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1] 🌈 알콜 특집! 이 노래엔 이 술을 마셔야 제맛

무탈한 한 주 보내셨나요? 어김없이 프라이데이 이브에 찾아온 PRIIISM입니다. 지난번 10호 특집에서 저희가 아끼는 장소를 음악과 엮어 소개해드린 적 있었죠. 이번에는 20호 돌파를 기념해 새로운 특집 호를 준비해봤습니다. 이번엔 바로바로, 음악과 술의 페어링입니다!

음악과 술. 나란히 놓는 자체로 무수한 서사와 낭만을 피어오르게 하는 단어의 조합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음악은 알콜 농도를 몇십 배쯤 짙게 만들고, 귀가하기 위해 일어서려는 엉덩이를 도로 의자에 앉히는가 하면, 쓰디쓴 액체를 음악만의 분위기로 달달하게 바꿔버리죠. 술잔을 잡을 적마다 자동반사처럼 머릿속 BGM으로 흐르거나 맨정신에도 얼큰하게 취하게 되는 음악도 있고요.

결코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두 단어를 고심하며 숑🌻, 콜리🥦, 로이🍄가 한 곡의 노래와 한 병의 술을 함께 골랐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페어링이지만, 사실 이 조합에 정답이란 없어요! 이 레터를 받아보신 구독자님께서도 오늘따라 귀에 콕 박히는 노래에 나만의 취향으로 술 하나를 매치해보시길 권합니다. 혼자 알기 아까운 조합이라면 저희에게 귀띔해주시고요. 언제든 공감의 축배를 들 준비가 돼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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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ul McCartney - Find My Way

스무 살 무렵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 유난히 시선을 붙잡은 술이 있었다. 바로 커티삭(CUTTY SARK) 위스키. 어느 바에서 주인공이 커티삭을 고르는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장면을 읽으며, 위스키는 한 방울도 입에 댄 적 없으면서 '저게 뭔지 몰라도 괜찮은 술인가 보구나' 싶던 기억이 난다. 술 이름 하나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커티삭은 뭔가 달랐다. 발음하는 동안 혀가 입천장을 두 번 스치고 한숨처럼 밭은 숨이 새어나가니까.

커티삭은 회현역의 남대문 주류상가 혹은 이마트에서 2만원 대로 쉽게 구할 수 있다. 곧장 홀짝여도 나쁘지 않지만 하루키 소설에 등장한 것처럼 주로 하이볼로 만들어 마신다. 실제로 하루키는 이 술을 굉장히 좋아해서 『1Q84』를 비롯한 여섯 편의 소설에 커티삭을 등장시켰다고 한다. 아마 소설가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심 표출 아닐까?

언젠가 남대문에서 커티삭을 찾으니 주인 아저씨가 "이 술 영국에선 할아버지들이 주로 마신다"는 배경지식을 전해주셨다. 내게는 그 무엇보다 캐주얼한, 뭐랄까 '자유롭고 언제까지나 젊은 예술가의 술' 이미지였는데 말이다. 그래선지 커티삭과 곁들이기 좋을 곡으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지난 연말 발매한 신보 [McCartney III]가 떠올랐다.

올해 폴 매카트니는 우리나라 나이로 80세. 비틀즈(The Beatles) 활동까지 합치면 일평생에 달하는 58년간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Find My Way>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드럼부터 베이스, 기타, 보컬까지 거뜬하게, 너무도 행복하게 소화해낸다. 음악이란 도파민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는 그와 커티삭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 Amy Winehouse - You Know I'm No Good

이름부터 술이다. 그냥 와인 한 병도 아니고 무려 '와인집'이다. 정규 앨범 단 두 장만을 남기고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럼에도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이야기다. 이렇게 말하면 과장됐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아주 얼토당토 않은 헛소리는 아닐 것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아델(Adele)도 없을지 모른다. 오늘날 아델, 샘 스미스(Sam Smith), 루이스 카팔디(Lewis Capaldi) 등 영국 소울(Soul) 뮤지션들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

<You Know I'm No Good>은 세계적으로 1,700만장이 넘게 팔린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1집 [Back to Black]에 수록되어 다섯 번째 싱글로 나온 곡이다. 힙합 비트로 시작하는 드럼 연주에서부터 지하에 있는 바 느낌이 풍긴다. 첫 소절부터 "Meet you downstairs in the bar and heard(널 아래층 바에서 만나 들었어)"라는 걸 보니 실제 곡을 만들 때도 가사의 청각화를 의도한 모양이다. 나아가 습한 냄새, 연기, 어두컴컴한 조명 같은 것들도 연상된다. 시각, 후각으로까지 감각이 확장된다. 

습하고 연기 자욱하고 어두컴컴한 바에서 무얼 해야 할까. 응당 술잔을 기울여야 한다. <You Know I'm No Good>의 분위기라면 맥주는 싱겁다. 와인은 너무 로맨틱하다. 독주가 어울리겠다. 위스키, 브랜디는 너무 비싸다. 노래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사치스럽고 고급스럽진 않다. 럼, 진이 좋겠다. 이럴 수가! 가사에 탱커레이(Tanqueray)가 나온다. 그렇다. <You Know I'm No Good>는 진, 탱커레이와 함께 즐겨보자. 그냥 마시기 도수가 너무 높다면 진토닉을 권한다. 탱커레이 중에서도 '넘버텐'이 있다면 꼭 "진토닉 탱커레이 넘버텐으로 주세요"라고 주문하자. 그리고 조심하자. 입과 코에 맴도는 향미에 벌컥 벌컥 들이켜다간 어느새 취할지 모른다.

🍄 팔칠댄스 - I Wanna Stay with you

실재하는지 알 수 없으나 지구 어딘가에는 애주가를 위해 술 많이, 또는 술 원없이 마시기 대회가 있지 않을까? 반대로 술 못 마시는 사람-일명 알쓰-들 사이에서 자웅을 겨루는 대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대회에 나간다면 내가 유력한 우승 후보라고. 술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살짝 마시기만 해도 속이 불바다가 되는 나에게 술은 이해하지 못할 음료 중 하나다. 아무리 생각해도 콜라, 사이다 못 이긴다.

반면 지금 내 반려자는 확실한 술 취향이 있다. 그녀는 청량한 일반 맥주보다는 수도원 맥주를 선호한다. 특유의 캐러멜 초콜릿향 그리고 커피향의 황홀함을 즐기는 그녀의 최애는 로슈포르 트라피스트 에일(Rochefort Trappist Ale). 그중에서도 10번을 제일 사랑한다. 번호는 양조 시점 이후 마시기 전까지 기다려야 하는 주차를 뜻하는데, 로슈포르 트라피스트 10은 10주의 숙성을 거친 뒤 선보인다는 뜻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로슈포르 중에서 가장 진하고 알코올이 높다. 대신 묵직한 바디감에 부드러운 목넘김을 자랑한다(고 그녀가 밝혔다...).

분위기 좋은 바에 앉은 그녀는 전용잔에 담긴 로슈포르10을 음미한다. 나는 그 옆에 머물며 논알코올 음료를. 그녀의 입술에서 나는 로슈포르10의 달콤하면서도 향기로운 꽃향에 덩달아 나도 몸이 느슨해진다. 향기에 취한 걸까, 분위기에 취한 걸까. 이 순간 계속해서 함께 있고 싶다. 그녀와 혈중 알코올 농도를 맞추기 위해 내 음료에 음악 알코올을 한 방울 추가해본다. Chill한 지금의 무드에 딱 맞는 음악, 팔칠댄스의 노래들로. <I Wanna Stay with you> 한 방울, 두방울, 아니… 한 잔 가득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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