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5] 🥦 여름이 가면 색이 바래진다더니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저는 때때로 예전 PRIIISM을 찾아보곤 합니다. '이번엔 무슨 이야길 담을까?', '예전에 뭐라고 썼지?'하는 생각으로 직전에 쓴 편지를 열어보기도 하고요. 3주 전에 보내드린 172호는, 그 서문 내용을 오늘 편지에 그대로 옮겨도 되겠다 싶은 것 있죠. 돌이켜 보면 그때 처서를 지나면서 아침과 밤 공기가 한결 누그러졌었잖아요. 낙엽도 군데군데 보이고요.

'처서 매직'도 잠시, 다시 뜨거워지더니 급기야 추석이 그렇게 타오를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한가위가 아니라 한더위, 추석 연휴가 아니라 여름 휴가를 보낸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렴 지금은 그런 시간도 온도도 비에 씻겨 내려갔네요. 길고 길었던 올 여름이 마침내 물러나고 있습니다. 제172호에 담은 문장을 가져와봅니다. "이놈의 더위가 빨리 가기만을 바랐는데 막상 간다니까 왜인지 조금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보내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올 여름을 잘 보냈나 봅니다. 올 여름을 함께한 것 중 일부는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을 테고 일부는 그럴 수 없을 테죠. 보내줄 수밖에 없다면, 안녕을 어떻게 맞이할지가 남아 있겠네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던가요,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는 법이라고 믿으면서 우리 모두의 안녕을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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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penters - (They Long To Be) Close To You

나는 음악을 그때그때 재생 목록을 꾸려서 듣는 편이다. 상황이나 기분, 날씨 등에 맞춰 곡을 고른다. 주말을 맞아 차를 마시러 나서는 길, 여느 때처럼 노래를 고르다가 문득 깨달았다. 우리나라에 비해 영미권 국가엔 짝사랑에 관한 곡이 적더라. 그쪽이 아무래도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한 문화여서 그런 걸까. 휴대전화에 있는 음악(나는 스트리밍 대신 음악을 다운 받아서 듣는다)을 보아하니 한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가사가 영어로 된 짝사랑 노래가 생각보다 적긴 했지만 그중에서 단연 빛나는 곡이 있으니 바로 미국의 남매 뮤지션 카펜터스(Carpenters)의 <(They Long To Be) Close To You>다. 이 곡은 무엇보다 카렌 카펜터(Karen Carpenter)의 아름다운 미성이 압도적이다. 리처드 카펜터(Richard Carpenter)의 키보드 연주와 화음은 음악에 낭만을 더한다.

또한 가사에서는 화자가 새와 별에 자신의 마음을 빗대고, 상대방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묘사한다. 노랫말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들어보면 내가 다 설레고 마는 것이다. 카렌 카펜터는 안타깝게도 세상을 일찍 떠났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목소리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얼마나 귀한 곡이고 감정이며 인연인가.

🥦 윤하 - 케이프 혼

9월 1일, 윤하가 일곱 번째 정규 앨범 [Growth Theory]를 발매했다. 이번 앨범은 6집 [End Theory]에서부터 시작된 'Theory 3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한다. 전작이 이방인이었던 소녀가 지구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면, 이번 앨범에선 소녀가 지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성장해간다. 윤하는 수록된 모든 곡의 작사, 작곡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적인 프로듀싱까지 맡았다.

윤하는 늘 전자음보다 실제 악기를 적극 활용했다. 다양한 악기가 어우러진 다양한 음악을 선보여 왔는데 이번에 나온 <케이프 혼>은 특히 신선하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전통 음악에서 주로 들을 수 있는 백파이프 같은 목관악기 소리가 두드러진다. 시작부터 여행, 모험을 떠나야 할 것 같은 악기 소리가 울리더니 윤하는 "전례없는 도전"이라며 "닻을 올려라"고 외친다.

곡 제목으로 쓰인 '케이프 혼'은 남미 최남단 지역명이라고 한다. 즉, 케이프 혼은 대륙의 남쪽 끝이요, 그보다 더 밑은 남극뿐인 곳이다. 그곳에 선다면 눈앞은 망망대해, 수평선뿐일 테고, 모험을 시작하기 더없이 어울리는 장소일 것이다. 2022년 <사건의 지평선>으로 뜻밖에 '역주행' 특수를 누렸던 윤하에게 갈 길이 아직 오래, 많이 남아있길 기대한다.

🥦 The Dare - Perfume

오랜만이다, 이런 날것으로 점철된 음악이. 덜 다듬어진 듯한 소리가 도리어 매력적이다. 데어(The Dare)의 <Perfume>은 잔향이 긴 향수보단 짧고 강렬한 쪽에 가깝다. 떠들썩한 밤, 광란의 파티를 위한 곡이다. 편집샵에서 나올 법한 곡이기도 하다. 곡에서 백미는 코러스에서 "Perfume"하고 소리 지르는 대목이다. 뿜어져 나오는 향수처럼 욕망이 터져 나온다.

일반적으로 음악을 감상할 때 가급적 고음질의 음원을 가급적 좋은 기기로 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고, 이 곡이라고 예외일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이런 유의 음악은 음질보다 분위기가 중요하다. 가급적 크게, 심신이 좀 풀어진 상태에서, 음악에 맞춰 소리도 좀 질러가며 들어야 제맛이다. 마치 엘씨디 사운드시스템(LCD Soundsystem) 음악처럼 말이다.

<Perfume>은 데어가 최근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 [What's Wrong With New York]에 실렸다. 앨범 수록 곡이 전체적으로 스타일리시하고 섹시하다. 그에 걸맞게 앨범 재킷은 마치 과거 디올 옴므를 이끌었고 현재 셀린느의 디렉터인 에디 슬리먼 스타일을 연상케한다. 그 유명한 에드워드 펄롱의 캘빈 클라인 광고도 생각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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