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해 깨달은 PMF보다 중요한 요소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나의 과거

2023.01.28 | 조회 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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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가 되어버린 PM

스타트업 PM은 특수부대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며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까요?

저녁 9시, 농업에 종사하시는 5~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농산물 직거래 앱의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구글밋에 접속하신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전율을 느꼈었다.

 

‘와 이 서비스를 얼마나 사용하고 싶으시길래 이렇게 자발적으로 교육을 들으러 참여하실까? 심지어 익숙하지 않은 구글밋을 사용하면서까지…’ 교육을 진행해주시는 분 또한 불과 몇 달 전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 사용법을 교육받은 뒤, 너무 편해졌다며 직접 주변분들께 강의를 진행해주고 계셨다.

 

서비스의 PMF를 온 몸으로 체감하다.

일전에 참여했던 스타트업 데모데이 행사를 통해 알게되었던 대표님이 입대를 앞두고 있던 나에게 남는 기간동안이라도 잠시 같이 일하며 도와주지않겠냐는 제안을 주셨다. 그렇게 임시로 합류한 농산물 직거래 주문처리 스타트업의 서비스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비정형 주문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해 송장을 처리하고, 재고 및 고객관리까지 해주는 직거래 플랫폼이였다.

 

가볍게 도와드린다는 마음으로 발을 들인 회사의 환경은 열약했다. 창업 후 3년차였지만 인력은 나와 대표님을 포함한 4명이 전부였고, 운영 측면에서 바라본 회사 내부 프로세스가 전혀 없었으며, 서비스도 외주를 통해 필요한 기능만 급하게 만들었던 상황이라 성능이나 UX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부족한 상황에 비해 서비스는 꽤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커가고 있었다. 플랫폼을 통해 거래되는 직거래 주문건은 n억원을 넘기고 있었고, 이를 통해 확보된 직거래 로우 데이터 또한 수백만건에 달했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농업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많은 사람들이 사용중이였고 매일같이 등록되는 주문건과 상품수 또한 서비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지표가 됐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대표님이 2010년도부터 농산물 직거래 쇼핑몰을 운영하며 만난 수많은 농업인들의 고충과 사고방식을 토대로 정말 필요한 기능만 담아 서비스로 만들었기 때문이였다. 대표님은 ‘대한민국 농업인들이 이런 어려움들을 겪고있는데, 이거 하나로 그들에게 여유와 쉬는 시간을 선사할 수 있다’ 라는 점을 항상 내세우셨고,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셨던 점도 매우 본받고싶었다.

 

Painpoint와 Solution이 너무나도 명확했고, 그런 상황에서 서비스의 유저중 한 분인 농업인분께서 직접 가르쳐주시는 앱 사용법 강의를 청강하며 마주한 어르신들과의 구글밋은 나에게 엄청난 와우 모먼트를 선사했다.

 

입대를 1년 더 미루다.

회사의 아이템을 사용자들이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이 데이터를 통해 증명되고 있었고, 많은 VC분들 또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컨택주시고 있었다. 하지만 IT 관련 경험이 적은 대표님과 기획 및 운영 관련 전문성이 없는 상황에서 회사는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한 달간 일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기존에 없던 유형의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매력적이고,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사용자 데이터들이 있는게 내가 많은것을 도전해볼 수 있을것같아.’

‘그동안 PM으로서 쌓아온 내 능력을 활용해 이 조직과 서비스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A시리즈 투자유치, 굳이 투자 유치가 아니더라도 내 힘으로 이 조직을 궤도 위로 올려놓으면 전역 후에도 다시 이 팀으로 돌아와 의미있는 일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레버리지를 일으키다.

정확히 재작년 이맘때쯤이였다. 병역특례를 포기하고 21년 입대를 결심했던 내가 입대를 1년 더 늦추게되는 순간이였다. 병역의무를 담보로 했던 의사결정이였기에 엄청나게 동기부여가 된 상태였고, 느슨해질수가 없었다.

 

최우선적으로 이슈관리 툴을 만들고, 문서화 등을 통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정의하고 기록하는 등 기본적인 회사 내부 프로세스들을 정립했고, 직거래를 담당하는 안드로이드 앱의 각종 추가기능과 플로우를 만들어 기획, 디자인했다. 또 핵심기능이였던 비정형 주문 데이터의 자동처리를 위한 문자 데이터 분석의 고도화도 개발자분과 함께 진행하며 회사의 내실을 다졌다.

 

외부적으로도 회사를 알리고 좋은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회사 및 팀 홍보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진행했고, 이를 기반으로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한 분씩 채용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사를 키워보기 위해 능력있는 인재를 모아야겠다 마음먹었고, 개인 인맥을 활용해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능력있는 개발자 두 분과 ‘멋쟁이사자들’에서 대학팀 운영을 총괄하던 매니저분도 모셔왔다. .  

 

내가 그랬듯, 앞선 구글밋 강의를 함께 청강하고나니 다들 눈이 돌아가 신기하다며 이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보자고 흔쾌히 합류해주었다. (물론 쉽지않은 결정이였겠지만 그만큼 다들 진정성 있게 회사의 Mission과 Solution이 해결해줄 Painpoint에 공감해주었다.) 그렇게 팀은 어느새 9명까지 늘어났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표 아래 다들 금새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며, 우리는 함께 많은것을 이룰것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야심차게 사람들을 모으고 단계별로 나아가려 노력했지만, 나는 입사 다섯달만에 대표님으로부터 회사를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원인은 나와 대표님 사이의 일하는 방식, 사고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정확히는 나와 팀원들, 그리고 대표님과의 차이로 인해 그랬다.

 

회사의 아이템과 PMF, 그리고 함께 나아갈 능력있는 팀원들이 있다면 탄탄대로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였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떠나 우리가 함께 이룬 조직의 Fit, 추구하는 문화가 하나의 같은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팀원들은 우리가 정한 기한에 맞춰 일단 기능을 준비, 출시하고 추후 사용자들의 반응에 따라 수정해가자는 방향을 추구했지만 대표님은 사용성을 위해 완벽한 출시를 원했고, 이로 인해 일정이 계속 밀리고 무한한 수정이 반복되는 일이 잦았다. 기존에 없던 유형의 기능들을 IT 경험이 적은 고령의 사용자층들을 대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해는 갔지만, 결국 내부적으론 합의가 잘 되지 않았다. 

 

또 서비스의 기획안이나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 등 각 인원들이 담당한 모든 일들에 대해 디테일하게 교정되곤했는데, 그런 의사결정들의 기준이 ‘인생을 살아보니까 내가 나이를 많이 먹은만큼 경험이 많잖아. 농업쪽에서도 경험이 내가 제일 많으니 일단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였다. 그렇게 나와 팀원들의 주장이 빈번히 묵살되었다.

 

그 외 대표님의 팀원들에 대한 평가 및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있어서도 문제가 지속되었고, 결국 갈등이 심화되어 해소되지 않다가 회사 내부 분위기가 대표님과 나머지 팀원의 대립구도로 어느순간 바뀌게 되버린것이 큰 문제였다. 높은 목표를 가지고 합류했고, 하나씩 해결해가야 할 외부의 문제들이 정말 많았는데, 이를 위해 다같이 으쌰으쌰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분쟁이 지속되는것이 너무 마음아팠다.

 

‘내가 이상적으로 추구했던 높은 목표를 이루기에는 대표님과 나의 성향이 너무나도 다르구나…’ 생각했고, 그렇게 나가달라는 요청에 망설임 없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실패를 통해 배우다.

원래 스스로 멘탈이 강하다고 믿는 편이기에 당시에도 애써 괜찮은척 하려 했지만 굉장히 우울하고 슬펐었다. 큰 결심을 통해 입대까지 미루고 합류한 회사였는데,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성급히 결정을 내린것에 대해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무엇보다 내가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왜 일하는지를 알아야 이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지 않겠구나 교훈을 얻어갈 수 있었다.

 

최근까지도 마음이 아픈건 당시 회사로 끌어들였던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였다. 당시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내가 데려온 팀원들도 모두 퇴사했었는데, 말로는 ‘도원이 너 하나만 보고 이런 선택을 한게 아니니까 괜찮다.’ 라고 위로해주었지만 멀쩡히 회사 잘 다니다가 큰 마음먹고 이직했는데, 나로 인해 또 다시 이직하게 되버린 상황이 발생했던거같아 정말 미안했다. (시간 지나 정말 괜찮다고 진정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또 토스와 카카오라는 좋은 회사에서 멋있게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내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능력도 좋지만 사람으로서도 정말 고마운 인연들이다.)

 

전역이 다가오면서 슬슬 사회로 돌아가면 어떤 회사에 어떤 포지션으로 협업에 복귀할지를 고민중이다. 앞선 실패를 바탕으로 'Building In Public' 을 지향하는 조직과 팀들의 스토리텔링을 열심히 찾아보고있고, 또 나 스스로도 나라는 사람을 알리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회사 합류를 고민중일때, 특히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또 그 문화를 실천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있는지 등과 같은 정보를 꼭 확인해보고 서로를 잘 이해하는것이 회사의 사업을 이해하고 서비스의 PMF를 찾는것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임을 잘 기억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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