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7] 🥦 서늘해진 공기 스산해진 마음에 띄우는 노래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공기가 달라졌어요. 구름 없는 날 한낮에는 아직 좀 덥긴 합니다만 그조차 한창 때를 생각하면 무뎌졌습니다. 아침, 밤에는 서늘하고 심지어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네요. 달라진 공기에 올해도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요 며칠은 괜스레 기분이 고꾸라지더라고요. 와 벌써 9월이네, 곧 가을이구나, 금세 추워지겠지, 이렇게 올해도 지나가버리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한 요 며칠입니다.

공백. 어수선한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일상에서 붕 뜨는 시간을 최소화 해야 하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그 시간의 빈틈으로 찬바람이 드는 것인지 마음이 더 스산해지는 것 있죠. 심해지면 울적해지는 지경에 다다르고 맙니다. 빨리 정상 궤도로 돌아오려면 뭐든 하려고 버둥거려야 합니다. 그래봐야 대개 운동, 책, 음악 같은 것들이라 새로울 건 없지만 중요한 건 뭐라도 함으로써 공백을 최소화 하는 일이니 괜찮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성큼 다가온 마감 압박도 나쁘지만은 않네요. 회사 일도, PRIIISM도 말이죠.

사사로운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이번 PRIIISM에는 이러한 요즈음 제가 자주 찾는 곡들을 담았습니다. 다시 마주하게 된 익숙한 감정 그리고 거기서 헤어나려는 시도가 담겨있는 노래라고 해도 되겠네요. 구독자 님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사실 환절기는 마음보다 몸에 탈이 나기 더 쉬운 시기죠. 감기도, 무뎌진 것 같지만 은근히 퍼지고 있는 코로나도 조심하셔요. 모쪼록 몸도 마음도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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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e - Endlessly

며칠 전 자다 눈이 떠졌다. 공기가 쌀쌀해진 탓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을 제외하면 여름내 열어뒀던 창문을 닫고 대충 배만 가렸던 얇은 이불을 온몸에 덮었다. 휴대전화를 보니 새벽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밤은 깊었고 거리엔 가로등이 텅 빈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매미만이 낮과 다름 없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화하고 수 년 동안 땅속에서 지내야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고작 한 달 정도 살고 죽는 게 매미의 일생이라던가. 그래서 쉴 새 없이 저리 우는 걸까.

여름의 끄트머리에 다다랐음을 느낄 때면 나는 조금 서글퍼진다. 이렇게 올해도 저무는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일 년 전 이맘때와 지금을 비교해보게 되고 연초 마음 먹었던 것들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갈수록 빠르게 흘러만 가는데 나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자조까지 사고의 궤적이 가닿는다. 씁쓸하고 쓸쓸하다. 처음 겪는 감정이야 물론 아니다. 이따금 찾아와 얼마간 함께하고 다시 가버리는 녀석. 그러므로 이런 기분은 앞으로도 피할 수 없으려나.

한동안 뜸했다 싶으면 찾아오는 감정의 굴레를 마주할 때면 뮤즈(Muse)의 <Endlessly>를 찾곤 한다. 로드 스틱으로 연주할 때 특유의 얕은 소리가 인상적인 드럼 비트와 리드미컬한 키보드 멜로디가 일렁거리는 느낌을 준다. 덕분에 슬프면서도 댄서블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중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감정의 심연에 빠지게 만들되 깔끔하게 매조짓는다. 나는 이게 <Endlessly>를 계속 듣게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본다. 음을 흩뿌리며 여운을 남기는 식으로 끝맺었다면 그 여파 때문에 오래 두고 꾸준히 듣긴 어려웠을 것 같다.

🥦 디어 클라우드 - 12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공기만이 아니다. 어둠도 있다. 많이들 체감하고 있겠지만 해가 부쩍 짧아졌다. 한창 해가 길 때는 여덟 시는 되어야 석양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일곱 시 반만 돼도 이미 해가 거의 저물어 있다. 나는 일출보다 석양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해가 더 짧아지기 전에 상황이 되는 대로 석양을 봐야겠다. 한두 달쯤 지나면 여섯 시에 퇴근할 때 이미 어둠이 찾아와서 하늘이 물든 광경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밤이 길어지면 상념에 젖는 시간도 길어진다. 아무래도 낮보다는 밤이 사적인 시간대니까. 멍하니 누워있다가 왠지 집 구석이 좁게 느껴지면 산책하러 나간다. 보통은 공원을 걷지만 가끔은 상가 쪽으로 방향을 튼다.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며 사람들을 스쳐간다. 누구는 웃고, 연신 말을 하고, 누군가는 심각한 표정이며, 무표정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성이 난 것 같다. 모두 내게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 사는 건 비슷비슷하구나, 다른 사람들도 오늘 나처럼 뒤숭숭할 때가 있겠구나. 

연대감과 위안, 디어 클라우드 음악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안개 자욱한 밤이 그려진다. 파열음과 공간감이 두드러지는 기타 소리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같은 슈게이징(Shoegazing)이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따뜻하다. 슈게이징 음악이 따스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디어 클라우드로 처음 알았다. 그중에서도 <12>는 뭉근한 위로를 전하는 곡이다. 12시 즈음 어두운 산책 길에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 Antonio Carlos Jobim - Wave

기분이 처졌다고 가만히 있으면 더 안 좋아진다. 뭐라도 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나는 달렸다. 엉겁결이긴 했지만 아무튼 얼마 전 하프 마라톤에 접수해놓은 터라 목표도 생겼겠다, 최근 러닝화다운 러닝화도 장만했겠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저녁 아홉 시 반이었다. 막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호흡에 신경 써야 한다. 빨라지려는 발걸음을 달래야 한다. 한바퀴 달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달리기는 일종의 수양 같은 것.

달리기 할 때 챙기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헤어 밴드, 두툼한 양말, 통풍이 잘 되는 폴리에스테르 소재 옷, 그리고 휴대전화. 휴대전화를 가져가는 건 몇 분 동안 몇 킬로미터를, 1킬로미터를 평균 몇 분 몇 초에 뛰었는지 측정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음악을 듣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흔히 뛸 때 듣는 음악 하면 박자가 빠른 것 또는 신나는 것을 떠올리는 것 같다. 대체로 맞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박자가 느리거나 잔잔한 곡도 러닝 배경으로 삼기 은근히 좋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음악이 그렇다. 몽글몽글 잔잔하다. 조빔은 미국에서 온 재즈(Jazz)와 브라질 전통 음악 삼바(Samba)가 어우러져 탄생한 보사노바―적어도 이 곡은 귀에 익을 것이다―의 선구자로 유명하다. 보사노바 듣기 가장 좋은 계절은 바로 요맘때가 아닐까. <Wave>은 조빔 음악의 특징인 편안함과 청량함이 여실히 묻어나서 햇살 좋은 날이나 여행 길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러닝할 때도 적절하다. 오래, 멀리 가려면 빠르게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편안하게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조빔의 <Wave>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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