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8] 🌻 락앤롤의 기원을 찾아 런던에 왔습니다

구독자 님, 한 주 간 잘 지내셨나요? 벌써 6월의 중간입니다! 지난 주에는 음악과 장소를 엮은 PRIIISM 2주년 특집호를 보내드렸죠.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인사말만큼 진부하고도 명백한 진리가 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싶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회사에서 받은 안식월로 여행을 떠나 왔습니다. 첫 번째 도착지는 제가 오래도록 낭만을 품어 온 영국 런던이에요.

런던 여행을 계획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축구, 해리포터, 셜록 때문이냐고 물었지만 제가 품은 로망의 출처는 오직 브릿팝(Brit Pop)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그 수많은 영국 밴드들의 무수한 우울(?) 유약한 내면(?) 그러나 듣는 이의 마음을 번번이 휘저어 놓는 서정성은 대체 어떤 공기가 만든 것일지 궁금했거든요. 런던에서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도 없었고, 그저 그들이 음악적 영감을 떠올리며 거닐었을 거리를 걷는 일이 유일한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고대하던 런던에 드디어 당도하여 브리티쉬 뮤지션이 내뿜는 우울의 기원을 마침내 찾았냐고 물으신다면... 답변은 오늘 소개할 세 곡으로 대신해보겠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보고 느낀 감상이자 틈틈이 적어둔 여행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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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 Holy Mountain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정 중 하나는 영국 날씨를 예측하는 일이었다. 예년 날씨와 유럽여행 카페 정보를 뒤져봐도 민소매부터 경량패딩까지 대중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일단 영국이니까 일정의 절반은 흐릴 거고, 날씨 어플에는 20도 안팎이라고 나오니까 적당히 서늘하리라 예상하고 옷가지를 챙겼다. 그렇게 도착한 런던 날씨가 어땠느냐면, 머무는 6일 내내 완벽하게 화창했다. 온화한 햇볕이 내리 쏟아지는데 거의 습하지 않아서 왜 사람들이 공원에 드러누워 광합성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실내에 들어가기 아쉬울 만큼.

내가 생각한 런던은 이와 정반대였는데! 만약 영국 날씨가 매일 이랬다면 제아무리 괴팍한 오아시스(Oasis) 갤러거 형제라도 명랑한 캘리포니아 걸이 되어 행복한 노래만 줄창 써댈 것만 같았다. 흐린 영국을 느끼지 못한 대신 내가 좋아하는 그들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보려 나름의 성지순례에 나섰다. 런던 소호 거리의 버윅 스트리트에는 오아시스 2집 자켓을 촬영한 거리가 있다. ‘이곳이 오아시스 앨범 촬영지!’ 라고 표시가 돼 있거나 동상(?)이 세워져 있기는커녕 아주 평범한 거리지만 앨범을 소중히 들고 바로 그 위치를 맞춰 찾아가는 길이 설레고 즐거웠다.

하이 플라잉 버즈(High Flying Birds)는 오아시스 해체 이후 노엘 갤러거가 결성한 밴드다. 오아시스의 송 라이터로서 노엘이 남긴 명곡들이 무수하고 특유의 어쿠스틱한 감성이 사랑 받았지만, 그는 새로운 밴드에서 말 그대로 참신한 사운드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Holy Mountain>은 2017년 발매한 3집의 타이틀이다. 도입부부터 어쿠스틱과는 거리가 먼, 꽉 차고 댄서블한 사운드와 밝은 분위기가 흥겹기까지 하다. 이번 여행에서 마주한 런던의 활기차고 맑은 분위기를 빗대기에 아쉬움이 없다.

🌻 Bon Jovi - Livin' On a Prayer

런던 도착 3일차의 숙소는 런던 북부였다. 서울로 치면 강의 북쪽, 성북구보다 위, 그러니까 노원이나 정릉쯤이라고 해야 할까? 타워 브릿지, 빅벤, 런던 아이 등 랜드마크가 몰린 중심부로부터 40분쯤 떨어진 한적한 동네다. 동화처럼 예쁜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고 런던의 여느 동네가 그렇듯 거대한 녹지와 공원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돗자리도 없이 들판에 벌렁 눕거나 강아지를 산책 시키는 사람들의 얼굴에 촉박함 따위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평화로운 그 동네에 머물다 내가 불현듯 결정한 스케줄은 크로스핏이었다(?). 어느 국가, 지역이든 다른 크로스핏 체육관에 방문해 운동하는 것을 드랍인(drop-in)이라고 하는데, 난생 처음 해외 드랍인을 경험해본 거였다. 내가 방문한 체육관은 크로스핏 노스 런던. 런던 북쪽 체육관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이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과 결제를 하고 수업 시간표에 맞춰 찾아갔더니 코치가 반가운 얼굴로 환대해주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에는 한국에서의 크로스핏과 대단히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국경을 넘어 땀에 절여진 채 그날의 와드를 마치고 나동그라질 뿐...

구글 맵을 확인하며 체육관에 가까워지던 순간이 떠오른다. 여기쯤인가 갸웃댈 무렵 어느 거대한 건물에서 쿵쾅쿵쾅, 아드레날린을 치솟게 하는 락밴드 음악이 희미하게 흘러 나왔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오아시스, 메탈리카, 본 조비 등 정석에 가까운 밴드 음악이 BGM으로 깔려 정겨웠다. 본 조비(Bon Jovi)는 브리티쉬가 아닌 미국 밴드긴 하지만 생소한 공간에서 땀 흘리다 들으니 또 새로웠다. 도입부부터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 음악으로부터, 이제는 런던 북쪽에 흘리고 온 땀방울을 함께 기억하게 됐다.

🌻 David Bowie - Modern Love

런던 마지막 날 찾아간 곳은 템즈강 남쪽에 위치한 동네 브릭스턴이었다. 그곳에 간 이유는 오직 데이빗 보위(Daivd Bowie)가 태어나 여섯 살까지 자란 곳이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브릭스턴 지하철 역에서 내려 1분 정도 걸으면 데이빗 보위가 그려진 벽화가 자리해 있다. 2013년 호주 예술가가 그린 작품이라고 하는데, 2016년 보위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일종의 추모 공간이 되었다. 그의 사망 다음날은 물론 N 주기가 돌아올 때마다 벽화 앞에는 꽃이 놓여지고 크고 작은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구글 맵 위치에도 ‘David Bowie Memorial'로 등록되어 있다)

벽화에 가까이 가보니 전세계 팬들이 그를 그리워 하며 남긴 메시지가 다양한 언어로 적혀 있었다. 'Forever my Starman', 'R.I.P. David', 'I miss you Bowie'... 데이빗 보위에게서 그들은 저마다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마음으로 이곳 브릭스턴까지 찾아와 자신의 록스타를 추모한 걸까. 데이빗 보위가 카멜레온처럼 다양하게 보여주었던 컨셉만큼 팬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Modern Love>는 데이빗 보위가 1983년 발표한 열다섯 번째 앨범 [Let's Dance]의 트랙이다. 국내외 여러 영화에 삽입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인물들이 달리는 장면이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디스코풍 음악이라 달리기든 다른 활동이든 빠른 텐션에 잘 어울린다. 브릭스턴 지하철 역 근처 보위의 벽화 앞에서 이 노래를 틀어놓고 술 마신 채 춤을 추며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머지않아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보위의 음악을 듣게 된다면 그 이미지가 어김없이 머릿속에 재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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