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24] 🥦 여름 끝자락에 함께하는 곡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찾아왔네요. 열대야가 물러났어요! 아침과 밤은 대체로 선선, 때로는 좀 춥게 느껴질 정도로 서늘하고, 한낮엔 아직 더운 시기가 왔습니다. 이맘때가 저는 좋더라고요. 여름 특유의 생명력이 여전하면서도 푹푹 찌지는 않아서 어디 돌아다닐 만한, 그러면서 아침과 밤엔 끈적거리지 않아 쾌적한 바람 덕분이죠. 이런 날씨가 캘리포니아 등 미국 서부 해안가랑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그렇다면 LA를 괜히 살기 좋다고 하는 게 아니겠구나 싶습니다.

더위가 꺾여서 좋은 것 중에 하나는 석양을 보면서 달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여름에 저는 거의 밤에만 뛰거든요. 엊그제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퇴근하고 집 앞 호수 공원을 달리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나 낯선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 하고 계속 봤는데, 국내에서 활동하는 마스터즈(전업 선수는 '엘리트', 그 외 아마추어 및 동호인을 '마스터즈'라 칭합니다) 최고의 러너 중 한 명인 거예요! 유튜브 등 러닝 콘텐츠로 여러 번 접한 적 있고 전주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언젠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제 동네에서 볼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지라 무척 놀랐습니다.

실력이 하늘과 땅 차이니, 그리고 운동하는데 방해가 되면 안 되니 같이 뛰진 못하더라도 멀리서나마 다시 보고 가능하다면 사진도 찍고 싶어서 급히 방향을 틀었습니다.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도 끌어올렸고요. 방향을 요리조리 틀어가며 그 사람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주인 잃은 강아지마냥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요. 그러나 그는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과연 정말 빠르더군요! 하지만 덕분에 찾으러 다니는 30여 분 동안 정말 재밌게 달렸습니다. 이 코너를 돌았는데 나오면 어떡하지? 뭐라고 말을 건네지?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실례일까? 등등을 상상하면서요. 지나고 보니 선물 같은 순간이었네요.

선물 같은 순간은 언제 찾아올지 몰라요. 지금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볼까요? PRIIISM이 선물 같은 순간에 함께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일교차 크니까 감기 조심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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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lking Heads - Psycho Killer

록(Rock)이나 밴드 음악 자주 듣는 사람이라면 유튜브에서 이들 공연 영상을 보게 되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릴스 같은 짧은 콘텐츠로 만났을지도 모른다. 음악보다도 퍼포먼스에 눈이 갔을지도 모른다. 지난 달 이들의 라이브 영상이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로 개봉되기도 해서 은근히 화제를 모았다. 미국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 이야기다.

토킹 헤즈는 70년대 중반 데뷔해서 8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들이 데뷔했을 때 대중음악, 그 중에서도 특히 록 시장은 말하자면 진지한 음악이 대세였다.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하드 록(Hard Rock), 헤비 메탈(Heavy Metal)이 주류를 이루었다. 토킹 헤즈 록 음악 판에 말 그대로 '새로운 물결'을 불어넣었다. 토킹 헤즈는 뉴웨이브(New Wave)의 시초격 뮤지션으로 불린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토킹 헤즈 음악은 유별나다. 코미디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보컬부터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갖가지 효과음이 누군가에겐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안무, 복장, 무대 구성 등 라이브 공연에서의 신묘함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소개하는 이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Psycho Killer>는 그래도 무난한 편이다. 별로 안 특이한데,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토킹 헤즈의 팬이 될 수 있다!

🥦 로다운 30 - 미혹의밤

정말 극소수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인디씬'에서 음악만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음악만 하는지 다른 일도 하는지까진 모르겠지만, 그 판에서 1992년에 데뷔해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사람이 있다. 기타리스트 윤병주가 그렇다. 그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록 밴드 로다운 30을 이끌고 있다. 로다운 30이 올해 여름이 슬슬 시작되려던 지난 유월 신곡 <미혹의밤>을 발표했다.

<미혹의밤>은 경쾌한 드럼 소리로 시작한다. 이어서 윤병주가 "완(굳이 따지자면 '원'이라고 적는 게 맞겠으나 '완'이라고 하고 싶다), 투, 완 투 뜨리" 하고 박자를 주면 기타와 베이스가 합류한다. 기타와 드럼은 훵키(Funky)하고 베이스는 뭔가 갈팡질팡 한 것이 묘하게 리드미컬하다. 그렇다. <미혹의밤>은 절제된 신남을 표현한 곡이다. 뭐든 과하지 않고 적당해야 오래 갈 수 있지 않은가. 노련미가 느껴지는 음악이다.

그런데 사소한 궁금증, 로다운 30은 왜 노래 제목에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걸까? 1집 [Jaira] 때는 띄어쓰기를 했으나 2집 [1]부터는 모든 단어를 붙여쓴다. 이유가 궁금해서 검색해봤지만 이런 걸 묻는 인터뷰는 보지 못했다. 누구 아시는 분?

🥦 Eric Clapton - Believe In Life

이제 9월에 접어든 시점에서 연말 이야기는 성급해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연초부터, 아니, 지난해 이전부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나로선 충분히 시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연말이 되어 '올해의 무엇'을 꼽을 때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음악 관련 부문의 유력 후보가 될 것이다.

어느덧 80대 노장에 접어든 만큼 에릭 클랩튼의 음악 스펙트럼은 광활하다.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것은 역시 블루스(Blues)인데 다른 장르로의 확장을 모색하기도 했고, 블루스 안에서도 다양한 폭을 보여준다. 대표 곡 <Layla>로 예를 들어 보자. 에릭 클랩튼이 20대 중반 데렉 앤 도미노스(Derek & Dominos) 시절 발표한 원곡과 40대 중반이 되어 가진 MTV 언플러그드 공연에서 선보인 노래와 연주는 같은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격정과 평온의 대조를 이룬다. 대단한 점은 두 곡 모두 저마다의 매력이 넘친다. 들을수록 빠져들게 된다.

격정과 평온 중 꼭 하나를 고르라면 요즘 내겐 후자가 더 와 닿는다.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다면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거슬리는 것 없이 귀에 들리는 음악을 찾는다. 이때 자주 찾는 에릭 클랩튼 곡이 <Believe In Life>다. 아주 살짝 드라이브가 걸린 도입부 기타 소리부터 초연한 듯한 에릭 클랩튼의 목소리가 마음을 달래준다. 여기에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가 생각나게 하는 제목까지 어우러져서, <Believe In Life>는 이런 저런 이유로, 어쩌면 별 이유도 없이 마음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주문이 되기도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을 믿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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