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 🌈 휴가 특집! 이 노래는 여기서 들어야 제맛 1탄

안녕하세요, 벌써 10주째 구독자님의 메일함에 인사 드리고 있는 PRIIISM입니다. 살방살방 걸어다니기 좋은 봄날에 첫 레터를 보내드렸던 것 같은데, 요즘은 단어부터 무시무시한 '열돔'이 몇 주째 한반도에 기승을 부리고 있네요. 축축 처지는 몸과 마음을 스스로 열심히 도닥이며 건강한 여름 건너고 계시길 바라겠습니다.

같은 노래라도 그 순간 곁에 있는 사람, 공간에 흐르는 분위기, 몸을 적당히 감싼 피로의 정도에 따라 아주 새롭게 들리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셨을 거예요. 누구와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에 따라 영원히 잊지 못할 곡도 있을 거고요. 음악 취향이란 이토록 주관적이고 내밀하기에 꼭 맞는 타인을 만났을 때 그리도 반가운 맘이 드나 봐요.

이번 주 PRIIISM은 10호를 맞아 특별편을 준비해봤습니다. (어느덧 두 자릿수라니) (감격) 바로 숑🌻, 콜리🥦, 로이🍄가 음악이란 연결고리로 애착을 두고 있는 장소를 각자 한 곳씩, 2주에 걸쳐 소개하려 해요. 음악을 빼놓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이니 꼭 그곳에서 들어야 더욱 맛이 나는 음악을 한 곡씩 얹어서요!

마음 닿는 대로 편히 이동하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메모해두셨다가 어느 날 근처를 지나다 음악이 생각나는 날 부담 없이 발걸음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해봅니다. 꼭 추천하고 싶은 나만의 음악 공간이 있다면 메일리 댓글, 메일 답장 등으로 편하게 나눠주셔도 좋아요! '여긴 진짜 나만 알기 아깝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곳은, 대개 마음 맞는 남에게도 좋더라고요.

📧 추신, PRIIISM 뉴스레터는 상단의 '🌏웹에서 보기' 버튼을 누르면 보다 쾌적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 Billy Joel - Piano Man

4호선 한성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삼선시장 방향으로 2분쯤 걷다 곱창집 골목을 접어들면 작은 입간판이 보인다. 아지트처럼 쑥 들어가보면 휘영청 빛나는 바이닐 모양 네온사인이 보인다. 지하 계단을 내려갈 때면 꼭 음악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7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내부는 구석구석 빈티지한 분위기가 흐른다. 바(bar) 자리가 길게 놓여 있어, 혼자 가더라도 쭈뼛댈 필요 없이 맘에 드는 술을 골라 앉으면 된다.

빌리 조엘(Billy Joel)의 이 노래는 정말로 신묘하다. 기쁠 때 들으면 온 세상이 내 품인 양 충만하게 행복해지는가 하면, 조금이라도 울적할 땐 슬픔 속에 가만히 안온해진다. 신기할 만큼 계절을 안 타기도 한다. 여름 냄새나는 역청빛 밤하늘에도, 코끝 시린 겨울의 길거리에도 세련되게 스며든다. 북적이는 바의 분위기를 차근차근 묘사하는 내용의 가사이기에 그 어느 곳보다 엘피 바에서 듣기에 가장 적합한 곡이기도 하다.

나는 라디오스타에서 <Piano Man>을 최소 서른 번은 들었을 것이다. 자취방 집들이를 하듯 좋아하는 친구를 족족 데려가 소개했다. 오래된 바이닐이 빼곡히 들어차 내뿜는 세월의 무게와 음악 소리에 다같이 귀 기울이는 사람들의 어깨에서는 항상 자유로운 낭만이 부유하곤 했다. 각기 다른 인생의 오선지를 그리다 음악을 매개로 잠시 교집합을 이루는 화학 작용이, 이 엘피 바에서는 무척 자주 일어났다. 이 레터를 반갑게 읽어주는 누군가라면 내가 좋아하는 공간의 분위기마저 맞춘 옷처럼 기꺼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 Bill Withers - Lovely Day

노매딕은 전주 로컬 수제맥줏집이다. 웨딩거리에 양조장과 펍(노매딕브루잉), 한옥마을에는 비어가든(노매딕 비어가든)이 있으니 동선에 맞게 방문하면 되는데, 어디를 가든 노매딕에서 만든 다양한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컨트리, 블루스,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소울, 리듬 앤 블루스 등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그중 내게 최고의 순간을 선사한 곡이라면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Lovely Day>다.

빌 위더스가 누구냐고? 우리나라 보컬 그룹 어반자카파가 부른 <Just the Two of Us>의 원 주인공이다. <Lovely Day>도 빌 위더스의 명곡 중 하나인데, 노매딕 비어가든에서 만났을 때 그 '좋음'의 정도가 이전에 들었을 때와 차원을 달리했다. 이 노래가 들리는 것을 인지한 순간이 머릿속에 각인됐을 정도다. 하늘 맑은 날, 평소 같으면 사무실에 있어야 할 시간에 한옥마을에서, 모니터와 문서가 아니라 관광객과 식물과 하늘을 보며, 커피가 아니라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Lovely Day>가 나온다!

<Lovely Day>는 하이햇과 베이스로 출발한다. 현악이 들어오고 신디사이저가 합류한다. 이윽고 빌 위더스가 노래를 시작한다. 빌 위더스 보컬은 어쩐지 느긋한 느낌이 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연차낸 날처럼 마음이 평화로운 하루가 또 있을까. 그래서 연차 낸 날 노매딕에서 들은 <Lovely Day>가 유난히 좋게 들렸나 보다. 마침 노래 제목도 '사랑스러운 날'이다. 그렇다. 연차는 사랑이다. <Lovely Day> 듣기 딱 좋은 날이다.

🍄 Fishmans - Magic Love

관광객들이 자주 방문하는 속초 해수욕장이나 동명동을 조금 벗어나 교동으로 가면 조용한 주거단지가 있다. 그 가운데 초록빛을 뿜는 노웨어를 만날 수 있다. 실로 노웨어는 속초의 에메랄드 같은 존재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유명 관광지의 공간이 아닌, 진짜 음악이 함께하는 무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영롱한 에메랄드 빛에 이끌려 입장하면, 초록 식물과 초록 조명이 은은하게 꾸며진 아담하지만 충분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음악과 관련된 즐길거리도 경험할 수 있는데, 벽면에는 사장님이 수집하신 바이닐이 있어 취향에 따라 고르면 턴테이블로 들려주신다. 한쪽에는 95년산 빈티지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로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신청곡도 받으셔서 바이닐로 없는 곡은 인터넷으로 찾아 틀어주신다. (단, 인디락, 브릿팝, 소울, 펑크, 신스팝, 일렉트로닉, 올드스쿨힙합 등을 플레이하신다.)

개인적으로 이곳이 특별히 좋았던 까닭은 노웨어 자체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 문을 열자마자 들렸던 음악 덕분이다. 90년대 일본을 호령하던 밴드 FISHMANS를 여기에서 만났다. 사이키델릭한 그들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보컬인 Sato Shinji의 중성적이고 몽환적인 음색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에메랄드 빛으로 마음을 홀린 노웨어만큼이나 주문처럼 빠져드는 그들의 노래 <Magic Love>를 소개한다.

🎤 이번 주 소개드린 노래와 글은 어떠셨나요?

링크로 자유롭게 의견을 남겨주세요. 👉🏻 https://forms.gle/fCh3VBhXtHCCkaci8

📬 PRIIISM은 3인의 발행자가 매주 순차적으로 발송합니다. (숑-콜리-로이 순)

📌 PRIIISM이 마음에 드셨나요? 그럼 수줍게 구독과 공유를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