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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평범한 하루의 비용

'어바웃 타임'을 보고 나면 평범한 하루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2026.09.05 | 조회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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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광혁 대표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요즘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제가 목요일인지 알았어요. ^^;

덕분에 하루 늦게 뉴스레터를 발행합니다.

기다려주신 여러분 죄송합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었는데 가을이 왔더군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공기가 축축하고 이불에도 여름의 습기가 조금씩 남아 있었는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고 이불은 보송했고, 무엇보다 젤리 털이 훨씬 부드러웠습니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기상청보다 고양이 털로 먼저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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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하루


《어바웃 타임》은 이상하게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남자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실수를 고치고, 더 나은 순간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몇 번을 다시 보고 나니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사랑도 시간여행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제가 나이를 먹고 나니, 아버지와 아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영화가 이야기하는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가 오래 남았습니다. 

특별한 하루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가 귀하다는 것. 
그래서인지 요즘은 제 하루를 예전보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

제 하루는 보통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에 시작됩니다. 물론 제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젤리가 깨웁니다. 가슴 위로 올라와 일어나라는 듯 꾹꾹이를 합니다. 알람은 끌 수 있지만 고양이는 끌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일어납니다.

그렇게 일어나면 가장 먼저 거실 창문을 엽니다. 저는 날씨 앱을 보기 전에 바깥 공기를 먼저 확인하는 편입니다.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공기가 얼마나 축축한지 몸으로 느껴봅니다. 특히 계절이 바뀔 때가 좋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창문을 여는 순간 가을이 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이불에 남아 있던 여름의 습기가 거의 사라졌고, 젤리의 털도 평소보다 훨씬 보드라웠습니다.

창문을 열고 나면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라디오 91.0MHz를 켭니다. 네스프레소를 내릴 때도 있고 드립커피를 마실 때도 있지만 커피는 거의 언제나 뜨겁게 마십니다.

그리고 뉴스를 읽습니다. SNS에도 들어갑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에 웃고 무엇에 화가 났는지 구경합니다. 

세상이 밤사이에 멸망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해두겠습니다.
다행히 대체로 멀쩡합니다.


아침에는 글을 씁니다


아침을 먹기 전까지는 대체로 짧은 글을 씁니다.

전날 밤에 꾼 꿈을 기록할 때도 있고, 갑자기 떠오른 장면이나 언젠가 단편소설이 될지도 모르는 설정 몇 줄을 적어놓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아무것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조각들을 버리지 않고 계속 모아둡니다.

글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몇 년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적어놓은 한 문장이 어느 날 갑자기 수백 페이지짜리 이야기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도 일단 적습니다. 쓸데있는 생각인지 쓸데 없는지는 미래의 제가 판단하게 내버려 둡니다.

10시나 11시쯤 되면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 정오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외부 미팅이 있으면 대부분 서울로 갑니다. 운전을 할 때는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요즘은 1950~60년대 남미 음악을 자주 듣습니다. 가끔 그루브가 강한 음악이나 MAGNAVOLT도 듣습니다. 운전은 꽤 지루한 일인데 이상하게 저에게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서 비어 있는 부분을 생각하기도 하고, 에세이에 넣을 문장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합니다. 몸은 차 안에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전혀 다른 시대와 장소를 돌아다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운전하는 시간을 그리 싫어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영감 충전 시간입니다.

그렇게 낮에는 디자인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업무관련 미팅을 하고,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합니다.


저녁이 사라지는 시간


저녁 6시가 넘으면 집으로 돌아와 하루의 일을 조금씩 마감합니다. 보통 저녁은 8시나 9시에 먹는데, 요즘은 일을 하거나 10월쯤 나올 책의 글을 쓰다가 저녁 먹는 걸 잊어서 11시가 넘어서야 먹을 때도 있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닙니다.
대부분, 그냥 까먹습니다.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인 걸 알고 계실텐데 이상하죠? 인간이 글을 쓰다 식사를 잊는 건 뭔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 밤 11시에 냉장고 앞에 서서 뭘 해먹을지 고민하고 있으면 별로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요리는 거의 집에서 해먹습니다. 밖에서 먹더라도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니기보다는 원래 가던 단골집에 가는 편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새로운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인데 생활에서는 의외로 반복을 좋아합니다.

가던 곳을 가고, 먹던 것을 먹고, 듣던 음악을 또 듣습니다. 아마 새로운 일을 계속 하는 사람이라서 생활까지 새로우면 피곤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

밤 10시가 넘으면 낮에 밀어뒀던 덕질을 시작합니다. 요즘은 최근 다시 시작한 《공각기동대》 2026 버전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자정이나 새벽 1시쯤 침대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바로 자지는 않습니다. E-BOOK을 읽기도 하고 만화나 웹툰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하면 그제야 하루가 끝납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다시 젤리가 올라옵니다.
거의 똑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예전에는 이런 반복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새로운 걸 찾았습니다. 인생에는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프로젝트를 끝내거나, 여행을 가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무언가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날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어바웃 타임》을 볼 때마다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날로 돌아가고 싶어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셨던 평범한 어느 날로요.

오늘 아침에는 문득 아버지가 사주셨던 갈비탕이 생각났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그날 아버지와 함께 갔던 국밥집의 갈비탕 맛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어머니가 해주셨던 갈비탕보다 조금 더 기름진 맛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고생하고 실패한 뒤에 먹어서였는지, 그날의 갈비탕은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습니다. 그 맛과 그날의 날씨,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을 잊을 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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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제가 자주 가는 국밥집이나 좋아하는 맛집에 아버지 손을 잡고 함께 갔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저는 아버지에게 조금 더 살갑게 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아버지는 제게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어쩌면 우주의 신비를 아는 것보다 더 위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고 보니 저는 꽤 많은 불효를 했고, 아버지와 굳이 쌓지 않아도 될 감정들을 오래 쌓아두고 살았습니다. 당시에는 그 감정들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운했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버지와 멀어졌는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아버지와 같이 갈비탕을 먹었던 기억은 꽤 깊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감정은 사라졌는데,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밥 한 끼는 남았습니다.

그때는 왜 이런 걸 몰랐을까요.


이번에는 제가 밥을 해드렸다면


그리고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도 이어집니다.

어머니는 평생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고 저는 그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먹었습니다. 늘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니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 한 끼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길이 들어갔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제가 한 음식을 더 많이 해드릴 것 같습니다. 제가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맛있는 걸 차려드리면서 같이 앉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지금은 특별한 효도를 해야겠다는 거창한 생각보다, 그냥 조금 더 친절하고 살갑게 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듣고, 조금 더 같이 영화를 볼 걸 그랬습니다. 맛있는 곳도 더 많이 찾아다니고, 가끔 여행도 같이 갈 걸 그랬습니다.

대단한 일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하루를 조금 더 같이 보내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것들이 훨씬 오래 남으니까요.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입니다


겨우 아침 창문을 열었을 뿐입니다.

계절의 냄새가 조금 바뀌었고 바람의 온도가 몇 도 내려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국밥집의 갈비탕이 생각났고,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음식이 생각났고, 같이 하지 못했던 영화와 여행과 식사가 줄줄이 따라 나왔습니다.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입니다.

겨우 냄새가 바뀌고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을 뿐인데, 추억은 오히려 더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어바웃 타임》을 볼 때마다 저는 결국 그런 날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같이 밥을 먹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고, TV를 보고, 아무것도 대단하지 않아서 당시에는 기억해둘 이유조차 없었던 하루.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아마 그날의 아버지 옆에 조금 더 오래 앉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날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대신 지금 제가 보내고 있는 이 반복적인 하루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런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젤리가 저를 깨우고, 창문을 열어 계절을 확인하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고, 몇 줄의 글을 쓰고, 일을 하고, 밤늦게 만화를 보다 잠드는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예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그런 하루 말입니다.

평범한 하루는 무료로 주어지지만,
지나가고 나면 다시 살 수 없는 가장 비싼 시간이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내일도 모레도 값진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무료로 주어지니 흔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여러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이 세상 무엇보다
값진 시간이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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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은 뭔가 슴슴하네요. ㅎㅎ

지난 뉴스레터들이 너무 빽빽해서 이번엔 조금 힘을 빼봤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조금 편하게 읽어주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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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밥먹는것도까먹고뉴스레터발행도까먹은김광혁이었습니다

다음글도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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