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맛 팝콘] 어머니는 남조선이 싫다고 하셨어 - <수프와 이데올로기>

By 초록🍀

안녕하세요 옥수수 여러분! 저번 무주산골영화제 후기에서 다큐 이야기가 없어서 내심 실망하셨을 분들을 위해 2주만에 다시 나타난 초록입니다. 저 많이 기다리셨나요? 😉

저는 MBTI가 xxxP(즉흥형)로 끝나기 때문에 티켓 예매를 하지 않은 도로시(도로시도 P로 끝남)를 데리고 다니면서 2편의 다큐멘터리를 감상했는데요. 암컷 젖소 ‘루마’의 일생을 다룬 <카우>와 제주 4.3사건을 겪은 재일조선인 어머니의 이야기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았어요. 두 작품 모두 정말 멋진 작품이었지만, 오늘은 그중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해요.

국가 일본, 한국

러닝타임 118분

수상내역

2021 47회 서울독립영화제(집행위원회특별상)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국제경쟁 - 흰기러기상)

일본에서는 6월, 한국에서는 올해 엣나인필름이 배급하여 개봉한다고 합니다

영화제에 가면서 이 다큐멘터리를 가장 기대하고 있었는데요, 우선 제목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영혼을 위한 치킨수프’를 떠오르게 하는 따뜻한 단어 ‘수프’와, 차갑고 이성적이고 전쟁이나 폭력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인 ‘이데올로기’가 합쳐져서 역설적인 느낌을 주죠. 왠지 주인공에게 굉장히 복잡한 사연이 있을 거 같은… (복잡한 사연 있는 사람 좋아하는 편…)

제목에 이끌려서 검색을 해보니, 양영희 감독이 꾸준히 재일조선인인 자신과 가족의 정체성에 대해 다큐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하더라구요. 이건 못 참지. 바로 예매! (자기 얘기 하는 감독 좋아하는 편…)

보통 이렇게 기대를 많이 하고 관람하게 되는 경우, 영화관에서 오히려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꽤 있는데, 영화 보고 나서 정말 인생 다큐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깊이 있는 작품이었어요. (마지막에 도로시 몰래 옆에서 눈물 훔치느라 힘들었음.. ㅠ 근데 도로시도 좀 우는 거 같았어요 ^^)

이 영화는 도쿄에 사는 감독이, 오사카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하루하루의 기록입니다. 영화 초반에 감독 본인의 가족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나오는데요, 양영희 감독의 부모는 제주도 출신의 재일조선인입니다. 최근 애플 TV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되었던 <파칭코>에서도 다뤄졌던 재일조선인은 일제강점기 전후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을 일컫습니다. 일제는 2차세계대전 패전 이후, 내국인으로 간주하던 식민지 조선인들을 외국인으로 대하기 시작했죠. 60여만명의 재일조선인은 그렇게 ‘조선적’이 되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차별로 인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하니, 파칭코 같은 도박사업 혹은 비숙련 저임금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재일조선인들이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한국을 택하는 것이 분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북한을 조국으로 여겼던 사람들은 ‘조선적’으로 남았죠. 감독의 부모님이 일본사회에 얼마 남지 않은 조선적입니다. 남한보다는 북한에 소속감을 갖는 단체인 조총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활동가로서, 아들 셋을 북송시킬 정도로 북한에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부귀영화를 약속한 북한에서 큰 오빠는 좋아하던 음악을 하지 못해 젊은 나이에 우울증을 앓다가 사망했으며, 나머지 두 오빠는 일본에 있는 부모로부터 계속 생활비를 지원받습니다. 빚을 내서 아들에게 돈을 보내줄 정도로요.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양영희 감독은 북한에 적대감을 가지며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로 정의 내립니다. 동시에 남한을 싫어하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죠.

여기까지의 설명을 들었을 땐 굉장히 복잡한 역사를 가진 가족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 씨를 조금만 관찰하면 인간극장에서 흔히 볼 법한 평범한 우리네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북한에 있는 아들들에게 보낼 반찬들을 비닐봉지와 반찬통에 정성스럽게 나누고, 도쿄에서 딸이 왔다고 삼계탕을 끓이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이죠. 여기서 삼계탕 국물을 ‘수프’라고 부르는데, 국물을 먹는 문화가 한국의 문화다 보니 일본어로는 마땅한 단어가 없나 봐요. 우리에겐 굉장히 익숙한 그 삼계탕 국물을 수프라고 부르는 게 되게 낯설게 느껴졌어요.

그러다 어느 날, 딸이 사윗감을 데려오는데 이 사위가 일본인입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일본인, 미국인 사위는 안 된다고 반대했죠. 어머니는 일본인 사위가 처음으로 찾아온 날, 닭의 배를 갈라 몸에 좋은 것들을 잔뜩 넣어 만든 수프를 대접합니다. 수프의 맛이 인상적이었는지, 다음에 또 찾아온 사위는 직접 삼계탕 만드는 법을 배워 장모님에게 반대로 대접을 해드립니다. 함께 수프를 먹으며 웃고 떠드는 이들의 모습이 참 가슴 따뜻했는데요, 수프가 평화의 메타포라는 것을 강조하듯 수프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 3번이나 등장합니다. 서로 출신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사상도 다른 그들이지만, 함께 수프를 만들어 먹은 순간 식구가 된 것이죠.

그런데 같이 밥을 먹는 순간에는 서로의 다름을 잠시 회피할 수 있지만, 딸은 여전히 어머니가 왜 남한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정적 힌트가 하나 주어지는데, 아버지가 세상에 떠난 후에 어머니는 문득 자신이 제주 4.3 사건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딸에게 밝힙니다. 그동안은 4.3 사건에 대해 물어봐도 질문을 피하기만 했던 어머니였죠. 종종 이유 모르게 ‘남한 사람들은 잔인하다’고 이야기했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7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사실을 밝힌 걸까? 이것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감독이 던지고 싶은 질문입니다.

한복을 차려 입고 딸의 결혼사진도 찍고, 다사다난한 이 가족이 안정을 되찾을 때쯤 어머니는 본격적으로 4.3사건에 대해 증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외삼촌이 경찰에 맞아 죽는 모습을 목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첫사랑이던 약혼자도 잃게 되죠. 18살의 나이에 짐을 싸서 도망치면 의심당할까 봐 산책하는 차림으로 동생들과 제주도를 떠났고, 일본 오사카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의 기억이 오죽했으면 식민지 출신 외국인의 지위를 택했을까요. 강정희 씨의 입장에서 4.3사건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앗아간 폭력이자 차별과 멸시가 기다리고 있는 난민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계기입니다. 그녀에게 남한이란 4.3사건과 같은 학살로 다져진 나라이며, 인생을 관통하는 트라우마인 것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서야 4.3사건에 대해 대통령 사과가 이루어지고, 특별법도 제정되었잖아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4.3사건을 폄하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구요. 한국사 교과서에서 4.3사건을 필수 학습요소로 다룬 것이 불과 2020년부터라고 하니, 그동안 개인이 4.3사건을 발화하는 것에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겠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을 거고요. 그런데 어렵게 자신의 기억을 꺼내기 시작한 강정희 씨에게, 불현듯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마치 그녀의 기억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듯 말이죠. 북한에 있는 아들을 찾거나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기 시작하죠. 감독은 어머니에게 찾아온 변화가 당황스럽지만, 최대한 어머니의 기억을 돌려놓으려 노력합니다.

2018년, 마침내 어머니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일시적 여행 허가를 받아 4.3 사건 70주년 위령제가 열린 제주도 땅을 밟게 됩니다. ‘조선적’이기 때문에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어머니였죠. 또 친북 성향의 조총련 출신이니 남한에서 쉽게 받아주지도 않았을 거고요. 이렇듯 어렵사리 다시 밟게 된 제주 땅에서, 휠체어를 탄 강정희 씨는 딸에 손에 이끌려 희생된 친척과 약혼자의 흔적을 마주합니다. 감독은 희생자 명비에서 열심히 엄마의 약혼자와 친척들 이름을 찾지만, 엄마의 기억은 끝내 돌아오지 않습니다. 질문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옆에 두고, 양영희 감독은 울면서 이야기해요. 엄마가 경험한 4.3 사건을 알고 나니, 왜 그렇게 남한을 싫어하셨는지 이제야 그 마음을 알 것 같다고. 그 눈물엔 엄마를 원망했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담겨 있는 듯했어요.

어머니를 향한 자식의 후회,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입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브로커>로 뉴스에 연일 등장하는 감독이죠.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가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겪었던 후회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기존에는 ‘사회파’로 불리던 자신의 영화 인생에 새로운 분기점이 된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이 영화를 시작으로 고레에다가 가족 영화의 대가로 불리게 된 걸 보면, 그가 던진 질문이 관객들에게도 꽤나 유의미했구나 싶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TV 다큐멘터리로 연출가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에서, 2004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을 비판하는데요. 마이클 무어 특유의 풍자적인 화법으로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상대를 ‘이해력 없는 바보’로 경멸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부시와 닮았다고 말하죠. 그러면서 답을 미리 정해 놓고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로 부르지 않겠다고 이야기해요.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란 뭘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요. 고레에다 감독의 말을 반대로 하면, 답이 정해지지 않은 게 다큐멘터리라는 거잖아요. 답을 미리 정해 놓고 관객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독 역시도 만들어가면서 그 답을 구하는 것. 같은 영화를 봐도 관객들마다 각기 나만의 답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영화... 사실 다큐멘터리를 처음 기획할 때 이 다큐가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부담이 상당한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결말을 모르기에 더 매력적인 장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정답을 알고 하는 질문은 별로 재미없잖아요.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도 그래서 좋은 다큐였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고 싶어서 던지는 질문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을 통해 나름의 답을 찾았고요. 또 찍히는 대상이었던 어머니께서도 분명 다른 눈으로 ‘강정희’를 보며, 또 다른 답을 얻어 가셨으리라 생각해요. 자신의 4.3사건 증언을 딸이 영화로 만들어주어서 기뻐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머니께서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영화를 보실 수는 없었다고 해요.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기까지,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가 봅니다. 어쩌면 이건 가족을 넘어서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어요. 후세들이 이제서야 4.3의 아픔을 기리고 기억하지만, 그 시대를 산 당사자들은 이미 대부분 세상에 없으니… 뒤늦은 후회와 고백이 가닿을 곳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내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감독의 마음에 공감하고, 해소할 수 없는 부채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실은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한 이 모든 과정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고, 복잡한 가족사이기에 세상에 내놓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독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을 보면, 뭐랄까… 경외심이 드는 것 같아요. 감독이 수십년간 하나의 질문에 천착해 내린 답을, 저희는 고작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을 할애해 얻는 것이니까요.

언젠가 저 역시도 제 인생의 풀리지 않는 질문에 다큐멘터리로 대답해 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초록이었습니다. 그 질문을 시작하게 되면 옥수수 여러분께 월드 프리미어로 가장 먼저 스포 하겠습니다! (궁금한 척해주실 거죠?)

그럼, 저는 다음 달에도 맛있는 다큐와 함께 찾아올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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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   윤프🤴 / 영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