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 🥦 영화 음악 듣고 갈래요?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구독자 님은 영화 좋아하세요?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거나 필모그래피를 줄줄이 꿰는 감독이나 배우가 있지는 않습니다. 음악이나 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향이라 할 만한 게 형성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어느 정도 챙겨봤고 이야기 할 거리가 많은 작품은 있습니다. '007 시리즈'인데요. 정확하게는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007 시리즈를 좋아한답니다.

이번 호가 발행되는 날 기준으로 어제, 그러니까 9월 29일에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James Bond)로 분한 마지막 작품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개봉했습니다. 당초 작년에 상영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몇 차례 연기된 끝에 드디어 개봉하게 되었는데요. <스카이폴>과 <카지노 로얄>처럼 훌륭한 작품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당장 이번 주말에 보러 갈 거예요!

60년 넘게 이어진 만큼 '007 시리즈'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젓지 말고 흔들어서' 주문해야 하는 보드카 마티니(칵테일)부터 애스턴 마틴(자동차), 오메가(시계) 등이 그렇죠. 당대 내로라 하는 뮤지션이 참여하는 주제가도 매번 주목 받습니다. 과거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듀란 듀란(Duran Duran), 티나 터너(Tina Turner)가 있었고, 근작에서는 아델(Adele), 샘 스미스(Sam Smith)가 맡았죠. 이번에서는 빌리 아일리시(Bille Eilish)가 영화와 동명의 곡 <No Time To Die>를 불렀습니다.

이번 PRIIISM은 제가 즐겨본 영화에서 의미 있게 쓰인 곡들로 꾸렸습니다. 007 시리즈 주제가 특집을 준비할까 싶었지만 그럼 너무 이야기가 한정적일 것 같아서 가장 아끼는 한 곡만 실었어요. 나머지 두 곡도 제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에서 등장한, 자주 찾아 듣는 곡이라 나눌 이야기가 무척 많습니다. 글을 줄이는 데 어느 때보다 애를 먹었는데요. 재밌게 듣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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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 Cornell - You Know My Name

2005년, 피어스 브로스넌(Pierce Brosnan)을 이을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다니엘 크레이그가 낙점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흑발에 신장 185cm를 넘었던 이전 본드들과 달리 다니엘 크레이그는 금발에 180cm이 채 되지 않는 데다(178cm), 근육질에 우락부락한 이미지가 과연 본드에 어울리겠냐는 것.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데는 2006년작 <카지노 로얄> 단 한 작품으로 충분했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션 임파서블'과 실감나는 격투씬이 압권인 '본 시리즈'에 밀려 촌스럽다는 평을 들은 '007 시리즈'를 부활시켰다는 평이 잇따랐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최고작이라면 아무래도 <스카이폴>을 꼽아야 할 테지만 <카지노 로얄>도 그 못잖게 준수한 영화다.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이 부른 <You Know My Name>은, 이전까지와 달리 몸으로 치고 박고 부대끼는 새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리는, 최고의 007 시리즈 주제가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크리스 코넬은 록 보컬로 이름깨나 날린 인물이다. 고음역대를 넘나들면서도 특유의 음색에서 우울한 감성이 묻어난다. 너바나(Nirvana), 펄 잼(Pearl Jam)과 함께 그런지(Grunge) 음악 씬을 대표했던 사운드가든(Soundgarden)을 이끌었으며,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린킨 파크(Linkin Park) 보컬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과 아주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도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 The Human League - Don't You Want Me

볼 만한 영화 있냐는 물음을 받을 때 여러 번 추천한 영화로 2013년 개봉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있다. 아이슬란드의 근사한 풍광이 담겨 있어서 그저 시간 때울 요량으로 봐도 재미나다. 또한 일상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시기에 어떤 동력을 제공해줄 수 있는 작품으로, 주인공 월터 미티(벤 스틸러 역)가 의욕 없이 축 처진 나날을 떨치고 거듭나는 내용이다. <Don't You Want Me>는 미티가 여행길에 찾은 허름한 칵테일 바에서 들을 수 있다. 다만 웬 꽐라가 노래인지 술주정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부르는지라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1981년에 발매된 <Don't You Want Me>는 영국 신스팝 그룹 휴먼 리그(The Human League)의 최대 히트곡이다. 당시 영국과 미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2015년에 실시된 '영국인이 사랑하는 1980년대 노래' 설문에서 1위에 오를 정도로 오랫동안 사랑 받고 있다. 이게 과장이 아니란 것을 몸소 경험했던 적이 있다. 2014년 영국 여행 중에 찾은 펍에서 누군가 피아노를 치며 이 곡을 부르는데, 온 손님이 "Don't you want me baby / Don't you want me ohhh" 하는 코러스를 떼창하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로 치면 윤수일의 <아파트>쯤 되려나.

발매 당시 <Don't You Want Me>은 진보적인 노래였다. 장르로서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로 분류된다는 뜻이 물론 아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 같은 아날로그 악기 없이 모두 신디사이저로 '찍어서' 만들어진 곡이라는 점에서 기술의 진보에 힙입은 곡이라는 이야기다. 휴먼 리그뿐만 아니라 유리드믹스(Eurythmics), 펫 숍 보이즈(Pet Shop Boys), 개리 뉴먼(Gary Numan) 등 수많은 뮤지션이 80년대 신스팝을 만들었고, 오늘날 EDM 등 다양한 전자음악으로 이어졌다.

🥦 David Bowie - Starman

2013년 <그래비티>를 시작으로 한동안 우주 영화가 연이어 나왔다. 2014년 <인터스텔라>, 2015년에 <마션>이 개봉됐다. 흥행은 국내서만 천만 명이 넘게 관람한 <인터스텔라>가 단연 압도적이었으며, 평단은 대체로 <그래비티>에 <인터스텔라>보다 높은 점수를 매겼다. 대중과 전문가 모두에게 <마션>은 '화성판 삼시세끼'로 불리는 등 코믹한 영화 정도로 평가 받은 것 같다. 

나는 <마션>이 가장 좋았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환경에 홀로 남겨진 최악의 상황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마션>은 그 답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플루토늄 덩어리를 사용하는 씬이 단적인 예다. 유일한 이동수단인 로버의 보온을 위해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역)가 방사능 피폭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 순간, 도나 서머(Donna Summer)의 디스코 명곡 <Hot Stuff>이 흐른다. "Looking for some hot stuff baby this evening / I need some hot stuff baby tonight(뜨거운 걸 찾고 있어. 난 오늘밤 뜨거운 게 필요해)" <마션>의 이런 위트가 참 좋았다.

이외에도 <마션>에 주옥 같은 노래가 여럿 등장한다. 백미는 역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Starman>이다.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두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래비티> 모두에 보위의 명곡 <Space Oddity>가 실렸다. <Starman>, <Space Oddity> 둘 다 우주를 소재로 한다. 그러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Space Oddity>는 우주 하면 떠오르는 적막, 고독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면 <Starman>은 희망차다. 와트니가 화성에서 끝끝내 살아 돌아오는 여정의 클라이맥스와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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