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9] 🥦 엄청나게 강력하고 믿을 수 없게 섹시한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아무리 봐도 날씨가 이상합니다. 곧 12월인데 날이 너무 따뜻하잖아요. 자고로 수능 날짜가 되면 귀신 같이 날이 추워져서, 수험장 온도에 대응할 수 있도록 두꺼운 한 겹보단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으라고 학교와 뉴스에서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말이죠. 참, 요즘은 수능보다 수시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면서요? 얼마 전 그 이야기를 들으니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요즘 저는 『한낮의 우울』이란 무지막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왜 무지막지하다고 했냐면 무려 1028쪽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대학 전공 서적, 사전도 울고 갈 두께를 자랑하죠. 그만큼 무게도 묵직해서 유사 시에 둔기로 사용해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여하튼 『한낮의 우울』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우울증을 톺아보는데요. 증상과 원인, 대응 등등 우울증이란 질병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슬픔은 상황에 걸맞은 우울함이지만 우울증은 상황에 걸맞지 않은 슬픔이다." 『한낮의 우울』을 절반 정도 읽은 현재까지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귀입니다. 실은 한동안 는적거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 문장을 만나고 곰곰 생각해보니 제가 느끼고 있는 슬픔, 울적함은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살다 보면 가뿐할 때도 우울할 때도 있잖아요. 써놓고 보니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저 짧은 문장 덕분에 은근히 일상의 활력을 되찾은 요즘입니다.

날이 따뜻하지만 언제 갑자기 추워질지 몰라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12월이 열흘도 남지 않았고요. 한 달 뒤면 크리스마스네요. 몸도 마음도 잘 챙겨봐요. 요즘 제 재생 목록을 꽉 쥐고 있는 강력한 곡 하나와 섹시한 곡 둘, 이렇게 세 곡을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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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d Zeppelin - The Rover

서울 살이 시절 엘피 바를 여러 곳 다녀봤다. 엘피 바 사장님들은 십중팔구 록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밴드를 물어보면 두 번째―첫 번째는 역시 이 분들―로 많이 나오는 밴드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었다. 레드 제플린이 누구인가, 지금은 영화, 방송 삽입곡과 <Stairway to Heaven> 정도만 그나마 알려진 것 같지만 비틀스(The Beatles)와 빌보드 차트를 두고 경쟁할 만큼 잘 나갔던 밴드다. 멤버 네 명 모두가 자기 분야의 역대 최고를 논할 때 빠지지 않으며, 록와 헤비메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아무튼 불특정 다수 엘피 바 사장님들의 집단 추앙에 이상한 반발심이 생긴 것인지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레드 제플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지미 페이지(Jimmy Page)의 기타와 존 보넘(John Bonham)의 드럼은 퍽 마음에 들었지만 보컬 로버트 플랜드(Robert Plant)에서 걸렸다. 보컬이 너무 얇고 까랑까랑해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다지 멋져 보이지 않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항상 풀어헤친 상의와 레깅스 저리가라 할 정도로 꽉 낀 바지도 보기 영 불편했다.

그런 좋고 싫음도 오래 두고 봐야할 모양이다. 몇 년 전부터 맘에 드는 게 한두 곡씩 생기더니, <The Rover>를 최근 주구장창 듣고 있다. 6집 [Physical Graffiti]에 수록된 <The Rover>는 처음엔 포크송(Folk Song)이었다가 하드록(Hard Rock)으로 재작업한 뒤에야 앨범에 실렸다고 한다. 큼지막하고도 견고한 존 보넘의 드럼과 지미 페이지의 옹골진 기타 리프를 듣고 있으면 몸이 나도 모르게 반응한다. 로버트 플랜트 보컬의 힘이 뭔지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 Puma Blue - Hounds

먼저 외치고 시작해야겠다, 고맙다 알고리즘! 최근 여느 날처럼 유튜브 바다를 떠돌다 새로운 뮤지션을 만났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뮤지션이 여럿 떠올랐는데 그렇다고 해서 식상하거나 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혹적이었다. 푸마 블루(Puma Blue) 이야기다. 푸마 블루는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제이콥 앨런(Jacob Allen)의 1인 밴드이다. 2014년 사운드 클라우드로 주목 받기 시작해서 지난해 베드룸 팝(Bedroom Pop)으로 채운 첫 정규 앨범 [In Praise of Shadows]을 내놓았다.

푸마 블루란 이름에서 '블루'는 색감이 아니라 감정을 의미하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두 달 전 싱글로 발매된 <Hounds>를 들어보자. 누아르(Noir) 영화가 펼쳐지듯 베이스 리듬이 심상찮다. 조도가 그리 높지 않고 매끈한 바가 연상된다. 몽환적인 기타 사운드에 성별을 단정짓기 어려운 중성적인 보컬이 얹어진다. 귀를 유혹한다. 초반부터 드러나던 관능적인 분위기는 2절 후렴구에 이르러 노골적으로 펼쳐진다. 다분히 의도적인 숨소리에 이어 색소폰 솔로가 터져나오면서 음악은 절정으로 향한다.

<Hounds> 한 곡에 다양한 장르가 담겼다. 앰비언트(Ambient), 드림팝(Dream Pop), 재즈(Jazz), 소울(Soul) 등. 곡 초반엔 시가렛 애프터 섹스(Cigarettes After Sex), 라이(Rhye)가 엿보이되 그들보다 푸마 블루가 더 위험해 보인다. 가령 시가렛 애프터 섹스는 연약해서 누굴 해치지는 못할 것 같은데 푸마 블루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달까. 베이스 라인에서 풍기는 묘한 폭력성이 한몫 하는 것 같다. 색소폰과 다른 악기가 뒤엉킨 마지막 1분여는 라디오헤드(Radiohead) <The National Anthem>을 닮았다. 여하튼 푸마 블루, 참 매력적인 발견이다.

🥦 TEEKS - Just For Tonight

레드 제플린과 푸마 블루는 보컬 음이 높고 얇은 편이다. 이번에는 음을 낮춰보자. 생각보다 더 낮춰야 할지 모르겠다. 목소리 질감도 두터운 쪽으로 골라봤다. 틱스(TEEKS)는 뉴질랜드 뮤지션이다. 본명은 '테 카레하나 가디너-토이(Te Karehana Gardiner-Toi)'로, 마오리족 핏줄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뉴질랜드 오포노니와 타우랑가, 호키앙가 지역을 오가며 성장한 틱스는 고등학교 졸업 후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해서 2017년 싱글 <If Only>로 데뷔했다.

아델(Adele)이나 샘 스미스(Sam Smith)가 자주 그러하고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도나 해서웨이(Donna Hathaway) 등이 그랬듯, 무릇 보컬이 최대 무기인 뮤지션은 많은 악기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단출한 구성일 때 보컬의 매력이 극대화 된다. 틱스도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Just For Tonight>은 틱스의 음색을 만끽하기 좋은 곡이다. 고음보다도 중저음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음을 꺾을 때면 얼핏 박효신이 보인다.

<Just For Tonight>은 2021년에 발매된 틱스의 첫 번째 정규 앨범 [Something To Feel]에 수록되었다. 앞서 말한 샘 스미스에 더해 루이스 카팔디(Lewis Capaldi)나 톰 워커(Tom Walker) 등 현재 잘 나가는 젊은 남성 소울 보컬이야 많다. 그러나 틱스는 자신만의 그윽한 매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직 해외 투어 등 공연 활동이 그다지 활발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앞으로 승승장구해서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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