도니아 왕국은 그리스 계통의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케도니아 왕국의 영역은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그리스 북부에 걸쳐 있는데, 마케도니아 왕국이 발원한 곳은 그리스의 영토에 있고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세워진 곳은 마케도니아 왕국이 후에 정복한 지역에 속합니다.
그리스인들의 마음에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면 한국의 사정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어느 날 만주 일대에 한족들이 독립된 국가를 세웠는데 그 영토가 만주라는 이유로 고구려 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다면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한국인들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뺏어가려 한다는 두려움마저 느낄 것입니다. 그리스인들도 그랬습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를 계승한 것이 그리스가 아니라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고 주장할까봐, 나아가 과거 마케도니아 왕국의 영토를 수복하겠다는 주장이라도 할까봐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리 하여 나라가 세워진 1991년부터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그리스와 격한 갈등을 빚습니다. 전쟁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는 항구를 폐쇄하여 경제적인 압박을 하기도 하고,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EU나 NATO에 가입하려 할 때마다 결사반대하는 등 마케도니아 공화국을 철저하게 견제합니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이미 수 세기 동안 사용해온 국호라는 주장을 하며 그리스에 맞섰지만 결국 NATO 가입을 위해 한 발 물러나 2019년, 프레스파 협정에 서명합니다. 프레스파 협정은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국호를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변경하는 대신, '마케도니아어', '마케도니아인'은 현대의 남슬라브계 언어와 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인정하고, 그리스가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의 NATO 가입을 지지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은 그리스의 입장을 존중해(그리스는 6.25 전쟁에도 1개 대대를 파견한 바 있는 우방국입니다.) 딱히 그리스가 요청한 것이 아님에도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수교를 맺는 것을 미뤄 오다, 국호 문제가 정리된 2019년에야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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