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1] 🌻 나의 여름은 아직 안 끝났어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처서는 지난 주였지만 일주일이 지나 비로소 처서매직이 힘을 쓰는 듯합니다. 이제는 새벽이나 저녁 무렵이면 전보다 공기의 질감이 한 꺼풀 연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해도 없는 시간부터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를 우리 모두가 치열하게도 잘 견뎠습니다. 유난히도 덥고 힘든 올해였는데, 참 간사하게도 시원해지기 무섭게 여름을 보내주기 아쉬워집니다. 저는 원래 유구한 역사의 여름 헤이터였는데 말이죠...

어쩌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을까 생각해보면 '물량 공세에 장사 없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여름과 관련된 근사한 추억이 매해 잔뜩 생겨버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땀을 줄줄 흘리고 꺼멓게 타버릴지언정 한여름 락 페스티벌에서 보낸 황홀한 하루, 천변을 달리다 이마의 땀방울이 슥 마를 때, 물기 송골송골 맺힌 생맥주 잔의 호쾌함 같은 것들 말이죠. 그 순간 맞춘 듯 어울리는 여름의 BGM까지 더해진다면 도무지 이 끈적하고 후텁지근하기만 한 계절을 미워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다 보니 8월이란 달마저 잔뜩 정이 들었어요. 작년에도 비슷한 마음이었으니까 '올해 8월은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을 만큼 알차게 보내야지, 이왕 덥다면 더 더워야지' 이런 생각으로 한 달을 시작했는데요. 역시 좋아하는 마음과 미련은 비례하는지 이번 달을 쿨하게 보내주기가 어렵네요. 살다 보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오아시스 재결합도 다 보고.. 인생이 그런 건가 봐요) 그래서 오늘은 여름의 끝을 잡으며 듣고 있는 세 곡을 소개해봅니다. 가벼운 맘으로 같이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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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ovin' Spoonful - Daydream

여름의 산책길엔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온도와 습도가 절정을 달릴 쯤엔 골이 다 울리는 하드 락만 듣고 지냈다. 주사 맞을 때 엉덩이를 때리듯이 고자극의 음악이 차라리 이 끈적함을 잊게 할 것만 같았다. 그나마 인도적인 수준(?)으로 날씨가 가라앉고선 명상하는 마음으로 느긋한 음악을 찾아 들었다. 한바탕 걷고 나면 여전히 땀이 티셔츠를 적시지만 이 정도면 '여름이니까 덥지 또 언제 덥겠냐' 하며 기꺼이 흘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러빈 스푼풀(The Lovin' Spoonful)은 1960년대 활동한 미국 밴드다. 발걸음이 자연히 사뿐사뿐 느려지는 목소리. 목가적이기까지 한 평화와 여유가 음악에 그득하다. 올 여름 느긋하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이들의 음악을 알게 됐다. 사실 하루키의 에세이는 거대한 뮤직 큐레이션 에세이로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작품, 심지어 소설에도 본인의 평소 취향을 여과 없이 드러내니까. 에세이는 딱 <Daydream>만큼이나 평화롭고 한편으로 시덥잖으며 즐거워서 머리를 한결 말끔하게 해주었다.

🌻 보수동쿨러 & 해서웨이 - 월드투어

부산의 자랑인 두 밴드, 보수동쿨러와 해서웨이의 합작 앨범 소개글 중 첫 문장은 이러하다. '시작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공연이나 같이 하자던 말에서 서로의 곡을 커버해보자, 이럴 거면 곡을 새로 만들자, 이럴 거면 뮤직비디오도 찍자 하며 프로젝트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것이다. 아무려면 두 밴드을 좋아하는 청자 입장에서는 1+1 혜택 같은 선물이니 반길 수밖에 없다. <월드투어>는 2022년 이렇게 발매한 [LOVE SAND] 앨범의 수록곡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다정한 친구가 되는 거야~' 혹시 두 밴드의 우정을 드러낸 곡인가 싶을 만큼 노래에는 포용과 화합의 분위기가 넘친다. 여름 휴가 첫날의 설렘처럼 느낌 좋은 도입부의 기타 리프 또한 시원시원하다. 나는 이번에 10월 초 열리는 부산 록 페스티벌 3일권을 예매한 뒤 라인업에서 해서웨이를 발견하고 반가워 했다. 부산 락페인데, 부산 대표 밴드인 보수동쿨러도 응당 등장해줘야 하는 것 아닌지? 라인업 포스터에 아직 'and more..'가 적혀 있으므로 차분히 기다려보려 한다.

🌻 윤석철트리오 - 나의 여름은 아직 안 끝났어

레터 발행 하루 전 운명처럼 발견했다. 바로 어제 따끈따끈하게 발매한 윤석철트리오의 신보. 5년 만에 나온 정규 앨범이라 한다. 하물며 슬금슬금 페이드아웃되는 올해의 여름에 대한 내 감상을 옮겨놓은 듯한 앨범 제목에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앨범과 같은 제목의 이 곡은 마지막 수록곡이다. 12분 40초라는 넉넉한 러닝타임에 걸쳐 이 계절에 대한 애정과 절절한 미련이 묻어난다. 누군가 내가 하고픈 말을 대신 해준 것처럼.

윤석철트리오는 은근히 제목 맛집이다. 이전 발표한 곡들만 봐도 <즐겁게, 음악.>, <여대 앞에 사는 남자>,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해> 같은 제목들. 이번 앨범 역시 한 끗씩 공들인 제목들이 찰진데, 1번 트랙 <Sonny never gets blue>는 손흥민 선수를 위한 헌정곡이라 한다. 그 외에도 <쇼츠하이>, <루틴 없는 게 루틴>처럼 동시대 음악가의 결과물을 만끽하는 재미를 톡톡히 준다. "나의 여름은 아직 안 끝났어!" 외치고 싶은 분들이라면 남은 8월의 나날을 이번 신보와 함께해보길 권한다. 치열하기도, 느긋하기도 했던 올해 여름의 한 페이지를 접어두는 데 좋은 BGM이 되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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