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레터> 매달 마지막 편지에는 두 개의 코너가 실립니다. 표기식의 계절 표기법. 사진가 표기식의 카메라가 채집한 이달의 계절을 연재합니다. 그는 어디로든 떠나는 사진가입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될 수 있으면 PC의 큰 화면으로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임유청의 월말 산문. 이번 달 찾아온 이야기를 씁니다.
<계절 표기법>과 <월말 산문>은 한 개의 단어를 공유합니다. <인터뷰&레터> 이달의 작가와의 시간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트랙에서 움직이며, 종종 마주칩니다.
『무엇보다, 먼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와 고투 중인 9월. 이달에 채집한 단어는 ‘앞으로’입니다.
*
↓임유청의 월말 산문↓
-
앞으로 앞으로
*
수영 일기
9월엔 수영 수업을 재등록했다. 이전보다 한 단계 낮은 레벨에서 수업을 받는다. 첫날, 끝나고 나니 어찌나 기운이 없는지. 겨우겨우 몸을 씻고 기신기신 옷을 꿰 입고 느릿느릿 걸어서 집으로 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고, 어제는 빛나는 참치처럼 물살을 가르는 멋쟁이 상급반 레인을 보며 생각했다.
아, 나는 실력이 안 늘었으면 해. 더 잘하고 싶지 않아. 상급반으로 이동하고 싶지 않아. 뒤처질까 봐 마음 졸이고 싶지 않아.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 다니다 보면 분명히 늘고 만다. 나는 자주 수업을 빠지니 아주 천천히. 한편 내 성실한 동급생들은 일취월장 실력이 늘겠지. 그렇게 나만 뒤처지겠지. 시무룩해지겠지. 어깨가 처지겠지. 자세가 안 좋아지겠지. 수영이 (더) 가기 싫어지겠지…….
그러니 저 말은, 실은 나도 상급반 멋쟁이가 되고 싶다는 말이려나? 더 빠르고 더 매끈하게 헤엄치고 싶다는 말이려나. 그게 솔직한 마음이라면 (9월에 빠진 수업 일수를 세어본다) 난 참 염치가 없고(실제로 없기도 하지만), 그런데 정말 앞뒤 없이 정확한 마음 같기도 하여 조금 의아해진다.
적당히 잘하고 적당히 못하기란 무얼 바라는 마음일까?
1) 미래를 위한 희망
2) 언제든 빠져나갈 가능성
둘 다 한 접시 위에 올려두고 뭐부터 먹을까, 고민하는 마음일까?
깨닫다!
성큼 까매진 어둠 속을 젖은 수영 가방을 든 내가 도도도 걸어간다. 피가 돌아 열이 나는 살갗에 가을바람이 스치는데, 어라. 혹시 이거, 내가 인생을 대해온? 전반적인 태도? 아냐? 이 어중간하고 안락한 상태를 가능한 한 늘이기. 혹시나 잘 될 수도 있고 여차하면 관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 안에서 머물기. 약간 성장하기. 세월을 빌미로 어쩔 수 없이. 조금 만족하기. 만족하는 일을 질려하기. 앉았던 자리를 태우고 다른 문으로 걸어 나가기. 이런 생각들과 걷는다. 직감인지 소름처럼 돋는 으스스한 것들과 함께 내가 집으로 돌아온다.
9월은 여름 끝에 남겨진 웅덩이 같았다. 가만히 고였다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누군가를 만난 날엔 경쾌한 대화와 답 없는 고민을 나눌 수 있었는데, 모두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우린 가진 게 없다. 해야 할 일은 많다. 능률은 오르지 않는다. 미래를 어떻게 계획해야 할까. 미래를 여전히 계획하고 있다니… 웃다가, 먹어버린 나이를 걱정한다. 이 나이쯤 되면 뭔가 이뤘어야 하는 거 아냐? 다시 웃는다. 그 말은 20대 때부터 했지. 우린 언제까지 이런 대화를 하게 될까? 그러고 보니 내가 70대에 성공하는 사주랬나. 거기서 읽은 성공이 뭔지는 몰라도 70대까지 이런 대화를 계속하게 된다면…. 끔찍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웃긴 내 인생이다.
세상도 우리도 사랑하는 건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대단한 걸 이뤘거나 중요한 걸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시다시피 나는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되길 포기했는데,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걸 꿈 꿔 본 적 없었던 것도 같다. 그러니 나는 점점 작은 것들을 찾아내곤 한다. 그들도 미래를 몰랐고 그저 하루를 살았겠지. 무척 젊었고 무척 미숙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아름다웠던 건 기록하고 잊고 싶은 걸 잊기도 하면서. 빛나는 참치들. 나는 중급반 레인에 우렁이처럼 붙어 그들을 바라보지만, 때론 가장 노련한 참치조차 우렁이의 기분이 될 때가 있음을 알고 있지. 그리고 운이 좋은 어느 날, 우린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의 꿈을 조금씩은 이뤘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2026/9/29
🎧NEWS!
『무엇보다, 먼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 1973년 여름, 건축가 정기용의 스페인 여행 일기』
성산동 서점 '도시상담'에서 권현정 프랑스 건축사/번역가의 강의, 그리고 북토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도시상담' 예약창으로 연결됩니다.
건축과 도시를 생각하는 이들이 모이는 서점, '도시상담'에서 『무엇보다, 먼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 북토크가 열립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권현정 선생님을 모시고 정기용 건축가의 프랑스 유학 시절을 가늠해보고, 여행 속에 놓인 정기용 선생의 건축 철학의 씨앗, 그리고 스물일곱 젊음의 무전 여행기에 관해 대화할 예정이에요. 책 재밌게 봐주신 분들, 궁금하신 분들, 그리고 이 특별한 서점이 궁금하신 분들! 많이 신청해주세요. 저도 편집자로 이날 여기저기서 서성일 예정✌️
📍일시: 2026년 10월 13일(목) 오후 7시 – 8시 30분 📍장소: 도시상담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87, 1층) 📍인원: 30명 (선착순) 📍참가비: 1만5천원 📍신청: https://naver.me/GprKAjBZ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