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3] 🥦 바쁜 일상 속 활력 충전을 위한 노래

꽤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세어 보니 장장 6주만인 것 있죠! 그동안 구독자 님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는 특히나 요 며칠 동안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했답니다. 입추 며칠 전에 친구와 나눈 '올해는 입추 매직 어렵겠다'는 이야기가 무색해질 정도로 더위가 수그러들었습니다. 이제 밤에는 선선할 정도인데요. 처서(8월 23일)를 지나면 곧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습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죠. 그래서인지 벼가 노랗게 물든 것을 인지할 때면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느낌이 엄습하곤 합니다. 연초에 세웠던 목표, 기대했던 것을 되돌아 보게 되고요. 회사에서는 각종 실적을 점검하기도 하죠. 제 경우에는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바로 이맘때가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업무 시간 내내 부지런히 일을 해도 좀체 줄지 않아 야근과 주말 출근을 피할 수 없는, '버텨야' 하는 시기랄까요. 그래도 작년에 한 번 해봤다고 올해는 한결 낫습니다.

아무쪼록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우리 모두가 맡고 있는 모든 일들이 큰 어려움 없이 잘 흘러가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바란다면 빠르게만 흐르는 것 같은 시간이지만 때로는 순간을 즐기는 여유도 부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햇볕을 흩뿌리는 윤슬이랄지 붉게 물든 석양, 어느새 온유해진 바람, 깊은 진녹색으로 자란 나뭇잎과 풀잎 같은 것들처럼,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지만 미처 못 보고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요. 이번 PRIIISM은 바쁜 요즈음 제가 잠시 숨을 고를 때 즐겨 듣는 곡으로 꾸려봤습니다.

🥦 John Mayer - New Light

올해 여름은 유난했던 여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2018년 이후 몇 년만에 '와 미쳤다'고 슥 내뱉을 정도로 폭염이 기승을 부렸으며, 체감 온도를 한층 북돋아주는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기온 그래프보다 더욱 가파르게 치솟은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이전과 달리 좀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1년 반도 넘게 상황이 지속되는 데서 오는 피로함까지 더해져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해 보인다. 공원, 전시, 바다, 계곡, 카페, 식당 어디 하나 마음 놓고 다닐 수 없다.

그럼에도 식당이나 카페를 그득 메운 사람들을 볼 때면 '저 사람들은 뭐지? 나는 약속도 줄이고 마스크도 잘 쓰고 다니는데'하는 볼멘소리가 절로 튀어 나온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다른 사람들도 참고 참다 모처럼 밖에 나온 것일지 모른다. 뭐가 맞든 짜증내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고 공연히 내 안의 미움과 화만 키우는 것이다. 아아, 몸은 처지고 마음에 날이 서기 쉬운 요즘 같은 때엔 고운 순면으로 만들어진 티셔츠처럼 편안한 음악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존 메이어(John Mayer)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 [Sob Rock]이 무척 반갑다.

지난 달에 나온 [Sob Rock]은 한마디로 신경안정제 같은 작품이다. 수록된 10곡이 모두 순하다. 대충 곡 수를 채우려는 후진 곡도 없어서 처음부터 쭉 들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총 재생 시간이 4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를 고르자면 이미 2018년에 싱글로 나온 <New Light>이다. 존 메이어가 디스코 풍 사운드에 기타의 존재감이 이렇게 귀여운 음악을 냈다니! 2절 끝나고 나오는 솔로마저 간결하다. 힘을 뺐다는 인상이 또렷하다. [Sob Rock] 앨범이 전체적으로 그렇다. 몸과 마음의 힘과 긴장을 풀고 음악을 틀어보자.

🥦 Foo Fighters - Love Dies Young

그러나, 제아무리 상황을 좋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명상도 심호흡도 반신욕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다. 일상다반사에서 오는 모든 것을 부정적인 감정 없이 소화해낼 수 있다면 월급쟁이 직장인에서 종교인으로 진로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테지만,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에 짜증 내고 가끔은 피가 거꾸로 쏟는 듯한 분노마저 느끼는 나는 그저 보통의 존재일 따름이다.

상황과 거기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고 빨리 털어내는 것이 현명한 자세라고 믿는다. 제일 좋은 방법은 가까운 지인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술 한잔 기울이면서 한바탕 수다로 해소하는 것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음악을 평소보다 약간 크게 들으며 운동으로 땀을 한바가지 흘린다. 가장 먼저 찾는 장르는 역시 록이다. 에너지로 가득찬 곡을 들으면 나도 덩달아 힘을 내게 되는 효험을 경험할 수 있는데, 가장 정력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를 조사한다면 설문 최상위에 이 밴드가 빠질 리 없으리라. 바로 푸 파이터즈(Foo Fighters) 말이다.

푸 파이터즈(Foo Fighters)는 여전하다. 한국 나이로 53세인 보컬 데이브 그롤(Dave Grohl)은 여전히 풍성하고 웨이브 굵은 긴 머리를 찰랑이고, 온 몸을 덩실덩실 움직이며 기타 치고 노래한다. 나로선 성대가 터질 것 같아서 단 한 곡도 따라부르기 힘든 목 긁는 창법도 건재하다. 지난 2월에 나온 신보 [Medicine at Midnight]의 <Love Dies Young>은 한마디로 직진 같은 곡이다. 활력이 넘친다. 그 힘이 나한테 전달되는 것 같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차일피일 미루며 불안해하기 보다 짧고 굵게 해치우는 편이 낫다. 그 까짓거 다 '두루와, 두루와!'

🥦 HAIM - Summer Girl

한풀 꺾인 느낌이 확연하지만 그래도 한낮에는 아직 덥다. 며칠 전 아침에 구름 낀 하늘을 보고 오랜만에 얇은 슬랙스 대신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더랬다. 결과적으로 청바지는 그날 내가 한 모든 선택 중에 가장 형편없었다. 점심을 먹으러 밖에 나가보니 구름은 말끔히 사라지고 대신 햇볕이 위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식당까지 고작 10분여를 걸었을 뿐인데 옷이 몸에 들러붙을 정도로 땀이 나기에는 충분했다. 땀 많은 체질에게 청바지란 여름에 여간해선 입을 수 없는 옷이다.

지드래곤이 한창 트렌드 세터로 이름을 날릴 때 그는 톰브라운 가디건이나 엠씨엠 백팩보다 양산을 유행시켜야 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지금은 차로 출퇴근을 하니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뚜벅이 시절에 나는 집에서 회사, 회사에서 집의 2/3 지점을 지날 쯤이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지기 일쑤였다. 하루가 찝찝하게 시작돼서 끈적이게 마무리 되었다. 마음만큼은 양산을 쓰고 싶었지만 무언가의 선구자가 될 당돌함은 없으니 집에 들어섬과 동시에 옷을 훌렁 훌렁 벗어젖히곤 했다.

여름을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으로 나눈다면 지금은 늦여름에 접어들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맘때 어울리는 곡으로 미국 LA 출신 세 자매로 이뤄진 밴드 하임(HAIM)의 <Summer Girl>을 제안한다. 뮤직비디오가 꽤 특이한데, 멤버들이 길거리에서 훌렁 훌렁 옷을 벗어젖힌다. 그렇다고 살색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벗어도 벗어도 옷이 계속 나온다. 곡을 여는 드럼 소리가 다소 건조한 질감이라면 두 대의 베이스―콘트라베이스와 일반적인 일렉트릭 베이스―는 습기를 머금은 듯하다. 그 위에 청초한 보컬이 얹어지고 사이 사이를 색소폰이 채운다. 이 여름이 가기 전 해질녘 바닷가에서 이 곡을 들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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