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놈될'의 표본, 티모시 덱스터

잘못된 선택으로 승승장구하는 법

2024.07.26 | 조회 1.1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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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완벽한 작전으로 사마의를 궁지에 몰아 넣었으나, 하필 그 때 비가 내리는 바람에 화공이 실패하여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 하지만 이루어지는 건 하늘에 달려 있다"라며 탄식합니다. 최선을 다했어도 조금의 운이 따르지 않아 일이 잘못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좋지 못한 선택을 했어도 하늘이 도와 성공하는 경우들이 있는데요, 오늘 소개드릴 티모시 덱스터는 그 분야에서 최고라 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전래동화에서나 볼 법한 행운아로, 비틀린 버전의 포레스트 검프 같은 인물입니다.

티모시 덱스터
티모시 덱스터

덱스터는 독립 이전 미국의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8살에 일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16살에 가죽공 견습생이 되며 노동자의 삶을 살 것 같았지만, 돈 많은 과부와 결혼을 하면서 잡화점 주인이 되는 변화를 겪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삶의 변화는 그보다 훨씬 큰 것이었습니다.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륙 의회는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일종의 신용 어음으로 '대륙 통화'를 발행했습니다. 그런데 무분별하게 많이 발행한 나머지 휴지 조각이 되고 맙니다. 영어에 아직까지도 '대륙 통화만큼의 가치도 없다(Not worth a continental)'라는 관용어가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급여로 대륙 통화를 받았던 군인들은 모두 가난해졌고, 일부 상류층이 애국심으로 이들의 대륙 통화를 구매해 주었습니다. 덱스터는 존경하는 사람들이 대륙 통화를 구매하는 것을 보고 단순히 그들을 따라서 대륙 통화를 대량 사들였습니다. 대륙 통화는 이미 똥값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뭐라도 받을 수 있으면 쉽게 대륙 통화를 내주었습니다. 지극히 어리석은 투자로 보였지만, 후에 정부가 대륙 통화를 액면가의 1% 값의 국채로 교환해 주기로 하면서 덱스터는 돈방석에 앉았습니다(1% 값만 받아도 이득을 봤다는 점에서 대륙 통화의 가치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벼락부자답게, 그는 수많은 사치품으로 자신의 저택을 채웠습니다. 그 중에는 자신을 조각한 조각상도 있었는데 '나는 동양에서 1등, 서양에서 1등, 서양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철학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았는데도 말입니다. 조용한 동네에서 부를 과시하는 게 짜증이 났는지 이웃들은 덱스터를 싫어했습니다. 어떤 이웃은 그를 파산시킬 목적으로 서인도제도에 워밍 팬을 팔아보라고 권합니다. 워밍 팬은 겨울에 침대를 데우는 데 썼던 황동 냄비이고, 서인도제도는 1년 내내 더운 곳입니다.

워밍 팬의 모습
워밍 팬의 모습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덥썩 물어 9척의 선박에 워밍 팬을 잔뜩 실어 서인도 제도로 보냈습니다. 당연히 서인도 제도에서 침대를 데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 당밀 업체들이 워밍 팬을 보고 대형 국자로 쓰기 딱 좋다 생각했고 79% 비싼 가격에 워밍 팬을 사들였습니다. 덱스터는 더욱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덱스터를 무너뜨리기 위해 뉴캐슬에 석탄을 팔라고 부추겼습니다. 뉴캐슬에 석탄을 판다는 것은 사실 영국 관용어로 무의미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뉴캐슬이 석탄 산업으로 유명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덱스터는 이번에도 멍청하게 석탄을 실어 뉴캐슬로 보냈는데, 절묘하게도 그 때 뉴캐슬에서 광부들의 파업이 일어나 덱스터는 다시 한 번 떼돈을 벌었습니다.

덱스터에게는 이제 품목 하나를 정해 매점매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한 품목은 엉뚱하게도 340톤에 달하는 고래 뼈였습니다. 도대체 이 쓰레기를 340톤이나 구매해서 어쩌려는 것이냐는 의심도 잠시, 곧 고래 뼈의 쓰임새가 발견되어 코르셋, 옷깃 고정용 막대, 장난감, 타자기 등 다양한 물건에 쓰이면서 그는 75%의 마진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돈을 많이 번 덱스터였지만 돈만으로는 그의 자존심을 채울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상류층이 되고 싶었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티모시 덱스터 '이라고 부르길 강요했습니다. 또 공직에 임하고 싶다는 청원서를 끊임없이 보냈고, 질려 버린 뉴버리포트 정부는 그에게 '사슴 정보 제공자'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뉴버리포트에는 사슴이 없습니다). 한 가난한 시인을 고용하여 그를 찬양하는 시를 쓰고 낭송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미국의 초대 군주로 소개하는 자서전도 한 권 썼는데, 철자법이 엉망이고 구두점도 제대로 안 찍혀 있었습니다. 구두점에 대한 비판을 하도 많이 받자 2판에서는 아예 한 페이지에 구두점을 몰아 넣고 독자에게 알아서 필요한 곳에 뿌려 넣으라 안내했습니다.

구두점이 모여 있는 그의 책 한 페이지
구두점이 모여 있는 그의 책 한 페이지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 하지만, 이루어지는 건 하늘에 달려 있다.' 실패에 지나치게 좌절하거나, 성공에 지나치게 오만해지지 말고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티모시 덱스터와 같은 운이 따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같이 볼 링크

이코노미조선 신상준의 돈 이야기, '북미 대륙이 1원 한 푼의 가치도 없게 된 이유'
Priceonomics, 'The Strange Life of 'Lord' Timothy Dexter'
Life of Lord Timothy Dexter; embracing sketches of the eccentric characters that composed his associates: including "Dexter's pickle for the knowing ones." : Knapp, Samuel L[orenzo], 1784-1838. [from old cat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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