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군사법원은 군무원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해외 공작 담당 부서 군무원으로 근무하던 A씨는 비밀 요원들의 신상정보를 노트북으로 빼돌려 중국인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우려스러운 점은 이후 A씨에겐 간첩죄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북한과의 연계 혐의가 포착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이번 정보 유출로 해외에 파견됐던 요원들이 급히 활동을 접고 귀국해 해외 정보망이 속절없이 무너진 상황입니다.
1. 휴민트가 무너졌다..! 근데 휴민트가 뭐지?
이번 사건으로 국가 정보망, 특히 첩보활동에 많은 관심이 쏠렸는데요, 첩보 수집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대인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는 휴민트와 신호 영상 등의 기술적 정보를 활용하는 테킨트인데요. 휴민트에 해당하는 정보관은 크게 블랙, 화이트 요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화이트 요원은 신분은 외교관이지만 정보기관의 지휘를 받으며 활동하고 상대국 역시 직간접적으로 정체를 알고 있다고 해요. 반대로 블랙 요원은 직장인 등으로 신분을 가장 한 채 위험성이 높은 비밀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번 사고로 유출된 명단이 바로 이 블랙요원들 인거죠.
2. 정체 탄로난 한국 요원,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미국 정부는 한국 태생의 전직 CIA 출신 여성 ‘수미 테리’를 기소했는데요. 미정부는 그녀가 대한민국 정부에 미국의 기밀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어요. 뉴욕타임즈는 그녀가 2013년 부터 10년간 한국 정부를 옹호하는 활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명품 의류, 고급레스토랑 등 약 5000만원 이상의 뇌물을 제공받았다고 보도했죠. 동시에 그녀가 국정원 직원에게 접대를 받는 CCTV도 공개되었습니다. 재판은 진행 중이지만 이 사건으로 동맹국 간에도 활발한 첩보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3. 한국이 가장 경계하는 스파이는?!
채성준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정보요원들 중 가장 부담되는 국가로 중국을 뽑았습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핏줄 전략(요직 곳곳에 파고들어 정보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방식) 즉 방대한 인적정보를 사용한다고 말했는데요. 이를 통해 얻은 방대한 정보의 파편을 모자이크식 기법으로 모아 유의미한 분석을 내놓는다고 해요. 심지어 2017년부터 시행된 중국의 국가정보법에는 모든 중국인이 국가 첩보활동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해외에서도 중국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4. 베일에 감춰진 스파이의 세계, 그것이 알고 싶다
우리 삶의 어두운 곳에 침투한 스파이들, 저희는 이들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채 교수는 스파이의 세계를 “냉혹하다”는 단어로 정리했습니다. 동시에 양날의 칼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애국심이나 이념에 충실했던 스파이도 소속된 정보기관을 배신하는 디펙터가 되기도 하고 두 정보기관 사이를 넘나드는 이중 스파이가 되기도 한다고 해요. 비밀을 생명으로 하는 스파이! 이러한 특성을 역이용해 양쪽 모두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죠. 이러한 이중 스파이가 역사를 바꾼 사례도 많습니다.
5. 3차 세계대전을 멈춘 이중 스파이!
1962년 10월 22일 세계사에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은 미디어를 통해 핵전쟁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경고했습니다. 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에 불이 붙은 건데요. 이유는 소련이 미국에 대응해, 쿠바에 비밀리에 미사일 기지 건축을 계획했기 때문이죠. 이 아찔한 순간은 훗날 쿠바 미사일 위기로 불리게 되는데요. 기지 건설 초기, 미국은 소련 군사력에 대한 불확실성과, 쿠바 미사일 기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 섣불리 대응하지 못했죠. 그러던 중 미국 CIA 앞으로 소련 장교 올레그 펜콥스키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6. 소련판 홍길동 올레그 펜콥스키
올레그 펜콥스키는 1940년 독일과의 전쟁 당시 최연소 연대장으로서 무용을 떨칠 만큼 공산주의에 충성적인 인물이었어요. 장성 진급이 유력해져 갈 때 쯤, 승승장구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동료 및 상관들이 그의 과거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충격적이게도 그의 아버지가 사실은 러시아 혁명 당시 백군 소속 장교로 전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요. 펜콥스키는 이로 인해 승진은 고사하고 사회에서 매장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죠. 그러자 그는 공산 체제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7. 잘 키운 스파이 하나 열 아군 안 부럽다
소련에 복수의 기회를 보던 그는 미국 유학생에게 편지를 몰래 건네 CIA와의 접촉에 성공해요. CIA도 그를 통한 KGB의 역공작을 의심했지만, 그가 일급 기밀까지 전달하자 합동 공작에 착수하게 됩니다. 미국은 당시 쿠바에 소련 군대가 대량입국한 점을 의심스럽게 생각했는데요. 러시아는 쿠바에 지대공 미사일 발사대를 짓고 있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러나 펜콥스키의 제보로 인해 그것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미사일 기지일 뿐만 아니라 강경하게 나설 경우 소련이 물러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정보가 전달됩니다. 이로써 미국이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었고 전쟁 위기를 무사히 넘기게 된 것이죠.
8. 총성없는 경제전쟁, 휴민트
미국의 2차 세계 대전 전쟁 비용이 약 3017조 원(미국 국방정보센터 조사)인 것을 감안할 때 펜콥스키 같은 스파이들의 경제적 가치는 천문학적인데요. 특히 현대사회에서 첨단기술이 국가 산업의 핵심인 만큼, 첨단기술을 지키고 또 빼앗기 위해 많은 첩보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정원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산업기술 유출로 인한 약 5년간의(2018~2022) 피해액은 2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러한 천문학적인 비용에도 불구하고 100건이 넘는 사건 중 재판에서 실형을 받은 건은 9건에 그쳤습니다.
9. 방첩의 기본은 엄격한 법체계?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술 유출범들에 대한 낮은 형량과 처벌 기준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특히 국가 핵심기술도 예외 없이 유출되는 만큼, 일각에서는 간첩죄를 적용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안보 관련 정보 유출을 처벌하는 군사기밀 보호법 역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는 건 마찬가지인데요 최근 10여 년간 위반 확정판결 10건을 분석한 결과 실형을 받은 유출 사범이 단 한 명도 없어, 사법부 내의 안보의식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0. 외국 간첩은 간첩이 아니다?
특히 간첩법에 대해서는 국회 내에서도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간첩법,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방조하는 경우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인데 문제는 적용 범위가 ‘적국’에 한정돼 있어 북한을 제외한 나라들에 대한 간첩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국회에서는 '적국'을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1. 외국에선 간첩, 어떻게 처벌할까?
대부분의 나라들은 동맹 여부와는 별개로 자국의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하는 행위를 간첩으로 처벌하는 법체계를 갖추고 있는데요. 미국은 국방정보를 외국에 누설 시 최대 사형까지 처벌할 수 있는 등 간첩행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해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수미테리 사건처럼 간첩죄를 적용하기엔 부족한 사건의 경우 외국 대리인 등록법(허가 없이 외국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을 적용해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 있어요.
12. 국가의 숨은 영웅, 휴민트
이렇듯 대부분의 나라들이 방첩 및 첩보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이번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으로 무너진 휴민트를 복원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채 교수는 먼저 무너진 첩보망을 복원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요. 이어 백승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숨은 휴민트들의 자긍심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숙청을 당하고 매도당하는 분위기에서 사명감을 갖고 목숨을 걸고 일하려 들어야 하는 건 어렵다는 것이죠
‘블랙요원’ ‘스파이’ ‘첩보’ 이런 단어들은 보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데요. 제작하는 과정에서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의 현실을 비교적 가까이 마주해보니 단어들의 무게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이번 명단 유출로 인해 부디 더이상의 인명피해가 없길 바라며 오늘은 특별히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분들에게 마음으로나마 감사함을 표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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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
흥미롭습니다. 국가를 위해 음지에서 활동하는 분들에 대해 극진히 대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차갑게 대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충성심을 유지하여 국익을 도모할 테니까요. 또한 최근 국가적으로 기술 유출이 심각한 걸로 나오는데 이에 대한 입법 사법의 관심이 필요하다 보며, 민간 영역에서도 기술이 곧 먹거리라는 관점으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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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클라우제비츠님, 댓글로 써주신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통해 국가안보가 정쟁화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댓글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더 좋은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레터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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